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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갈등하는 지성
진하는 분노와 정체성 갈등을 삭히려고 공수도 도장에서 평소보다 더 많은 운동을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불타는 학구 욕을 이기지 못해 전문학교에 편입하였다.
경성제국 대학에서는 볼 수 없던 민족의식이 학교 당국이나 학생들 속에서 불타오르고 있어 민족의식이 없는 진하로서는 오히려 서먹하였다.
학교 내면에는 민족주의가 살아 움직이고, 교수와 학생들 중에는 공산주의 활동까지 활발하게 움직였다.
민족이나 애국 따위에는 본래부터 관심이 없는 진하에게 암암리 모이는 사회주의 서클이 다가왔다.
공산주의이란 새로운 사조에 호기심을 가진 진하는 자의반 타의반 「신흥청년구락부」를 찾았다.
동대문 밖 숭인면 안암리에 있는 복숭아밭 농막에서 전문 학생 10여명과 고보생 7-8명을 모아놓고 세련된 미모에 신여성이 학습을 지도하고 있었다.
친구가 진하를 소개하자 학습을 지도하는 여선생님이 먼저 함경도 억양으로 “나는 손명홥네다.”하고 악수를 청했다.
“저는 경성제국대학교를 다니다가, 민족의 울분을 못 참아 정무총감 「이마이다 기요노리(今井田清徳)」조카 「마스다」연석을 폭행하였다가 학교에서 재적을 당해 집에서 잠시 쉬었다가 일본을 이기려면 배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전문학교에 편입한 손진하라고 합니다.”
진하답지 않게 모인 분위기에 편승하여 반일감정을 과장하며 애국자연하게 인사하였다.
모두 박수치며 악수를 하는데 어린 여학생까지 악수로 환영해주었다.
손 선생은 불세 비키 혁명론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부분부분 발췌하여 등사기로 프린트한 교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신흥청년구락부에 참여하면서 마르크스 사상과 불세 비키 혁명에 눈을 떴다.
손 선생은 학습 도중에 감옥에 있는 박헌영 동지와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김단야와 주세죽동지 등 조선공산당원의 공적과 혁명투쟁을 소개하면서 때로는 여러분도 혁명전사가 되자고 하였다.
일본인도 아니고 조선인도 못되는 자기 정체성을 찾아 방황하던 진하는 신흥청년구락부를 통해 민족이나 국가보다 온 인류가 소비에트 연방에서 평등하게 살도록 해야 한다는 공산주의 세계관을 배우면서 공산주의야말로 내가 바라던 철학이라 믿고 신흥청년구락부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전문학교를 졸업할 때쯤 진하는 철저한 공산주의가 되어있었다.
신흥청년구락부는 화요일에 모였지만 매 주말이면 손 선생이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서 사용하는 교재를 프린트해서 학생들에게 러시아말을 가르쳤다.
진하는 서울 집을 처음 마련하였을 때 혼자 사는 러시아 여인이 행랑에 들어와서 5년째 살며 마을 사람들을 치료해주었다.
이 서양 아주머니는 진하 형제에게 러시아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러시아말까지 가르쳐 주었다.
동화책을 보는 재미로 서양 아주머니에게 러시아말을 배워 톨스토이, 도스토엡스키, 푸시긴, 체호프 작품을 동화로 만들어 놓은 것을 읽었던 진하도 손명화 선생을 도와 학생들에게 초 중급의 러시아 말을 가르쳤다.
졸업이 다가오자 아버지는 앞으로 과수원 농사를 지으며 평화롭게 지내자고 하셨다.
경성제국대학을 다닐 때는 출세욕의 야망이 넘쳐났지만 지금은 신흥청년 학습반을 통해 공산주의 혁명가를 꿈꾸게 되었다.
1934년 연말이 되면서 여기저기서 망년회가 열렸다.
하루는 열차 안 사건에 연루 되었던 친구를 비롯해 진하와 가까운 친구 몇이 관수동 선술집에서 망년회를 가졌다.
주모와 같이 술상을 들고 들어오는 작부(酌婦)가 어쩐지 낮 설지 않았다.
어디서 보았을까?
상양하고 영리하게 생긴 계집이 어딘지 모르게 많이 보았던 여자 같았다.
스무 두어 살은 되어 보이는 요염하게 생긴 계집이 난잡하지도 않으면서 사내들을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지금껏 친구들과 목로 집에 앉아 술을 마셨지만 작부와 같이 앉아보기는 처음이다.
도무지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할 수가 없는 여인이 망년회 내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술이 몇 순배 돌고 나서 친구들의 요청으로 작부가 일어나 붉은 갑사(甲紗)치맛자락을 살짝살짝 벌여 한쪽 허벅지를 살짝살짝 내보이게 몸을 흔들며 한창 유행하고 있는 이애리수의 황성의 적을 흐드러지게 불렀다.
황성 옛터에 밤이 드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뤄 구슬픈 벌레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주노라
아 가엽다 이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고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있노라
나는 가리로다. 끌이 없이 이발길 닿는 곳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정처가 없어도 아 괴로운 이 심사를 가슴 깊이 두고 이 몸은 흘러서 가노니 옛터야 잘 있어라.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구슬프게 부르는 계집을 따라 모두 함께 합창을 하는데 어떻게나 애잔하게 부르는지 친구 대부분이 눈물을 흘렸다.
여인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진하의 마음은 손아래 여동생 느낌에 사로잡히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집에 와서 자리에 누웠어도 작부의 애잔한 노랫소리가 귀에 쟁쟁거려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어쩌면 「황성(荒城)의 적(跡)」은 그 계집을 위하여 만든 노래만 같았다.
약력 설은 일본 사람들만 쇠므로 개성은 물론이고 서울의 거리도 공휴일이라는 것 외에는 평일 그대로였다.
