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문학세계는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일제가 패망하자 고향인 평북 정주로 귀향한 후 그곳에 묻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더러 우러북 문인 명단에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엄밀히 말해서 백석은 월북 시인이 아니라 재북 시인이라고 말하는 게 옳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석 같은 시인이 문학사에서 다시 검토되고 그의 시가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근래 월북 문인의 해금과 같은 정치적·문학적 변화에 기인한 것임에 틀림없다.
백석의 시를 읽을 때 느껴지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우리 한국 사람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토속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본의 청산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던 엘리트 백서이 비문명적이며, 어찌 보면 샤머니즘적인 면이 보이는 토속성의 시를 고집한 것은 평북 정주 지역의 문학적 전통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정주 지방에서는 백석의 선배 시인이랄 수 있는, 우리 한국 현대 문학사의 서두를 장식하는 걸출한 두 시인이 배출되었다. 그들은 김억과 김소월이었으며, 백석을 비롯한 그들 셋은 오산학교에서 동문수학하던 오산의 인물들이었다. 김억이 자신의 모교인 오산학교에서 김소월을 지도했고, 백석이 오산학교 시절 선배인 김소월을 동경했다는 오산 동창들의 회고담으로 보아도, 백석의 시세계에 김억이나 김소월의 시와 보이지 않는 정신적 유대감을 형성했으리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정신적 유대감으로, 백석의 시에 일관하여 흐르는 진한 한국적 삶의 정서가 김억이나 김소월의 세계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백석의 시가 보여주는 한국적 삶의 리얼리티는 두 시인의 작품에 흐르는 관념적 추상성을 뒤어넘어 짙은 삶의 현장을 느끼게 한다. 이를테면 민속 명절에 대한 시를 보아도 김소월과 백석의 시는 큰 차이가 난다.
명절날 나는 엄매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 집으로 가면
- 중략 -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
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뽁운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
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발마당에 달린 배나무동
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타고 장가
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여우난골族」중에서
두 작품 모두 명절에 대한 시다. 앞의 시는 김소월의 것이고, 뒤의 것은 백석의 작품이다. 그런데 소월의 「달맞이」에는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훈훈한 정감과 걸걸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거기에는 정월 대보름에 달맞이를 하던 풍습과 그에 대한 관념만 들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백석의 시는 다르다. 명절날이면 온 혈족들이 모두 한 집에 모여 떡을 비롯한 온갖 음식을 만들어 먹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울려 밤이 어둡도록 북적대며 노는 정경이 우리 명절의 본질적 의미를 구체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이렇듯 백석의 시는 정주를 중심으로 한 어린 시절 시인의 경험 세계를 객관적 눈으로 말호고 있다. 그의 시에는 우리들 삶의 전통적 세계, 그 원형질이 잘 간직되어 있지만 그 원형질은 이 시인의 미적 감각에 의해 새로운 형식의 모던한 방식을 찾는다. 주관적 감정을 드러내는 화자(persona)가 없는 위의 시는, 내가 '엄마 아배 따라'간 큰집에서 경험하던 명절때의 분위기이지만, 내가 작품 속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하는 말들이 아니다. 백석의 시는 시적 대상에 일정한 거리를 두어 나와 동일화(identity)된 화자의 정체가 감추어지고 대신 객관적 눈으로만 이야기한다. 이러한 방법은 극단적인 이미지즘과 같은 모더니즘 시가 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백석의 시가 소재면에서 토속적인 전통적 세계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바로 위와 같은 형식의 모더니티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석은 정주 출신의 두 선배 시인과 정신의 맥이 닿아 있지만,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개성을 이루고 있다고 본다.
그 밖에 여기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의 하나는 백석이 시집 『사슴』의 초기시에서 보였던 자신의 고향 정주의 전통적 세계나, 방언들에 대한 회상적인 세계뿐만 아니라, 후기의 시에 대한 면밀한 검토다. 이제까지 백석 시에 대한 주요 논의는 주로 『사슴』의 세계에서 보여주는 토속성의 세계를 다루었고 또 그것을 백석의 시의 특징으로 삼아왔다. 이것은 백석 시인이 최근에 와서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어서, 많은 연구 축적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백석의 시에서 『사슴』이후의 후기시는 초기시와 여러 면에서 달라졌다. 물론 후기시에도 몇 편의 시에는『사슴』에서 보였던 세계가 남아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던 백석의 삶에는 더 이상 어린 시절의 그리움과 행복을 회상조로 읊조릴 여유가 남아 있지 못했다. 그의 시에는 이제 현실의 아픔과 시대적 비극이 짙은 안개처럼 깔리게 된다.
