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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와 생명윤리
최금희
I. 의료윤리 문제들 중 왜 낙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가장 열렬한 기독교인들이 살고 있다는 우리나라에서 이상하게도 낙태문제에 관심을 쏟는 기독교인들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이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에 당선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후보들의 낙태에 대한 태도라고 한다(페라로 전 민주당 부통령 후보 내한시 한 말). 미국 법원이나 사회에서 뜨겁게 계속되는 낙태논쟁을 접하면서, 낙태천국이라는 우리 나라에서는 왜 낙태문제에 대해 이리도 잠잠한 것인지 이상할 지경이라며 기독교인들에게 의문을 던지고 있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의 인명경시 풍조의 근원을 찾으려는 여러 단체들(기독교윤리실천운동, 생명을 아끼는 모임, 새생명 사랑회 등)의 활동이 시작됨으로써 낙태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낙동강에 폐수가 흘러 들어왔을 때 인체에 유해하다는 이유 때문에 전국민이 보여준 관심이나, 또는 정치적인 기득권을 가지 자들에 의해 박해받는 사람을 위해서 전국이 떠들썩했던 모습에 비교하면 대단히 심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전혀 저항할만한 능력이 없는 생명들에 대한 기득권을 가진 자(먼저 세상에 태어난 자)들의 일방적 결정이라는 관점에서, 또한 양적으로도 폐수 때문으로나 정치적 탄압으로 침해당한 생명가치의 손상보다 훨씬 엄청난 생명들이 그것도 자기 가족들에 의해 유기되고 있다는 관점에서 앞의 두 예보다도 더 심각한 도덕적 논쟁이 있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른 의료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말기 암 환자의 생명을 얼마나 더 연장할 수 있느냐에 대한 관심에 비하면 평생의 삶을 박탈하는 이 낙태 시술에 대해서는 문제 거리로 삼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한 병원 안에서도, 한쪽에서도 얼마나 작은 미숙아를 살릴 수 있는가가 관심이고 다른 쪽에서는 다 큰 아이를 어떻게 하면 산모에게는 부작용 없고 태아가 살아 나오는 일없이 잘 낙태시킬 것인가를 연구한다. 우리는 생명가치에 대한 분열증적 가치관 아래 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의료윤리 문제들을 다룰 때 맨 먼저 낙태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앞에 언급한 것처럼 양적으로 이보다 더 심각하게 생명가치의 절대성이 완벽하게 파괴되는 일이 더구나 실험실이 아닌 의료 현장에서 일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둘째, 논쟁의 쟁점이 되는 생명의 기준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견해에 따라 나머지 대부분의 윤리적 문제들(영아살해, 장애아, 살해, 안락사, 뇌사, 장기이식 등)의 해답이 사실 더 이상의 논쟁을 하지 않아도 자연히 주어지기(slippery slope) 때문이다.
물론 이 글이 낙태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포괄할 수는 없으나 필자가 산부인과 개원을 하면서 몇 년간 답을 구하기 위해 고민했던 문제들이었기에 정리해 보려고 한다.