텅 빈 관수동 선술집 안은 낮이라 아직 손님은 없고 색시 혼자서 가게를 청소하고 있었다.
진하는 어떨 결에 “안녕하십니까?” 하며 꾸벅 절을 했다.
진하의 촌스러운 행동에 색시가 빙그레 웃으면서 “서방님 어서 오셔요.” 하고 목로의자를 내 놓았다.
엉거주춤 하던 진하는 색시가 내놓는 목로의자에 앉았다.
사람 소리에 내다보던 주모가 숫된 부잣집 새서방 같은 사내가 앉은 것을 보고는 달려 나와 “아이고 서방님 안방에 술상 차릴까요.” 하였다.
막상 이곳 까지 달려왔으나 어떻게 할 바를 모르는 진하는 어떨 결에 주모를 따라 뒷방으로 들어갔다.
색시가 앙칼지게 “엄마 그 방에 손님 모시지 마세요.” 했다.
그러나 주모는 수다를 떨며 진하를 방으로 들이고는 방석을 내주며 곧 술상을 올리겠다고 하였다.
깔끔하고 따뜻한 방이 색시가 거처하는 방 같았다.
색시가 언짢은 얼굴로 따라 들어와 방안에 어지러 진 것을 치우가 나갔다.
주모는 철부지 봉이다 싶었는지 슬데 없는 너스레를 떨며 제법 걸게 차린 술상을 들였다.
술상이 들어오고 조금 지나자 색시가 약간 찡그린 얼굴을 하며 들어왔다.
그저께 보았을 때 보다 화장기가 부드럽고 더 어려 보였다.
모습은 기억나지 않지만 색시를 처다 보니 꼭 그 아이만 같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주모가 들여자 보며 “서방님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하셔요.” 하고 나가자 색시가 언짢은 표정을 펴고 귀엽게 인사를 했다.
진하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색시가 부어주는 술잔을 들어 단숨에 마시고는 경황없이 “색시 오늘 여기서 자고 가도 됩니까?” 했다.
말을 해놓고 보니 자기가 한 말이지만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아이고 웬 대낮부터 주무시기는요? 그러다가 댁에 가셔서 아씨마님에게 쫓겨나시게요”
색시는 진하가 하는 말을 여유롭게 받아넘기며 안주를 입에 넣어주었다.
얼떨결에 황당한 말을 하고 보니 더욱 말문이 막혀버렸다.
만약 그 아이가 아니면 어떻게 하나?
비록 술집 여자지만 이렇게 혼자서 여자와 같이 앉아보기는 처음이라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이 되었다.
색시가 말 없는 진하를 속으로 아직 경험이 없는 총각이라 그러려니 여기고 술잔을 채우며 말을 걸었다.
말을 잊고 연거푸 정종을 서너 잔 마시고는 말을 한다는 것이 황성의 적을 한번 부르라고 했다.
엷은 미소를 지으며 황성의 적을 모른다고 했다.
진하는 어색함이 조금 살아지면서 특유의 자신감이 살아났다.
“그저께 망년회를 할 때 색시가 황성에 적을 불렀잖아? 그때 어떻게나 잘 부르던지 그 노래가 듣고 싶어서 오늘 이렇게 찾아왔는데.......,”
망년회에 왔다고 하자 “어머! 그날 그 망년회 오셨던 서방님이셨구나? 그래 어쩐지 보았다 싶더라.” 하고 넘어 가려했다.
진하가 먼저 노래를 불렀다.
황성옛터에 밤이 드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루어 구슬픈 벌레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색시도 진하를 따라 같이 불렀다.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주노라
아 가엽다 이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고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있노라
진하는 노래를 멈추고 여자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나는 가리로다. 끌이 없이 이발길 닿는 곳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정처가 없어도 아 괴로운 이 심사를 가슴 깊이 두고 이 몸은 흘러서 가노니 옛터야 잘 있어라.
색시 혼자서 간드러지게 부르는 소리가 지난번처럼 애잔하지는 않다.
진하가 눈물을 흘리자 색시가 당황스러운 눈으로 “서방님 왜 그러셔요.” 하더니 하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 주며 무슨 슬픈 일이 있느냐는 듯이 처다 보았다.
진하는 색시의 손목을 잡았다.
요염한 미소로 처다 보며 손을 빼려는 색시에게 용기를 내어 「순달아!」 하고 불렀다.
일본 정부는 양력설을 쇠라고 하지만 아무도 쇠지 않는데 도시오는 개성으로 온 후부터 일본 사람들처럼 양력설을 쇠고 있다.
양력설이지만 진하와 진구 형제는 아버지를 따라 차례를 지내고, 엄마 아버지와 외갓집 식구들에게도 세배를 하였다.
외가 식구와 이모네 식구까지 함께 한 아침상은 만두를 넣은 떡국이었다.
떡국을 먹다가 만두를 건져든 진하는 깜짝 놀랐다.
범어리 참봉댁 하인으로 있던 아주 어렸을 때다.
설날 낮에 순달이와 선출이 형제는 엄마가 차려주는 만두를 넣어 끓인 떡국을 먹었다.
설날이면 떡국을 끓여먹는 경상도에서 참봉 댁은 만두를 넣어서 끓였다.
다섯 살이던 순달이가 자기 그릇에서 만두를 하나 건지더니 “이거 오빠 묵어” 하며 선출이 그릇에 넣어주었다.
진하는 어릴 때 보았던 순달이 모습은 기억할 수 없지만 떡국을 먹으려는 순간 뜻밖에도 순달이가 만두를 건저 이거 오빠 묵어 하던 기억이 선술집 작부가 순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목이 메며 아침을 먹을 수 없어 일어났다.
