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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부모 형제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버팀목이 되는지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은 모릅니다.
그 분들이 내 곁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이들이 누리지 못할 행복이었다는 것을 세월이 지나지 않고는 모릅니다.
너무 가난하여서 자식에 대한 미래를 챙겨주지 못하였고,
너무도 고단한 삶으로 인하여 자식들과 정서나눔의 시간이 부족했었고,
가혹할 정도로 어릴 적부터 자식을 먹고 먹히는 생활전선으로 내몰았다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부모가 있었다는 것은
또 다른 경우를 경험하지 않고는 모를 일입니다.
내 기억속에 아른거리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바람피우다 아내에게 들통이 나고 그래서 애궂은 자식들과 함께 집밖으로 쫓겨나 추위에 파르르 떠시던 아버지.
어느날인가 가물거리는 초롱 불빛밑에서 갈기갈기 찢어진 애인의 사진을 밥풀로 붙이며 조각모음을 하고 있는,
친지들에게 듣자하니 한양대를 나오시었는데... 박정희대통령이 전국의 대학 회장 및 동아리 팀장급되는 젊은이들을
모아 지금의 사관학교를 세우면서 생도후보를 차출할 때 그 대상일 정도로 인테리였다는 말은 들었으나,
당시 영어를 곧잘 하시던 아버지였고 내가 15-6세쯤에 이르렀을 때 나와 함께 스케이팅을 즐기셨던,
그러니까 내 아버지께선 젊은 시절에 절대 흔하지 않은 스케이드를 타실 줄 아는 앞서 갔던 인물이었다는 이야깁니다.
앞마당에서 구구거리며 새끼를 모아 모이를 쪼던 암닭을 그럴싸하게 오직 크레파스로만 그려내시던 그런 아버지,
내 어릴 때 경영하시던 평택시장통의 천일사진관. 흑백사진을 오직 수작업으로 칼라사진으로 만들어내던
남다른 그림 솜씨를 지니셨던 아버지는 생김새도 그럴싸하던 풍체를 지니고 계셨었습니다.
그러나 내 아버지는 무기력하고 자식 교육에 대한 무책임과 가족에 대한 정서가 전혀 보이지 않았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내 기억으론 일평생 가난과 아내의 바가지와 옛날에 대한 향수를 끌어안고 고단한 삶을 살아내던 분이셨습니다.
내 나이 20세쯤에 간경화라는 지병으로 병원치료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요절하신 분입니다.
아버지...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추억은 영화의 한토막보다도 적은 분량으로 내게 남겨있을 뿐입니다.
사회에서 이런저런 일로 인하여 이리밀리고 저리밀리고... 좌절하며 낭패에 이르렀을 때,
하나의 형에 넷이나 되는 동생들 모두가 가진 것 없고 배운 것이 변변하여 아버지에 이어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당신은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셨습니까?"를...
내 어렸을적에, 조금만 아주 조금만 뭔가의 뒷바라지를 해주었다면 지금보다는 나은 삶을 영위할 수가 있었으리라
싶어 그 모든 것을 부모로부터 내리받은 이들을 부러워하며 '참으로 나는 불행한 사람'이라고 판단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내 밷은 말, "당신은 참으로 내게 아무것도 해주신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게 아버지는 존경스러운 분이 아니었습니다.
어느날 아주 우연하게, 일부러 찾아갔던 길이 아닌 길에서 고아원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누구하나 돌보는 이가 없어 길거리에서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던 아이들을 당국에서 주워모으듯 그러 했답니다.
새까만 밤이 되어도, 무서울 정도로 벼락을 치며 폭우가 쏟아져도 돌아갈 집이 없는 아이들을
보호하고 양육하겠노라면 고아원이라는 집으로 데려왔답니다.
미래에 대한 계획에서 방치되고, 기본적인 교육에서도 외면된 삶을 그져 이어갈 수 밖에 없는 아이들
철책같은 침상과... 절은 냄새가 지독한... 어린 시절,
그러니까 천진난만한 동심의 세계가 차단된 곳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입니다.
부모가 없답니다. 형제가 없답니다. 친지가 없답니다. 집이 없답니다.
갈곳이 없답니다. 오라는 이가 없답니다. 찾아가는 사람도 없답니다.
학교도 가지못하고, 한껏 운동장에서 뛰놀지도 못하고... 그렇게들 그래도 살아가는 아이들입니다.
그 아이들을 보게 된후에
'부모가 내게 해준 것이 하나도 없다.' '나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다.'이라는 것이
나의 잘못된 생각이었고 섣부른 판단이었음을 이제와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내게 그래도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또한 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고 받을 복을 이미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진즉에 흙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아들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치매로 인하여
남은 생애를 왜 살고 있는지, 삶의 의미조차 모른체 그냥 살아가고 있는 지금에서야 말입니다.
