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곽경택
출연: 유오성(준석),장동건(동수)
오래 두고 가까이 사귄 벗 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추억은 마치 바다 위에 흩어진 섬들처럼 내 머리 속을 떠다닌다. 나는 이제부터 기억의 노를 저어 차례 차례 그 섬들을
찾아가기로 한다. ‘이 영화를 추억의 섬들에 살고 있는 나의 친구들과 그 가족들에게 바칩니다.’}
1976년 13살, 호기심 많던 폭력조직의 두목을 아버지로 둔 준석(유오성 분), 가난한 장의사의 아들 동수(장동건 분),
화목한 가정에서 티없이 자란 상택(서태화 분), 밀수업자를 부모님으로 둔 귀여운 감초 중호(정운택 분). 넷은 어딜 가든
함께 했다. 훔친 플레이보이지를 보며 함께 낄낄거렸고, 이소룡의 브로마이드를 보며 경쟁하듯 흉내냈고, 조오련과 바다
거북이 중 누가 더 빠를까하며 입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때는 세상이 온통 푸르게만 보였다.
1981년 18살, 세상을 다 갖고 싶던.... 여드름이 금세라도 터질 것 같던 18세. 큰형처럼 친구들을 다독거려주는 준석,
준석에게 열등감을 가진 동수, 전교 1, 2등 자리를 다투던 상택, 촐싹대지만, 없으면 심심한 중호. 어느 날, 근처 여고의
그룹사운드 ‘레인보우’의 공연을 보러가고, 그곳에서 상택과 준석은 싱어 진숙(김보경 분)에게 홀딱 반한다. 상택의 마음을
안 준석은 일부러 상택과 진숙을 만나게 해준다.
1983년 20살, 가는 길이 달랐다..... 중호와 상택은 대학에 진학했다. 둘은 대학생이 된 이후 연락이 끊겼던 준석과 동수를
찾아갔다. 동수는 어찌된 이유인지 감옥에 수감돼 있었고, 준석은 어머니를 여읜 충격으로 마약에 깊이 빠져있었다.
그리고 상택이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했던 여자 진숙이 준석의 곁에 있었다. 그들의 20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1990년 27살, 친구의 슬픔을 보았다..... 아버지를 여의고 부친의 조직내 행동대장이 된 준석, 준석을 배신하고 새로운
조직의 행동대장이 된 동수, 미국 유학을 앞둔 상택, 결혼하여 횟집 주인장이 된 중호 녀석...... 상택은 유학길에 오르기 전,
친구들이 보고 싶어졌다. 끝내 준석과 동수는 공항에 나타나지 않았다. 친구들을 부산땅에 남기고 떠나는 상택은 웬지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1976년 13살, 호기심 많던...
폭력 조직의 두목을 아버지로 둔 준석, 가난한 장의사의 아들 동수, 화목한 가정에서 티없이 자란 상택, 밀수 업자를 부모님으로
둔 귀여운 감초 중호. 넷은 어딜 가든 함께 했다. 훔친 플레이보이지를 보며 함께 낄낄거렸고, 이소룡의 브로마이드를 보며
경쟁하듯 흉내냈고, 조오련과 바다 거북이 중 누가 더 빠를까하며 입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때는 온통 푸르게만 보였다.
1981년 18살, 세상을 다 갖고 싶던...
여드름이 금새라도 터질 것 같던 18세. 큰형처럼 친구들을 다독거려주는 준석, 준석에게 열등감을 가진 동수, 전교 1,2등
자리를 다투던 상택, 촐싹대지만, 없으면 심심한 중호. 어느 날, 근처 여고의 그룹사운드 '레인보우'의 공연을 보러가고,
그곳에서 상택과 준석은 싱어 진숙에게 홀딱 반한다. 상택의 마음을 안 준석은 일부러 상택과 진숙을 만나게 해준다.
1983년 20살, 가는 길이 달랐다...
중호와 상택은 대학에 진학했다. 둘은 대학생이 된 이후 연락이 끊겼었던 준석과 동수를 찾아갔다. 동수는 어찌된 이유인지
감옥에 수감돼 있었고, 준석은 어머니를 여읜 충격으로 마약에 깊이 빠져있었다. 그리고 상택이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했던
여자 진숙이 준석의 곁에 있었다.
1990년 27살, 친구의 슬픔을 보았다...
