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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저 <검사들과의 대화> 이후, 정치판 꼰대들 덕택에 이제는 '끼리끼리 꿍짝'이라는 뜻의 완벽한 속어로 전락해 버린 이른바 '코드'라는 단어는 아직도 유효하다. 꽤나 다르게 살아온 인생끼리의 만남에서, 각자 멋대로 내뱉던 말들 그리고 생각들이 문득 하나의 노래처럼 소통되는 순간의 즐거움을 우리는 여전히 '코드가 맞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금은 난해한 재즈의 불협화음과 엇박자들이 어느 순간 묘한 조화로 흘러들며 가슴을 울릴 때의 감동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던 타인과 타인 사이의 울림. 그것 역시도 '기묘한 코드'란 말 이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본지랑 코드가 맞는 것들 - 낮술, 활화산 같은 정열과 꼬장, 밤마실, 무한자유, 집요함, 오바질... 바로 이 모든 것을 다 가진 최고의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 본지 그냥 둘 수가 없어 또 찜 해버렸다. 버클리에서 음악공부 중 홀연히 귀국, 재즈 뮤지션이 도저히 버티기 힘든 작금의 한국 딴따라판 현실 속에서 결국 발매조차 되지 못한 1, 2집의 아픔을 접어둔 채 <말로 3집-벚꽃 지다>를 피워낸 그녀.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 본지 언제나처럼 잽싸게 출동했음이다. 기대하시라.
해가 지려면 족히 3-4시간은 기다려야 할 여름 오후 4시. 말로와 이번 앨범의 제작자이자 작사가인 이주엽씨, 그리고 딴지 음악담당 기자 카오루와 함주리가 만났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피해 들어간 커피숍에서의 인터뷰. 좀 흐리긴 하지만 분명 낮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서슴없는 말로의 부산 사투리-"그냥 맥주 칵 마시뿌까"- 이 낮술 권장의 한 마디로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카오루:먼저 간단한 신상조사부터.. (정)말로란 이름이 특이한데, 예명입니까?
말로:예명이 아니라 그냥 아명인데... 근데 예명의 정확한 뜻이 뭐죠?
이주엽:예술하는 사람의 작업명이랄까, 그러니깐 이런 활동 같은 거 하면서 닉처럼 붙이는...
말로:근데 연예인들만 예명이라고 하는 거 아닌가?
함주리:화가들은 가명을 잘 안 쓰지만 작가들은 필명이라고 하구, 아마 예술가들은 다 예명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요.
카오루:예명에 거부감을 가지고 계신 것 같은데.. 그럼 더 고귀한 뜻이?(웃음)
말로:그냥 집에서 태어나자마자 부른 아명이에요.
카오루:뜻이 뭔가요?
말로:아니 그 얘기 아직 몬들언나!
함주리:말로 씨 기사마다 안 빠지고 나오는 이야긴데.(웃음)
말로:첫째언니는 정대로, 둘째언니는 정지만, 제가 셋째고 정말로에요. 첫째는 딸도 뭐 그런대로 좋다 해서 정대로. 둘째는 딸이지만 괜찮다 해서 정지만(웃음) 셋째인 저는 정말로 못참겠다 정말로 너무했다 그래서 정말로.
카오루:오오, 기분이 좀 나쁘실 것 같은데...
말로:아뇨, 뭐 그냥 얘깃거리일 뿐이에요. 할머니 할아버지 사돈 팔촌 친척들 모두 나를 말로라고 불러요. 그래서 본명이 정수월인데 가족이라는 체계 아래서는 말로라는 사람 밖에 없기 때문에 밖에 나가면 어색해요. 주민등록증 어쩌구 하면서 정수월씨, 경찰서에서도(웃음) 정수월씨, 학교 같은데서는 수월이, 어색하죠. 늘 말로로 불려왔으니까...
함주리:한국적 가족 제도에는 잘 적응하셨나요? 좀 따로 놀았을 것도 같은데..
말로:아, 저는 범생!! 심지어 엄마의 리모콘이에요. 지금도 부산에 계신데 전화와서 복날인데 삼계탕 좀 끓여주라 그러면 '넷! 어머니.'하고 준비해요.
카오루:그럼 뮤지션 활동에 대해서 가족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말로:아 우리 엄마 소원은 내가 <KBS 열린 음악회> 나가는 거, 그외 다~ 필요 없어요.