범어리 참봉 댁은 손 집사 가족들이 없어지자 큰 난리가 났다.
검찰에 넘어간 참봉 어른을 구명하려고 돈을 준비하느라 토지를 팔던 손 집사가 가족을 데리고 살아졌다.
손 집사가 없어지자 마님은 어찌할 바를 몰라 소란만 떨다가 몸 저 눕고, 참봉어른은 6개월 후에 벌금을 내기로 하고 나왔다.
손 집사 일로 화가 난 참봉은 집에 있던 하인 정돌이 영감내외와 순달이 모녀를 내 쫓았다.
아무런 대책 없이 쫓겨난 순달이 모녀는 거지 생활을 해야만 했다.
김해 등지를 유랑하며 모진 겨울을 견뎌 낸 모녀는 입춘 무렵 진주에서 밥 한술을 얻어먹으러 손님 없는 선술집에 들어갔다.
주모가 추운 날씨에 밥을 좀 달라며 들어온 거지 모녀를 보니 어린 것이 불쌍해 손님이 없는 아침 시간이라 시래기 국솥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쬐게 하고는 식은 밥을 뜨거운 시래기 국에 말아주었다.
배고픔과 얼어 죽을 고비를 넘겨온 순달이는 주모가 말아주는 국밥을 오래간만에 배가 터지도록 먹고는 따뜻한 아궁이 앞에 씩씩거리며 잠이 들었다.
주모가 겨울 추위에 피부가 시커멓게 언 어린 것이 불쌍해서 어미에게 딸애를 데리고 다니지 말고 자기에게 수양딸로 주고 가라하였다.
순달이 엄마는 어린 딸이 배를 굶지 않고 추위에 떨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아 주모가 시키는 대로 잠든 순달이를 놔두고 떠났다.
잠에서 깨어 엄마를 찾으며 우는 아이를 주모가 달랬지만 아이는 어미 찾는 송아지처럼 울었다.
순달이는 엄마를 부르며 며칠을 울었으나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겨울 내 갈아입지도 못한 옷을 벗기고 목욕을 시켜 새 옷을 입혀놓으니 아이가 다행이도 밉지를 않았다
서서히 엄마를 체념하고 수양엄마에게 부침하며 명랑해져갔다.
주모는 순달이 이름을 혜숙이라고 고쳐 부르며 학교에도 넣어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밥 먹고 살기도 바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는커녕 어릴 때부터 일을 시켰다.
허나 수양 엄마는 혜숙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빠지지 않도록 단정하게 입혀 학교에를 보냈다.
머리가 좋은 것인지 공부를 열심히 한 탓인지 혜숙이는 졸업할 때까지 줄곧 일등만 했다.
수양엄마는 가게 손님이나 친구 주모들에게 혜숙이 자랑하는 재미를 즐겼다.
보통학교를 졸업을 할 때 여고보가 생기자 계속 공부하게 해주었다.
여고보에서도 늘 1-2등을 하던 혜숙이가 4학년이던 가을에 음식을 잘못 먹은 수양엄마가 설사병에 걸려 보름이 넘도록 고생을 하다가 달 밝은 음력 8월 열여드레날 밤에 혜숙이 손을 꼭 잡은 채 눈을 감았다.
쉰다섯 살의 수양엄마는 선술집과 집에 따른 밭 여섯 마지기를 혜숙이 앞에 남겨놓고 북망산천으로 떠났다.
수양엄마가 남에게 빌려준 돈도 제법 있었지만 찾아와서 갚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8살의 혜숙이가 혼자서 살아가기에는 현실이 너무나 막연했다.
낮에는 술을 팔고 밤이면 늙은 영감님들의 잠 시중을 들던 수양엄마 밑에서 오직 듣고 보고 배운 것은 술장사뿐이다.
“너는 어떤 일이 있어도 술장사를 하면 안 된다. 이 어미야 몸뚱이를 이놈 저놈에게 굴리지만 너는 이다음에 사내 잘 만나 일부종사 하도록 해라”
수양엄마가 혜숙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한 말이다.
혜숙이가 가계 청소나 설거지도 못하게 하였다.
수양엄마가 없어도 오랫동안 하던 술집이라 손님들은 여전하게 찾아들었다.
술장사를 그만 두려 해도 생계가 막연한 혜숙이는 당장 먹고 살아가기 위해 주전자 술을 팔아야만 했다.
해가 일찍 저문 겨울저녁 혼자서 술을 마시던 이웃집에 사는 중년 사내가 가지도 않고 계속 술을 마시다가 손님이 뜸해지자 어린 혜숙이를 덮쳤다.
소리를 질러봤지만 술집에서 나는 여자 비명소리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조선 천지에 있을 리가 없었다.
열여덟 어린 소녀의 순정을 밟아 뭉갠 사내 연석은 염치도 좋게 드나들며 제마누라처럼 괴롭혔지만 주변에서는 다 큰 계집애가 술장사를 하면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사내를 나무라는 이 하나 없었다.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당해야만 하는 어린 혜숙이는 가게 문을 닫아버려도 와서 발로차서 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견디다 못한 혜숙은 복덕방 영감에게 집과 밭을 팔아달라고 하였다.
음흉한 복덕방 영감은 세상물정 모르는 혜숙에게 겨우 반값에 꿀꺽해버렸다.
수양엄마가 남겨놓은 패물을 챙겨 사내놈 몰래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관수동 선술집에 몸을 맡겼다.
처음에는 손 집사가 아니었으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죽이고 싶도록 미웠으나, 철이 들면서 상것들의 한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손 집사 아제도 얼마나 서러웠으면 그렇게 했을까 생각하니 오히려 보고 싶고, 어릴 때 오빠라 부르며 따르던 선출이가 무슨 큰 혈육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리워졌다.