(2) 토속적 삶의 고향 탐색과 시어의 확장
― 초기시 『사슴』의 세계
백석의 초기시는 한국의 풍속지를 연상시킬 만큼 다양한 한국인의 삶의 방식이 표출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은 평북 지방의 방언과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토착어를 통해 이루어 내고 있으며, 이 점은 한국시의 시어를 확대시키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 물론 당시 활동하던 시인들 가운데 김영랑이나 10여 년 앞서 활동하던 김소월의 시에도 사투리를 통해 독특한 느낌을 갖게 하는 시들이 있었다. 그러나 백석의 시에는 소월이나 영랑의 시들을 뛰어넘어 평북 방언사전을 들춰 보아야 할 정도로 심화되어 있으며, 그의 시에 줄줄이 엮어져 나오는 토착어들은 잊혀질 뻔한 전통적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백석이 가장 흥미를 느낀 것은 식생활에 관련된 것으로 그 시어도 매우 다양하다. 김윤식·김현 공저, 『한국문학사』에서는 백석의 시집『사슴』에 실린 33편의 시에 나오는 음식 이름을 46가지나 밝히고 있는데, 이 시집 외에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60여 편의 시에도 많은 음식물이 소재로 등장하여 그 종류는 100여 가지에 달한다. 한 시인의 시 속에 이렇게 많은 음식물을 소재로 한 시인은 없었다. 그중에서도 생소하다고 느껴지는 몇 가지 이름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이 정도라면 가히 한국의 전통 음식을 연구하는 식품학자라도 한 번쯤 흥미를 가질 만한 음식일 것이다. 이처럼 많은 음식물의 이름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은 한국인의 정감과 구수한 삶의 정경이다. 그러나 그것은 가난한 시대의 굶주림에 대한 반사적인 심리가 수많은 음식물을 시적 대상으로 역반응을 일으켰을 가능성도 있다. 다음과 같은 시는 음식물에 대한 백석의 심리적 내면의 모습을 어느 정도 암시해 주고 있다. 물론 이 시는 그의 초기시 『사슴』에 실렸던 작품은 아니지만, 이 시를 통해서 음식물에 대한 그의 시리적 반응을 엿볼 수 있을 것으로 여거 소개해 본다.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 던지고
때글은 낡은 무명 샷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 하는 듯이 나를 울력 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
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
치는 사랑과 슬픔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 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 하듯이
이 시에서 ' 흰 바람벽'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스크린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 잔 먹고 싶다"는 현실적 욕망의 이면에는 가난한 늙은 어머니와 사랑하는 아내가 그려져 있다. ' 가난한 늙은 어머니'의 상징성은 가난한 시대의 굶주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에서 풍성한 음식물로 시적 형상화를 꾀한 백석 시의 진실이 무엇인가 알 수 있다. 풍성한 시대가 아니었기에 이에 대한 욕망의 한 반응으로 그의 시에는 음식물이 끊임없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런데 앞의 시에서는 사랑하는 아내도 지아비와 마주 앉아 어린 것을 옆에 끼고 대구국을 먹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상상이라는 것은 흰 바람벽에 다시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한 자신의 모습이 자막이 되어 지나간다는 내용에서 알 수 있다. 백석은 왜 추운 날 배추를 씻는 늙은 어머니와 아이를 옆에 끼고 지아비와 대구국을 먹는 아내를 대비시켰을까. 그것이 현실이 아니고 흰 바람벽에 떠오른 상상의 내용이라고 해도 백석 시인의 밑바탕에 자리잡은 잠재 심리의 일단을 추정해 볼 수가 있다. 이 시는 1941년 4월, <<문장>>에 실렸던 작품이다. 이때 백석은 서울에서 동거생활을 했던 자야와 헤어진 후, 만주에 와서 떠돌이 어려운 생활을 할 때였다. 고향도 떠나왔으며, 사랑하는 사람과도 헤어져 살고 있는 백석은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고 자조한다. 고향의 늙은 어머니와 사랑하는 아내가 운명적으로 화해할 수 없는 대비되는 두 모습이 백석을 괴롭혔던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표면에 음식물을 등장시키는 백석의 의도는 음식물이야말로 인간의 삶에 희로 애락이 실리는 가장 기본적인 먹을거리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기본적인 먹을거리는, 그것이 설령 음식 섭취의 즐거움을 시 속에 담고 있는 내용이라 해도 구차한 시대의 배고픔에 대한 역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백석은 우리 민족의 적나라한 삶을 표현하는 데 민속적 소재를 많이 사용했다. 그의 초기시에서 자주 보이는 샤머니즘적인 세계, 토속적 세계의 서사구조(narrative poetry)는 가장 친근한 우리들 삶의 일부분으로 전해 내려오는 것들이다.