이주엽:앗 거기만 나가면 되는 거예요?
카오루:윤도현의 <러브레터>도 나오셨던데...
말로:그건 뭐 밤늦게 하는 거 누가 보냐구 그러시더라구.(웃음)
함주리:예명이라는 거에 민감하게 반응하시는 거는 연예인으로 보이는 거에 대한 거부감...
말로:아 그거 하나는 최후의 보루라서요.
함주리:근데 예전에, 그러니까 98년인가, 드라마 <단단한 놈> 출연 하셨잖아요. 연예인 맞는 거 아니에요?(웃음)
말로:그 얘기는 하지 맙시다~.(웃음)
함주리:그때 막 알려지기 시작할 땐데, 재즈가수로 나오셨죠. 노래 잘하는 여자 나왔다구 장안에 소문이 자자했는데요.
말로:아 씨, 노래만 할걸 괜히 대사까지 쳐가지구(웃음)... 근데 신난다, 난 노래 잘한다고만 하면 와이래 좋노!
카오루:많이 들으셨을 텐데 안 지겨우신가요?
말로:아니 난 정말 노래 잘 못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내 노래 들어보면 진짜 못해...
함주리:진심이세요? 음... 재즈 이전에 다른 장르 노래를 많이 하셨잖아요. 그것들에 비해서 재즈 노래가 잘 안된다는 뜻인가요?
말로:아니 재즈도 못하고 가요는 더 못하고. 그래서 내가 얼굴로 밀었지.(웃음)
함주리:대학시절엔 카페 통기타 가수로 한 시절 풍미하셨었죠?
말로:그때도 참, 사실 노래 잘 못했었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잘한다고 뭐 그래주니깐 좋긴 좋았죠.
함주리:혹시 만화가 이진경씨라고 아세요? 그분 작품인 <사춘기>라는 만화에 대학가에서 통기타 가수하는, 딱 말로 씨가 모델인 듯한 캐릭터가 나오거든요. 혹시 아는 분인가 했었는데.
말로:아, 그래요? 이진경씨? 모르겠는데...
함주리:혹시나 아는 분일 수도 있겠네요. 그분도 예명일 수 있으니까.. 후에 미국 계실 때 그 만화가 나왔거든요. 암튼 통기타 가수 시절을 기억하시는 분이 많더라구요. <아웃사이더>의 어떤 분도 그 시절 말로 씨 기억하시면서 노래 너무 잘했었다고 추억에 젖으시고.
말로:아, 오늘 노래 잘한다는 말 마이 들어서 진짜 조타.(웃음)
함주리:다른 기사에서 보니 절에서 면벽수도를 하는 괴짜라고 나왔던데요.
말로:사람들이 말을 붙인 거죠. 어머니가 불교에 빠지셨어요.
원래는 천주교 믿으시다가 아들 낳으려고 천일기도 하시고 뭐 그러셨거든요. 아버지가 독자세요. 할아버지가 위에 형 한 분 계셨는데 일찍 돌아가셔서 자손이 없었죠. 그래서 어머니가 뭐 돌부처 코 만지고 자라 방생하고 다 했는데, 결국 아들을 딱 낳은 거에요. 일종의 기복신앙인데, 후에 나이가 많이 드시니까 허전하고 그런 것 때문에 진지하게 불교에 들어가신 거에요. 절에 가셔서 참선하시고 그러는데 그 절은 스님과 보살님이 있어서 사람들이 오면 화두를 줘서 공부를 하게 하는데 그 방식이 바로 면벽이에요. 그래서 정진하게끔 하는 거죠.
어머니가 저희 가족을 다 데리고 갔어요. 저 미국에 있는데 어느날 어머니가 전화하셔서 '말로야, 이번 여름에 들어오나. 너 효도할 일이 좀 있다' 그러시더라구요. 그래서 '넷! 어머니' 하고 갔는데 불고기를 딱 해주시더니 바로 저를 절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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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스님이 화두를 주셔서 그걸 가지고 가서 수도를 했죠. 어떤 사람은 며칠 만에도 답이 나온다는데, 저는 정말... 왜 고집센 사람들은 잘 안된대요. 전 고집도 센데다가 제 안에 제가 가득차 있어서 문제가 절대 안풀리더라구요. 한 한 달쯤 걸렸어요. 뭐 스스로 풀었다기보다 하도 안되니깐 스님이 저를 부르시길래 '아직 잘 모르겠는데요' 그랬죠. 했더니 일단 들어와라 하시길래 갔더니 풀이를 해주시더라구요, 그래서 풀었지. 맨날 엄마가 올라오셔서 오늘은 풀었나 저제나 풀을래나 그러고 계셨는데, '저 내려갈래요' 했더니 엄마가 눈물을 흘리면서 '진짜 몬하겐나, 좀만 더 참아봐라' 그래서 어머니 좀 놀리다가 '사실은 풀었는데요' 하고 내려왔어요.