앞에 앉은 사내를 오입 나온 부잣집 풋내기 도련님인줄 알고 술을 권하며 비싼 요리를 먹자고 요염을 떤 혜숙에게 「순달아!」이라고 부른다.
진주 수양엄마가 혜숙이라고 불러준 후 16년 세월 스스로도 잊어버린 이름 순달이를 이 하늘 아래 누구 하나 알 리가 없는데 어떻게 이 사내가 순달이라고 불러준단 말인가?
엄마도 잃어버리고 혈혈단신 외로운 몸 선술집에 앉아 웃음을 파는 혜숙이의 본명을 불러주는 이 사내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놀란 혜숙이는 “당신은 누구세요?” 하고 사내를 처다 보았다.
진하는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순달이가 맞았구나? 그렇지, 순달아!”
혜숙이는 순달이라 불러주는 이 사내를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할 수가 없다.
천리타향 서울 바닥에서 혜숙이로 살아가는 순달이의 본명을 불러주는 이 사내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놀라는 순달이를 빤히 처다 보며 목맨 소리로 “순달아 선출이 오빠다. 기억하겠느냐?” 하며 눈물을 흘렸다.
진하가 자기를 선출이라고 하자 순달이는 눈을 크게 뜨고 파르르 떨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사내들에게 능숙하고 농익었던 작부의 모습은 사라지고 죄짓다가 오라비에게 들킨 순박한 시골 처녀 같았다.
“네가 순달이였구나? 순달아 오빠다!” 하고 달구 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순달이 손을 더욱 꼭 잡았다.
겨우 말문을 연 순달이가 쳐다보며 “정말 오라버니가 맞나요?” 했다.
“순달아! 고생이 많았구나? 그래 내가 선출이 오빠다.”
진하는 오빠란 말에 힘을 주었다.
그제야 순달이도 “오라버니!!” 하며 진하의 품에 덥석 안겨 대성통곡을 터트렸다.
그간의 모든 설음이 한꺼번에 터져 통곡하는 순달이의 울음소리가 온 집안에 퍼졌다.
혜숙이 통곡 소리에 놀라 주모가 달려와 보니 사내놈들이 그렇게 치근대도 꿈적도 안하던 혜숙 년이 해괴하게도 사내놈의 품에 안겨 울고 있었다.
주모는 이른 오후에 주막 문을 닫아걸었다.
혜숙이가 오빠를 만난 경사를 축하하여 장사를 접고 일찍부터 저녁상을 준비했다.
진하가 말려도 울어 눈이 부은 순달이가 오라버니 저녁상 차릴 시장을 보아 오겠다며 나갔다.
진하가, 마주앉은 주모에게 순달이를 데려가겠다고 하자, 주모도 반가워하면서 “도련님! 우리 혜숙이 년이 어쩌다가 팔자가 더러워서 이렇게 됐지 참 아까운 아이요. 제발 데려가서 잘 좀 거두어주세요.” 했다.
「학생복을 입은 어린처녀가 가방 두 개를 들고 들어와 국밥 한 그릇을 달라고 하였다. 차려준 국밥을 반이나 먹고 값을 치르면서, 엄마 나 여기 같이 있으면 안 돼요? 하였다. 왜 그러느냐고 하였더니 그간의 이야기를 하고는, 엄마하고 같이 지내게 해 달라고 했다. 어린 것이 가엽어서 있게 하였더니 봄이 되자 허름한 가게를 제 돈으로 고쳐서 깔끔하게 만들었다. 혜숙이가 밤손님을 받는 것도 아닌데도 혜숙이 있고부터 손님들이 찾아들고 아이 수완이 좋아 장사도 잘 되었다.」
주모가 들려주는 그간의 순달이 이야기는 진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순달이가 정성을 다해 차린 저녁상은 상다리가 휘어질 것 같았다.
저녁상을 앞에 놓고 순달이는 먹지 않고 자꾸만 눈물을 흘렸다.
“왜 우느냐? 우리가 만났으니 이제부터는 울지 말고 웃자구나, 그리고 내일은 일찍 개성으로 가서 엄마와 아버지께 인사드리자”
“제가 어떻게 어른들을 뵐 수 있겠어요. 여기서 엄마와 같이 살겠어요.” 하며 머리를 숙였다.
주모가 옆에서 “혜숙아! 그게 무슨 말이냐? 도련님을 따라 가거라. 친정오빠나 진배없는데 따라가서 어른들에게 인사도 드리고 너도 이제 사람답게 한번 살아보아라. 내가 우리 혜숙이 잘 되라고 부처님께 빌어주마. 그 동안 고마웠다” 하고 눈물을 훔쳤다.
“순달아! 우리는 가족이야, 아버지와 엄마도 너를 반가워하실 거다.”
따뜻한 구둘 목에 누웠던 선란이가 마당에서 엄마를 부르는 진하 목소리에 일어나며 “서울 간애가 웬일로 일찍 와서 애들처럼 큰 소리로 엄마를 부르고 야단이야?” 하고 중얼거리며 방문을 열었다.
진하가 웬 낮선 색시를 데리고 와서 벙글거리며 선란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엄마 순달이야!” 하고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진하가 순달이라고 하자 선란이는 깜짝 놀라 목이 메이는 소리로 “뭐라고, 순달이라 했나? 이 처자가 우리 순달이라 말이가?” 하며 맨발로 뛰어나와 “순달아! 정말 우리 순달이가 맞나?” 하며 손을 잡았다.
자기 이름을 대번에 알아듣고 마당으로 달려 나오는 선란이를 보고 감격하여 품에 안기며 “아지매요!”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선란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개 어찌 된 일이고? 순달아! 네가 우째 여기를 다 찾아 왔노?” 하며 잃었던 딸을 만난 듯이 부둥켜안고 울었다.