II. 낙태의 역사적 배경
서구의 기준으로 볼 때 역사적으로 두 번(첫 번째는 그리이스 로마시대와 초기 기독교 시대이고, 두 번째는 19세기 중반의 미국 사회에서)에 걸친 낙태 찬반 전쟁이 있었고(낙태는 영적인 면에서 볼 때 논쟁이 아니라 사악한 인본주의적 유물론과의 전쟁이다), 지금 세 번째 전쟁이 진행중이다.) Tim Stafford, The Abrotion Wars, What most Christians don't know, Oct. 6, 1989, Christianity Today, pp. 16~17 흔히 낙태가 현대에 와서 시행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고대 그리이스와 로마시대는 낙태와 유아살해를 상당히 허용하였다. 플라톤(Platon)은 [공화국(Republic)]에서 어머니가 40세 이상이면 낙태, 영아살해(infanticide)를 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이상적인 사회]에서는 가족수가 일정한 수를 초과하면 낙태를 의무적인 것으로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태아를 'formed fetus'와 'unformed fetus'로 구별해 남아의 경우 임신 40일 후로 여아의 경우 90일 이후로 생명이 시작된다고 보았다. 이는 도덕적이 아닌 형이상학적 구별로 'formed, unformed fetus' 모두를 낙태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나중에 일부 기독교인들(어거스틴과 토마스 아퀴나스)도 이 구별을 채택했으며 이것이 현재 임신을 임의로 3기로 구분하는 기초가 되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태아가 출생 이전에도 생명이 있다고 믿었으나 사회와 가족의 복지가 태
아의 생명권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였다. 로마는 생명은 출생 시부터 시작한다는 스토아 학파의 견해를 따랐다. "로마는 가족 우선 주의였지만 근본적으로 반낙태 입장은 아니었다. 로마법상 태아는 인간(person)이 아니며, 출생한 아이들도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아버지나 가족, 심지어 로마제국에 유용도에 따라 그 가치가 평가되었다.") Michael J. Gorman, Abortion and the Early church, p.32, IVP, 1982반면 기독교도들은 태아를 어머니의 신체의 일부가 아닌 독립적인 존재로 보아 클레멘트, 터툴리안, 제롬, 바질, 암브로스 등은 낙태를 분명하게 반대했다.
이런 상반된 상황에서 기독교인들은 신앙으로 로마제국을 정복하였고 오늘날 서구 사회에 낙태 반대 전통을 이어오게 하였다.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합법화한 지 얼마 안되어 로마에서는 아버지가 자녀를 죽이는 것이 불법화되었으며, 로마의 낙태법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으나 교회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짐에 따라 낙태를 살인으로 여기는 것이 사회 전체적인 법이 되었다.
어거스틴, 아퀴나스, 루터, 깔뱅, 바르트, 본회퍼에 이르는 신학자들도 낙태를 분명하게 정죄하였다. 유대 기독교의 가르침이 완벽하게 적용되진 않았지만 그 가르침은 개념과 실천에 있어 인간의 생명에 대한 수준 높은 견해를 갖도록 하는 하나의 토대를 놓아주었다고 볼 수 있다.
III. 낙태와 관련된 기본적인 질문들
1. 인간의 존엄성(태아의 존엄성)의 기초(문제)
~ 프로타고라스냐 성경이냐?) J. Fletcher, Humanhood; Essays in Biomedical Ethics, Buffalo New York, Prometeus Books, 1979. p.9. 우리 사회에서 편만하게 이루어지는 낙태에 대해 문제제기조차 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오히려 사람들은(의사들을 포함하여) 임신한 여자의 장래, 사회 전체의 행복을 위해 낙태만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기독교인들도 이런 이유로 상당히 허용적인데 그런 사고는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가? 프란시스 쉐퍼는 이것을 '유물론적 휴머니즘'이 가능하게 한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F. A. Schaeffer, C. Everett Koop, M.D.; 인간 그 존엄한 생명, p.29, 라브리 출판사 창조주 없이 인간에서 시작하여 인간을 만물의 척도로 삼는 인본주의는 그 철학이 유물론적이다. 하나님 없는 인본주의는 생명윤리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인간의 유한성과 한계로 인한 상대적 지식, 상대적 도덕의 문제로 인해 우리 자녀들을 사형시킬 수밖에 없다는 해결책밖에 제시하지 못한다.
성경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피조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존엄성과 신성을 가진다고 말한다. 인간은 생물학적인 결함이 있고 판단능력이 없다하더라도 인간이며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삼상 2:6) 아무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취할 수 없으며(출 20:13) 태어나지 않은 아기의 생명 또한 마찬가지로 돌보고 보호해야 한다.
2. 인간의 생명이 언제 시작하는가?) 맹용길, 생명의료 윤리 p.55에서 재인용, 장로회 신학대학 출판부.