함주리:아니 제가 읽기로는 그 면벽수도가 부모 형제 다 버리고 훌훌 사바세계를 떠나리라~ 뭐 이런 필로 나오던데 어머니한테 끌려간 거였다니, 이건 완전히 본질이 왜곡된...(웃음)
카오루:일종의 신비화 전략...(웃음)
함주리:특히 그 때문에 한국의 정통 여자뮤지션 계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마녀 계보에 등록되셨잖아요.(웃음)
카오루:아 정말... 여기 나오기 전에 좀 무서웠다구!
이주엽:그런 무서운 점이 꼭 없다고는 할 수 없죠.(웃음)
카오루:자발적으로 면벽수도 고려한 적은 없으신가요?
말로:고 2때 중이 될려고 했어요. 불교철학 이런 거 읽고 노장사상 같은 거 심취해서... 그때 뭘 알았겠냐마는요.
암튼 너무너무 고민하다가 어머니께 말씀 드렸더니 이게 무슨 복이냐고, 우리 딸이 스님이라니 내가 전생에 무슨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이런 복이 다 오냐 이러셔서 고무받았죠. '너무 많이 고민했는데 어머니가 이렇게 기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 들어가겠습니다' 하고 딱 가위로 머리를 깎으려고 하니깐 갑자기 어머니가 180도 변하시면서 '이년이 누구 앞에서 지금 머리를 깎어' 하셨어요. 아, 그때 한번 되게 충격 먹었어요. 완전히 달라지셔 가지구...
그런 데다가 음, 절친한 친구가 죽었었어요. 고 3때 힘들고 그래서 그런 생각 많이 했죠. 근데 그 시기 지나고 나서 대학가니깐, 뭐 생활이 완전히 달라지잖아요. 머 술먹고 놀고 완전히 다르잖아~!(웃음) 그러니깐 그게 싹 없어졌다가, 어느 날 머리를 한번 깎아보고 싶어서 엄마를 2년 동안 설득했죠. 삭발이라는 그 말에 대해서 한번 직접 실천해보고 싶은 그런 거, 괜히 해보고 싶은 거요. 아직 그게 남아 있었던 거죠. 2년간 설득했더니 어머니가 나중에 허락하시면서 젊을 때 아니면 언제 한번 그런 것도 해보겠냐고... 해서 깎았죠.
사실 학교 때 한복도 입고 다니고, 왜 유관순스러운데 컬러는 분홍색 저고리에 아래는 하늘색 치마 같은 거 있잖아요. 그러고서 물리학 수업 들어가면...(웃음) 그러다 한번은 니트 원피스에 까만 스타킹에 하이힐 신고도 가보고.
저는 여성성을 디게 억눌렀었어요. 엄마가 저를 남자애였으면 하고 바라셨던 거죠. 제가 목소리가 낮아서 작게 말하면 남자 목소리 같거든요. 그러면 어디 옷사주러 가셔서는 '우리 아들 잘생겼죠' 하면서 남자옷 사입히고... 그런 식이었어요. 그래서 여자옷은 지금도 잘 못입겠어, 속으로 여자옷 입고 싶은 생각은 있는데, 하이힐 스타킹 이런 거 해보고 싶은데 못하겠으니까 참고 있다가 어느날 아침수업에 용기를 내서 그렇게 하고 갔죠. 가발도 허리까지 오는 거 써보고, 나중에 머리 깎고 나서는 매니쉬한 것도 해보고, 뮤지컬 배우처럼...
함주리: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실행하기는 쉬운 일이 아닌데... 그렇게까지 자기표현을 할 수 있다는 건 일종의 격렬한 자기애 같은 걸까요?