선란이와 순달이가 모녀처럼 부둥켜안고 반가움과 서러움이 범벅이 되어 우는데 진구와 같이 과수원을 둘러보고 들어오다가 이 광경을 보게 된 도시오가 “진하야 이게 어찌 된 일이고?” 하였다.
“아버지 순달이가 왔습니다.”
도시오는 순달이를 빨리 기억하지 못했다.
“순달이라니 순달이가 누고?”
도시오가 영문을 몰라 하자, 진하가 “아버지 범어리에 순달입니다.” 하고서야 알아듣고는 놀라서 “뭐라고? 이 처자가 달이라 말인가?” 했다.
진하가 엄마와 순달이를 진정시켜 방으로 들어갔다.
도시오와 선란이는 순달이가 올리는 절을 받으면서 잃었던 딸이 돌아 온 것처럼 반가워하며 눈물을 훔쳤다.
“달아! 어디 네 손 한번 잡아보자.” 도시오가 다가앉으며 순달이 손을 꼭 잡고 목맨 소리로 “달아! 그동안 어째 살았나? 내가 살아서 너를 다 만나다니 꿈만 같구나?” 하였다.
“아제요!” 하며 도시오 품에 딸처럼 안겼다.
온 식구가 같이 울자, 당시 여섯 살이었던 진구도 순달이를 기억하고 눈물을 흘리며 누님이라고 불렀다.
순달이 엄마 이야기에 선란이가 “아이고 형님(순달이 母)아! 우야머(어떻게 하면) 좋으노? 순달아 우짜꼬? 우짜꼬? 아이고 우짜머 좋으노? 우리 형님을 우짜꼬?” 방성대곡을 하였다.
진하가 전문학교를 졸업을 축하하러 서울에 왔던 가족들이 개성으로 가고 도시오와 진하만 서울 집에 남았다.
「용바우는 어릴 때부터 사대부 양반님들처럼 여자의 정조를 순결로 보지 않았다. 천출로 태어난 용바우네 선조 모두는 몰라도 할매와 어매로부터 아내까지 상전에게 짓밟혔다. 특히 할매는 양반집 하녀가 주인의 씨를 받아 태어났지만 그 집, 종으로 자라 이복 오라비인 주인 아들에게 능욕을 당하고 범어리 성 진사 댁 종놈의 계집이 되어 용바우 조모가 되었다. 조선에서 천출로 태어난 여자가 어디 제대로 순결을 지킬 수 있었던가? 순달이네 부모와 용바우네는 성 참봉 집에 누대로 하인노릇을 하며 서로의 부끄럽고 욕된 사정들을 다 알고 서로 덮어주며 형제처럼 살아왔다. 순달이가 집에 와서 지내는 동안에 보면 볼수록 사람이 사랑스럽고 영리하다. 만일 옛날처럼 양반집 하녀였다면 주인이 그냥 둘 아이가 아니게 예쁘다. 양반들에게 동문학습의 벗이 있다면 용바우에게는 한집에서 하인으로 태어나 함께 동고동락 하였던 순달이 에비 봉술이 형님과의 우정이 있다. 어릴 적에 아이들과 싸울라치면 세 살 위인 봉술이 형님이 용바우 편을 들어주었다. 어매가 죽고 저녁마다 술을 마시는 용바우를 봉술이 형님이 달래며 나도 아지매가 왜 자진하셨는지 잘 알고 있다. 이러지 마라. 지금은 정신을 차리고 힘을 키워야 한다. 아직은 울거나 분노할 때가 아니다. 하고 도닥여주었다. 성격이 누그럽고 참을성이 많은 용바우지만 엄마가 죽고 난 그 어려운 고비를 봉술이 형님 덕택에 잘 견뎌냈다. 봉술이 형님이 들에서 일을 하다가 살모사에 물려, 뱀독이 올라 퉁퉁 부어 죽으면서 겨우 나오는 말로 “용바우야! 우리 달이를 부탁하제.” 하고 눈을 감았다. 양반들에게 가문의 뼈대가 있다면 천출들에게는 인간의 정이 있다. 참봉 댁에서 급하게 떠나느라 살펴주지 못했던 순달이네가 자신 때문에 불행하게 된 일을 생각하니 기가 찬다. 옛날처럼 참봉 댁의 하인으로 살았다면 진하와 순달이를 맺어 주었을 것이다. 순달이의 아픈 지난날들을 진하가 평생 보듬어 주었으면 싶다.」
청요리 집에 앉아 진하가 부어주는 고량주를 두 잔 마신 도시오는 무언가 중요한 말을 할 듯이 “진하야!” 하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술잔을 채우며 “아버지 말씀 하시지요.” 했으나 도시오는 따라주는 술잔만 거푸 마시고는 안주도 먹지 않고 눈을 감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순달이가 와서 내가 너무 기쁘다.” 하고 운을 떼더니 “달이가 참 잘 컸구나? 우짜며 좋으노?” 하였다.
진하는 양력 설날 아침 개성에서 서울로 올라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작부가 만약에 순달 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천하고 천한 천출로 태어나 한 집에서 소꿉놀이를 하며 놀았다.
오빠라고 부르며 따르는 순달이를 아이들이 때리기라도 할라치면 대신 때려주기도 하였다.
어쩌다가 순달이가 선술집에서 웃음을 파는 계집이 되었을까?
우리 가족들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까?
성 참봉 집이 망해서 하녀를 팔아먹은 것일까?
내가 순달이와 결혼한다면 아버지와 엄마가 용납해 주실까?
그냥 동생으로 보살펴주어야 하나?
서울로 오는 차 안에서 머릿속은 상념이 교차하였다.
순달이가 집에서 와서 교양 있게 처신하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아내로 맞아 지난날의 서러웠던 아픔을 감싸주고 싶다.
