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자대학교 역사
◆ 창립의 원동력 황실과 졸업생, 사회 저명인사들의 뜻과 힘을 모아 2년의 준비 끝에 마침내 1939년 숙명여자전문학교가 창립되었다. 겨레의 오랜 염원이었던 자주적인 여성 고등교육기관의 설립이 이로써 실현되었다. ◆ 숙명여전의 개교(1939) 1939년 4월 20일, 숙면여자전문학교가 개교했다. 이후 교실, 기숙사, 부속건물 등을 계속 신축하면서 민족 여성고등교육기관의 모습을 갖춰갔다.
◆ 일제 말의 수난 (1943-1945) 일제 말기 이른바 총력전 체제에서 1944년 '여자청년연성소 지도원 양성과'로 바뀌며 교육권을 박탈당했고, 학생들은 강제로 후방 보급활동에 동원되는 수난을 겪었다.
◆ '숙전생'은 시대의 선망 '숙전생'이라는 말은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그 시대 여성들에게 ;숙전생'이란 이름은 선망의 표현이었다.
◆ 숙명여자대학(1948-1955) 숙명은 해방 이후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였고 마침내 1948년 5월 숙명여자대학(淑明女子大學)으로 승격했다. 문학부와 이학부에 6개 학과를 설치하고 민족문화의 계승과 독립국가의 발전이라는 시대의 과제를 풀어 나 여성 최고학부로서 사회의 기대를 모았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 잠시 후교를 했지만, 1951년 9월 부산 에 임시 교사를 짓고 교육기관으로서의 책무를 수행했다. 휴전 이후 청파동 교사를 복구하여 1953년 9월부 터 정상 수업을 재개했다. 이 시기 모든 숙명인은 재건의 의지로 시대의 역경을 슬기롭게 헤쳐나갔다.
◆ 숙명여자대학교 1955- 숙명은 전쟁 기간의 고난을 극복하고 1955년 3월 '숙명여자대학교(淑明女子大學校)로 승격했다. 초대 임숙재(任淑宰)총장의 취임과 함께 종합대학교 체제를 갖추고 교육과 연구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1960-70년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시대적 과제에 부응하는 여성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대학의 규모를 확대하고 교육 내용을 일신했다. 1981년 동문 총장 취임과 더불어 숙명은 정보화와 섹계화의 흐름에 부 응하는 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했다. 온갖 난관과 시련을 극복해 온 숙명의 저력은 이제 세계적 명문대학으로서의 도약이라는 새로운 꿈을 현실로 바꿔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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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숙명대학교 캠퍼스에 다녀 오셨네요
이추위를 견디기 힘드셨을턴데
대단하십니다 감사합니다.
내일 주저앉을까 하고 기를 쓰고 다니고 있답니다.
카페지기님도 여러가지 작품 많이 올려놓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