말로:그건 이뻐서 그런 거고, 나처럼 생기면 가능해요.(웃음) 아니, 난 딴 거 없고 그냥 정상인인데 그 정상인을 가족들이 비정상으로 몰아간 거지. 우리 어머니는 남동생이 있는데도 아직도 나한테 전화해서 큰일 의논하고, 뭐 못질 하라 그러고, 전구도 내가 끼우고...
함주리:저도 부모님과의 관계가 그리 애틋한 편이 못되는데 굉장히 심하게 간섭을 받다가 서울로 대학을 와서는 무절제 그 자체였어요. 부모님과의 관계 그러니까 간섭이라는 게 싫고 괴롭지만 그래도 무절제의 어떤 보루가 되는 점이 있기 때문에 받아들이게 되는 건지...
말로:무절제, 너무 좋지.
함주리:아 좋죠... 죽죠...(웃음)
말로:사실 나를 절제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 강아지하고 화분. 이쁜 것들 물주고 산책 시키려면 규칙적으로 살아야 되거든요.
함주리:아, 역시 사랑이군요.
한국에서, 미국에서, 뮤지션이 된다는 것은
카오루:한국에서는 음악하고 관련 없는 물리학과를 다니셨는데요. 혹시 그것도 어머니의 명령인가요?(웃음)
말로:그런 건 어머니 명령 안따르죠. 원래 집에서는 아버지가 자식들 음악하는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큰 언니 작은 언니, 그리고 나 해서 정트리오의 꿈을 가지고 계셨는데... 어릴 때부터 노래를 가르쳐 주시면서 그런 걸 많이 자극하셨죠.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빠한테 배운 노래를 다같이 화음 넣어 부르고... 아버지가 노래도 좋아하시고 악기도 좋아하시고 집에 악기도 좀 많았구요. 큰언니는 그래서 작곡을 하고 둘째 언니는 전혀 관계없는 조세신문에서 일해요. 이제 저는 이렇게 음악하고... 근데 질문이 뭐였더라...
아, 물리학과 들어가는 거 어머니 아버지는 별로 신경 안쓰셨어요. 큰 언니가 음악을 하니까. 저는 그때 천문학과에 굉장히 가고 싶었어요. 그거 뭐더라, 이외수 씨의 <꿈꾸는 식물>을 읽고서 뿅 가서요. 그 둘째형 캐릭터가 약간 또라이에다가, 근데 해박하구, 아 이 사람이 별에 대해서 줄줄 읊는데 그걸 읽고서 이게 정말인가 해서 백과사전 찾아보니 정말이더라구요. 물론 소설이니까 이외수 씨도 사전 찾아보고 썼겠지(웃음). 암튼 그땐 어리니까 여튼 충격 받고 감동 받고.
함주리:그래서 저 S대 천문학과를 두 번 떨어지셨다고 들었는데요.
말로:그래서 삼수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부모님이 후기 한번 쳐보라고 그러시더라구요. 경희대 캠퍼스가 그렇게 예쁘다길래, 이미지도 좋구 해서 끌렸죠. 벚꽃이랑.. 학과는 천문학이랑 물리학과가 제일 비슷하니깐 갔어요.
들어갔더니 너무 재밌고, 애들도 정말 좋구, 전 사람들 디게 좋아하거든요. 물리 공부 하면서도 음악은 계속 하고 싶었는데, 음, 물리를 계속 하고도 싶었는데, 물리를 진짜 잘하는 애들이 있더라구요. 저같은 경우는 그냥 점수만 잘 받는 거구, 애들 중에는 과학적인 직관 같은 게 뛰어나서 뭔가 다른 애들이 있더라구. 그래서 안되겠더라구요. 계속 밀고나가면 어디 연구실 들어가서 시다바리나 하겠구나, 재미없다 이런 생활은, 그랬죠.
음악 쪽으로는 계속 트라이 하고 있었으니까 3학년 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 나갔어요. 늘 혼자서 음악을 하다보니 이게 내가 잘하는 건지 머 어떤지 검증도 안되고, 그렇다고 대학가요제까지 나간다 이런 건 나랑은 안맞고. 그래서 보니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자기가 작곡하고 작사하고, 악기를 다루면서 노래를 직접 해야되니 아 이건 내가 테스트를 받을 수 있겠다 하고 테스트를 받은 거죠.
카오루:그러다가 버클리 가실 결심을 한 이유는요?