아버지 의중을 알아차린 진하는 아버지의 생각은 어떠시냐고 물었다.
“나는 말이다, 하늘이 우리 식구로 보내주셨다고 믿는다. 너는 어떠냐?”
“아버지 좋으신 대로 하시지요.”
“아니다. 나는 네 생각을 묻는다.”
“아버지!”
“그래!”
“어머니가 참봉 방에서 능욕을 당할 때 그 창가에 제가 있었습니다.”
도시오는 아들의 입에서 피눈물이 묻어 나오는 말에 놀라면서도 침묵 했다.
진하는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가 엄마와 같이 할머니와 집안 이야기를 하신 것도 들었습니다.”
도시오는 더욱 놀랬지만 진하 생각을 알고 내심 마음이 놓였다.
“저는 지난 설날 아침에 만두 국을 먹다가 옛날에 어린 순달이가 만두를 내 그릇에 하나 넣어주던 일이 기억나면서 선술집에서 보았던 여자가 순달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 서울로 달려왔습니다. 어쩐지 순달이는 내가 잃어버린 누이 같기도 하고, 누가 훔쳐 가버린 제 보물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순달이를 품어 주는 것이 순리가 아닌가 합니다. 순달이가 살아 온 아픈 세월을 당연히 제가 품어야지요.”
“네가 그렇게까지 생각했다니 참 고맙구나.”
도시오는 아들의 말에 밝은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 이 조선에서 상것으로 태어난 사람들에게 무슨 욕이 있습니까? 욕이 있다면 양반들의 것이고, 천출들에게는 한 많은 애환이지요. 우리 조선 천지에 보통학교를 다닌 여자도 몇 안 되는데 여고보까지 다닌 순달이는 누구 못지않게 영리하고 교양이 있습니다. 제가 순달이를 품어 주지 못한다면 어찌 제가 배운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까? 조선의 양반들은 위선(僞善)적인 고고한 품격을 말하지만 우리 천출들이야말로 진실 되고 순박하며 착한 품격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순달이를 가족으로 받아주시는 이 선하고 순박하신 품격 말입니다.”
도시오는 자기를 추켜세우며 순달이를 이렇게까지 생각해주는 아들 진하가 더 없이 고맙고, 또 죽은 순달이 에비 봉술이 형님에게 우정을 다할 수 있게 되어 마음이 가벼워졌다.
순달이가 저녁 설거지를 마치자 선란이가 식구들을 건너 방으로 불렀다.
“오늘 아부지가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신다, 모두 앉아라.”
선란이 말을 듣고 모두 아버지를 처다 보며 앉았다.
도시오가 말문을 열었다.
“달아 아제는 말이다. 네가 식구가 돼주어 참 고맙구나? 아지매랑 진하도 너하고 평생을 같이 살자고 한다.”
아제 말씀이 고마워 무어라고 말하려는 순달이를 선란이가 막으며 “달아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마라. 아버지도 오빠도 모두 그렇게 하기로 했다.” 하며 순달이를 옆에서 안았다.
순달이는 아직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도시오 딸로 함께 살자는 줄 알고 감격하여 “아지매!” 하며, 선란이 품에 안겼다.
진하가 엄마를 밀어내고 순달이 어깨를 감싸 안으며 “순달아 하늘이 너를 내게 보내주셨구나!” 하자 아버지 도시오가 “순달이는 본래 우리 가족이다.” 하셨다.
“순달아 아무 말 하지 말고 그냥 이렇게 가만히 그리고 평생 내 옆에서 나와 같이 지내자.”
순달이가 그제 서야 눈치를 채자 진하가 감싸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도시오가 선란이와 진구에게 나가자고 하였다.
진하와 순달이만 두고 모두 나갔다.
“그럴 수는 없어요. 제가 어떻게 오라버니와?” 하며 울먹였다.
“그게 무슨 말이냐? 너와 내가 결혼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 그런 말은 하지도 마라.”
아무 대답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순달이를 감싸 안으며 “지난날은 우리가 종으로 태어났기에 내 몸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했지만 이제 우리는 자유 하는 사람으로 내가 너를 알고 네가 나를 알기에 우리는 서로 보듬어 줄 수 있고 용납할 수 있는 사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네가 나를 좋아하는데 뭐가 문제냐? 어릴 때 나는 신랑하고 너는 각시하며 소꿉놀이를 할 때부터 우리는 신랑각시가 아니었나.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결혼을 해서 살다가 천출이란 것이 알려지면 그때 행복할 수 있겠느냐? 순달아 네 생각은 용서받지 못할 양반들이나 할 무지하고 잘못된 생각이다. 신지식을 공부하고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야할 너와 나는 문명인으로 서로의 아픈 상처를 사매주고 또 우리처럼 천출로 태어나 아직도 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울이 되어 주어야할 책임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순달아! 우리는 이제 미개한 조선의 양반들 보다 새로운 문명으로 계명한 문화인이다”
진하가 말하는 새로운 가치관에 위로와 용기를 얻은 순달이는 진하 품에 안긴 체 “오라버니 고마워요,” 하며 흐느꼈다.
흐느끼는 순달이를 꼭 껴안으며 진하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신흥청년구락부 신년도 단합대회를 신설정 청요리 집에서 가졌다.
시국은 날로 공산주의 활동을 어렵게 하고 구락부 운영도 쇄락하고 있었다.
늦도록 좌담하고 돌아온 진하는 구락부 일을 접어두고 결혼문제를 생각하다가 잠들었다.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깨어 시계를 보니 2시다.
이 밤중에 왠 전화냐?고 중얼거리며 수화기를 드니 교환 아가씨가 개성에서 온 시외 전화라고 하였다.
