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온갖 일이 주님의 명령 아닌 것이 없고, 주님의 상벌 아닌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이런 환난도 또한 천주께서 허락하신 바이니, 너희는 감수하고 인내하여 주님을 위하고 오직 주님께 슬피 빌어 빨리 평안함을 주시기를 기다려라.
내가 죽는 것이 너희 육정과 영혼의 일에 어찌 거리낌이 없겠는가? 그러나 천주께서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나보다 더 착실한 목자를 주실 것이니, 부디 서러워 말고 큰 사랑을 이루어, 한 몸같이 주님을 섬기다가 사후에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 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 천만 바란다. 잘 있거라. 김 신부 사정 정표(情表)
<김대건 신부님 마지막 서간(회유문) 中>
나의 마지막 시간이 다다랐으니 잘 들으시오. 내가 외국인과 연락한 것은 나의 신앙를 위해서이고 나의 천주를 위해서입니다. 이제 내가 죽는 것은 그분을 위해서입니다. 나를 위해 영원한 생명이 바야흐로 시작되려 합니다. 여러분도 사후에 행복하려면 천주를 믿으시오.
―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 직전
■일시 : 11월 9일(토요일)
■장소 : 수원교구 (골배마실, 은이성지, 미리내성지)
■문의 : 김영돈 요셉 010-4520-4922
<골배마실>
'골배마실'은 첩첩산중인 데다 뱀과 지네가 많아 '뱀 마을(배 마실)'이라고 불려왔다. 김대건의 조부 김택현과 가족들은 1827년경 박해를 피해 충청도 솔뫼에서 용인 배 마실(한덕동 경유)로 피신해 정착한 곳으로, 세례성사와 첫영성체를 준비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향한 열정을 불사르던 한국 천주교회 첫 번째 사제성소의 거룩한 둥지다.
<은이성지>
은이성지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1836년 모방 신부에게 세례성사와 첫영성체를 받고 신학생으로 선발된 곳으로서, 한국 천주교회에서 첫 번째로 사제성소의 열매를 맺은 곳이다.
1845년 조선인 최초로 사제품을 받고 귀국한 김대건 신부의 첫 사목활동은 은이 공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이곳에서 순교 전 공식적인 마지막 미사를 봉헌하였다.
곧 은이 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성장(산 너머 골배마실), 세례성사, 신학생 선발, 사제서품 후 사목활동의 직접적인 장소로서 한국 천주교회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이다.
<미리내성지>
미리내 성지는, 신유박해(1801년) 기해박해(1839) 때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들어 옹기를 굽고 화전을 일구어 살던 곳으로 밤이면 불빛이 은하수처럼 보여 미리내('은하수'의 우리말)라고 불리게 되었다.
병오박해(1846년) 때 순교한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미리내에 안장되면서 교회 안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묘소와, 그의 어머니 고 우르술라 그리고 김대건 신부에게 사제품을 준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인 페레올 주교의 묘가 있다.
또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새남터에서부터 이곳으로 옮겨 와 안장하고 선산을 교회에 봉헌한 이민식 빈첸시오의 묘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1976년, 수원교구에서 용인 지방에 산재해 있던 무명 순교자 17위의 유해를 미리내 성지 내 수원교구 성직자 묘역으로 이장하였는데 그중 1위는 병인박해 때 순교한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임이 밝혀졌다.
성지에는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기념 성전, 79위 시복 기념 경당 등이 있으며, 미리내 성 요셉 성당에 김대건 신부의 성해(聖骸)인 하악골(아래턱뼈)이 모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