말로:결심한 건 대학교 3학년 때.. 유재하 경연대회 때 썼던 곡도 재즈를 정말 몰랐지만 나름대로 재즈 풍이라고 한 거였어요. 재즈 틀어주는 카페에서 귀동냥으로 듣고 그랬죠. 그러다 이태원 <올 댓 재즈>를 찾아가서 실제 뮤지션들 만나서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니 왜 재즈를 할려고 그러는데?" 뭐 이렇게 묻더라구요. 그래서 어쩌구 저쩌구 했더니, 미국에서 아티스트가 되고 싶으면 뉴욕으로 가고, 한국으로 돌아오려면 버클리를 가라 그러대요.
거긴 한국인도 많고 다시 들어오면 한국인들이 잘 안다, 뉴욕은 경쟁도 세지만 학비도 비싸고 결국 고생하고 들어와도 대접 받는 게 아니라구요. 그래서 버클리나 맨하탄 스쿨 근처 어디를 가려고 그랬는데, 다들 오디션을 봐야된다고 그러더라구요. 졸업하고 오디션 보러 갈려구 비행기표 사고 비자도 받고 다 했는데 떠나기 이틀 전인가, 버클리에서 편지가 왔어요. "합격" 그래서 뭐, 오디션은 무슨 오디션, 고마 됐다, 해가지고 갔죠.
카오루:가보니깐 어떻던가요.
말로:빡세죠 뭐. 잘하는 사람은 엄청 잘하구요. 제 클라스에 싱어가 세명인데 한명은 한국, 그것도 부산 출신의 촌닭, 그게 바로 접니다(웃음). 그리고 한명은 스웨덴 앤데 아버지가 뮤지션이라서 아버지랑 맨날 음악 듣고 연주하던 그런 애. 또 한 명은 흑인 여자앤데 미국의 재즈 클럽에서 10년 동안을 노래한 애. 쫄아가지고... 그런 식으로 하드하게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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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론 같은 건 학교 때 따로 안배워도 왠만큼은 알고 있어서 거기서 테스트 같은 걸 받아보니 그레이드가 되게 높더라구요. 그런 건 빨리 체크아웃 했었는데 정말 문제는 실기. 제가 재즈 노래도 하나도 모르고 그랬어요. 첫 수업에 재즈를 불러야 되는데 대체 무슨 노래가 좋을지 몰라서 재즈곡집 이런 거 딱 넘겼더니 A에서 딱 펼쳐진게 <Ain't Misbehavin>였어요. 아 이거 불러야지 하고 불렀더니 사람들이 막 웃는 거예요, 선생님도 막 웃고.
왜 웃는 줄 그때는 몰랐는데 좀 지내고 나니까 알겠더라구요. 그게 너무 옛날 노래라서 요새 애들은 아무도 안부르는 거더라구. 그래서 쪽도 당하구 암튼 그거 따라잡으려구, 첫 6개월 한 학기를 조금만 칭찬 들으면 막 좋아가지구 난리 치구 야단 들으면 집에 가 가지고 싸구려 포도주 먹으면서 울고... 그러다 새벽 7시에 일어나서, 새벽 맞죠? 7시면(웃음), 아침에 2시간 연습하고 9시에 수업하고 쉬는 시간에 또 연습하고... 그때 점심을 던킨에서 도너츠 하나 커피 한잔 그걸로 떼웠죠.
그런 루머가 있어요, 던킨 커피가 제일 맛있다, 커피는 던킨이다, 도너츠는 던킨이 아니라요(웃음). 그래 가지고 먹으면서 또 연습하고 수업 끝나고 또 하고, 다른 거 다 빼고 노래에만 투자했어요. 한국애들은 맨날 와서 한식집 가자 아니면 냉면 먹으러 가자, 어디 구경하러 가자 그랬어요. 저는 그때 좀 화를 냈었어요. '너희들은 비싼돈 내고 와 가지구 뭐 그런 거나 보러 다니노, 난 바쁘니 너네끼리 가' 그래가지구 한국인 사회에서 전 좀 왕따였어요.
함주리:원래 범생이의 피가 면면히...
말로:범생이라기보다는.. 하긴 고딩 때까지만 해도 범생이였지. 음... 주어진 거는 열심히 해요.
함주리:뭐든지 몰입해서 하는 열정적인 성격 땜에 범생이가 되는 케이스가 있고-이건 현상적인 거죠, 아니면 부모 형제 친구 선생을 다 만족시키고자 하는 뼛속까지 범생이가 있는데 어떤 쪽이세요?