1) 유전인자 접근학파(the genetic School): 이 학파는 인간을 유전적 암호(genetic code)와 동일시한다. 난자와 정자의 결합으로 생기는 염색체의 유전자 암호에 의해 머리나 눈의 색깔, 내분비까지 모든 것이 결정되며 태아의 유전자 암호가 어머니의 유전자 암호와 다르기 때문에 그 태아를 하나의 인격적 존재(person)로 주장하며, 램지(Paul Ramsey)가 대표적인 사람이다.
2) 발달 중심학파(the development School): 유전인자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태아가 인격체라고 말하려면 좀 더 생리학적인 기능을 보여야 한다든지 아니면 뇌파(뇌사를 죽음의 정의로 인정할 경우)를 보이는 시기부터 인간으로 인정하는 입장이다. 발달이 어느 정도까지 된 상태이어야 또 어느 점에서부터 태아를 인격체로 인정할 수 있는지 이들도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반론
① 뇌의 발달 이외에 수태, 원장형성, 뇌 구조의 완성, 태동, 성장, 탄생 등 여러 경계선 중에 왜 한가지를 임의로 선택해야 하는가?
②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하자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혼수상태 (coma) 그 자체보다는 회복 불가능성(irreversibility)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뇌의 죽음을 바로 인간이 될 수 있는 가능성(potentiality)의 상실로 본다. 그런데 접합체(zygote)나 태아는 뇌파가 있기 훨씬 이전에 인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3)사회적 결과를 중요시하는 학파(the Social consequences School): 인간의 본질(human) 자체보다는 사고, 행동, 감정 등과 같은 기능들과 연관된 사회적이고 인격적인 요인들을 중심으로 접근하거나, 사회가 인격체로서의 사람(person)을 정의하도록 결정한다고 접근하는 입장으로 태아는 사고할 수 없고 다른 사람과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 없으며 자아 개념이 없으므로 인격을 가진 사람(person)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성경적 입장
1) 생명의 기원은 하나님이며 인간은 그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들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6, 27).
2) 인간 생명은 수태된 때로부터 시작한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되었나이다'(시 139:16).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였나이다'(시 139:13).
'주의 손으로 나를 만드사 백체를 이루셨거늘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 주께서 나를 젖과 같이 쏟으셨으며 엉긴 젖처럼 엉기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가죽과 살로 내게 입히시며 뼈와 힘줄로 나를 뭉치시고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권고하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욥 10:8~12).
3. 태아의 권리 문제) Ibid, pp.64~65.
태아의 인권문제는 법률적, 기독교 윤리학적으로 중요하다. 인간이 가지는 존엄성으로 모든 인간은 계획적인 공격이나 부주의한 공격으로부터 자유롭게 살 수 있어야 한다.
1) 태아의 인권과 어머니의 권리가 부딪칠 때 그 권리는 동등한가? 인공유산이 최후적 수단으로 허용되어 어머니와 태아 중 한쪽을 선택 해야 할 경우 생명의 질에서는 원칙적으로 차이가 없으나 태아의 권리가 어머니의 권리보다 못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며, 이는 조셉 플레처의 상황 윤리적 영향을 받은 인본주의적인 조망이라기보다 는 비례적 원칙에 의해 보다 완전한 것을 선택하려는 인간적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2) 태아는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자기 권리를 내세울 수 없다는 문제
․1948. 12. 10 국제 연합이 채택한 "인권의 보편적 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인권은 인간이기 때문에 갖는 권리로 도덕성과 보편성을 띠며 인간가족의 모든 구성원은 타고난 존엄성과 평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며 이는 인간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있어야 할 자유와 정의와 평화의 기초가 된다' 고 선포하였다.
․성경적 인권사상 : 첫째, 인권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고 자연을 관리하게 하신 데서 볼 수 있다. 둘째, 하나님의 공의와 율법에서 나타나는데 이는 공동체의 평화와 전체성을 보존하는 사랑을 요구한다.
셋째, 예언자들의 생활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인권이 유린되고 말살되려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깨우치고 세우려는 생활을 보임으로써 인권을 되살리려 했다.
