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숨쉬는 공연기획을 위하여
김보성
한국민족음악인협회 사무총장, 전 노찾사 대표
1. 머리말
우리는 오늘날 '문화·예술이 산업이 되어가는(어쩌면 이미 되어버린)' 세상에 살고 있다. 문화예술이 경제적으로도 고부가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판단과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문화예술은 전혀 다른 표현임은 말할 것도 없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계급사회가 엄존하여 신분구별이 확연하던 시절에 양반이나 귀족이 자신의 사랑방이나 살롱에 수많은 시안, 묵객등 풍류객들을 식객으로 거느리거나 고용하여, 작곡가나 연주가들은 그 부유한 후원자들을 위하여 작곡과 연주를 하였다.
17세기 말까지 유럽에서는 귀족의 살롱, 교회 등 사적인 후원모임 수준에서 공연활동이 이루어졌다. 보다 많은 대중들이 공연(음악회)을 듣기 위해 대가를 지불하고 공연장을 찾기 시작한 때는 프랑스혁명(1789년)이후 귀족이 몰락하고 신흥 시민계급이 대두되면서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Music Business가 태동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조선 후기(17∼19세기) 들어 왕실의 재정이 피폐해지자 궁중악사들이 궁궐을 빠져나가 전국 각처에 은신하며 예술활동을 하였고, 상공업의 발달로 점차 신분제도가 와해되기 시작하여 새롭게 대두된 중인(中人)계급이 문화활동의 주요 패트런이 되기 시작한다. 또한 시(詩), 서(書), 화(畵), 악(樂)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지는 양상으로 전개되는 '시사(詩社)'활동도 중인 신분의 사람들이 모여 활동하는 장소였으며 영·정조 대에 이르면 시사(詩社)의 활동도 매우 활발해진다. 17세기부터 서양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와 다양한 문화활동을 펼친 기록도 있다.
동서양이 모두 비즈니스라는 면에서의 목적의식적 기획활동은 19세기 이후의 일일 것이며, 이전까지는 일종의 자급자족에 가까운 비영리 예술활동을 위한 소극적 의미의 공연기획이 존재했을 것이다.
문화와 예술이 산업화되어간다는 말에는 문화예술의 순수한 발전을 위한 경영마인드가 중요해진다는 의미도 있으나 반대로 상업적 목적 때문에 문화예술의 순도가 낮아질 위험도 포함될 수 있다. 비영리 예술활동이든 영리적 활동이든 현재적으로 대중매체의 커다란 영향 아래 있는 음악시장의 외형적 확대는, 예술가와 예술소비자 사이에서 음악비즈니스에 종사하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상호유기적으로 결합하는 행위들을 급속하게 발전시키고 있다.
이 글은 그 다양한 분야 중 예술상품화 과정(process)에서 가장 중요한 전생산(pre-Production)단계인 '공연기획'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2. 공연의 종류 및 특성
공연은 크게 음악공연(대중음악〈각 장르별 세부 분류가 가능〉, 전통음악〈전래, 창작, 극, 종합 등의 연주와 노래〉, 서양음악 - 기악〈관현악, 실내악, 취주악, 타악〉, 성악, 오페라) 또는 각각의 Cross-Over 공연들), 연극공연(창작극, 번안 및 번역극, 마당극, 마임, 청소년 아동극), 무용공연(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 재즈 무용)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생활문화가 정착되고 활성화된 나라일수록 정식 공연장에서뿐만 아니라 카페나 거리 등 여러 도심공간에서의 공연처럼 공연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우리나라도 최근 들어 지역축제가 활성화되고 도심 내 녹지시설이 증가하면서 이전과는 다르게 공연형태가 다변화하고 있는 추세다.
또 한 장르의 공연뿐만 아니라 여러 장르 간 복합적 성격을 지닌 공연기획의 시도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공연기획을 지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전보다 훨씬 더 예술 전분야에 대한 고른 이해와 지식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예술에 대한 이해 못지않게 공학적 지식(음향 및 조명장비, 공간에의 이해)이나 인문학적 인식의 폭넓음을 자신의 무기로 습득하는 일도 안목높은 공연기획자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덕목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시행 중인 관련법(공연법, 문화예술진흥법, 문화산업진흥법 및 그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에 대한 지식도 갖추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공연기획이라 함은 '공연물(또는 아티스트)선정 → 연주자 섭외 → 공연장대관, 외국인 공연추천 등 각종 행정절차 수행 → 입장권 판매 계획 수립 및 시행 → 정산 및 평가 분석'등의 총괄적 계획의 수립과 집행의 전 과정을 말한다. 물론 영리와 비영리에 따라 마케팅 계획이 달라질 수 있다. 각 예술장르에 따라 공연기획에 있어 우선 순위가 다소 차이가 날 수 있다. 그것은 그 장르가 갖고 있는 특성에 기인한다. 예를 들어 음악공연의 기획은 아티스트 선정이 우선되지만 연극, 영화 등의 기획은 희곡, 대본이나 시나리오가 먼저고 배우 캐스팅은 그 다음에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다.
