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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을 교회사에서는 종교개혁일 이라고 부릅니다.
1517년 10월 31일 정오에 당시 독일의 비텐베르그 대학의 성서신학 교수였으며, 수도사였던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그 성당의 정문에 그 유명한 로마 천주교에 대한 95개 조항을 발표함으로 유럽을 뒤흔든 종교개혁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을 통해 카톨릭과 대비되는 개신교가 탄생되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교회는 10월 마지막 주를 종교개혁주간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기치를 들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저 유명한 면죄부사건입니다.
면죄부 사건이란 카톨릭 교황 레오 10세가 자기 당대의 사업으로서 베드로 대성당을 완공할 계획을 세우고, 엄청난 공사비를 충당하기 위한 모금방법으로 고안해 낸 것이 바로 면죄부입니다.
Albert (1490-1545)는, 당시 면죄부의 판매를 청부 맡아서, 그 이익금을 교황과 반분하기로
하고, 유명한 웅변가 테첼(1450-1519)을 고용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신학박사의 학위를 주고, 가는 곳마다 면죄부에 대하여 설교 아닌 웅변을 하게 하여, 그의 유창한 웅변술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 너도나도 거금을 들여서 면죄부를 사게 하였습니다.
"독일 사람들아! 똑똑히 보아라, 나는 교황의 사신이다.
즐거워라 나는 여기 당신들을 위하여 10,900 매나 되는 많은 贖罪表를 가지고 왔다.
부모님이나, 자식들이나, 남편이나 아내나, 친척이나 누구를 막론하고 도움을 줄 수 있다.
당신들이 이 속죄표를 사고, 그 돈이 궤짝 속에 들어가, 딸랑하는 소리가 날 때, 바로 그 순간 불쌍한 영혼은 연옥에서 해방이 되어 천당으로 훨훨 날라 갑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전국을 순회하면서 면죄부를 판매하며, 비텐베르크에 왔습니다.
기막힌 사기꾼들의 쇼를 하는 것을 루터는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속죄표를 사기만 하면, 지옥에 간 사람도 천국으로 옮겨진다는 거짓말 설교를 듣고, 모두가 줄을 서서 면죄부를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단호하게 거부하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일어나는 분노를 참을 길 없어 일어서자, 저항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루터를 동조하게 됨으로서, 불과 2 주 만에 독일 전역이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4주 후에는 전 유럽전역에 루터의 그 외침의 소리가 들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동조자들이 세력이 늘어나자 로마교황 촬스 5세는 루터에게 브롬스의회에 출두 하라고 명령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 출두 명령을 받고 출두하려는 루터에게 주위의 사람들이 그곳에 가면, 죽게 될 테니까 가지 말라고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그 만류를 뿌리치고 집을 나서면서 “마귀가 부룸스 성의 기왓장처럼 많을 지라도 나는 간다” 말을 하고 당당히 브룸스 의회에 서게 됩니다.
그곳에서 루터는 교황 촬스 5세로부터 여러 협박과 회유를 받게 됩니다.
그것은 그가 교회 문 앞에 써 붙인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철회하고, 또 그동안 그 주장을 담아 출판한 모든 책들을 소각하고, 잘못을 시인하면 용서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협박과 회유에 넘어질 루터가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쓴 글들은 성경이 증거 하시는 것들이며, 분명한 이성을 가지고 쓴 글들은 신앙 고백이기 때문에, 취소하거나 포기 할 수 없다.
이 요구는 내 요구가 아니고, 하나님의 요구이며, 교회의 요구이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실 것이다” 라고 당당하게 그의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 후에도 그에게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여러 위험의 순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만, 하나님이 그를 도우셨습니다.
특히 숨어 있는 동안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 하여 모든 사람이 보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만민이 성경을 가지게 되었고, 또 성경에 따라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성경을 소유하거나 성경을 읽을 수도 없고, 오직 사제만이 볼 수 있도록 되어있었는데
마르틴 루터의 번역으로 만민이 성경을 읽을 있게 됨을 감사해야 했습니다.