아버지를 여의고 부친의 조직내 행동대장이 된 준석, 준석을 배신하고 새로운 조직의 행동대장이 된 동수, 미국 유학을 앞둔 상택,
결혼하여 횟집 주인장이 된 중호녀석... 상택은 유학길에 오르기 전, 친구들이 보고 싶어졌다. 끝내 준석과 동수는 공항에
나타나지 않았다. 친구들을 부산땅에 남기고 떠나는 상택은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76년부터 96년까지 20년의 시간을 함께 부딪치고 질주해온 네 친구의 이야기로, 부산에서 태어나 자란 곽경택 감독이
자신과 그 친구들의 자전적 이야기를 영화적 소재로 각색했다. 제작비 45억원, 2년의 시나리오 집필 기간과 3년간의 기획을
거쳐 부산에서 올로케로 촬영한 이 영화는 유오성의 열연과 미남배우 장동건의 이미지 변신이 크게 주목받았다. 특히 부산
사투리의 수 많은 명대사들이 크게 히트하면서 국내 최고의 흥행 기록을 경신했는데, 총 119일간 전국에 상영되면서 무려
818만(서울 266만)의 관객을 동원했으며, 주말 흥행 기록도 사상 최대인 전국 58만(서울 22만), 개봉 5일만에 관객
100만명을 돌파하였고(기존 기록은 <공동경비구역 JSA>의 7일 기록), 최단 기간 600만명(38일), 최단 기간 제작비
회수(2일), 일본 수출가 최고액 달성(210만달러, 기존 기록은 <공동경비구역 JSA>가 200만 달러), 박스오피스
최장 기간 1위(9주), 최다 수익(300억원) 등 기존의 흥행 기록을 대부분 바꿨다. 제46회 아태영화제 남우주연(유오성),
남우조연(장동건), 제22회 청룡영화상 한국영화최고흥행상, 제9회 춘사나운규영화예술제 대상, 감독상(곽경택),
남자연기상(유오성), 제38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인기상(유오성), 신인연기상(정운택) 수상.
재미있는 사실들. 복고풍, 노스탤지어 느와르를 표방하는 이 영화에서 부산 범일동 골목길과 주변 큰길 장면을 보면,
당시의 국회의원 선거용 포스터, 극장포스터, 담벼락에 주차해있는 포니, 그라나다 등 80년대초의 승용차들을 볼 수 있다.
여기에 81년에 상영한 영화의 극장 포스터를 골목 곳곳의 담벼락에 부착해야 하는데, 스탭진은 <어둠의 자식들>, <만다라>,
<레이더스>, <보디 히트>,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등, 그 당시 포스터를 구하러 사방팔방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작은 화장품 가게의 화장품 포스터에서도 장미희, 정윤희, 유지인 등의 얼굴을 볼 수 있다. 또 극장 안 장면에서는 교복을
입은 까까머리 학생들로 가득 등장하는데, 국립 부산 해사 고등학교의 남학생 400여 명이 엑스트라로 참여했다. “짜릿한 이맛...”
으로 시작되는 칠성 사이다 CM도 버스에서 들을 수 있다.
2002년 9월 추석특선으로 방영시 SBS는 목소리를 재녹음했다. 영화에 워낙 욕설과 비속어가 많이 나오는 극장판을
그대로 방영할 수 없어 장동건 등 10여 명의 배우들이 참여하여 TV용 더빙을 시도했는데, 유오성은 차기작 <챔피언>의
제작사인 코리아 픽처스와의 관계 악화로 불참했다. SBS는 유오성과 목소리가 비슷한 성우 홍승섭씨에게 목소리 대역을
부탁하였다고 한다. SBS측은 이러한 대사 수정 및 더빙 작업에 2개월이 걸렸다고.
이 영화의 실제 모델이 된 일화는 1993년 7월 부산에서 감독의 친구인 칠성파 행동대장 출신 정모씨가 조직원들을
시켜 영역 다툼을 벌이던 신20세기파 행동대장을 살해한 사건으로, 영화에선 상당 부분 윤색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영화가 흥행에 크게 성공하면서 2001년 4월, 칠성파 두목 권모씨와, 정모씨가 곽 감독에게 금품을 요구, 같은 해
11월 곽 감독을 통해 영화제작사와 투자배급사로부터 3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곽 감독이 협박당한
사실을 부인, 1/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2005년 11월 대법원 파기환송심에서 각각 징역 3년과 1년을
선고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