늦은 밤에 웬일인가 놀라 “여보세요!” 하고 부르는데 순달이가 인사도 없이 다급한 목소리로 “오라버니 큰일 났어요. 아버지가 다쳤어요.” 한다.
졸리던 잠이 확 깼다.
순달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아버지가 비적들의 칼에 찔려 손수레로 진구와 외삼촌이 병원으로 모셔갔다고 하였다.
급하게 다꾸시 회사에 전화를 넣었더니 반시간이나 되어서야 전화를 받는 사내가 퉁명스럽게 밤에는 대절 비를 갑절로 받아야 한다고 차비부터 흥정하였다.
차비 걱정은 말고 빨리 오라고 독촉하고는 옷을 찾아 입자 마음부터 바빠 샛바람이 차갑게 부는 대문 밖에 나가 서서 기다렸다.
진하 마음은 급한데 다꾸시는 한참이나 기다려 4시가 다 되서야 와서는 차비를 선불로 내라고 하였다.
돈을 받아 넣은 운전수는 진하 기분은 아랑곳없이 기분 좋게 떠들며 자갈길을 달렸다.
뽀얀 먼지를 날리며 달리는데도 더 빨리 가자고 운전수를 재촉하며 서양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개성 기독병원으로 갔다.
이른 새벽인데 여러 명의 순사들이 병원 사무실 책상을 하나 차지하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간호원을 따라 허겁지겁 수술실로 뛰어 들어가니 하얀 보자기가 덮여있는 침대 앞에서 어머니와 진구가 목 놓아 울고 있었다.
순달이에게 방을 내준 진구는 외삼촌댁에서 잠을 잔다.
큰 집이라 방은 여유가 있었지만 순달이가 불편해 할까봐 진구 스스로 외삼촌댁으로 가서 잠을 잤다.
모두 잠든 밤중에 건장한 사내 셋이 도시오 방으로 들어왔다.
자다 놀란 도시오가 일어나며 “누구냐?”고 하자 긴 일본 칼을 목에 들이대고 “반항하면 가족을 모두 죽인다.”고 하였다.
공포에 떠는 선란이와는 달리 침착한 도시오가 말씀을 하라고 하였다.
“우리는 조선 독립군이다. 독립자금을 협조 받으러 왔으니 당신이 2000원만 협조해 주었으면 한다.”
칼을 든 놈이 말했다.
도시오에게 2000원은 그리 큰돈이 아니다.
그러나 집에 그만한 돈이 있을 리 없다.
도시오는 은행에 돈을 넣어놓아 집에는 큰돈이 없다.
“당장은 돈이 없으니 한 이틀 여유를 주면 안 되겠습니까?”
10년 동안 일본 경찰 앞잡이로 일한 도시오는 아들 진하에게 만약에 조선이 독립되는 날이면 이에 대한 응징을 받아야 할 것을 생각하니 자신이 무모했다 싶어 독립군에게 인심을 쓰고 싶다는 말을 나눈 적이 있다.
좋은 기회지만 당장 집에 돈이 없는 도시오에게 연석은 “당신 아들 결혼 준비를 하는 줄 알고 왔다. 그런데 돈이 없다고 하면 되느냐? 평소에도 돈이 많은 걸로 알고 왔는데 없다고 하면 우리가 믿겠느냐?”며 칼을 든 연석이 윽박질렀다.
“나는 돈을 집에 두지 않고 은행에 넣어놓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일하시는 분들에게 기꺼이 협조하고 싶소. 날이 새면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아 놓을 테니 그렇게 알고 다음에 오시오.”
“누가 그런 말에 속을 줄 아느냐? 야 - 이 왜놈의 앞잡이야 칵!”
연석의 칼로 찌르는 시늉에 놀란 선란이가 비명을 지르며 칼을 잡으려고 하자 칼을 휘두르던 놈이 놀라 그만 도시오 가슴을 찌르고 말았다.
도시오가 칼에 찔려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돈을 뺏으러 들어온 자들 답지 않게 도시오가 넘어지자 칼을 든 놈이 당황하여 밖으로 뛰쳐나가자 두 놈도 같이 달아났다.
대청마루 건너편 뒷방을 사용하던 순달이가 안방에서 들리는 어머니 비명소리에 놀라 일어나니 큰 방에서 “이봐요! 진하 아버지! 진하 아버지!!” 하며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의 급한 소리에 순달이는 잠옷차림으로 달려오니 아버지는 피를 흘리며 쓸어져 있고 어머니가 솜을 꺼내 지혈을 시키면서 빨리 외삼촌과 진구를 부르라고 하였다.
가족들이 몰려 들어가자 의식이 돌아온 도시오가 힘겹게 말문을 열어 겨우 들리는 소리로 “그놈은 허평이다. 허평이” 라고 하셨다.
침착한 순달이가 허평이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김단야 부하다” 하고는 다시 의식을 잃었다.
진구와 외삼촌이 병원으로 갈 준비를 하는 동안 순달이는 먼저 아버지 책상에서 연필과 공책을 찾아 허평과 김단야의 이름을 적어놓고 창고 옆에 있는 머슴방으로 뛰어 가서 머슴을 불렀다.
과수원에서 사용하는 손수레에 이불을 깔고 도시오를 눕혀 진구가 앞에서 끌고 외삼촌과 머슴들이 뒤에서 밀며 병원으로 달렸다.
그러나 손수레로 자갈길을 달리느라 환자가 흔들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병원에서 치료를 하는 중에 숨을 몰아쉬고 말았다.
사건 현장을 조사하러 나온 고등계 형사들에게 순달이가 아버지에게 들은 대로 적어놓은 쪽지를 넘겨주었다.
