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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문학> 2014년 제38집(2014. 12.13 발행)에 발표한 단편소설 "조롱복이야 덕세"를 올린다.
단편소설
조롱복이야 덕세
김현우
문사장이 자전거에서 내려 느티나무다방 의자에 앉으면서 꺼낸 첫마디가 어찌 수상했다. 하지만,
“하도 오래 살다가보니까 별 희한한 일도 다 있네?”
하는 얘기 들머리에 먼저 와 앉아 있던 사람들은 시큰둥해서 흥미 없다는 듯 반응하면서 그를 바라만 보았다. 잠깐 뜸을 들이던 문사장이 뚱뚱한 윗몸을 천천히 흔들고 나서는 얘기를 꺼냈다.
“아아! 그 놈으 가서나가 나타날 줄이야! 전에 봉오재 바로 내 옆집에 덕세라꼬 우리 진외가 쪽으로 조카뻘 되는 바보 비슷한 사람이 살았던 기라. 그런데 그 덕세 딸냄이가 무단가출을 한지 한 십년이나 됐을까? 통 소식이 없었던 그 년이…… 아! 까만 자가용을 몰고 나타났네? 그냥 온 거이 아니고 지 신랑인가 뭔가 서양 사람하고 머리 노란 아들까지 데불고 말이다…….”
심상찮은 서두에 늙은이들은 드디어 고개를 돌리며 문사장의 다음 얘기를 기다렸다.
“이름 하나는 좋제. 큰 덕(德)에 세상이라 칼 때 그 세(世), 득세(得勢)가 아이고 덕세 말이제. 이름만 좋으면 뭘 하겠노? 사람이 인물은 별 볼 것 없었지만 심성도 좋고 체구도 장대하고 번듯했지. 그런데 득세할 사람은 아이었고 반편이었단 말이요. 50푸로 모자라면 반편이, 70푸로 모자라면 칠푼이, 팔십푸로 모자라면 팔푼이…….”
“그라면 그 덕세라는 사람은 50푸로 쯤 모자랐단 말이야? 그럼 영 바보는 아니겠네?”
“아! 김씨! 내 얘길 성급하게 중도에 탁 뿔라버리지 말고 조용히 들어보소. 조실부모하고 칠서에서 한약국을 하던 삼촌이 거두어 줘서 초등학교는 다니는 둥 마는 둥, 하여간 졸업장은 탔제. 그들 형제가 삼형제였어. 나하고는 계내 톳골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랐고 진외가 쪽으로 이리저리 얽혀 촌수를 따지자면 영- 남은 아니고 조카뻘이 되었지. 그래서 내가 마산으로 이사 오고 나서 덕세 형제들도 하나 둘 마산으로 나와서 살게 되면서 말하자면 내가 그들의 보호자가 된 셈이었지.”
느티나무다방의 늙은이들에게는 언제나 흘러간 시절의 얘기로 하루가 열리고 또 하루가 흘러가고 어느 듯 하루가 문을 닫는다. 언제나 아침이면 해가 동쪽에서 떠서 한낮이면 하늘 복판에서 얼쩡거리다가 저녁이면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쓰윽 서쪽으로 사라져 버리듯 말이다. 늙은이들은 약속 같은 것을 모른다. 커피를 마실 시간쯤인 아침에 나타나면 밤새 죽지 않았던 것이고 며칠 보이지 않으면 그 자는 황천행 열차나 비행기나 객선을 탄 것이라고 모두들 생각했다.
느티나무다방이라니 뭐 거창한 간판이 달리고 다탁 의자가 즐비한 널찍한 홀에 한복을 입은 귀태가 줄줄 흐르는 마담, 호리낭창 허리, 허연 허벅지, 금방 흘러넘칠 듯한 풍만한 젖가슴의 성적매력이 철철 넘치는 레지아가씨가 아양을 떠는 그런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천만에!’ 큰 오해이다. 그냥 동리 느티나무 그늘아래 의자 몇 개 놓였고 궁상스런 늙은이 서넛 모여서 아무 데도 쓸모없는 잡담으로 날을 보내고 세월을 허송하는 곳이었다. 마을금고 앞 커피자판기에서 300원짜리 커피 뽑아서 홀짝거리는 곳이니 다방이라 그들은 자위한다. 다들 한 두 군데쯤 탈이 났거나 아니면 자식과 떨어져 살고 있거나 상처(喪妻)를 해 밥을 제 손으로 끓여먹는 홀아비 신세들도 있었지만 양로원도 요양병원도 갈 형편이 못되는 늙은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더더구나 여름이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고 겨울이면 뜨끈뜨끈하게 보일러가 주야로 돌아가는 노인정이라나 경로당이라나 그런 곳에도 출입할 형편이 못되는 어중간한 늙은이들이 주로 느티나무다방의 단골이었다.
