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머니 몬스터』
박태식 신부 / 영화평론가, 성공회신부
2008년 미국 월가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전 세계 시장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아려진 바다. 우리나라는 경제 건전성이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라 1998년의 IMF 위기 때보다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고 하지만 요즘 분위기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살림살이 걱정을 안 하는 사람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당했으면서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부동산의 투자가치는 현저하게 하락했지만 오히려 안정적인 수입인 월세로 먹고 살려는 건물소유주가 각광을 받고, 부자와 빈자 사의의 양극화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그런데 TV 경제 채널(확인해 보았더니 의외로 많았다)에서는 금융상품을 최고의 자산 운영방법으로 추천한다. 따라서 이렇다 할 재산이 없고 변변한 직장도 없는 젊은이들은 혹할 수밖에. 일확천금을 약속하는 금융상품이 여전히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 상황들을 잘 묶어내면 이제부터 살펴볼 영화 <머니 몬스터>(money monster, 조디 포스터 감독, 극영화/범죄물, 미국, 2016년, 98분)를 탄생시킬 수 있다.
이름도 유치하기 짝이 없는 ‘머니 몬스터’는 경제 관련 TV 프로그램의 제목이다. 사회자 리 게이츠(조지 클루니)의 멋진 진행과 책임 프로듀서 팻 페일(줄리아 로버츠)의 생방송 능력 덕분에 ‘머니 몬스터’는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최고의 TV 쇼로 자리 잡았다. 쇼의 내용은 간단하다. 금융시장의 현 상황을 도표 등을 통해 알기 쉽게 정리하고 투자가치가 높은 회사 주식을 추천한다. 이 쇼는 몇 번의 정확한 예측을 통해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른바 ‘작전세력’이 쇼를 이용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투자회사 IBIS의 회장 월트 캔비(도미닉 웨스트)가 8억 달러나 되는 투자금을 챙기려 한 것이다.
그 날 아침의 ‘머니 몬스터’도 평소의 어느 날과 같았다. 방송국 사람들은 다들 분주하게 돌아가고 방송 중에도 수많은 정보들이 수집되고 있었다. 이리저리 화면과 정보를 짜 맞추는 팻은 이런 식의 방송에 신물이 나 회사를 그만두려는 참이고 리는 팻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송에 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총을 든 카일(잭 오코넬)이 스튜디오에 등장했고 경제 방송은 순식간에 인질극 방송으로 바뀌고 만다. 카일은 IBIS의 작전에 놀아나 거금(6만 달러)을 날린 청년이었다. 리에게는 푼돈이었지만 카일의 입장에선 거금이었다.
영화배우로 잘 알려진 조디 포스터는 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사회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데(<비버 2011>) 감독으로서도 제법 자리가 잡혀가고 있다. <머니 몬스터>가 올해 열린 69회 칸 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을 받았기에 하는 말이다. 먼저 <머니 몬스터>는 스릴러답게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제한된 공간인 방송국 스튜디오를 범죄 현장으로 삼아 그 속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을 미세하게 잡아내 주목을 끈다. 팻과 리의 비밀 대화와 인질범과 경찰의 협상 · 검거 과정과 생중계 카메라가 잡아내는 장면들과 상황을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의 판단이 숨 쉴 틈 없이 관객을 이끌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시원한 결말, 짜임새가 훌륭한 작품이었다. 다만 너무 훌륭해 오히려 속았다는 느낌이 약간 들기는 했다.
카일은 이유 있는 인질극을 벌인다. 이는 미국 금융시장을 쥐고 흔드는 주체들의 탐욕에 대한 심판이자, 국민들에게 헛된 꿈과 심각한 좌절을 안겨주고도 나 몰라라 하는 언론의 속물근성을 드러내는 쾌거이고, 남의 불행에 무관심한 공동체 의식의 상실을 목소리 높여 고발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카일의 정당한 목소리는 슬그머니 묻혀버리고 만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라서 그랬던 모양이다. 만일 감독이 그것까지 계산해 미국 사회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려 한 것이라면 카일의 말에 좀 더 관심을 보여주어야 했다. 영화의 결론에 완전히 동조할 수 없는 이유다. 사실 젊은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이 세상을 온통 배금주의로 물들여버린 어른들의 책임 아니겠는가?
잭 오코넬의 얼빠진 모습과 캔비 회장의 비서로 등장한 다니앤(케이트리오나 발피)의 연기가 특히 좋았고 조지 클루니와 줄리아 로버츠의 연기는 언제 봐도 믿음직하다. 캐스팅이 꽤 훌륭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카일의 애인 몰리로 등장해 순식간에 화면을 장악한 에밀리 미드는 환상적이었다. 영화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역할이었는데, 그녀를 보는 순간 우리나라에도 고통받고 있을 수많은 잭과 몰리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만일 <머니 몬스터>가 미국의 현실을 반영하는 영화라면 미국은 2008년의 교훈을 잊은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