IV. 낙태를 옹호하는 서양철학의 조류들
이 글은 인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서양철학들의 낙태 찬성 논증의 출발점을 기술한 것으로 도날드 드 마르코(D. de Marco)의 글을 간략히 소개한다.) 황필호 편, 산아 제한과 낙태와 여성 해방, pp.211~230 재인용, 종로서적.
1. 원자주의
고대 희랍의 데모크리토스로부터 20세기 원자 물리학에 대한 과학의 역사로 물질을 이루는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단위인 원자의 개념을 사회학적으로 발전시킨 것으로, 각 개인을 공동사회의 단순한 구조물이 아닌 자체로서 완성된 실체로 보아 오늘날 서구 개인주의의 기본 개념을 제공하였다. 르네상스와 계몽주의를 통해 인간에게 고도의 개인성을 제공했으며 개인적인 성취에 커다란 자긍심을 제공했으며 미국 헌법 기초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낙태와의 관계 : 자신을 근원적인 개인으로 인식하는 여성들은 그 개인성을 유지할 수 있는 자유를 주장, 성 관계와 생식기의 모든 통제권을 여성에게 부여해야 하며 낙태를 여성의 개인성을 보호하는 개인적인 사건으로 취급, 서구 여성해방론자의 중요한 낙태 찬성논리의 근거이다.
․비판 : 인간의 우선적이며 본질적인 속성이 개인성이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사랑과 관심과 교제를 통하여, 개인성을 초월하려는 본질적인 속성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외로움이 가장 큰 고통 중 하나라는 인간의 경험들이 증언하고 있으며 마틴 부버(M. Buber)는 이것을 나와 너의 개념으로 정립했다. 또한 지에크(Gierke)는 인간이 인간인 것은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 있다고 한바 있다. 성경은 이웃과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있다.
2. 데카르트주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낙태와의 관계 : 이 논리를 태아에 적용시키면 태아는 의식이 없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인간이라 할 수 없으므로 낙태는 인간의 생명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후에 조셉 플레처에 와서 더 극단적으로 이원론화되었다. "태아는 자유, 자기결정, 합리성, 수단이나 목적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나 상황에 대한 지식을 결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도덕적 존재도 아니며 인격적 존재도 아니다."
․비판 :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생각한다." 존재는 사고에 선행하며 존재와 사고는 가치에 선행한다.(샤를르 캐롤)
3. 실존주의
사르트르는 인간은 스스로를 위한 존재로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그는 의식적인 자유의 행사를 통하여 이 불완전성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며 이러한 노력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며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라 하였다.
․ 낙태와의 관계 : 시몬느 드 보봐르는 [제2의 성]에서 "자유로부터 창출되는 창조적인 행위만이 실체에 가치를 부여하며 그에게 본질적인 속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산모의 뱃속에 있는 아이는 이런 권리를 가질 수 없다. 그것은 산모의 호의에 의하여 자라나는 세포이며 죽음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인 태도까지도 환경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자연의 무감각한 사실이다 "
비판 :인간이 완전히 발달하지 못했거나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거나 혹은 완전히 의식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바로 그가 본질, 속성, 의미 혹은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많은 심리 요법자들이 말 하듯이 인간의 의미는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정지되고 불변하고 완전히 완성될 수 없다. 더 나아가서는 생존하는 태아의 본성은 내재적으로 결정된 것이며 산모의
자유로운 선택이거나 그녀가 임신을 어느 정도 원하느냐에 의하여 부여되고 취소되지 않는다.
4. 경험주의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감각이 증명할 수 없는 것은 검증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흄, 밀, 듀이(D. Hume, J. S. Mill, J. Dewey)등이 이에 속하며 이들은 형이상학, 하나님, 도덕과 같이 비실증적인 것을 맹렬히 공격했다.
