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린디시의 성 라우렌시오 사제학자는 1559년 7월 22일,
이탈리아 남부 항만도시인 브린디시에서 태어났다.
성인의 본래 이름은 체사레 데 로시였다.
성인은 어린 시절에 꼰벤뚜알 수도회원으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성인은 벌써 6살 때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였고,
좋은 신부님이 되기 위해
늘 기도하며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16살에 카푸친회에 입회한 성인은 철학과 신학을 전공했는데,
천재적 지능을 가진 성인은
한 번 배운 것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20살이 되기 전에 여러 학문을 섭렵했고
유럽 언어는 물론 그리스어와 히브리어에 능통했다.
고대 성경 원문도 막힘없이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성인은 수도회에서 ‘라우렌시오’라는 수도회 이름을 받았다.
성인은 신학, 철학, 성경, 그리스어, 히브리어 등
여러 개의 국어를 파도바대학에서 연구한 뒤에
사제로 서품되었고,
북이탈리아를 순회하면서 복음을 선포하였다.
하지만 성인은 절대 자신의 학식을 자랑하거나
자신보다 못한 이들을 무시하지 않았다.
학식이 쌓이면 쌓일수록 성인의 성덕과 영성 역시 깊어졌는데
성인은 누구보다 겸손했다.
성인은 해박한 지식에서 우러나오는 강론으로
유럽 전역에서 유명세를 탔다.
또 사람들 마음을 감동시키는 화법으로 하느님 말씀을 전하며
많은 유다인을 개종시켰다.
성인 주변에는 설교를 듣고
성인에게 축복을 받으려는 이들로 넘쳐났다.
성경에 대한 빈틈없는 성인의 지식은
성인의 설교가성경에 근거되어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장해 주었다.
성인의 강론들은 늘 뚜렷했고, 세심하게 계획된 것이었다.
성인의 대중설교가 끝나면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했고,
그 결과로 인해 천주교 신자가 아닌
많은 사람들이 입교하게 되었다.
교황의 요청에 따라 라우렌시오는 1592년과 1594년에
두 번 로마의 유대인 공동체에 설교했는데,
이에 유대인들은 성인의 열성뿐만 아니라
예의바른 태도와 성경을 유창한 히브리어로 해설하는
그 능력에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
라우렌시오는 신앙생활을 기르기 위한
하느님 말씀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지성의 빛이요 의지의 불로서,
인간이 하느님을 알고 사랑할 수 있게 해줍니다.
하느님의 영의 은총으로 살아가는 내적 인간에게
그 말씀은 빵이요 음료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꿀벌의 꿀보다 더 달콤한 빵이고
우유나 포도주보다 더 나은 음료입니다.
영혼에게 있어 그것은 황금이나 보석들을 풍부히
생산해내는 공로의 영적 보물인 것입니다.”
“우리 육신적 생명을 위해서 씨 뿌림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 영적 생활을 위해서 하느님 말씀의 전파가 필요합니다.
…… 복음 전파는 사도의, 천사의,
그리스도의, 그리고 하느님의 직무입니다.”
라우렌시오의 신학적 작품 대부분은
주일과 사순절과 대림절, 그리고 교회의 주요 축일들의
해설과 강론들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 외에 성모님의 모든 특권들, 그리고 구원의 역사 안에서
성모님께서 하신 중추적인 역할을 다룬 ‘마리알레’라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 대한 강론집도 있다.
라우렌시오는 여러 지역으로 파견되었는데,
독일과 체코 그리고 오스트리아 등
여러 나라에 수도원을 세웠고,
이 수도원들이 관구 수도원으로 발전하였다.
성인은 터키군 침략으로 어려움에 처한
독일 황제 루돌프 2세의 부탁을 받고
독일 군사지도자들을 격려하여 터키인들과 싸우게 하는 한편,
자신도 군종 사제가 되어 전투에 참가하며 활약하기도 했다.
라우렌시오는 젊은 군사들을 영적으로 무장시키며
이들이 두려움 없이 전투에 임할 수 있도록 격려하였다.
성인 역시 직접 말을 타고 십자가를 손에 들며
전투를 진두지휘하기도 했는데
단 한 번도 다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덕분에 독일군은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라우렌시오는 1619년 7월 22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강론을 마치고 귀향선을 타기 전
병자성사를 받고 선종했다.
성인은 1881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시성되었고,
이후 교황 요한 23세는 1959년 성인을 교회학자로 선포했다.
에스파냐 국왕의 칙령에 따라 라우렌시오의 시신은
에스파냐 갈리시아 주의 비야프랑란카 델 비에르토의
‘맨발의 프란치스칸 수녀들’의 수도원성당에 안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