3. 좋은 공연기획자가 되는 길
공연기획자로서 수련을 쌓고자 하는 사람은 우선 자신에게 적합한 예술장르의 특성을 파악하여야 한다. 전천후 기획자가 되기까지는 예술의 전 분야에 걸친 충분한 경험과 지식이 축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처음부터 상업적(이벤트)기획사에서 출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문화와 예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안목을 쌓기에는 이윤창출이라는 사업목적이 주는 부담이 너무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와 예술이 예전보다 삶의 커다란 축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으며, 멀지 않은 미래에는 아마추어 예술활동과 비영의 예술활동의 비중과 의미가 더 커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이 상업적 문화예술 활동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요구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제도적 관행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국가의 문화정책에 있어서 커다란 방향전환이 요구되지만, 이 또한 현재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어 이러한 인식의 중요성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연기획자는 무엇보다 기획을 통해 돈을 번다는 생각이 앞선다면 좋은 기획자가 될 수 없다, 자신이 정말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가를 아끼는 마음이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대중적 평판이 높은 예술가들은 대부분 인정을 받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을 매우 혹독한 수련과정으로 투여한 결과 이룩해내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노력했어도 대중적 지명도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을 수도 있다. 기획자는 그러한 예술가들을 발굴할 만한 안목과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만 한다.
4. 예술경영과 공연기획
일반적으로 무차별 대중을 상대로 홍보와 광고, 매표행위를 하는 공연기획의 형태는 점차 공연제작비의 상승과 공연규모의 확대로 인해 관객개발과 지속적 관리의 중요성이 증대하고 있다. 과거 매표소가 단순히 현금출납원 정도로만 인식되었으나 이제는 박스오피스(Box-Office) 매니지먼트의 중요한 업무로 부각되는 것도 동일한 이유에서이다. 1996년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세계박스매니지먼트회의에서 발표된 조사자료에 의하면, 박스오피스 매니저들은 평균 39세의 대학원 이상 학력과 약 1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8년 경력에 연봉 4천여 만원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전공을 보면 마케팅전공자가 28%, 전산분야 33%, 예술경영 14%로 전체의 75%가 비예술부문 전공자였다.
공연기획자들은 프리랜서로 일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고 대부분 예술단체에 소속되기 마련이다. 보통 예술단체는 연극, 무용, 미술 등의 조직을 운영하는 단체와 극장, 미술관, 박물관 등의 예술행위가 주로 이루어지는 장소 또는 축제, 예술대학, 문화재단 등의 운영조직 등을 총괄하는 범주이다. 이러한 예술단체를 경영적인 측면에서 구분할 때 크게 영리단체와 비영리단체로 나눌 수 있다. 이들을 구분하는 방법은 일반적인 방법은 재원을 조달하는 방법에 따라서 영리단체는 투자방식을 취하는 방면 비영리단체는 기금 또는 후원금 모금 형식을 취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엄격한 구분은 외국의 사례이고 아직 우리나라는 이러한 구분이 모호하여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문예진흥기금이 영리를 추구하는 기획사에게 제공되는 경우도 있다.
공연기획자로서 자신의 적성이 어디에 더 맞는가를 따져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예술경영은 각 나라마다 고유한 문화환경과 제도에 따라 특성화되고 발전된 것으로 향후 우리나라에 맞는 예술경영방법론이 정착되어야 하는 과제가 있다. 각 방면에서 새롭게 활동하려는 공연기획자들의 다양한 실험과 창조성이 한국적 예술경영의 정착을 위한 밑거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
공연·전시·축제의 직업세계
일시 : 2000. 3. 15∼16. 오후 2시∼5시
장소 : 다움아카데미 대강의실
주최 : 사단법인 다움문화예술기획연구회
주관 : 다움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