낙태와의 관계 : 태아 발달의 초기 단계를 세포 덩어리, 임신의 산물이라 부르며 하등 동물의 발생 상태와 차이가 없다고 보며 태아에게서 모든 종류의 경험과 타인과의 관계를 즐기는 성인의 활동을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태아를 인간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보이지 않는 태아를 동정하기보다는 낙태를 강력히 원하는 여성이나 불법적으로 낙태해서 상처받는 여성들을 동정하기가 훨씬 쉬운 일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낙태는 인간의 생명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비판 : 경험주의가 모든 것을 포괄하지 못하는 본질적인 한계는 경험주의 명제 자체를 검증할 수 없다는 것이며 사물의 근본적인 속성조차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선, 사랑, 아름다움, 진리는 경험주의자의 제한된 영역을 초월한다.
5. 사회 제일주의
인간의 의미와 그 의미의 정당성을 사회학적인 기반에서 찾는다. 인간에게 더욱 고귀한 자리를 부여하고 더욱 넓은 측면을 제공하고 그의 중요성을 확대시키고 그의 감수성을 더욱 세련시키는 것이 바로 사회이 다. 즉 사회는 인간을 인간화시킨다.
인간의 의미와 정당성은 ①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상호교제의 총체를 통한 인간화의 과정에 참여하는 행위 ② 사회 내적인 관계를 가질 수 없는 태아는 인간이 아니며 ③ 산모, 가정, 사회의 해가 되는 태아의
지속적인 삶은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즉 저소득층에 속하는 부모와 자녀, 하나의 계급으로서의 여성, 사회전체에 대한 낙태의 이점은 낙태 당하는 태아의 불이익을 확실히 초과하고 있다는 견해).
․비판 : 사회는 자연적인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지만 관행이나 합의에 의해 존재하며 사회 자체는 본질적인 존재는 아니다. 인간은 실제 존재에 있어 사회에 선행한다. 정의로운 사회에서 성숙하는 인간의 본성은 사회의 도움을 필요로 하긴 하지만 사회의 힘에 의하여 발생하지 않는다. 나중에 사회의 피해가 될지 모른다는 이유로 원하지 않는 태아를 낙태시키는 것은 무죄한 사람을 죄인보다 더욱 잔인하게 대하는 행위이다.
이상의 견해들을 정리한다면 결국 태아를 완전한 인간으로 인정하거나, 인간의 가능성으로만 인정하거나, 인간이 아니라고 보는 세 가지 견해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표 1).) Norman L. Geisler, Christian Ethics; Options and Issues, Baker book House Co. 1989, p.135.
V. 상황 낙태 ~ 어려운 질문들
상황낙태가 실제로 전체 낙태사유 중 차지하는 빈도는 많지 않다. 그러나 낙태 찬성론자는 상황낙태로부터 출발하여 전체 낙태를 허용하려는 논리를 전개해 나가는 것(그 대표적인 예로는 톰슨(Judith Jarvis Thomson)의 낙태의 변호(A Defense of Abortion)) Judith Jarvis Thomson, "A defense of Abortion", Philosophy & Public Affairs 1, No.1, Fall 1971, pp.47~66 가 있다)이 일반적 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원칙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1. 산모 구명 낙태
임신이 계속될 때 어머니의 생명이 위험할 경우 낙태가 허용될 수 있는지의 문제로 필자는 레지던트시절 단 한 건의 산모구명낙태 (Nephrectomy 받은 환자가 임신하여 임신성 고혈압에 빠진 경우)를 보았을 뿐이다. 또 임신부가 자궁암에 걸린 경우 등도 고려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며 태아가 생존가능성(viability)을 갖는 시기 이후에는 태아의 생명도 구하기 위해 의사가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연후에도 임신의 유지가 태아나 산모의 생명 모두를 위협하는 상황이라면 낙태의 차원이 아니라 한쪽 생명이라도 구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이 문제를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2. 강간, 근친상간에 의한 경우
status of unborn
Fully human
Potentially human
Subhuman
Abortion
Never
Sometimes
Anytime
Basis
Sanctity
Emergence of life
Quality of life
Mother's right
Life over privacy
Combination of
rights
privacy over life
표 1. Three Views of Abortion
이미 강간으로 인해 심한 육체적, 정신적 충격을 당한 후의 임신은 희생자를 또 한번 충격으로 몰아 넣는다. 그러나 임신이 강제적으로 범죄자에 의해 사악하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된 경우지만 그와는 별도로(어른들의 일과 아무 관계없이) 이 태아도 마땅히 보호받고 사랑 받아야 될 존재이다. 이 경우 임산부의 건강 뿐 아니라 임신부의 체면, 장래문제, 대외적 관계 등의 상대가치를 위해 낙태를 허용한다면 이런 가치판단은 단순히 이 태아의 죽음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생명경시 풍조를 조장시키고 인간의 생명의 시작을 다른 동물의 시작쯤으로 보거나 아니면 물질(임신산물)로만 보는 시각으로 자연스럽게 고정되게 된다. 따라서 이 경우도 낙태를 통한 사회문제의 해결사 역할을 감당하도록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임산부의 문제를 함께 나누어지고 생명을 살리는 측면에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우리의 소명임을 깨달아야겠다.
