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는 이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녀는 이쁘다.
그녀는 아무렇게나 해도 예쁘다.
자기 몸 사이즈보다 약간 작은 옷을 입어도 예쁘고
큰 옷을 입어도 예쁘고
더러운 것을 입어도 예쁘고
찢어진 것을 입어도 예쁘다.
약간 작아서 배꼽이 드러나는 검은색의 달라붙는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촌스러운 무지개컬러의 스카프를 목에 둘러서 목 옆에다가 매듭을 짖고
평범하디평범한 일자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었는데
그것마저 눈부셨다. 면 더 말해서 뭐하겟는가.
그런데 이런 그녀와 같이 알게 된지 6개월이 지났는데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한명도 없다.
지난번에 남자친구가 넌 없냐고 물어봤는데
그녀는 있다고 대답을 했다.
그런데
그녀 생일날 나랑 둘이 보낸 걸 보면 거짓말 같기도 하고
아니면 어디 멀리 있거나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지금 그녀가 만나는 남자는 없다.
그녀 주위에 남자들이 있지만 모두
그녀와 섹스를 하기 위해서 맴도는 것 뿐이다.
그녀가 그렇게 말한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지금까지 그녀에게 장미꽃 한송이를 주는 남자를 보지 못했고
그녀를 데리고 나가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밥을 사주겠다는
남자도 없었다.
지금까지.
클럽에 가면, 펍에 가면
그녀를 둘러싸고
어떻게 한번 해볼까 눈빛을 말도 못하게 던지는 남자들이
셀수 없이 많다.
하지만 그녀가 자리를 떠나
클럽이든지 펍이든지의 문을 나서면
그 문까지 따라나오는 남자들은 한명도 없는 것이다.
제니는 예쁘다.
그녀가 예쁘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이 바뀌지 않앗다.
그녀가 너무 완벽하게 생겨서
남자들이 감히 그녀에게 접근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하지만.
그런데
말이다.
그녀의 외모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 본 순간
세상에! 맙소사! 했던 그녀의 외모가
자꾸만 변해가고 있다.
호수같던 그 큰 눈망울은
이제는 너무 파래서 징그럽고 너무 커서 소 눈 같기도 하고
오똑하던 그 콧날은 이제는 무슨 잘 갈아놓은 칼 끝같게 느껴져
가까이 갔다가는 어디 한군데 찔릴까봐 무섭다.
턱선, 광대뼈, 이마는 자를 대고 그린 것처럼 완벽해서
한참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다.
그녀에게는 뭔가 아주 중요하고 커다란 것이 빠져 있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녀의 빛나는 외모를 이끌고 갈
뭔가가 결여돼있다.
스웨디시의 도도함과 북유럽의 청량함과 완벽한 피가
줄줄줄 흐르는 그녀의 얼굴 위에는
그런데, 그 아름다움을 끌고 갈
뭔가가 없다.
그녀의 완벽한 외모는 그래서
공기 중에 그림자도 없이 흩어지고 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녀의 외모가 바뀌고 있는 게 아니라
그녀에게는 그녀의 외모를 받쳐줄만한 매력이 없다는 것을 내가
알아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예쁘다.
그런데 거기서 마침표가 땅! 생기고
끝이 난다.
누군가가 그녀에 대해서 물어보면
그녀는 이쁘다.
그것 외에는 도무지 떠오르는 그녀를 묘사할 만한 단어가
없는 것이다.
-이 얘기를 하면서 누군가가 나에 대해서 물어보면 예쁘다는 말은 커녕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할까 걱정이 되지만-
그녀는 이쁘다는 데에서 모든 게 끝이난다.
그것은 어쩌면 불행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쁘다, 라고 말하는 순간
그녀의 외모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성격, 인성, 그녀의 역사, 존재감 등 모든 게
그냥 끝이 난다.
원래부터 예쁘다, 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던 것처럼.