“아따! 서론이 기네! 득세인가 덕세인가 마산 와서 어떻게 되었단 말이요?”
중풍 후유증으로 워낙 말을 떠듬떠듬 느리게 하는 문사장인지라 감질이 난 전원빌라 공씨영감이 장단을 쳤다. 그 바람에 문사장은 전에 피우다가 담뱃갑 안에 넣어 두었던 꽁초를 꺼내 불을 붙이려다가 말고 공씨영감을 쳐다보며 혀를 찼다.
“허어! 뭐가 급하노?”
하고서 기어이 담뱃갑에서 어렵게 꽁초를 꺼내 피워 물고서,
“덕세가 아무리 바보였지만도 그래도 복은 타고 난거라.”
했다. 문사장은 전에 보일러나 집수리를 하는 설비센터를 운영했던 경력 때문에 사장소리를 듣지만 몇 해 전 중풍으로 쓰러진 후로는 걷기가 불편해 져서 주로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그래서 금연하려고 애를 썼지만 딱 끓지를 못하고 사흘에 한 갑을 피우는데 담배에 불을 붙여 두어 모금 연기를 내뿜고 나면 불을 꺼서 꽁초를 담뱃갑 안에 넣어두곤 했다. 그러니까 담배 한 개비로 두세 번을 피우는 셈이었다.
“좀 모자란 사람이 복을 타고 났으면 얼매나 타고 났을 끼요? 제 앞가림만 해도 다행이제.”
김씨가 못미더워하자 문사장은 손을 내저었다.
“사람이란 다 크든 작든 제 몫의 복을 타고 나는 법이여. 그걸 분복(分福)이라고 하제. 사람이 태어날 제 부모복도 형제복도 점지되고 장가를 가면 처복(妻福), 자식을 낳으면 자식복도 생기는 기라.”
“복중에서 로또 1등 당첨! 돈벼락 맞는 돈복이 최고제!”
덕세의 삼촌은 면소재지 동리에서 한약국을 해 꽤 재산을 모은 사람으로 박약국이라 불리었다. 박약국은 군청이나 경찰서 같은 관공서, 유력한 지방유지들과 친분을 쌓고 인근 마을 길흉사까지 출입하는 등 발씨가 넓어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부모를 일찍 여윈 덕세 삼형제를 굶기지 않고 까막눈이 되지 않도록 학교에도 보내고 헐벗지 않도록 사시사철 옷 사 입히고 먹이고 조카를 거두는 일은 오로지 형을 일찍 저 세상으로 보낸 동생 박약국의 몫이었다. 그는 조금도 싫은 기색 없이 조카 삼형제를 키웠고 장가를 보낼 때가 되면 장가를 보냈고 살림을 내주기도 했다.
덕세는 막내였다. 그래서 만세와 천세 두 형들이 마산 수출자유지역의 회사에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셋방이라도 얻어 살림을 차리는 그 모든 일을 박약국이 다 마련해 주었다.
막내 덕세는 바보소리를 들을 만치 모자랐다. 그래서 박약국은 더욱 걱정이었다. 덕세가 사람들에게 괄시를 받지 않고 부지런하기만 하면 앞으로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취직자리를 구하려고 더욱 신경을 써야했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서 박약국은 마산시청에 근무하는 높은 사람을 통해서 구해준 직장이 다름 아닌 청소부 자리였다. 바보라 사람들에게 불릴 만큼 말씨도 어눌하고 행동거지도 많이 부자연스런 덕세가 앞으로 놀림을 받지 않고 편하게 몸 붙이고 살아갈만한 직업이 어떤 것일까? 하고 생각을 많이 했던 박약국이 내린 결단이었다. 바로 청소부. 공부를 못했어도 지능이 남보다 뒤떨어져도 반복적인 일이라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덕세가 타고난 머리는 없어 바보, 반편이란 소리를 듣지만 몸 하나는 건장해서 청소부 일은 능히 해 낼 것이라 생각되었다.