3. 장애아 출산이 예상되는 경우
요즈음 산부인과 학회에서는 기형아를 출산 전에 미리 알아내기 위한 많은 검사법들이 소개되고 있으나 불행히도 태아의 치료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고 임신중절(Termination)로서 끝나게 된다. 생명에 지장이 있고 없고를 떠나 장애의 가능성이 있다는 결과가 나오면 산모나 의사는 할 수 있으면 임신 중절시키는 것이 우리 나라의 실정이다.
평생불구로 사느니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아기와 부모, 사회를 위해 좋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허용의 범위를 넓혀주다 보면 어느 정도를 장애로 판정할 것인지, 또 장애를 가진 사람의 존재가치에 대한 근거가 없어지는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고 육체적 뿐 아니라 정신적 장애자에 대한 치료의 근거도 잃게 될 것이다. '발전이 선(善)'이라는 진화론적 논리와 실용주의적 관점으로는 가능한 생각이나 생명가치를 상대화 하지 않는 절대 윤리의 관점에서는 이런 장애자와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숙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장애아 일지라도 생명은 존중받고 보호받으며 사랑 받을만한 충분한 절대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VI. Abortion Practice
임신 초기 낙태는 D & C(자궁 경부확장 후 소파술)를 시행하며 최근 antiprogesterone agent인 RU 486 경구 투여약물이 개발되었으나 수술 에 비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Kathy Aitchison, The new abortion pill, Should it be licensed?, Journal of the CMF, pp.4~5
임신기간을 세 부분으로 나눌 때 또는 모자 보건법상 허용기간을 기준으로 볼 때, 임신 13~28주 사이에 이루어지는 낙태를 임신 중기 낙태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비교적 초기단계에는 D & E(자궁내용물제거 술)를, 그 이후에는 프로스타글란딘이나 그 유사체에 의한 약물을 이용한 방법이나 고장식염수, 고삼출성 요소 주입법을 이용하며, 대개는 여러 가지 방법을 복합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방법들이 실패 했을 경우에는 제왕절개술과 비슷한 방법인 자궁 절개술을 통하여 아기 를 인공 임신중절시키고 있는데, 이들 방법들은 모체 내의 아기의 몸을 해체(dismembering) 시키거나 자궁 안에서 사망하게 하여 분만시키는 방법들로서 매우 비인간적이며 비도덕적이어서 아기를 살해한다는 느 낌을 준다. 또한 낙태된 아기들의 상당수가 살아서 분만되며 살아서 나온 아기들을 방치하여 죽게 만드는 행위 또한 자기를 보호할 힘이 없는 아기들에 대한 살인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임신 중기 낙태 수술을 시행하지 않고 있다. 낙태 수술을 받는 임산부 역시 패혈성 쇽, 자궁파열, 약물(항생제, 마취제)에 대한 과민성 반응이나 소모성 혈액응고이상으로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으며 불임, 자연유산, 자궁외 임신, 자궁경관 무력증, 유착태반, 경관임신 등 다음 임신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현재 의료사고 중 산부인과 사고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며 그 중 분만이나 낙태 특히 임신 중기 낙태 로 인한 경우가 역시 대부분을 차지한다.) 여성신문 1990. 9. 14.