부모는 물론 돌볼 형제와 친척이 마땅하지 않아 고아원에 버림받듯이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을 만나고 난뒤엔
내게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다는 것은, 신의 은총임을 재삼 느끼게 합니다.
호치민시 외곽 고밥이라는 외진 곳에 위치한 어느 고아원 아이들.
반갑게 웃으며 자신들을 칮아준 착한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반기고 있지만 그 입가에는...
쓸쓸함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습니다.
이들을 만나게 된 첫 느낌은 수용소? 어린이 수용소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벗겨진 페인트칠. 녹슨 철장. 쉰네가 나는 방. 되는데로 입은 옷과 무조건 짧게 깍아버린 머리...
천사들이 방안으로 들어와 인사를 하자 아이들은 하던 일들을 멈추고 카메라앞으로 모여듭니다.
예전에 느닷없이 찾아와 마음 설래이게 해놓고 연기처럼 가버린 그 어느 사람들처럼
잠시 왔다 가는 사람들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찾아준 것이 고마워 손을 흔들며 마주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의 총인구는 9천만을 바라보고 있으며 호치민의 상주인구는 1천만 명에 이르른다고 합니다.
출 퇴근시간은 당연하고 보통 한가하여야 할 오전 10시나 오후 2-3시에도 길거리엔 사람이 넘쳐납니다.
하늘 아래 이렇게 수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국가에 의하여 인민이 존재한다는 국가기조에 따라 뭐든지 국가가 우선이지만
국가는 인민의 괘적하고 다복한 삶을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은 국토의 반쪽이 바다와 접해있고 동남아 국가가 다 그러하지만...
온갖 강과 수로로 인해 수상가옥들이 많습니다.
수상가옥은 아무래도 괘적하고 편한 집은 아니지요. 불편함이 다분한 그런 집이 수상가옥입니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라면, 때론 작은 잘못에도 회초릴 드시고, 웬만한 일에 무덤덤한 아빠라 할지라도,
툭하면 내것을 빼앗는 형과 그 어떤 것이라도 자기것이라고 우겨대며 툭하면 울어대는 동생과 함께라면
이런 물위에 지은집이면 어떻고 곧 무너질 것같은 집이면 어땋습니까
베트남 특히 호치민의 집 값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정부에서 내집갖기에 주력하고 있다지만 웬만한 사람은
집장만하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사람은 월세를 사는데... 집값이 비싸다 보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세가 장난이 아닙니다. 해서 방 하나를 세 내어 친구들, 친지들과 어울려 적게는 대여섯명 많게는
십여명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허지만 남의 집이면 어떻고 단칸방이면 어떻습니까
같은 성씨를 쓰는 사람들이 함께 자고 일어나는 세상... 그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어떤 아이는 아빠가 있어 아빠의 보호를 받으며 시간을 보내는데
어떤 애들은 부모형제 친지가 있어서 이렇게 휴일이면 나들이를 나가기도 하는데
정해진 곳에서 벗어나면 결코 무사할 수 없는 공공시설에서
가뭄에 콩나듯이 찾아주는 착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그리워하고 추억하며...
이 아이들은 살아야 합니다.
착한 사람들과의 즐거운 시간도 잠시 잠깐
모처럼 시멘트로 되어진 운동장에서 즐거움을 나눠보지만
잠시후면... 쏟아져내리는 폭우를 피하여 각각 제집으로 가듯
그들은 가고 아이들은 이렇게... 남습니다
베트남의 비는 참으로 을시년스럽습니다. 그리고 바람처럼 왔다가 역시 갈 때도 바람처럼 가곤 합니다.
이슬비나 보슬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왔다 싶으면 자신의 흔적을 확실하게 남기려는냥
거리를 온통 물바다를 만들고 사람을 비롯해 이것 저것 온통 물에 적셔버리고 맙니다.
비란 놈은 참으로...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마력도 있지만 웬지모를 스산함과 때아닌 외로움...
뭐 그따위 것들을 안겨주는 바람에 사람의 감정을 축축하게 만들어 때아닌, 별스런 생각들을 하게 합니다.
아마도 이 아이들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얼굴도 모르는 엄마 아빠가 문득 생각날터이고
더욱이 자신들을 찾어준 착한 사람들은 물론 길가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마다
자신의 처지가 유독 서글프다는 생각이 비처럼 가득 밀려들겝니다.
어느날 갑자기 스며든 착한 사람들과 함께 아이들이 뭔가를 열심스레 만드네요.