덕세가 마산시청의 청소부로 취직이 되고서 일 년이 조금 지났을 때 박약국은 덕세를 결혼시키기로 마음먹었다. 혼처는 대터마을 강씨 집안이었다. 가난한데다 딸만 주렁주렁 일곱이나 낳고 그 끝에 아들 하나를 둔 강씨였다. 궁핍한 강씨 집안의 형편을 환히 꿰고 있었던 박약국이 넌지시 권하는 한마디에 강씨는 너무나 반갑게 좋다고 했다. 물론 박약국의 제의는 궁색을 면할 절호의 기회여서 강씨로써는 거절하기 힘든 것이었다. 논 두마지기, 밭 300평도 강씨 앞으로 이전해 줄 뿐만 아니라 박약국 논 3천평도 소작을 하게 해 준다는 너무나 솔깃한 조건이었다.
“강씨도 알겠지만 우리 덕세가 조금 모자란 건 소문이 널리 나서 알겄제? 그래도 키도 크고 몸도 사내대장부답게 튼튼하지 않아?”
“아! 덕세가 어떤 아이인지는 나도 잘 압니더. 우리 딸냄이 중 하나하고 학교도 같이 댕깄는데요. 수굿한 성질에 아아들 하고 싸우지도 않고 잘 지냈다 카데요.”
“암! 내가 가정교육 하나는 잘 시켜놨제. 조실부모하면 보통 행실이 불량해서 나쁜 길로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조카들은 다 건실하게 컸어. 덕세 형들 둘은 다아 마산에 있는 큰 회사에 취직을 해서 월급을 아주 많이 받고 잘 살고 있지.”
“저도 소문 들어서 잘 알고 있지예. 다아 박약국이 뒷배를 봐주어서 그런 거이 아닙니껴!”
“아무리 내가 뒷바라지를 하고 도움을 줘도 조카들이 삐뚤어졌으면 뭐가 될 꺼이고? 화투나 치고 노름에다 술고래가 되면 누가 잡아 고칠 것이요? 다아 지들 복이제.”
강씨는 두 말 않고 덕세보다 한 살 적은 다섯째 딸을 시집보냈다. 물론 전세방을 얻거나 장롱, 알루미늄 솥 같은 살림살이는 박약국 부인이 마산을 오르내리며 새살림 구색을 빠짐없이 갖추어주었다.
“허어! 덕세 그 사람이 복이 있구마는! 아무리 하나 뿐인 삼촌이라도 그렇게 신경 써주는 경우는 드문데……. 박약국이라는 그 양반 정말 좋은 사람이네. 부모나 다름없어.”
“그래, 부모복은 타고나지 못했지만 삼촌이 그 대신 베푼 거지.”
문사장의 얘기에 공씨영감이 탄복했다는 듯 손뼉까지 치면서 호응했다. 문사장은 숨을 돌리듯 천천히 얘기를 계속했다.
“그 바보가 밤일을 할 줄 알았는지 아니면 여자가 요령을 부맀는지는 모르지만 결혼 한지 한 일 년쯤 지나고 나니까 애기를 가짔는 기라.”
“아따! 아무리 멍충이 또디기라도 총 쏘는 거는 안다카요. 개나 새나 누가 가르쳐주어서 새끼 배고 알 났나?”
김씨의 어깃장에 문사장은 가래를 카악! 뱉으며 그 말을 무시하며 얘기를 이어나갔다.
“참, 이놈으 여자가 용렬한 기라. 남자가 아침에 점심도시락 싸들고 청소부 일하러 출근하고 나면 설거지하고 서방이 벗어놓은 옷가지 빨래나 하고 그러고 얌전히 들어앉아 반찬이나 맛있게 만들고 김치나 잘 담으면 그만일 것인데…… 영 반편 서방이 제 욕심에 반도 안차니 사달이 날 밖에!”
“얘기가 그리 흘러가면 안 되는데?”
공씨영감이 혀를 끌끌 찼다.
결혼하고 일 년 반 쯤 세월이 지나고 나니까 그들 사이에 딸이 태어났다. 딸이 생기고보니 덕세는 정말 행복한 시절을 맞이한 셈이었다.