VII. 우리 나라 낙태관계법
1. 현행 형법
1) 보호 법익과 보호의 정도
태아의 생명, 신체의 안전을 일차적 보호 법익으로 하고, 임부의 생명, 신체의 안전도 부차적인 보호 법익으로 함이 타당하다. 낙태죄는 태아를 자연의 분만기에 앞서서 인위적으로 모체 밖으로 배출하여 태아 및 모체의 생명, 신체를 위험에 빠지게 함으로써 성립하는 위험법이다.
2) 형법규정
형법상 낙태죄는 자기 낙태죄(제 269조 제 1항), 동의 낙태죄(제 269조 제 2항), 업무상 동의 낙태죄(제 270조 제 1항), 부동의 낙태죄(제 270조 제 2항) 등 4개의 구성요건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 269조(낙태)
①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 의 징역 또는 1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③ 전항의 죄를 범하여 부녀를 사상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제 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 낙태)
① 의사, 한의사, 조산원,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 없이 낙태하게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③ 전 2항의 죄를 범하여 부녀를 치상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치사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⑤ 전 4항의 경우에는 7년 이하의 자격 정지를 병과한다.
2. 대법원 판례
'인간의 생명은 잉태된 때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회임된 태아는, 새로운 존재와 인격의 근원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니므로 그 자신이 이를 인식하고 있든지 또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지에 관계없이 침해되지 않도록 보호되어야 함이 헌법 아래에서 국민이 지니는 건전한 도의적 감정과 합치되는 바이다'라고 천명한 대법원의 판례) 대법원 판례집 33권 2집. 는 지극히 옳다고 생각되며 법이 앞장서서 태어날 아기들을 보호해야 한다.
3. 현행 모자보건법
동법 제14조 ①(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1. 본인 또는 배우자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2. 본인 또는 배우자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3.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4.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에 임신된 경우
5.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히 해하고 있거나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동법 시행령 제 15조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① 법 제 14조의 규정에 의한 인공임신중절은 임신한 날로부터 28주일 이내에 있는 자에 한하여 할 수 있다.
③ 법 제 14조 제 1항 제 2호의 규정에 의하여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는 전염성질환은 태아에 미치는 위험이 높은 풍진, 수두, 간염, 후천성면역결핍증 및 전염병예방법 제 2조 제 1항의 전염병을 말한다.
현행 모자보건법의 문제점
1) 현재 행해지고 있는 낙태수술의 거의 대부분이 모자 보건법상 허용 사유 외의 것들로서 모자보건법 본래 목적(모성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건전한 자녀의 출산과 양육을 도모함으로써 국민보건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과 달리 낙태를 실질적으로 허용하고 있는데 이용되고 있으며 정부의 인구정책이나 경제정책을 뒷받침하는데 이용됨으로써 헌법에서 천명한 인간의 존엄성) 낙태의 실태 및 의식에 관한 연구, pp.181~186, 1991,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과 가치를 존중한다는 법의 취지에 역행하고 있다.
2) 허용기간은 허용사유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임신된 날로부터 28주일 이내에 낙태를 가능하게 하였는데 태아의 생존가능성을 볼 때 임신 23주에서 28주 사이의 낙태허용은 태어나지 않은 아기에 대한 살해행위이다.
3) 허용사유 중 전염성 질환) 산과학, 대한 산부인과학회, 1991. ) Cunningham, MacDonald, Gant, Williams Obsterics, 8th ed. Appleton & Lange. 과 관련하여, 간염이나 결핵, 성병의 경우 태아에 미치는 영향이 적으며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통해 태아에 미치는 영향을 현저하게 줄일 수 있다. 전염성 질환과 관련하여 낙태를 허용하는 문제는 관계의학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재조정하여야 한다 (간염의 경우, 우리국민의 약 10% 내외가 보균자 상태로 분만 후 신생아에 면역항청, 예방 접종시 아기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미미하게 되며 간염환자가 임신으로 인하여 병이 악화된다고 볼 수는 없으며 치료적 유산이 권유되지도 않는다).
