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읽는어른모임 공부를 어떻게 할까?
이광원․충청권협의회 교육부장
1993년 이후로 전국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하여 동화읽는어른모임이 생겨났고, 90년대 후반기에 들면서 모임이 소도시와 읍 단위 지역까지 빠르게 확산되면서 학부모들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무엇이 이러한 현상을 만들었을까? 그것은 우리의 어린이도서시장과 문화가 열악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혼탁한 흐름 속에서 내 아이에게 좋은 책을 찾아 읽히고 우리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며 더 나은 출판문화 풍토를 우리가 만들겠다고 팔 걷고 나선 사람들이 바로 동화읽는어른들이다.
저마다 살고 있는 곳에서,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회원들을 모으고, 모임 장소를 마련하고 참으로 어렵게 모임을 꾸리고 나면 부딪치는 문제가 바로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것이다. 다행히 본회나 다른 지역에서 공부를 했던 회원이 있으면 공부를 이끌어 가기가 쉬운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 경우 어떤 책을 먼저 읽어야 할까 하는 문제와 어떤 관점과 방법으로 공부를 해야할까 하는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그래서 많이 부족하지만 먼저 시작한 선배로써 그리고 협의회 회장으로 일하면서 여기저기서 보고들은 바를 바탕으로 몇 가지 도움말을 하고자 한다.
무엇부터 공부를 해야 하나요?
대부분 모둠들이 신입교육과정을 밟은 뒤, 또는 곧바로 관심 분야나 회원 아이들의 나이에 맞추어 공부를 시작한다. 모둠이 잘 되려면 회원들이 먼저 책을 보는 재미에 푹 빠져들어야 하고 책을 매개로 아이들과 교감이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기에 이렇게 하기를 권유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책의 재미에 쉽게 빠져들기는 하지만, 모임의 방향이 흐려지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지역모임에서는 작년부터 신입회원 교육 뒤, 일정 기간은 우리 창작동화를 공부하기로 했다.
창작동화 공부는 먼저 우리 회에서 추천한 대표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읽기를 권한다. 이 동화들을 시대 차례로 읽어 내려가다 보면 동화 속에 담아내야 할 작가정신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고, 동화를 보는 나름의 잣대가 생긴다. 아울러 작가에 관한 책이나 우리 회에서 펴낸 몇 권의 책들을 보면 우리 창작동화가 언제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되었으며, 우리 역사 속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 또 흘러오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겨 오늘 우리 책 시장이 혼탁해졌는가에 대한 인식도 생기게 된다. 이러한 생각들을 전국의 동화읽는어른모임이 공유하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세우는 일이기에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고 난 뒤에 회원들의 취향과 아이들의 나이에 따라 그림책이든 옛이야기든 일정한 장르별로 고루 보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또 많은 회원들이 달마다 회보에 소개하는 새로나온 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새로 나온 책에 대해 궁금증과 기대를 많이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어린이 책 시장의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모둠 공부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읽고 검증한 책에 비중을 더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어디 좋은 이론서 없나요?
동화 공부를 시작하는 많은 회원들은 동화책을 어떻게 이해하고 분석해야 하는지 몰라 스스로 답답해하고 좀더 전문 식견을 갖기를 원한다. 그래서 늘 동화 보는 눈을 틔워줄 만한 좋은 이론서를 갈망한다. 나도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는 그랬다. 그런데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론서들이 공부를 하는데 그다지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장르마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책들을 많이 읽어 책에 대한 내 관점을 세우는 것이 먼저이고, 이론서는 참고삼아 보면 조금 도움이 된다. 다만 그림책의 경우는 그림책과 이론서를 같이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때로는 국내외의 비평서를 주 교재로 삼고 그 안에서 이야기하는 작품들을 곁들여 보아 가는 모둠들도 보게 된다. 이것은 위험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경우, 많은 부분 그 글을 쓴 작가의 관점에 따라서 작품을 보게 되고 우리의 시각은 함몰되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론서를 이어 여러 권 보다보면 어렵고 재미없어서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더러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이론서는 한번에 줄잡아 보기보다 한 갈래를 마치고 다음 갈래로 넘어갈 때 한두 권 그리고 필요에 따라 중간 중간에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동화읽는어른모임의 가장 좋은 참고서는 뭐니 뭐니 해도 우리 회 회보라고 생각한다. 《동화읽는어른》 합본호를 최소한 지역에 한 질은 갖춰놓고 색인목록을 참고하여 필요한 부분을 찾아오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좀 번거로운 일이어서 그런지 합본호를 그다지 많이 이용하지 않는 것 같다. 《동화읽는어른》 합본호는 그대로가 어린이도서연구회의 역사이며 대부분 같은 활동을 하는 회원들의 시각으로 쓴 글과, 여러 작품들을 다룬 글이 실렸기 때문에 그 어떤 이론서보다도 훌륭한 참고서라고 생각한다. 다만 합본호를 구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면 아쉬운 대로 어린이도서연구회의 홈페이지를 이용하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회보를 보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끔씩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늘 한 주 한 주 봐야 할 책들이 숙제로 놓여 있고, 다른 활동까지 겹쳐 바쁘게 돌아가다 보면 회보는 서너 꼭지 훑어보고 저만치 밀쳐놓기 십상이다. 그러기에 모둠에서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누기를 권한다. 회보를 보면 본회의 현안 사업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고 다른 지역 회원들의 활동 내용, 그리고 회원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볼 수 있다. 이렇게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하는 일은 모임에 힘이 되어 주기도 하고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게끔 하는 자극제의 구실도 한다.