그는 시청 청소부 일을 별 어려움 없이 해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도 덕세와 비슷한 학력이라 별로 유식하지도 않았고 특출하게 좋은 집안 출신들도 아니었다. 너무나 평범하고 적당하게 무식한 사람들이라 바보인 덕세를 놀리지도 않았고 무시하지도 않았다. 요즘 학교나 직장에서 흔하다는 따돌림도 그들 사이에는 없었다. 빗질 걸레질을 조금 잘못하면 동료들이 슬쩍 눈감고 대신했고 덕세 또한 무거운 물건을 옮기거나 하는 힘쓰는 일이면 꾀부리지 않고 나서서 일했다. 그래서 동료들은 그를 한식구로 받아들여 감싸주었으므로 직장생활은 그에게 행복했다. 퇴근시간이면 같이 통술집에 가서 술 한 잔 먹기도 했지만 만취해서 주정을 부리는 일은 없었다.
결혼 생활은 순조로웠다. 아내는 아기를 키우느라 살림 사느라 재미가 난다고 자주 웃기도 했다. 두 명의 형과 형수들이 그의 집을 들락거리면서 뒷배 봐주기를 충실히 했다. 새댁에게 반찬을 맛있게 만들 수 있도록, 살림을 낭비 없이 살도록 가르치고 남편이 타오는 월급을 저축해서 몇 해 안에 집을 장만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아내는 동서 둘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 듯 했다.
딸 춘심이가 돌이 지났을 무렵 이웃 사람들도 덕세를 보고,
“참, 복이 많아. 마누라도 참하게 살림 잘 살고 딸냄이도 너무 예쁘네!”
하고 복이 많다고들 반쯤은 칭찬으로 반쯤은 조롱으로 그랬다. 그런 내색을 모르는 덕세는 그저 듣기가 좋아 웃었다. 이웃 사람들은 돌아서서는 저희들끼리 숙덕거렸다.
“개다리소반에 진수성찬 차린 꼴이제. 멀쩡한 새댁이가 우째 저런 바보한테 시집을 왔을꼬?”
“춘심이 엄마가 논밭에 팔려온 거라요. 저이 부모가 딸냄이를 바보 천치에게 팔아먹은 거지. 고향에서 약국을 하는 삼촌이 큰 재산을 뚝 떼어 주고 장가를 들있다꼬 합디더.”
“새댁이 눈이 똑 바로 백히고 귓동냥이라도 할 총기만 있으면 우째 바보하고 백년해로 종신하겠노? 두고 보라모! 얼매 못가서 쪼개 질 꺼로?”
사실 이웃의 관심은 바보와 살고 있는 얼굴이 반반하고 멀쩡한 정신을 가진 여자가 과연 탈을 내지 않고 얼마나 오래 버티나 하고 악의에 찬 관심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좀 더 악질이고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몇 몇 아낙네는 은근슬쩍 충동질을 하기도 했다. 아니 더 노골적으로 바람을 피우라고 멋진 애인 하나 소개시켜 주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아이고! 새댁이는 용하네! 나 같으면 저렇게 앞뒤가 꽉 막힌 남자하고는 하루도 못 산데이. 앞으로 으째 살끼고? ”
“우리 여자들은 밥만 묵고 못 산데이. 춘심이 엄마도 화장도 하고 우리처럼 놀러도 댕기고 바람도 피울만 하면 피워야 숨통도 트이고 사는 재미도 나제.”
“내가 하나 소개해 주까? 숨도 못 쉬게 깜빡 죽여주는 남자……호호호.”
문사장은 아까 피우다 넣어 두었던 담배개비를 다시 꺼내 불을 붙이며 분노에 찬 소리를 내질렀다.
“이웃 여편네들의 충동질 때문이었는지 원래 화냥끼를 타고 났는지 모르지만 결국 딸 춘심이가 두 살이 채 안된 때였는데 덕세 마누라가 도망을 쳤지 뭐꼬! 공사판을 돌아 댕기는 후레아들 같은 잡넘하고 말이다.”
당시의 일을 지금 생각만 해도 성이 난다는 듯 문사장은 언성이 높아지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 년이 그냥 도망질 쳤으면 내 말도 안하겠어. 글쎄, 덕세가 씨가 빠지게 벌어 착착 모아둔 월급을 몽땅 들고 도망거지한 기라. 나 참! 그런 빌어 묵을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노 말이다.”
김씨가 문사장의 삿대질에 비명을 질렀다.
“허어! 옆에 사람 치겄다. 손 좀 놀리지 말고 얘기하소.”