말로:후자 후자.
함주리:그러니까 따 당하지.(웃음)
말로:문제는 뭐냐면 전 가족이 참... 지금은 가족이랑 떨어져 사니깐 그렇지만 옛날에 저는 뼛속까지 범생이었어요. 가족한테 잘 보일려구, 난 야단 맞는 거 너무 싫어해, 집에 들어가면 좀 감옥 같았어요. 엄마 아빠한테 야단 안 맞으려고 열심이고, 대학 다닐 때도 학점 늘 에이뿔. 왜냐면 그래야 엄마가 전화를 안하니까. 그게 좋아서 술도 먹구 난리치고 놀구 하는 중에도 성적은 늘 좋게 유지했죠.
성적 나쁘면 전화해서 머가 어떠니 하는 그게 너무 싫은 거야. 유학 갔다 와서 그래도 조금이나마 돈을 벌기 시작하니까 그래도 자유로워요. 어머니도 어느 정도는 성인취급 해주시고 터치 좀 안하고... 아 실은 가족, 도망치고 싶고 지금도 가출하고 싶어.
유학가서는 엄마가 전화 자주 안하게 되고 그랬는데.. 근데 돌아가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정말 목숨 걸고 했어요. 쪽팔려서 학교를 못다녀, 영어도 안돼, 분위기도 안 맞어, 외국 사람들 지나다니지, 노래도 안돼, 먹는 거 하며... 이 이상한 나라, 애들도 별루구, 빨리 배워서 돌아가고 싶다 그 생각만...
게다가 그 근방에 있는 버클리, 하버드, 엠아이티는 다 특징이 있어요. (카오루-캐주얼한 점퍼에 청바지- 가리키며) 이렇게 입으면 엠아이티(제작자 이주엽씨-카키톤 면바지에 셔츠와 재킷- 가리키며), 이렇게는 하버드(함주리-쫌 파인 니트에 청바지-가리키며), 여기다 찢어진 청바지 입었으면 버클리. 근데 난 촌닭이니까 패션도 모르고... 예를 들어 주엽씨 같은 사람이 버클리 안에 들어오면 하버드 애가 여기 왜 왔노 하는 식으로 다 쳐다보는데, 전 모르니까 그냥 집에서 입던 거 입고 다니고 머...
카오루:어느쪽이셨어요?
말로:카오루 님 쪽.
함주리:그럼 많이 발전하신 거네요.(웃음)
말로:아니 요샌 그래도 옷값은 버니까... 그땐 돈이 없어서...
카오루:하기야 물리학도셨으니 엠아이티 쪽이...(웃음)
말로:암튼 한 학기 고생하고 방학 때 독하게 결심을 했죠. 이렇게는 안되겠다, 절대 못 따라간다, 정말 너무 실기가 안됐어요. 스윙을 모르겠고... 난 열심히 해갔는데 뭐가 어떻다느니, 이러면 안된다느니, 그래서 방학이 길기 땜에 작정을 하고 죽도록 재즈만 들었어요. 눈뜨면 씨디 플레이어 꽂아서 음악 듣고...
그때 친구가 버클리에 오래 있으면서 모은 몇백장 재즈 씨디가 있었는데 걔가 뉴욕인가 어딘가에 갔었어요. 해서 맨날 맨날 걔 집에서 먹고 듣고, 잘때도 듣고, 전부다 듣고 또 들었어요. 그때가 꿈속에서 마일즈 데이비스 나오고 그랬던 때에요. 그렇게 3개월 딱 지나고 갔더니, 다들 노래 듣자마자 '와~ 니 진짜 연습 억수로 많이 했네' 하더라구요. 물론 부산 사투리로는 아니지만(웃음).
그래서 '하나도 안했는데요' 딱 그랬더니 근데 니 노래 너무 좋아졌다고 막 놀래는 거예요. 그때부터는 뭐든지 딱딱 받아들이고 느끼고...
카오루:완전히 몸에 익어버리는 그런 류의 것입니까?
