송대헌선생님의 교권강의를 듣고 자리를 옮겨 교육청 바로 곁에 있는 기계공고에서 분과별 연수를 가졌다.
초등국어 분과에는 스무명 선생님이 모여 <삶과 시>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그 전날 농민집회에 참석하다 머리를 다친 서정홍선생님께서 아픈 몸으로 우리를 만나러 오셨다.
시인의 이야기는 참으로 눈물겨웠다.
집회를 하는데 앞에 계시던 어르신이 얼굴에 피를 흘리며 다가와서 손수건을 꺼내 닦아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꽝 하면서 뒷머리를 치더라구요. 머리가 찢어지고 피가 흐르는데 병원에 갔더니 다친 농민들이 너무 많아 병원은 복도까지 가득 찼어요. 서로 옷을 벗겨준다. 피를 닦는다 도와주었지요. 병원은 터져나가고.... 할 수 없이 대강 꿰매고 소독은 조금 전에 평택에 와서 내과에 들러 하고 왔어요.
그런데 그 와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이란 내일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한 치 앞을 모르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시가 읽고 싶었어요. 그래서 후배가 사 준 이오덕선생님의 시집을 꺼내 읽었더니 마음이 편안 해 지더라구요.
누구나 빠쁘게 살아가더라도 시 한 편을 통해 삶을 바꿀 수 있어요. 선생님 같으신 분들이 마음 공부를 많이 하시고 아이들에게 들려 줄 시를 쓰셔야 해요.
아이들은 말문만 열어줘도 자기가 할 일을 알아채잖아요. 제가 이 자리에 온 것도 서로 사는 이야기 그 마음을 나누어서 감동하고 그 마음을 담아 아이들을 안아주자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왔어요.
시는 잘못한 거를 쓰면 되요.
선생님들도 일하는 사람이니 교실에서 아이들 가슴 아프게 한 것, 안타까왔던 일, 슬펐던 일을 고스란히 토해내기만 하면 되요.
아이들을 깊고 넓게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면 그게 시지요.
아이들 글이 매끄럽지 않아도 감동을 주는 것을 판단하시면 되요.
아이들이 읽고 재미없다 하면 다시 써야 되요. 아이들이 시를 듣고 숨을 고르거나 재미있다거나 눈물을 흐린다거나 박수를 쳐 주면 그게 좋은 시예요.
선생님들 가난하게 살기 위해 공부를 가르쳐 주세요.
진정한 행복은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제대로 깨우치기 위해서는 제 앞서 말씀해 주신 송대헌선생님 말씀처럼 하루 하루 깨우치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살아오시며 자신의 삶을 바꾸어던 시들을 들려주셨다.
윤동주의 <서시>와 동시 <해바라기>
박노해의 <이불을 꿰매며>
백기완의 <님을 위한 행진곡>
김남주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서정주 시 <엄마야 누나야>는 노래를 불러 주셨다.
고등학교 졸업 시험에는 이런 걸 실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밥을 맛있게 하는 방법
시금치는 몇 도에서 영양가를 파괴하지 않고 맛있게 삶을 수 있나?
집 지을 때 어떻게 하면 습기 차지 않고 오래 갈 집을 짓나?
감자는 언제 캐나?
옷은 어떻게 만들고 면은 뭐고 나일론은 뭔가?
먹고 입고 사는 문제를 알고 세상을 넓고 깊게 보는 눈을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 질문 시간에 <사람이 뭡니까?>를 묻는 초임선생님께
사람은 외로운 존재예요. 하지만 그 외로움을 벗어나지 말고 그 안에 머무르며 나를 잘 살펴보시고 마음을 살피세요. 사람만이 눈물을 흘릴 수 있지요. 그 눈물을 잊으면 안 되요.라고 하셨다.
<선생님, 저는 우리 반 아이 때문에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제가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도 없고 너무 막막합니다.> 하고는 그 말을 한 선생님이 울었다.
그래요. 가슴이 아픈 것 그대로 느끼고 그 아이를 안아주시면 되요. 그저 말문이 막히지만 않게 아이들 다독거려주는 것이 선생님이 할 일 이잖아요.