「가즈랑집」
승냥이가 새끼를 치는 전에는 쇠메 든 도적이 났다는
가즈랑고개
가즈랑집은 고개 밑의
산(山) 너머 아을서 도야지를 잃는 밤 즘생을 쫓는 깽
제미 소리가 무서웁게 들려오는 집
닭 개 즘생을 못 놓는
멧도야지와 이웃사춘을 지나는 집
예순이 넘은 아들 없는 가즈랑집 할머니는 중같이 정
해서 할머니가 마을을 가면 긴 담뱃대에 독하다는 막써
레기를 몇 대라도 붙이라고 하며
간밤엔 섬돌 아래 승냥이가 왔었다는 이야기
어느메 산(山)골에선간 곰이 아이를 본다는 이야기
나는 돌나물김치에 백설기를 먹으며
옛말의 구신집에 있는 듯이
가즈랑집 할머니
내가 날 때 죽은 누이도 날 때
무명필에 이름을 써서 백지 달어서 구신간시렁의 당
즈깨에 넣어 대감님께 수영을 들였다는 가즈랑집 할머니
언제나 병을 앓을 때면
신장님 단련이라고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
구신의 딸이라고 생각하면 슬퍼졌다
토끼도 살이 오른다는 때 아르대즘퍼리에서 제비꼬리
마타리 쇠조지 가지취 고비 고사리 두릅순 회순 산(山)
나물을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를 따르며
나는 벌써 달디단 물구지우림 둥굴네우림을 생각하고
아직 멀은 도토리묵 도토리범벅까지도 그리워한다
뒤울안 살구나무 아래서 광살구를 찾다가
살구벼락을 맞고 울다가 웃는 나를 보고
미꾸멍에 털이 몇 자나 났나 보자고 한 것은 가즈랑
집 할머니다
찰복숭아를 먹다가 씨를 삼키고는 죽는 것만 같어 하
루종일 놀지도 못하고 밥도 안 먹은 것도
가즈랑집에 마을을 가서
당세 먹은 강아지같이 좋아라고 집오래를 설레다가였다
가즈랑집 : '가즈랑'은 고개 이름. '가즈랑집'은 할머니의 택호를 뜻함.
쇠메 : 쇠로된 메, 묵직한 쇠토막에 구멍을 뚫고 자루를 박음.
깽제미 : 꽹과리
막써레기 : 거칠게 썬 엽연초.
섬돌 : 토방돌.
구신집 : 귀신이 있는 집. 무당집.
구신간시렁 : 걸립(乞粒) 귀신을 모셔놓은 시렁. 집집마다 대청 도리 위 한 구석에 조그마한 널빤지로 선반을 매고 위하였음.
당즈깨 : 뚜껑이 있는 바구니로 '당세기'라고도 함.
수영 : 수양(收養). 데려다 기른 딸이나 아들.
신장님 단련 : 귀신에게 받는다는 시달림.
아르대즘퍼리 : '아래쪽에 있는 진창으로 된 펄' 이라는 평안도식 지명.
제비꼬리 : 식용 산나물의 한 가지.
마타리 : 마타리과의 다년초. 어린잎은 식용으로 쓰임.
쇠조지 : 식용 산나물의 한 가지.
가지취 : 참치나물. 산나물의 한 가지.
고비 : 식용 산나물의 한 종류.
물구지우림 : 물구지(무릇)의 알뿌리를 물에 담가 쓴맛을 우려낸 것.
둥굴레우림 : 둥굴레풀의 뿌리를 물에 담가 쓴맛을 우려낸 것을 계속해서 삶은 것.