그녀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뭔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나뿐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자들은 조금만 그녀를 보다가 성급히 가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펍 문을 나서도 그들은 그 자리에 앉아서 그녀가 가는 것만 지켜보지
따라나서거나 전화번호를 물어보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런 것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얼굴 한복판에 밥공기 정도의 크기의 구멍이 뚫려 있기라도 한 것처럼
한참 보다보면 뭔가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녀는 약간 이기적이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다.
-것은 별것도 아니지만
왜 그녀가 찬란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이 없을까, 라는 이유에 대해서
분석을 다각도로 하다보니
사소한 것까지 이렇게 들먹이고 있다. -
벌써 네번인가 다섯번인가
나에게 커피며 물이며 츄잉검이며를 사달라고 했다.
내가 매장 문을 나서면
그녀는 어? 제이민! 어디가? 가게에 가?
어. 물 사러.
그래? 나 커피 한캔만 사다주라.
그래.
어? 제이민? 어디가? 가게에 가? 나 츄잉검 하나만 사다줘.
어? 제이민! 어디가 가게에 가? 나 물 나도 나도 너무 목이 말라. 하나만 사다줘.
마치 자기가 목이 마른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가
내가 목이 마르다고 하니까 갑자기 목이말라서 죽기라도 하듯이
나에게 스몰 쇼핑을 부탁한다.
그리고 나서 돈을 돌려주느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물론 1파운드, 2파운드는 친구끼리 그냥 신경 안써도 되는 액수이다.
거기에는 동의한다.
그런데
내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내가 그녀에 대해서 뭔가를 사주고 베풀고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면서
나를 위해서
뭔가를 사줄 게 없을까, 부탁을 들어줄 게 없을까,
는 결코 생각하고 있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진실이다.
나라면
내 친구가 나를 위해서 물을 사다주고 껌을 사다주고 커피를 사다주고 한다면
나도 내 커피를 살 때 그녀 것까지 사오고 그렇게 할 것 같다.
그녀가 3번, 그러면 나도 3번, 이렇게 정확하게는 못하겠지만
하여튼간에 나는 내가 부탁한 적이 있는 사람의 부탁은 찾아서라도 들어주고 싶겠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 커피를 사러 나갈 때는 나에게 뭐 필요한 게 있느냐 없느냐 묻지 않는다.
휑, 하고 퀵서비스 오토바이가 차 사이를 질주하는 것처럼 급하게 매장문을 빠져나간다.
이상하고도 오래된, 고치기 힘든 습성이다.
게다가 그녀의 도도한 아름다운 외모와는 약간 어울리지 않은 행동이다.
우리는 친구다. 친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말한 것은 그녀의 외모와 어울리지 않을 뿐
아주아주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 한마디씩 해주길 바라고
자신을 예쁘다고 해주길 바라고
남자들이 제이민보다는 자신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항상 확인하고 싶어하고-
천원짜리 검은색의 머리 끈을 사도 그것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건 사실이지만
그런 건 모두
자신에게 뭔가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자기 자신도 느끼니까
쉴새없이 남들로부터
자기에게는 매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건 나에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매번 나에게 뭘 부탁하면서
정작 내가 뭘 필요한지 어쩐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 때는
얄밉고
지난번에 제니랑 둘이 같이
펍에 갔을 때 한 남자가 나에게 전화번호를 가르쳐주기 전에는
자기는 이 자리를 뜨지 않겠다고 하자
제니가
저런 남자는 미쳤다면서 조심해야한다고
나를 끌다시피해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때
그때는
쳐죽일년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다만
그녀를 곁에서 가만히 보다보면
그녀의 눈부신 외모가 아깝고 안타깝다.
그녀는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들 중 최고의 외모를 가졌다.
하지만
단언하건데,
그녀가 어느 나라의 왕세자비나
한남자의 목숨을 건 사랑을 받게 되는 일을 없을 거란 걸
직감적으로 알 수가 있다.
첫댓글 J.Min 당신 매력덩어리야... 좀 난해한 부분이 있어서 그르쥐...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