기독교 진리는 교황이나, 교회의 전통이 아니라, 성서뿐이며, 구원은 인간의 공로에 의해서
달성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주어진다는 세상에 알게 하였습니다.
즉, 인간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만, 구원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교인들은, 로마제국의 박해를 피해 깊숙한 동굴 속에서, 골방에서, 지하 수십 미터의 카타쿰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신앙을 지켜갔습니다.
이러한 박해는 네로황제와 도미시안 황제 때 가장 극심했습니다.
콘스탄틴 황제가 즉위하면서 정권다툼의 내란이 일어났는데, 전쟁터에 나가 싸우던, 황제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십자가 아래에 라틴말로 “너는 십자가의 깃발을 들고 승리하라”고 씌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곧 콘스탄틴는 십자가의 깃발을 들고 나가 싸워, 10년 동안 끌어오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콘스탄틴 황제는 기독교를 박해하던 로마가 주후 313년에 기독교를 승인하여 공포하게 됨으로 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약 50 후에, 359년에는 로마제국은 동로마제국, 서로마제국으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동로마제국의 교회는 희랍정교회로 희랍과 러시아 쪽으로 전파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서로마 제국의 카롤릭교회로 유럽의 여러나라로 전파하게 되었는데, 종교를 이용하여 정치와 경제, 사회, 사상 등의 전반에 걸쳐 큰 영향력을 행사하다가 점점 세속화되고 말았습니다.
교황을 신격화 하여, 無汚設을 주장하며, 하나님 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보다, 교황의 교시나, 말이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오랜 세월동안 로마 천주교회가 군림하는 무서운 독재종교를 만들었습니다.
이때를 가리켜 암흑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천주교회의 부패를 보고, 루터보다 100여 년 전에, 보헤미아 신학자였던 후스라는 학자가 개혁을 크게 소리쳤었습니다.
후스는 성경을 유일한 권위로 삼고, 교황을 비롯한 고위 성직자들의 세속화와 타락상을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그 후 콘스탄스 공회에 소환되어 그의 비판을 취소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그는 단호히 거절함으로 1415년 종교재판을 받고 화형을 당했는데 그때 그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작은 새 한 마리를 손쉽게 죽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100년 후에는 큰 황새 한 마리가 나타날 것인데, 그때는 여러분이 그 황새를 쉽게 잡아 죽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라고...
그로부터 102년이 지난 후 말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부르짖고 나타난 것입니다.
루터는 1507년에 신부로 서품을 받고, 누구보다 열심히 미사를 드리고, 성찬을 베풀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루터에게는 진정한 구원의 기쁨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오직 형식과 절차와 현실 안일한 생활만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고 선행을 하고, 고행을 하고, 교회전통을 성실하게 준행하면 할수록, 더욱 더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영혼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구원의 감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신부로서의 품위를 생각하지 않고 큰소리로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열심히 신학을 연구하여 신학박사 학위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여전히
멀어지기만 했고, 의심의 구름이 걷혀지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텐베르크 대학의 기도실에서, 로마서를 읽던 중에 전혀 느껴보지 못한 영혼의 깊은 感化感動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요약하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으로 ”믿음“을 강조하고 있어, 루터의 마음속에 지금까지 막혔던 것이 환하게 뚫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구원의 조건이 다름 아닌 “믿음”이라는 말에 새로운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만약 행위가 구원의 조건이라면, 본질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들은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행함으로 이루어지는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시는 의가 들어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됨을 깨달았습니다.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사람은 살 것이다" 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루터는 교황의 교권과 외형적 전통에 사로잡혀, 교회의 본질을 상실하고, 내용이 없는 겉모양만 가꾸어가는 중세 천주교회에 대한 개혁의 깃발을 높이 들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오직 성경으로, 오직 은혜로” 라는 것을 종교개혁운동의 핵심사상을 외쳤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바로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엡 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은혜“ 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의 표시이며,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 통로입니다.
