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 <월간문학>(1966)
박용래는 향토적이고 토속적인 정서를 자연의 정경과 조화시켜 근원적인 향토애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결하고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는 기교적인 표현을 배제하고 소박하고 밝은 심성에서 우러나는 시상을 있는 그대로 나타낸다. 그의 시에서 군더더기의 표현은 일체 찾아볼 수 없다. 섬세하고 간결한 함축미는 시적 압축을 통해 몇 줄 안 되는 정련된 짧은 시의 형태로 형상화된다. 그러므로 시에 표현된 '보이는 것'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 숨겨진 많은 모습과 시상을 생각해 볼 수 있다. 4줄밖에 안 되는 시 <저녁 눈>에서 이제는 지나가 버린 시대의 토속적인 풍경과 정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고요한 그리움의 심정을 맛볼 수 있다. 장날 전날 저녁의 주막 풍경이 이 시에서 볼 수 있는 정경이다. 한가하던 주막은 갑자기 바빠지고, 주막임을 나타내는 호롱불의 희미한 불빛 사이로 눈발은 흩날리며, 외양간에 매어 놓은 장꾼의 조랑말의 모습과 그 조랑말을 위해 주인이 부지런히 여물을 써는 소리가 눈발 사이로 들린다. 그리고 눈발은 변두리 빈터에 쉴새없이 내려 사방을 더욱 고요한 분위기로 뒤덮는다. 이 시는 축약과 반복의 이미지즘 수법을 통해 생략과 여백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반복과 병렬의 구조는 민요의 기본 구조를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이 시에서 근원적인 힘으로 작용하여 그 눈발 밑에서 시간과 함께 나타났다 사라져 버린 사라진 정경들에 대해 그리운 심정을 불러일으킨다. 박용래가 다루고 있는 시적 소재들은 향토적이고 소외된 사물들이다. 그가 다루고 있는 소재들은 대부분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라져버린 것들이기에 그의 섬세한 관찰력을 통해 표현된 그의 시세계가 우리를 더욱 아름답고 쓸쓸한 그리움의 상상력의 세계에 빠져들게 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