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인물은 중국 명나라 사상가·비평가 이탁오(李卓吾; 이지; 李贄, 1527~1602)이고, 오른쪽인물은 미국 소설가·시인·문예비평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포우, 1809~1849)이다.
이탁오(이지)는 《속분서(續焚書)》 권3(卷三) 〈聖敎小引〉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한다.
“나는 유년시절부터 성인(聖人)들의 가르침을 읽고 공자(孔子)를 존경하였지만 정작 공자의 어떤 점을 존경해야 하는지 몰랐다 …. 그래서 내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참으로 한 마리 개였다. 앞의 개가 뭔가를 보고 짖으면 나도 덩달아 짖을 뿐이었다. 만일 누군가 ‘왜 너는 다른 개가 짖는다고 따라서 짖느냐?’고 나에게 물으면 실로 황망하여 웃을 뿐이리라. 내가 오십 세를 지나서 너무나 괴로워 죽으려 했는데 붕우(朋友)의 권유와 가르침대로 불전(佛典)을 읽어서 다행히 생사의 원점에서부터 잘된 점과 잘못된 점을 규찰(窺察)했고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의 요지를 연구하여 핵심내용을 알았다.”
그리고 이탁오(이지)는 《분서(焚書)》 권3 〈동심설(童心說)〉에서는 다음과 같이 비평한다.
“《육경(六經)》, 《논어(論語)》, 《맹자(孟子)》는 사관(史官)들의 지나치게 높여쓴 말이나, 신자(臣子)들의 극심한 찬미어(讚美語), 아니면 우활(迂闊)한 문도(門徒)와 우매한 제자들의 앞을 잡으면 뒤를 빠뜨리거나 뒤를 잡으면 앞을 빠뜨린 사설(師說)에 걸린 기억을 짜맞춘 것들일 따름이다. 이런 사연을 모르는 후학들은 그것들이 성인들의 입에서 나온 줄로 알아서 경(經)이라고 결정해버렸지만 당최 누가 알겠는가, 그것들에 담긴 모든 말의 태반이 성인의 말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령 성인이 그것들을 발설했어도, 예컨대, 병(病)에 유효한 약을 때맞게 처방하듯이, 우둔한 제자들과 우활한 문도를 구하려고 그리했을 따름이다. 약은 ‘가(假)’라는 병을 치료하는 방편에 불과하고 처방은 이런저런 조건들에 얽매이는 것이라면 어찌 솔연(率然)히 만세의 지론(至論)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육경》, 《논어》, 《맹자》는 도학선생(道學先生)의 구실들이요 가인(假人)의 연수(淵藪: 깊숙한 덤불)이다.”
《분서》에는 이탁오(이지)의 다음과 같은 신랄한 질타도 기록되었다.
“지금 이 세상에서 번듯한 면류관을 쓰고 늠름하게 강단에 올라서 입만 열면 인(仁)이니 의(義)를 말하고 손으로 먼지 낀 붓끝을 휘두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어쩌면 높고도 귀하신 분들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정녕 스스로를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하물며 강단의 말석을 따라다니는 자들이야 스스로를 얼마나 비루하게 만드는가? 또한 하물며 남의 종노릇하는 비천한 사람들과 채찍을 들고 마소나 몰고 다니는 무리들은 스스로 너무 고생만 한다고 생각하든지 아니면 주머니나 배를 채울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면서 우루루 몰려와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비웃으니, 그들에게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기를 어찌 기대할 수 있겠는가?”
에드거 앨런 포의 1841년작 단편추리소설 〈모르그가(街)의 살인자들(The Murders in the Rue Morgue)〉에는 다음과 같이 인상적인 역상(逆想)도 기록되었다.
“이성(理性)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바른길’을 가려면 … ‘범상(凡常)하지 않은 길’을 가야만 할 것이다.”
1988년판 《자아의 테크놀로지들(Technologies of the Self)》에 수록된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와 프리랜스작가·편집인 럭스 마틴(Rux Martin)의 대담록 〈진리, 권력, 자아: 1982년 10월 25일에 미셸 푸코와 나눈 대화(Truth, Power, Self: An Interview with Michel Foucault in Octover 25, 1982)〉에서는 ‘독일 고문헌학자·철학자 니체를 탐구하여 기존의 모든 것을 낯설게 인식하는 이방인으로 변하는 바람에 프랑스를 서둘러 떠날 수밖에 없었고, 만약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미국으로 이주하여 대학교들 중 어느곳에 재직했겠지만, 설령 그랬어도 가장 충격적인 방식으로 해고당했을 것이다’고 소회한 푸코에게 럭스 마틴이 그런 소회의 까닭을 질문하자 푸코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내가 특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몇몇 사람이 나를 학생들의 지성적 건강을 해치는 위험인물로 인지한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그들이 지성활동과 관련하여 건강을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무언가 잘못을 저지르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관점에서, 나는 마르크스주의의 비밀동조자이고 비합리주의자이며 허무주의자이기 때문에 위험한 인물입니다.”
한국 작가 박상륭의 소설집 《열명길》에 수록된 중편소설 〈유리장(羑里場)〉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장면이 묘사된다.
“… 그러나 개미는, 매번의 노력이 헛수고로 돌아가자, 나중엔 도대체 갈피를 못 잡고, 다 오른 지옥전(地獄殿)에서 제 스스로 떨어지기도 했다. 그 노력은 그래서, 그 지옥을 지옥이게 하는 그 부드러운 모래 탓이라기보다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져버린 그 육신의 무게 탓에, 죄도 모를 형벌을 인고(忍苦)치 않으면 안 되는 걸로 보였다.”
한국 만화가 박봉성(朴峰性, 1949~2005)의 장편만화 《써클 36》 제5권(107쪽)에는 다음과 같이 신랄한 의견이 피력된다.
“성전(聖殿)이 더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신(神)에서 더 멀어진다.”
한국 출신 일본 영화감독·작가 이학인(李學仁)이 창작하고 일본 만화가 킨구 곤타(王 欣太)가 작화하여 1998년에 펴낸 만화 《창천항로(蒼天航路)》의 1999년판 한국어본 제14권 제162장 “죽기 쉬운 자”(184쪽)에서 조조(曹操; 맹덕; 孟德; 155~220)의 심복 하후돈(夏候惇, ?~220)은 다음과 같이 한탄한다.
“병졸들아! 무(武)의 재주가 작고 힘없이 태어난 자들아! 어젯밤에 함께 밥 먹고 함께 웃던 동료의 시체 위에 찰나의 시간밖에 새기지 못하고, 단지 병졸로서 죽어갈 수밖에 없는가!…”
그리고 하후돈은 《창천항로》 제14권(202쪽)에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공명심을 가진 자가 공포와 욕심으로 타인들을 선동하면, 병졸들 즉 인간들은 그런 선동자를 너무나 쉽게 추종하고 만다…. 그럴진대 불을 지르는 자, 사방으로 달아나는 자, 울부짖는 자, 이렇게 제각각인 군중을 선동할 수 있다면, 그렇게 선동당한 군중을 과연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아랫그림은 ‘프랑크족(Frank族)의 장군 롤랑(Roland; 올란도; Orlando, ?~778)이 국왕 샤를마뉴(Charlemagne; 747~814)의 군대를 이끌고 피레네산맥(Pyrenees)의 롱스보(Roncevaux; 론세스바예스; Roncesvalles) 협곡에서 바스크족(Basque族; 에우스칼두나크족: euskaldunak族)의 군대와 격전하는 장면’을 묘사한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도레(Gustave Doré, 1832~1883)의 〈롱스보 협곡의 롤랑(Roland à Roncevaux)〉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