VIII. 낙태 실태
고려대 홍성봉 교수의 보고에 의하면 1년 150만건 이상으로, 태어나는 아기의 2배 가까운 수가 낙태되고 있으며 1990년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총 낙태 중 미혼여자가 32%, 기혼여자가 68% 비율로 조사되었 다.
필자의 진찰실에서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90% 이상의 경우는 현행 모자보건법 허용사유 이외의 것이다. 그중 기혼자의 경우 상당수가 피임을 하지 않았거나, 못했기 때문에 계획에 없는 임신이 되어 낙태를 요 구하고, 두 자녀만을 원하거나 첫 아이가 여아이기 때문에 남아를 원하여 낙태를 하려는 경우가 많았다. 미혼 여성의 경우도 피임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이 되고 결혼할 사정이 여의치 않아 낙태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래 인용한 표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 나라에서는 한 해에 신생아가 60~80만 명인데 그 두 배 숫자인 태아들이 낙태되고 있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새생명 사랑회, 생명을 아끼는 모임의 "반낙태 세미나 자료집") 생명을 아끼는 모임, 새생명 사랑회, 낙태와 생명윤리. 을 참고하기 바란다.
IX. 대안: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1. 낙태문제는 각자의 세계관에 따라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낙태문제를 보는 자기의 관점을 생각해보고 그것이 성경적인지 인본주의적 조망은 아닌지 다시 검토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필요할 경우 큰 희생과 값을 치루고서라도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그분의 다스림을 받음으로써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되는 절대가치, 즉 생명을 가장 존귀히 여기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견지하여야 한다.
2. 태아가 생명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생명의 탄생'과 같은 비디오 테잎을 배포하며 교회의 소그룹, 사회단체에 생명의 시작과 신비에 대해 교육하며 TV를 통해 방영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실제적 으로 어떤 논증보다 효과적으로 이념이나 종교를 초월하여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이다.
3. 산부인과, 소아과 학회지에 발표된 낙태나 영아 살해에 관련된 내 용을 파악하고 만약 비윤리적이라 판단되면 발표자에게 의견을 제시하며 대책을 논의한다.
4. 갈등상황에서 낙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임산부를 위해 교회나 공동체, 개인적으로 재정적 뒷받침이나 아이의 양육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각 교회에서 탁아소 운영이나 각 가정에서 일주일에 몇 시간씩 아기 돌보는 일을 맡는 등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한다.
5. 장애아를 가진 가정의 생업에 지장을 덜어주기 위해 장애아의 양육, 교육을 돕는 일에 관심을 갖는다. (예 : 진안 이랑공동체 ― 농번기에 무주, 진안, 장수 지역의 장애아를 맡아 돌보고 교육하기 위해 시설 준비중 임. 이런 일에 기도와 재정, 자원봉사로 돕는다.)
6.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그 파급 효과가 큰 방법은 낙태수술을 하는 동료의사들을 설득하고 권유하는 일이다. 정죄하는 입장이나 논쟁하려 는 태도보다는 인내심을 가지고 태아가 생명임을 이해시키고 스스로 느끼도록 한다.
7. 청소년을 위한 비디오 등의 교육자료를 제작한다. 성교육뿐 아니라 책임의식을 갖는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용 비디오를 제작, 배포한다.
8. TV토론이 광장, 세미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생명 옹호입장을 밝힌다. 그렇지 않으면 시청자는 문제의 한쪽 입장만 전달받게 되어 낙태를 필요악 정도로밖에 인식하지 않게 된다.
9. 기독교의 생명옹호(반낙태) 세력화, 법개정문제 등 정치적인 쟁점시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한다. 만약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내고 관심을 가진다면,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면, 많은 아기들이 생일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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