“내 지금도 그 일만 생각나문 자다가 벌떡 일어난다꼬!”
공씨영감이 문사장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인자 처복 하나는 파이(;罷意)가 됐네. 그래도 형이 둘이나 있고 하니 큰 의지가 되었겄제. 그 모자란 사람을 형들이 돌보지 않으면 누가 돌보겠노?”
하고 그 다음 일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물었다.
“처음에야 우리 모두 놀라고 환장을 해서 양 사방으로 도망친 여자를 찾아다니고 난리를 쳤제. 덕세는 기운이 하나도 없이 축 늘어져 버리고 말이야. 결국 여자는 못 찾았고…… 두 살짜리 춘심이를 누가 키울 것이고? 결국 덕세 큰형과 형수가 맡아 키우기로 하고 덕세도 형 집으로 이사해서 살림을 합쳤지.”
“잘 되었네? 형제간에 우애가 있구먼.”
공씨영감의 응대에 문사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도 처음에는 형제복은 있나 했었제.”
덕세의 큰형 만세는 성질은 순하나 게으르고 술을 좋아했다. 회사에서 맡은 일이란 게 큰 기술 없이도 해 낼 수 있어서 직장생활은 별 탈 없이 지냈다. 그런데 그의 아내는 욕심이 많고 아득바득 잘 살아보고자 애살을 피우는 여자였다. 그러니 부부 간에 자주 싸웠다. 만세가 술 먹고 월급봉투 축내기를 다반사로 하니 덕세 형수는 앙앙불락 남편을 다그쳤다. 그러나 만세는 아내가 뭐라 하건 말건 술이 취해 들어오는 날이 많았다. 자연히 그는 바보 동생에 대해서도 무관심해졌다. 그 대신 여자가 시동생의 월급봉투를 매달 받아 챙겨버렸다. 빈 봉투를 매달 들고 오는 남편 때문에 덕세 형수는 시동생이 받아오는 월급으로 생활을 하게 됐던 것이다.
“내가 시동생 딸을 키워주고 둘이 밥도 먹이고 재워주니 당연히 월급을 내가 마음대로 쓰는 거야.”
하고 이웃 여자들에게 공공연히 시동생의 월급을 마음대로 쓴다고 자랑했다. 형수는 덕세에게 시내버스비 외에 용돈 한 푼 건네지 않았다. 옷이 낡아도 새 옷을 사 입어야 될 형편인데도 형수는 모르는 척 했다. 형의 낡은 옷을 입혔다. 물론 춘심이에게도 설이나 추석명절이 되어도 새 옷을 사 주지 않았다. 이웃 사람들에게서 헌옷을 얻어 입히거나 아니면 예전 그들 자식들이 입었던 옷을 줄이거나 고쳐서 입혔다. 월급봉투를 통째로 갖다 주는 시동생에 대한 대접이 너무나 소홀했던 것이다.
그것을 보다 못한 문사장이 만세와 만세 아내에게 야단을 쳤다.
“아니! 너희들 그래 심뽀가 고약한 줄 몰랐다. 덕세가 월급을 타서 제 용돈 한 푼 안 쓰고 꼬박꼬박 너희들에게 갖다 주는데 저 춘심이 옷 꼬라지 봐라! 우째 너희들 눈에는 누더기 거지꼴은 보이지 않고 부잣집 딸냄이 같이 보이나? 당장 내일 예쁘고 고급스런 새 옷을 사 입혀 학교에 보내 거라.”
문사장의 말에 만세 내외는 두 말도 못하고 ‘그렇게 하겠노라.’ 고개를 조아렸다. 그런데 며칠 후 춘심이를 만나 확인해 보니 옷은 여전히 헌 옷이요, 신발도 새 것이 아니었다.
“이, 빌어묵을 인간들이! 내 말을 한쪽 귀로 듣고 저쪽 귀로 흘려버려? 아니! 내가 새 옷을 사 입혀라 하면 사 입힐 것이지!”
“아이구! 월급날이 언젠데 집에 돈이 있어요? 저 사람은 술값에 월급봉투는 언제나 빈 봉투가 아입니껴? 그랑께 내가 우째 살림을 제대로 살겠습니껴?”
