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제목 : 불량한 자전거 여행
저자 : 김남중
출판사 : 창비
차라리 옛날이 나았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싸웠지만 그때는 엄마 아빠가 서로 관심이라도 있었던 것 같다. 없는 돈 때문에 싸우고, 바닥을 기는 내 성적 때문에 싸우고, 서로 무시한다고 싸우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던 그때가 그리워질 줄 정말 몰랐다(본문 10쪽)
.잘 타니까 고생이지. 못 타는 사람은 자기 자전거만 책임지면 되지만, 잘 타는 사람은 못 타는 사람들까지 챙겨야 되거든. 단체 여행은 그런 거야. 가장 느린 사람 속도가 그 단체의 속도가 되는 거다(본문 80쪽).
떠나기 전과 똑같은 집이라면 돌아가기 싫다. 떠나기 전과 똑같은 엄마 아빠라면 만나기 싫다. 이렇게 멀리 떠나 헤매는 것도 그것 때문인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오라고? 돌아가고 싶을 만큼 그리운 것 하나도 없다(본문 106쪽).
다들 싸우고 있었다. 나도 싸우는 중이다. 처음에는 싸움 상대가 가지산인줄 알았다. 하지만 산은 그냥 가만히 있을 뿐이다. 나와 싸우는 거다. 어떤 곳인지, 무엇이 나를 기다리는지 모르지만 산을 넘으면 알 수 있다(본문 130쪽).
엄마·아빠의 갈등과 소외감→무단가출→고난 극복→깨달음→화해.
이 같은 이야기 전개 방식은 기존의 성장 동화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불량한 자전거 여행>에는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작가는 주인공 호진이를 1100km 자전거 여행에 동참시켜 11박12일 동안 10여 명의 인물과 동고동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과 대화하며 호진이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처럼 고민을 갖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들과 고갯길을 넘고, 서로 위로하며 호진이는 자신의 마음속 고민을 지워나간다.
마지막 난코스인 미시령을 넘던 날. 호진이는 비로소 엄마·아빠와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그리고 엄마·아빠를 신속히 화해시킬 묘책을 찾아내 실천에 옮긴다. 그것은 바로 엄마·아빠를 자신처럼 자전거 여행을 시키는 것이었다. 호진이는 엄마·아빠에게 따로따로 비밀스러운 부탁을 하고…. 과연, 호진이네 가족은 다른 가정처럼 다시 행복을 되찾을 수 있을까.
-오윤현 (아동 문학가)
지은이 소개
김남중
몸은 서른여덟, 마음은 스물두 살. 먼 곳에 가면 동화가 더 잘 써진다고 믿기에 일 년에 두세 번, 서너 달씩 장시간 자전거 여행을 하는 자전거 마니아. 모르는 동네 어슬렁거리기, 다른 사람 이야기 엿듣기, 돈 안 되는 일에 흥분하기, 말없이 가슴에 담아 두었다가 나중에 그리어하기 선수, 때때로 혼자 자전거 여행을 한다.
그동안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소설 ’기찻길 옆 동네’를 비롯하여 ‘자존심’, ‘주먹곰을 지켜라’, ‘하늘을 날다’, ‘살아있었나’, 그리고 이 책을 썼다.
‘자존심’으로 2006년 ‘올해의 예술상’을 받았다.
허태준 그림
1971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고, 서울대 동양학과를 졸업했다. ‘맛있는 음악공부’, ‘고구려의 혼 고선지’, ‘주희', '여우 누이’ 들에 그림을 그렸다.
지은이의 생각
가족은 때로는 싸우고 화해하며, 좋은 일도 나쁜 일도 함께 겪어나가는 사랑하는 관계이다.
한 지붕 아래 살긴 하지만 각기 따로인 가족들이 늘어난다. 밖에서 보기엔 평화로워 보인다. 반면에 날마다 티격태격 잠잠할 틈이 없는 집도 있다. 밖에서 보기엔 불행해 보인다. 그러나 다투고 화해한다는 건,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어지면 소 닭 보듯 싸우지도 않는다. 작가는 이 폭풍전야의 고요를 자전거 여행을 통해 극복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책의 줄거리
1. 싸우지 않는다고 사이가 좋은 건 아니다.
엄마 아빠는 돈 때문에, 내 성적 때문에, 서로 무시한다고 걸핏하면 싸우고 화해했다. 그러나 엄마가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서로 싸우지 않았다. 엄마 아빠는 소 닭 보듯 지냈고, 살얼음 같이 위태위태한 고요 속에서 오직 텔레비전만 제 목소리를 냈다.