대부분의 아이들이 마치 도공처럼, 조각가처럼, 기계를 만지는 기술자처럼 (때때로 사팔뜨기가 되면서 까지)
잔뜩 신경을 고추세워 작업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그리 열심히 정성스레 만드는 것일까요?
바로 이것입니다. 사진첩. 내가 만들어 내가 담길 사진 첩...
이속에 담겨야 할 이는 엄마 그리고 아빠인데...
잠시면, 기억의 저 먼곳에 있다 며칠 후면 사라질 낯선 사람이 담겨있으니...
어느날 소낙비처럼 갑자기 찾아왔다 너두도 빨리, 햇님에게 밀려 떠나가는 구름같은 천사들의 사진만 담았습니다.
잘 만들었군요. 예쁩니다. 저 예쁜 액자에 엄마와 아빠가 담겨있다면 참으로 신나겠는데...
아이들이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이곳은 침실이기도 하고 작업장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분량의 작업을 하여야 합니다. 바로 가내수공업이죠.
주어진 일을 주어진 시간까지 만들어야 할겝니다. 그렇다해서 설렁설렁 만들어선 안됩니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입고 먹고 살아가는데 상당히 힘들어집니다. 일감이 끊어지면 절대 안됩니다.
이런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상품의 수준이 어떠하겠는가만은 그래도 이들이 만든 것이라하여
우정 찾아와 사가는 이도 있으니... 아이들의 솜씨가 고만하고 숙련공과는 거리가 멀겠지만
그래도 일감을 끊지 않고 제공하는 사업장이 있으니...
세상은... 아직은 희망이 있습니다.
바닥에 자신에게 주어진 작업의 분량을 펼쳐놓고 일하는 아이들
그 와중에도 노는 놈은.... 놉니다.
일하다 말고 승리의 심볼인 두 손가락을 활짝 펴 모델이 되어주기도 하고.
이 아이들은 뒤에 있는 바구니에 자신들의 작업량을 채워야 합니다. 분명히 하루의 해당량이 있을테니 말입니다.
혹시나 우리의 방문으로 저들의 작업에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러워집니다.
비행기를 만들자. 훨~ 훨~ 창공을 나는 비행기를. 창공을 난다는 것은 희망을 뜻하기도 하고 자유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래, 이 아이들의 소망과 착한 이들의 희망을 담아 창공으로 날리자 비행기를
비행기는 이들의 마음을 아는지 운동장을 맴돌다 하늘 높이 날아 오릅니다.
또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들, 착한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담은 아이들의 편지가 전달되고....
그냥 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너지는데 아이들의 속내를 담은 글을 읽어 내려가다가
속절없이 눈물을 떨구고 마는 착한 사람들
바람처럼 짧았던 시간이고, 또한 착한 사람들은 또 다른 곳에서도 이들과 같은 아이들을 만났고
또 만날 것이지만... 예전이나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두고 간다는 마음은 아프기 마련...
이별의 시간. 창밖에서 손을 흔들어봅니다
아이들을 이곳에 놔두고 떠나야 할 천사들은 아이들이 안스러워 마음이 아프지만
더욱이 쇠창살로 된 창문때문에 그 마음은 더욱 스산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그대로 가야하는 착한 사람들.
남겨지는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웬지... 죄를 짓는 것같고... 가면서 또 돌아봅니다.
보내는 아이들도 헤어짐이 서운하여 손을 흔들어 주네요.
혼자 혹은 둘이서
더러는 여럿이 착한 사람들의 카메라에 자신을 담아주고...
속으로 미련한 바램, "나를 잊지 말아주세요. 오래오래 기억해주세요"를 갖었을겝니다.
떠나가는 이는 눈시울이 붉어져 떠나는데 떠나 보내는 이들은 얼굴 가득 웃음을 담고 있습니다.
겉모습이야 환하게 웃고 있지만 그 속마음은 얼마나 쓸쓸하고 허전할까?
아마도 필경 이들은... 나도 함께 가고 싶다라는 마음이 가득했을 겝니다.
떠나 보내는 아이들도 서럽기는 마찬가지
톡 건드리면 곧바로 눈물방울을 떨구고 말... 아이들
이름모르는 아빠와 얼굴조차 희미해진 엄마가 오늘따라 더욱 그리울 것이 분명합니다.
이토록 예쁜 아이의 엄마는 어디에
그리고 아빠는 어디에 계실까요?
첫댓글 착찹 하내요....어렸을때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이 나네요....저하고 거의 비슷 합니다....그래도 좋은일 하시내요....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다시한번 하게 하는 내용입니다. 칠순 넘어 이젠 옛날처럼의 카리스마와 엄한 모습은 사라졌으나...당신은 아직도 청춘이라 하시는 우리 아버지~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