만세 아내의 변명은 그럴싸하였지만 전적으로 시동생 월급으로 생계를 꾸려나간다는 소리는 너무나 뻔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었어. 술고래였던 만세가 술병을 얻어 간경화로 죽어뿌맀지 뭐꼬? 춘심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지. 월급을 몽땅 형수에게 갖다 바치든 말든 그래도 만세 집에서 더부살이가 편하고 복이었는데 그것도 끝장이 난 셈이제.”
문사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아! 형이 죽고 없으니 형수가 박대해서 집에서 쫓아냈구먼?”
“그런 셈이지. 만세 마누라가 바로 시동생 수발이고 질녀 뒤치다꺼리를 못하겠다고 아우성을 치니 둘째 형 천세가 맡게 된 거지.”
“그 둘째 형이란 사람 형편은 어땠는데?”
“그 놈이 그 놈이지. 둘째 질부가 바보 시동생과 한 지붕 밑에서 같이 살 수 없다고 바락바락 악을 쓰며 반대를 한 거지. 마누라가 죽으라꼬 반대를 하니 천세인들 용빼는 재주도 없고 말이야…….”
“허어! 덕세 그 사람 낭패가 났구먼. 마누라도 없는 사람이 조석은 어떻게 끓여 먹고 딸냄이는 어떻게 키울 것이고?”
문사장은 김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결국 덕세를 내가 돌봐주기로 한 것이제.”
문사장은 그의 집 근처 셋방을 얻어 덕세를 이사하도록 하고 문사장 아내가 오가며 살림을 돌봐주기로 하였다. 물론 밥을 해 먹는 것은 덕세가 할 수 있었지만 빨래, 반찬이나 연탄아궁이 돌보는 것은 전적으로 문사장 아내의 몫이었다.
덕세는 한동안 문사장 내외의 보살핌으로 편하게 지냈다.
딸 춘심이가 가출을 하기 시작하기는 중학교에 다니면서였다.
춘심이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밥을 하거나 빨래를 하고 살림을 살았다. 물론 문사장 아내가 이것저것 가르치고 돌봐 주었는데 춘심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쯤에는 한결 도와 줄 일이 줄어들어 문사장 내외는 걱정을 덜하고 살게 되었다. 춘심이는 제 아비와는 달리 어미를 닮았는지 재주가 있어 공부도 제법하고 눈치도 빠르고 여러 모로 예쁜 구석이 많은 아이로 자랐다. 영악하기도 하고 거짓말도 잘해서 그 때문에 덕세도 문사장도 속이 썩어야 했다. 물론 모자란 덕세가 딸의 행실을 바로잡거나 훈계할 형편이 아니었으니 문사장 내외가 춘심이를 구슬리고 잔소리를 해야 했다. 그런데 어린 것이 도망을 간 제 어미를 닮았든지 눈치만 재빨라서 어른들을 속이려 들었다. 거기다 못난 송아지 엉덩이에서 뿔난다고 열 너댓살이 되었을 때 너무나 조숙해져서 머슴애들을 달고 다녔다.
“아이고! 화냥년 제 어미를 닮았는지 그 쪼꼬만한 가서나가 연애를 걸로 댕긴다꼬 난리요.”
아내의 말에 문사장은 코웃음을 쳤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노? 열댓 살도 안 된 춘심이가 뭘 안다꼬 연애를 한단 말이고? 함부래 그런 소리 하지 말아래이.”
“그게 아이라 칸게네요. 얼굴에 분칠을 하고 젖도 볼록하게 나오고 궁둥이도 실팍해졌다 칸게네요. 어른들이 쓰는 화장품을 벌써 사서 얼굴에 하얗게 바르고…… 머스마들이 콧구멍만한 방에 놀러 온다 칸게네요.”
“허어! 여자가 못하는 소리가 없네. 당신도 그 나이됐을 때를 생각해 보라모. 화장도 하고 싶고 머스마들과 놀고 싶었을 거 아냐? 하여간 사고 치지 않도록 잘 얘기하고 돌봐!”
“아따! 요새 아이들이 부모 말도 안 듣는데 한 다리 건너 아재 말을 듣겠는교?”