내가 학원 빠진 걸 들키던 날, 나는 아빠에게 난생 처음 뺨을 맞았다. 모처럼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집안을 채웠고, 이내 이혼으로 말이 모아졌다. 난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불량삼촌’을 찾아 밤 열차를 탔다. 내가 불량삼촌에게 간 걸 알면 엄마 아빠가 펄펄 뛸 테니까.
나는 졸지에 자전거 순례단 ‘여자친구’의 간식담당 조수가 되었다. 전혀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이 갖가지 모양의 비싸 보이는, 또는 낡은 자전거들을 타고 왔다. 12일 동안 1,100킬로미터를 달린다는 말에도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삼촌은 틈만 나면 나를 불러 일을 시켰다. 다른 사람들이 낮잠을 자는 동안 나는 설거지를 했다. 게다가 자전거를 탈 때 뒤로 처지는 사람들 틈에 끼어 자전거 과외를 받았다. 모두들 힘겨워했다. 나도 힘이 들었다. 당장 여행을 그만 두고 싶었지만, 돈도 없고 갈 곳도 없었다.
2. 가장 느린 사람 속도가 그 단체의 속도이다.
“내가 전화한 거 말하지 마.”
서울로 전화를 했다. 엄마 따로, 아빠 따로.
기세 좋게 환불을 요구하던 희정이 누나가 풀이 죽었다. 영우 아저씨는 금주 약속을 깨고 몰래 맥주를 마시려다가 들켰다. 대안학교 다니는 은영이 누나가 설거지를 도와줬다. ‘여행하기’ 과목이 있는 대안학교가 부러웠다.
오후에는 오전보다 햇볕이 더 뜨거웠다.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헐떡이며 언덕길을 올랐다. 등을 밀어주며 격려하면 언덕길을 올랐다. 그리고 오르막길만큼 긴 내리막길을 자전거들이 신나게 달려 내려갔다.
쥐가 난 희정이 누나 대신 자전거를 탔다. 여자들이 뒤처질 땐 잘도 밀어주던 만석이 형은 소리만 지를 뿐 나를 밀어주지 않았다.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이를 악물고 페달을 밟았다.
돌아오라고 아빠가 전화를 했다. 떠나기 전과 똑같은 집, 똑같은 엄마 아빠라면 만나기 싫다. 삼촌은 조수를 그만 두고 쭉 자전거를 타라고 했다. 지금 나에게는 아무 생각하지 않고 자전거만 타는 일이 필요하다고 했다.
3. 특별한 여행, 나만 힘든 게 아니다.
삼촌을 나무라는 엄마 전화를 내가 끊었다. 엄마 아빠는 뛰쳐나온 날 제자리에 돌려놓고 이혼하려고 할 게 뻔했다.
지난달에 일자리를 잃은 영우 아저씨는 한 달만 더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했다. 술 대신 자전거를 타겠다고 했다.
희정이 누나가 일사병으로 쓰러졌다. 병원 주차장에 세워둔 트럭을 도둑맞았다. 삼촌이 인터넷 카페에다 긴급공지를 띄웠다. 그리고 트럭을 보았다는 전화를 받았다. 트럭은 마을 끝 외딴집 마당에 서 있었다.
따돌림 때문에 중학교를 그만둔 은영이 누나, 사업에 두 번 실패한 상욱이 아저씨, 암수술을 앞둔 마지막 여행길에 나선 배병진 아저씨, 그리고 나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4. 나 좀 데리러 와 줘.
삼겹살을 먹다가 집 생각이 났다. 가족은 밤을 함께 보내는 사이다. 아빠도 엄마도 나도 저마다 다른 곳에서 다른 밤을 보내고 있다. 가족이란 이런 게 아닐 텐데 우리는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아빠에게 삼겹살 사가지고 집에 가라고 전화했다. 엄마가 먹고 싶어 한다고 거짓말로.
아빠는 삼겹살만 사다놓고 다시 집을 나가서 이틀째 들어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삼촌과 결혼할 예정이라는 다음 자전거 순례단 팀장 치연 누나에게 엄마 아빠를 참가시켜 목적지 부산까지 꼭 데려다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엄마 아빠에게 전화했다. 무턱대고 나 좀 데리러 와달라고 말했다. 좀 먼 데 있다고 올림픽 공원으로 나와 달라고 말했다.
엄마 아빠는 서울에서, 나는 통일전망대에서 따로 출발하지만 목적지 부산에서 함께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