발제는 꼭 해야 되나요?
해마다 신입회원을 모집해서 교육을 해 보면 끝날 때쯤에는 인원이 많이 줄어든다. 대부분 공부와 발제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다. 어떤 분들은 발제 안하고 토론만 하면 안되나요? 하고 묻기도 하고, 내가 알고 있는 몇몇 지역에서는 발제를 하지 않고 책을 읽고 난 느낌을 이야기하거나 이론서나 회보에 난 느낌글을 함께 읽는 정도로 공부를 한다고 한다. 그냥 자유롭고 부담 없게 공부하면 되지 굳이 진땀 흘려가며 어렵게 발제를 해야하냐고 강변한다.
물론 회원들 대부분이 주부이다 보니 학교 졸업하고 오랫동안 책읽기나 글쓰기로부터 거리가 먼 생활을 해 왔기에 자기 생각을 논리에 맞게 글로 옮기는 일이 쉽지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 모임의 가장 큰 비중을 이루는 것이 어린이 책에 대한 공부를 하고 평가를 내리는 일이다 보니 일관된 논리를 펴 나가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편한 대로 난상 토론 형태로 나가다 보면 축적되는 것이 없고 따라서 회원 개인이나 모둠 공부에 진전이 없다. 그러기에 꾸준히 결속력을 갖지 못하고 쉽게 무너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어렵고 진땀나는 일이지만 반드시 발제와 토론의 형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때로는 지도자격인 한 사람이 모둠 공부를 이끌어가고 나머지 회원들은 가만히 앉아서 듣고 가는 모임도 있다. 이것은 더욱 위험한 방법이며 동화읽는어른모임의 본질에서 비껴나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모임이 탄탄하게 이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발제자와 사회자를 두고 공부를 진행하여야 한다. 발제에 어려움을 느끼는 회원들은 아이와 나이가 맞으면 아이와 책을 함께 읽고 아이와 나눈 이야기를 발제에 반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가지 요즘 인터넷의 생활화로 발제자가 자기의 견해를 쓰기보다 인터넷에 올라있는 다른 이들의 글을 많이 이용해 발제를 하는 경향이 늘고 있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어설프더라도 자기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동안 자기의 관점이 생기는 것인데, 남의 글을 인용하다보면 그 사람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이 마치 그 사람의 생각이 곧 내 생각인양 착각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나의 논리는 자랄 틈이 없어져 버린다.
회원들 대부분이 동화읽는어른모임에 들어올 때는 어린이 책에 대한 관심과 내 아이의 교육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단순하고 소박한 동기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모임에 들어와 공부를 하고 활동을 하다보면 많은 것을 깨닫게 되고 참되고 가치 있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변화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우리 모임이 주는 큰 기쁨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가 하는 공부는 이렇듯 어린이 책 속에서 내 안의 순수한 동심을 발견하고 이런 의미 있는 일을 남들과 공유하고자 실천하며 살기 위함이지 단순히 아동문학에 대한 지식과 정보만을 얻기 위한 공부는 아니라는 점을 마음에 새기고 임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