광살구 : 너무 익어 저절로 떨어지게 된 살구
당세 : 당수. 곡식가루에 술을 쳐서 미음처럼 쑨 음식.
집오래 : 집의 울 안팎.
이 시는 가즈랑 고개 밑의 무당집인 가즈랑집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시의 화자인 나와 그의 누이가 태어날 때 할머니가 모시는 대감(神)께 수양 아들 딸을 삼게 했다는 이야기는 매우 구체적이면서도 선명한 전통적 세계의 한 부분들인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는 백석의 시는 그 풍부한 어휘들을 현란할 정도로 구사한다. 「넘언집 범 같은 노큰마니」같은 시를 보자. 국수당 고개(성황당)에 매어 달린 헝겊을 묘사해도 한 마디로 끝나지 않는다. 색동헝겁, 뜯개조박, 베짜배기까지 갖가지 언어들을 끌어내고야 만다.
황토 마루 수무나무에 얼럭궁 덜럭궁 색동헝겊 뜯개조박 베짜배
기걸리고 오쟁이 끼애리 달리고 소삼은 엄신
같은 딥세기도 열린 국수당고개를 몇 번이고 튀튀 춤을
뱉고 넘어가면 골안에 아늑히 묵은 영동이 무겁기도 할
집이 한 채 안기었는데
「넘언집 범 같은 노큰마니」중에서
오쟁이 : 곡식을 담을 수 있게 짚으로 작게 엮은 것
끼애리 : 짚으로 엮은 꾸러미(달 걀꾸러미 등)
엄신 : 엄짚신. 상제가 신는 짚신
영동 : 기둥과 서까래
또한 이와 같은 시의 성황당 고갯길의 나무에 매어 달린 헝겊 조각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쉽게 샤머니즘적 세계를 엿볼 수 있다.
그의 시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라는 작품을 보면 귀신의 종류만 해도 성주님, 디운구신, 조앙님, 굴대장군, 데석님, 털능구신, 수문장, 영자망구신, 달걀구신 등이 줄줄이 나온다. 끊임없이 나오는 언어가 놀라울 뿐이다. 그는 어린이들의 놀이를 말하는 데도,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 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 돌리고 호박떼기 하고 제비손이구손이 하고" ( 「여우난곬族」이처럼 쉬임 없이 언어들을 쏟아낸다. 그의 초기시에 보이는 고향 탐색의 시는 이렇듯이 잊혀져갈 번한 언어 탐색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3) 떠돌이 삶과 고향 상실감
― 후기시의 비극적 세계
이 글에서는 백석의 시집 『사슴』의 세계를 초기시로 분류하고, 이후에 발표된 시들을 후기시로 분류했다. 그 이유는 『사슴』이 발간된(1936) 이후, 백석은 생활에서나 시의 내용에서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우선 시집이 출간된 지 얼마 안 돼서 그가 일본 유학 이후 안정적으로 몸담고 있던 직장인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함흥의 영생고보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부터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물지 않는 백석의 떠돌이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함흥에서의 교직생활을 끝내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 잠시 동안 조선일보의 《여성》지를 편집했으나, 얼마 안 가서(1939) 만주로 가 해방될 때까지 이곳저곳 옮겨다니는 불안정한 생활을 했다. 또한 함흥에서의 생활과 다시 서울에 와서 잠시 머무르던 사이 백석은 자야라는 여성과 열정적인 사랑을 했는데, 이러한 생활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그의 시에서도 나타난다. 이때의 생활이 떠돌이의 불안정한 생활인데다가 사랑마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인지, 후기시에서는 가난과 비애 그리고 식민지 삼의 불행이 백석 시의 행간에 언뜻언뜻 내비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후기시의 또 다른 일면 중의 하나는 여행시가 많다는 점이다.
「남행시초」(南行詩抄), 「함주시초」(咸州詩抄), 「서행시초」(西行詩抄)등의 제목으로 발표된 연작시들은 그의 초기시가 고향 탐색으로 일관되어 온 것과 다른, 떠돌이 시인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백석의 후기시들 가운데, 이 시인이 겪어온 처지와 슬픔을 정신적으로 초극하고자 하는 그리하여 자신을 "굳고 정한 갈매나무"로 비유한 「남신의주 유동 박시방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은 백석의 대표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고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 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삿 - 갈대를 엮어 만든 자리
어니 - 어느
쥔을 붙이었다 - 세를 들었다
딜옹배기 - 아가리가 넓은 질그릇
북덕불 - 짚북데기를 태운 불. 쉽게 사그러져 꺼진다.