부모님이 다 있고 잘 사는 집 아이는 그냥 놔 두어도 잘 살아요. 하지만 부모님이 없거나 문제가 있는 아이, 가난한 아이 이 아이들은 선생님이 필요해요. 이 아이들을 안아주시고 보살펴 주세요. 그러라고 학교가 있는거잖아요.
선생님이 흘리신 그 눈물은 하느님과 부처님이 흘리시는 눈물과 같은 겁니다.
교실엔 선생님들의 눈물과 뉘우침과 다독임이 가득했다.
의사가 소리 지르지 말라고 했는데 제가 흥분을 했어요.
그저 귀한 선생님들과 만나는 아이들에게 일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귀한 것임을 꼭 이야기 해 주세요. 농사 짓는 사람, 집 짓는 사람, 옷 만드는 사람이 제일로 귀한 사람인 것을 말입니다.
서정홍선생님의 강의를 마치고 뒷풀이를 했다.
제가 흙집을 한 채 지었는데 평택선생님들 하루 밤 와서 자고 가시면 좋겠어요. 연수로 오셔도 되고 그냥 놀러 오셔도 됩니다. 방 마다 숯을 깔아두어 몸에 참 좋습니다.
하시며 마지막 선물까지 주고 가셨다.
다시 길을 나서는 선생님께 우리 모임 이미숙선생님께서
<선생님, 먼 길 가시는데 이거 가지고 가세요. 시루떡이예요. 조금까지 따뜻했는데 식었어요.>
하신다.
나는 눈물이 나서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을 바래다 드리고 다시 오니 우리 모임선생님들이 더 귀하게 보였다.
어휴, 이렇게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우리는 다음에 만날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서선생님께서 읽어주신 시 한 편을 가슴에 담는다.
박달재 아이들 3
성배는 흔히 하는 말로 지진아다
성배의 평균 점수는 대개 20점 미만이다
그래도 성배는 제 답안지에 번호 이름을
꼬박꼬박 적어서 내고
0점을 맞아도 남의 걸 훔쳐 쓰진 않는다
가끔, 보다 못한 감독 선생님이 슬그머니 답을 알려 주어도
성배는 결코 그 답을 받아쓰는 일이 엇다
그냥 틀리고 만다
그런 성배 녀석이 좋다
공부 못한다고 아무도 성배를 나무라지 않는다
애시당초 시험 점수와 성배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모두들 성배의 착함을 알기 때문이다
사실 착하고 정직하게 사는 일 말고
우리가 그렇게 기를 쓰며 배워야 할 게
또 무어란 말인가
성배의 웃는 얼굴을 볼 때마다
착하고 정직한 성배의 눈을 볼 때마다
세상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착하고 정직하게 사는 일 말고
진정 우리에게 중요한 게 또 무언가라고
-김시천<떠나는 것이 어찌 아름답기만 하랴> 내일을 여는 책
<2005.11.16>
첫댓글 다치셨다기에 걱정했는데, 강의 정말 좋으셨겠습니다. 부럽습니다, 은경샘. 그리고 이렇게 귀한 이야기 함께 나눌 수 있게 해 주신 것도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서정홍 선생님 뵌지가 나도 며칠 전이었는데요. 공부 많이 했습니다.
시는 잘못한 거 쓰면 돼요.... 동화도 잘못 한 거 쓰면 될 거 같아요. 그러면 서정오 선생님 말씀처럼 '바라보기'가 아니라 '들어가기'가 가능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 머리를 다치셔서 그런가?모자 쓰셨네요. 빨리 회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좋은 게시물이라 제가 들락거리는 부천 모임 카페로 스크랩해갑니다.
최은경 선생님, 좋은 강의 들으셨군요. 그걸 또 이렇게 자세히 나누어 주시다니요. 서정홍 선생님 걱정했는데, 그만하시길 다행입니다. 서정홍 선생님이 들려주셨는다는 시노래 가운데 <엄마야 누나야>는 서정주 작품이 아니라 김소월 것이겠지요.
아하, 그렇군요. 맞아요. 서정주님의 <국화꽃 옆에서>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깜빡했습니다. 김재곤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