아내는 문사장의 타박에 더 뭐라 하지 않았지만 춘심이가 행실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더니 중학교 2학년 때 온다간다 말도 없이 여러 날을 등교하지 않고 어딘가 친구 따라 놀러 갔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게 가출이었다. 물론 아버지를 대신해서 문사장이나 아내가 야단을 치고 앞으로 꼭꼭 집에 들어오고 아버지나 아재 허락을 받고서 놀러 가야한다고 장시간 설교를 했다. 눈치가 빠른 춘심이도 절대 그런 일이 앞으로 없을 것이란 다짐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또 가출해 버린 것이었다. 누가 찾아 가지도 못했다. 어디로 갔는지 행방이 묘연하고 아버지는 바보에다 청소일로 출근을 해야 하니 누가 찾아 나설 것인가? 물론 문사장이나 아내가 나서야지만 다 제 일이 있으니 생계를 팽개치고 발 벗고 나설 형편이 못되었다.
가출을 하고 나면 학교 선생들도 난리였다. 문사장이 학교를 찾아가 빌었고 고개를 푹 숙인 춘심이를 끌고 학교에 가서 교실에 떠밀어 넣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그것도 몇 번 반복하고 나니 어느 듯 3학년이 되었고 졸업을 얼마 앞둔 초겨울에 아버지의 월급을 모아둔 통장을 들고 달아나면서 춘심이의 가출은 끝이 났다. 덕세나 문사장 내외는 그 이후 춘심이를 보지 못했으니까.
“허! 덕세 그 사람 복도 정말 조롱복일세. 잘 살만하면 그것으로 끝나니! 중학생 딸이 졸업을 하고 그러면 살림도 알아서 잘 살 것이고 제 아비 뒷바라지도 잘 할 것인데! 그러면 덕세 그 사람이 얼마나 살기가 편해 질 것인데! 그런데 딸이 애비를 버리고 가출해 버리다니!”
공씨영감의 한탄에 문사장은 새 담배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김씨도 토를 달았다.
“살림 살 딸이 없어졌으니 덕세 그 사람 어떻게 살게 되었소? 또 문사장 차지겠네.”
“암! 내 이웃에 살고 있으니 어쩌겠어? 마누라가 고생이 많았지.”
“우짜든지 집안 아재 노릇은 단단히 해야 하는 팔자였구먼.”
“그런데 갈수록 산이라더니 덕세 그 놈이 바람이 난 거 아니야? 허허허.”
“그게 무슨 소리?”
“여자가 붙었어. 다방 레지 아가씨가 덕세에게 붙은 거지.”
“덕세가 바로 천치라더니! 영 바보는 아니었구먼. 여자를 꼬신 걸 보면.”
“덕세가 여자를 꼬시다니?! 천만에 말씀. 여자가 덕세를 꼬신 것이었어.”
“허허허. 여자복은 있었구먼.”
춘심이가 가출해서 소식 없이 지낸지 10년이 다 되어 갈 즈음 시청 청소실로 커피 배달을 왔던 박양이 덕세를 눈여겨 본 것이었다. 같이 커피를 마시던 동료 고용원들이 슬슬 농담 삼아 덕세를 박양 곁으로 몰아붙였다.
“박양. 노총각 하나 구제해 주라. 문주사가 정말 양반이다? 술 담배도 안하고 착실하게 월급을 모아놓았는데 시집 올 여자가 없는 기라.”
늙은 동료의 말에 또 다른 사람이 거들었다.
“힘이 장사데이. 아마 박양은 기절하고 말끼다. 기운 좋고 착실하고 돈도 많고. 세상에 이런 신랑깜이 어디 있겠노?”
“아이! 아저씨들도! 나이가 아주 많이 들어 보이는데 총각이라니요? 공갈치지 마세요.”
“공갈이라니! 문덕세! 니가 한 마디만 해라! 혼자 사는지 마누라와 사는지!”
그 소리에 덕세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봐라, 봐! 혼자라 하지 않어? 박양. 말이 나온 김에 한번 같이 살아 봐.”
그런 흰소리들이 오갔는데 인연이란 게 별것이 아니었다. 박양이 덕세 꽁무니에 달라붙었던 것이다. 뒷날 사람들이 그랬다. ‘착실하게 월급을 모아 큰돈이 있다’는 말에 박양이 입맛이 당겼다고들.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결과가 그렇게 되고 말았으니까.
문사장은 춘심이가 덕세의 저금통장을 들고 도망간 이후 그의 감시망 속에 덕세의 월급은 꼬박꼬박 저축을 하게 했다. 한 십여 년 저축을 하였으니 제법 거금이 되었던 것이다. 그걸 아는 동료들이 슬쩍 박양에게 귀띔을 했고 그래서 돈에 대한 욕심이 생긴 그녀는 남자가 바보란 걸 알고서 그걸 또한 이용했다. 예쁘고 젊은 여자가 꼬리를 치는데 안 넘어갈 남자 드문데 약간 모자란 사내가 어찌 그걸 감당할 수 있겠는가?