구원은 은혜가 원인이 되고, 믿음이 그 수단이 되어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믿음이란 결코 인간에 의해 自生 될 수 없고, 오직 성령의 능력 의해서만 나타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고전 2: 5)
그러므로 우리의 행위와 업적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떠한 선한 행위도, 하나님의 완전성을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통한 구원의 길을 제시하신 하나님 앞에, 겸허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감사와 찬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그럼 루터의 개혁정신이 무엇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오직 성경]의 원리입니다.
중세 교회는 진리를 판단기준으로 인간의 이성, 교회의 전통과 교회의 가르침을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평신도들에게는 성경책을 보여주지를 않았고, 신부만의 전용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진리판단의 기준이 오직 성경에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성경 외에 교회의 전통이나, 교황의 칙령 등이 성서를 대신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서만이 유일한 신앙의 규범이요, 구원의 지침서라고 하였습니다.
* M. Luther “나는 말씀에 사로잡힌 포로”라고 하였습니다.
* J. Calvin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하였습니다.
올바른 신앙은, 철저하게 성경에 근거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성경만이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며, 인류 구원의 계획의 뜻을 담은 말씀입니다.
성경은 신앙의 척도가 되고, 삶에 거울이 되고, 지식의 근본이 됩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하고, 성경 안에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영의 양식으로 삼는 자는 강건해지고, 그 말씀에 삶의 뿌리를 내리는 자는 영원무궁토록 기갈 함이 없을 줄로 믿습니다.
성경이 없이는 은혜도 없고, 구원도 없고, 성경이 없이는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들 마음대로 가감하며, 마음대로 해석하여 행동함으로 죄를 범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가감할 수도 없고, 자기의 생각을 붙일 수도 없는, 고유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요한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야만 한다. 왜냐하면 말씀 속에 하나님께서 분명히 나타나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씀을 제쳐놓고 다른 길로 갈 때, 아무리 애써서 진리를 추구할지라도 이미 길을 잘못 들었음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급성장하게 된 것도, 우리나라에 오신 미국선교사님들이 교회를 시작할 때,
‘말씀중심’으로 철저하게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초대교회가 많은 순교자를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은, 성경말씀 중심으로 살려고 했기에 죽음도 조금도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성도에 있어서 성경말씀은 우리들의 생명의 뿌리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얼마나 읽고 묵상하며 성경대로 살고 있습니까!!
둘째, [오직 은혜]의 원리입니다.
은혜란 (God's grace) :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아무 대가 없이 거저 주신 선물을 의미합니다.
은혜란 하나님의 사랑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우리들은 받을 자격도 없고 평생 갚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을 거저 주실 때 그것이 은혜라고 하는 선물입니다.
성도가 받은 은혜 중에 은혜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자신의 선행이나 공로에 근거하여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헌금을 내고, 봉사를 하고, 충성을 해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로 구원받게 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믿게 되고,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 받았습니다.
오늘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만일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지옥으로 향하여 가고 있는 중이며,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고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고 말씀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잘 사는 것, 건강한 것, 아름다운 것에 관심을 두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언제나 은혜 안에 사는 것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전적으로 하나님 은혜 중에 산다고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종교개혁의 정신은「구원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임을 믿는 신앙운동입니다.」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립시다 - 할렐루야 -
셋째, 「오직 믿음」의 원리입니다.
믿음이라는 말은 신뢰한다는 말입니다.
어린 아이가 부모를 끝없이 신뢰하는 것처럼, 하나님만을 끝까지 신뢰하고 따라가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것임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갑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현상적인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에 만져지는 삶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성령의 음성을 따라 믿음의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입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10:38)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갈 3:11)
루터를 중심한 종교개혁자들은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으로 똘 똘 뭉쳤습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루터가 그 당시 개혁의 횃불을 들게 된 동기의 말씀입니다.
아니 어쩌면 신구약 성경 전체를 총괄하는 진리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은, 사람의 중재 없이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믿음을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 원리를 세우셨습니다.
이 귀한 믿음은 나의 소산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과 의롭다함을 얻게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과 믿음으로 되는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