「김단야 부하 허평」이라 적힌 쪽지를 받아든 형사들이 러시아에 있는 「김단야(김태연)」가 혹 왔다 하더라도 이렇게 살인을 저지를 무모한 자가 아니라며 허평을 수배하였다.
우수에 내린 봄비 탓인지 샛바람이 불고 쌀쌀한 가운데 작인들과 마을 사람들이 모여 도시오 장례식을 치렀다.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고 난 진하는 너무나 허전했다.
천하고 천한 상놈의 굴레를 씌워놓고 멸시와 천대를 해온 조국이나 민족 따위에는 아무런 미련이 없는 도시오는 일본 경찰의 앞잡이가 되어 양심에 거리낌 없이 공산당과 독립 운동가를 잡아들였다.
진하도 아버지처럼 민족이나 조국 따위에는 아무런 미련이 없다.
조국으로부터 인간대접을 받아보지 못하고 쌍놈이란 굴레에 묶여 조상 대대로 짐승취급을 받아왔다.
하인의 아들로 태어나 천출을 경험한 진하에게는 멸시와 천대를 안겨준 조국이란 저주와 증오의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가족들의 신분에 변화를 가져다 준 일본이 오히려 고맙고 좋았다.
그러나 기차 안에서 일어난 일본 청년들과의 패싸움에서 조선인이란 이유 때문에 헌병대에 끌려가서 무지막지하게 얻어맞고 학교까지 재적을 당한 후에는 정체성 갈등에 빠졌다.
조선을 버렸으나 일본 사람이 될 수는 없는 자신의 정체성에 갈등하다가 학교에서 비밀서클을 통해 공산주의를 만났다.
세상 경륜이 없는 진하의 짧은 식견으로 국제 공산주의는 사해동포(四海同胞)를 아우르는 위대한 의념이었고,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레닌의 프롤레타리아는 젊은 피를 용트림 치며 붉은 혁명가를 부르게 하였다.
인류의 희망으로 알았던 공산주의, 그 선구자로 존경했던 김단야의 부하가 아버지를 죽였다.
공산주의자 김단야가 부하 허평을 시켜 아버지를 죽였다고 생각하니 공산주의에 대한 배신감과 복수심이 이빨을 악물게 하였다.
손명화 선생님이 그렇게도 위대한 혁명가로 칭송하던 김단야가 부하를 시켜 남의 재산을 탈취하는 비적에 살인까지 사주한 사실로 인하여 공산주의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다.
어떻게 내 아버지를 죽인 공산주의와 함께 인류공영에 이바지 할 수 있단 말인가?
진하에게 아버지를 죽인 공산주의는 더 이상 희망의 의념이 될 수 없었다.
부모의 원수와는 한 하늘 아래서 같이 살 수 없다는 선인(先人)들의 말을 상기하며 공산주의를 도륙해야할 적으로 간주(看做)하였다.
진하가 꿈꾸던 공산주의 혁명가의 열정은 이제 무서운 적개심으로 변했다.
도시오 일기장에 김단야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개풍군 풍덕면에 사는 허평이 김단야를 따라다녔다.
김단야와 고명자는 예성강이 멀리 바라보이는 허평의 집에서 동지들과 모임도 가지기도 하였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후지끼가 허평을 요주의 하게 되었다.
1929년 러시아에 있던 김단야가 국내 잠입하였을 때 개풍을 다녀간 정보를 입수한 후지끼가 허평을 잡아다 추궁했으나 허평은 김단야가 국내 들어온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 날 심문하였지만 실마리를 찾지 못해 무혐의로 풀어주었다.
김단야가 거물이었으므로 도시오가 그때 김단야 부하인 허평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도시오 존재를 알지 못했던 허평은 그런 사실도 모르고 도시오 앞에 맨 얼굴로 나타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허평은 도시오가 자기 얼굴을 알고 있는 줄 모르는데다 그나마 죽었으므로 태연하게 집으로 들어왔다가 잡혔다.
허평은 생각이 단순하고 겁이 많은 얼뜨기여서 경찰서에 잡혀오자 쉽게 범죄 사실을 실토하였다.
김단야를 만나러 러시아까지 찾아간 허평에께 김단야는 화요회 재건을 위하여 “개성에 있는 친일지주 도시오에게 자금을 뜯어내라.”고 시켰다.
지혜롭지 못한 허평은 도시오에게 강도짓을 하게 되었다.
종종 공산주의 운동을 하는 자들이나 독립군들이 친일 부자들을 찾아가 강압적으로 돈을 얻어갔기 때문에 일본 경찰은 비적이라 불렀다.
허평은 자기보다 더 얼뜬 친구 두 사람을 데리고 도시오를 찾아가서 독립자금을 협조하라고 협박을 하다가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칼을 휘두를 때 선란이가 비명을 지르며 말리는 바람에 사람을 찌르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경찰에서 수사 내용을 전해들은 진하는 젊은 혈기에 김단야를 죽이려는 복수심이 용솟음쳤다.
봉건지주와 자본주의 모순을 비판하며 평등분배를 통한 프롤레타리아를 해방하고 유토피아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선동하며 인간의 본질을 외면한 망상의 철학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폭력도 불사하는 공산주의로는 인류 공영(共榮)에 기여할 수 없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진하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밤을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의 프롤레타리아를 읽으면서 설레었던 공산주의 혁명가의 미몽(迷夢)에서 깨어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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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긴 시간을 가족애로 얽힌 사연을 읽어오다
내가 갑자기 애국자가 된 착각으로 마무리를 읽었습니다. 한가한 시간에 다시한 번 빠저보겠습니다.
재미도 없이 긴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가한 저녁 시간대에 다시 한번 들려가겠읍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요.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공산주의에 대한 집착과 그리고 또 증오...
그 시절 우리민족의 아픔이었지요.
못난 나라의 아픈 상처들이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