말로:예, 머리론 이해되지만 불협화음이던 코드나 음들이 막 들려요. 마이너에 뭐 샵 쓰구 어떻게 어떻게 한다 머리로는 이해해서 했는데 들어보면 이게 뭐야 하던 거, 그런 게 그때부턴 여기는 이 음 들어가면 좋겠다 해서 쓰면 딱 되고. 그런 식으로 귀가 들리게 된거죠. 애들이 다 칭찬하고 선생님도 칭찬하고... 좀 이상한 것 같아서 쫄면서 해도 너무 잘한다 그러고. 이후로는 엄청 빨아들이는 기간이었어요. 그러고 나니 남은 게 졸업을 하기 위한 프로젝트며 기간인데, 그게 딱 하기 싫더라구요. 그래서 한국에 들어와서 그냥 안가버렸죠 돈도 없고.
카오루:재즈가수가 되고자 했던 계기는요?
말로:다이나 워싱턴 아세요? 36세에 요절한 흑인 여가수인데, 블루스의 여왕이었어요. 60년대 활동했어요. 빌리 할러데이 전성기 딱 지났을 즈음에 나온 사람인데 훨씬 파워풀하고 멋있고 감칠맛 나고 그러면서 할 거 다하고... 이 사람 노래 처음 대학교 3학년 때 들었어요. <블루노트>라는 작은 재즈전문 가게가 있었는데 주인이 그걸 들려줬어요. 그래서 카피를 해보려고 했는데 가사도 없고 악보도 없고 악기도 없고 그런 난관이 있었어요. 아, 정말 다이나 워싱턴은 여신이죠.
카오루:이번 앨범에도 블루스가 있는데요.
말로:물론 다아나 워싱턴하고야 쨉이 안되죠 실력이. 저는 거기서부터 내려오는 그게 블루스 창법인 줄도 모르고 재즈는 그냥 다 그렇게 하는 건 줄 알았어요. 근데 많이 듣다보니 다른 게 많이 있더라구요, 하지만 그때는 재즈는 다 그런 줄 알았죠.
카오루:이번 앨범에 드러나기도 한 것 같은데, 현재 관심 있는 쪽은요?
말로:저는 스윙, 그리고 라틴 음악이요. 살아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들으면 슬프기도 하고 토속적이기도 하고... 에스닉한 쪽에 요즘 귀가 가요.
함주리:재즈 듣기 전에는 음악을 꼭 해야겠다 까지는 아니고 취미 정도였나요?
말로:취미라기보다 특기였죠 특기.
함주리:그럼 재즈를 들은 이후로는?
말로:재즈를 듣고 나서는 특기란에 음악이라고 쓸 수가 없어졌죠. 아 내 노래가 진짜 허접하구나. 원래 저는 귀가 좋아서 악보가 없어도 뭐든지 연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좀 교만했어요.
뭐 대학교 때는 운동권 행사 때면 맨날 연주해주고 팔려다니고 술 얻어먹고... 누가 한번 불러주면 듣고 그냥 연주하는 거죠. 음악 따로 공부하는 사람 보면 그런 거 왜 공부하냐, 초등 때 가나다라 배우는데 왜 그걸 또 배우냐 이런 식으로 교만에 차가지고... 또 기타도 잘 치니까 노래 한번 들으면 코드 다 파악하고 '이런 노래 아니냐'하면서 딱 치면 애들이 "와~" 하고.. 그러다가 재즈 한번 듣고 나서는 '이게 뭔지 모르겠는데요' 이렇게 된거죠. 그래서 이걸 극복하겠노라.. 가 된거죠.
카오루:그 '특기 시절'에는 어떤 음악을 좋아했나요.
말로:뮤지컬 음악도 좋아하고, 주로 기타를 칠 수 있는 김광석이나 비틀즈...
함주리:아 글재주는 왜 폼이 안나죠? 술 얻어먹고 리포터 논문 많이 써줬는데 폼나긴커녕 골방 거지같고.(웃음)
카오루:다시 외국으로 가서 활동하고 싶은 생각은요?
말로:저는 외국에 살고 싶지는 전혀 않고, 여행은 가고 싶어요, 음악여행. 저는 그냥 여기가 좋아요. 클럽 나가서 노래 하고 귀찮음 당하지 않고... 그게 좋아요. 유명해지는 것도 바라지 않고, 아, (제작자 이주엽씨 눈치를 보며) 물론 판은 많이 팔려야되겠습니다만 (웃음) 근데 저 자신이 유명해지는 것은 바라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것만 딱 하고 싶어요. 못됐죠? 못됐나. 못됐죠, 사회에 환원을 해야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