“뭐라꼬? 다방 레지아가씨 하고 좋아 지낸지 오래 된다꼬? 그래서 합쳐?”
덕세가 박양과 점방을 얻어 장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문사장은 깜작 놀라고 기가 막혀 어쩔 줄 몰라 했다. 떠듬떠듬 느리게 하는 덕세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니 벌써 여자에게 가게를 얻을 전세자금에 쓰라고 저축통장을 통째 넘겨준 모양이었고 다방 여자는 화장품 장사를 한다며 가게도 계약했고 곧 주문한 물건이 도착하면 개업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라고…….”
“그라고? 퍼떡 말해라. 또 무슨 일이 있나?”
“사표를 냈어예. 퇴직금을 받아 화장품 물건 값 보태 쓰라고 줬어 예.”
“아이쿠! 이 망할 자슥이! 뭐라카노? 퇴직금까지 그 여자에게 줬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란 생각에 문사장 내외가 덕세를 앞장세워 시청근처에 박양이 있다는 다방으로 급히 찾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 다방에는 박양이 없었다. 그저께 아파서 못 나오겠다고 연락이 왔는데 오늘도 출근을 하지 않았다는 소리에 문사장은 그만 억장이 무너졌다. 덕세는 여자를 믿는 눈치라 태평이었다. 덕세를 닦달해서 요즘 간혹 가서 잠을 잤다는 박양의 셋방으로 달려갔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방은 텅 비어있었다. 화장품 장사를 하려고 얻었다는 가게로 쫓아갔다. 건물주인은 박양이 덕세와 와서 전세금만 물어 봤을 뿐 계약이고 뭐고 한 적이 없었다고 딱 잡아뗐다. 돈 한 푼 건네받은 적 없었다고 손사래 쳤다. 덕세는 문사장과 건물주와 주고받는 말이 뭔지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게 지켜보기만 했다.
“그 후에 어찌 됐어? 덕세가 청소부 사표를 내고 여자도 도망갔으면 끈 떨어진 연 꼬라지가 아닝가?”
공씨영감의 말에 문사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도 그만 덕세 뒷바라지에 진저리가 났어. 너 될 대로 되어봐라. 하고 제 형 천세를 불러 여차여차 저차저차 되었으니 이젠 나도 모르겠다. 늬 동생이니 늬가 잘 돌봐라. 그랬지.”
문사장의 말에 김씨가 토를 달았다.
“아이고! 인정머리 없는 양반이네. 모자란 사람이 직장도 잃고 돈도 잃고 여자도 잃었는데!”
“그래. 우찌 되었어?”
문사장은 한 숨을 푹 쉬더니 힘없이 대답했다.
“미쳐버렸지. 술주정뱅이가 되고 말이야……. 한 이 삼년 거지꼴로 살다가 그만 술병에 죽고 말았어. 제 형 천세도, 나도 설득도 하고 취직자리도 구해 주고 했지만 그놈이 박양만 찾는 거야. 술만 먹으면 도망간 여자를 못 잊어 울고불고 했었지. 그러다…….”
“복을 받아서 오래 누리지 못하고 쪽박을 차는 사람을 조롱복이야 그러제.”
공씨영감은 토를 달았고 어이없는 결말에 문사장의 얘기를 듣고 있었던 늙은이들이 모두들 한숨을 쉬며 동정어린 표정이 되었다. 그렇거나 말거나 그는 결론을 내 듯 말을 했다.
“덕세 딸이 어제 와서 제 애비 산소를 찾더군.”
“자기 내버리고 도망간 어미는 찾지 않고?”
김씨의 질문을 무시하고 문사장은 일어났다.
“춘심이 데리고 고향에 다녀와야겠어. 그라고 제 외갓집에도 데려다 줘야지. 제 어미 무슨 소식을 알란가?” ****
약력 : 김현우
1964년 <학원> 장편소설 당선
장편소설 <하늘에 기를 올려라> 창작소설집 <욱개명물전>외. 동화집 <산메아리> 외 다수.
한국문협,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경남문학관 사무국장 역임.
경남아동문학상, 경남도문화상, 황우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