나줏손 - 나주(저녁), 손(때, 무렵). 저녁무렵
바우섶 - 바위옆
갈매나무 : 높이 5미터 안팎 자라는 낙엽 관목
이 詩에는 개인의 운명과 한 시대의 아픔이 함께 들어있다.
아내와,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부모 형제와도 떨어져 바람 센 쓸쓸한 거리를 헤매이는 시인의 고달픔은 1936년 이래, 백석 시인의 여정을 통해서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기에 백석은 이 시의 첫머리에 "어느사이에"라는 말을 써서 자신의 운명이 점점 낯선 슬픔의 거리로 내몰리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즉 이 시의 배경이 되는 공간과 시대를 추정해 보면 일제 말기임을 알 수 있고, 그 시대를 견디어 내야 하는 한 지식인의 고뇌가 낮은 신음소리처럼 귓가에 울린다.
이 작품은 1948년, <<학풍>>(學風)10월호에 실렸지만, 그의 친구 허준이 해방 전부터 보관해 오던 시라고 부기되어 있다. 이 詩에 보이는 주인공으로부터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한 개인의 슬픔이 그 시대의 아픔을 대리하는 비극성으로 공명처럼 울려온다는 점이다. 그러나 비극 자체로 끝나지 않음은 우리에게 큰 위안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슬픔과 한탄을 차츰 앙금처럼 가라앉히고, 어느 먼산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하얀 눈을 맞는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 詩에서 갈매나무가 상징하는 것은 시련의 운명관을 초극하는 의지이며, 여기에서 한국인이 강인한 정신으로 꾸려온 공동체적 삶의 철학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식민지 시대의 서글픔을 「팔원」(八院)이라는 시에서는 한 여자 아이에 대한 관찰을 통해서 매우 객관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그러나 한 대상을 나그네의 눈으로 묘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진한 슬픔이 깔려 있다.
차디찬 아침인데
묘향산행(妙香山行) 승합자동차(乘合自動車)는 텅하니 비어서
나이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오른다
옛말속같이 진진초록 새 저고리를 입고
손잔등이 밭고랑처럼 몹시도 터졌다
계집아이는 자성(慈城)으로 간다고 하는데
자성(慈城)은 예서 삼백오십리(三百五十里) 묘향산(妙香山)
백오십리(百五十里)
묘향산(妙香山 어디메서 삼춘이 산다고 한다
쌔하얗게 얼은 자동차(自動車) 유리창밖에
내지인(內地人) 주재소장(駐在所長) 같은 어른과 어린아이
들이 내임을 낸다
계집아이는 운다 느끼며 운다
텅 비인 차(車) 안 한구석에서 어느 한 사람도 눈을 씻는다
계집아이는 몇 해고 내지인(內地人) 주재소장(駐在所長) 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이렇게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 얼어서
찬물에 걸레를 쳤을 것이다
「西行詩抄 3 ― 八院」
내지인(內地人,일본인) 주재소장 집에서 일을 해주며 밥을 얻어먹던 어린 계집아이의 손등은 밭고랑처럼 패였다. 추운 겨울꽁꽁 얼어붙은 차 안에서 아이는 흐느껴 운다. 텅 빈 차 한 구석에서 누군가가 눈을 씻는다. 그 사람은 시인 자신일지도 모른다. 아픔의 시대를 살아가던 시인은 손등이 패인, 흐느껴 우는 계집아이를 보고 슬픔의 공감대를 느꼈을 것이다. 남의 나라 땅에 와서 주인 행세를 하던 일본인 집에서 단지 먹고살길을 해결하기 위해, 어린 나이에 손드이 터지도록 일을 해야 하는 어린 계집애의 이야기 뒤에는 그 광경을 관찰하는 시인의 비애가 감워져 있다.
이처럼 후기시에 오면 백석의 시에는 쓸쓸함과 슬픔, 그리고 가난으로 인한 궁핍함을 노래한 시가 자주 보인다. 초기 『사슴』의 시들이 유아기의 눈으로 경험하고 관찰하던, 그래서 더 넓은 세상의 불행을 모르던 유복한 고향의 낙천적 분위기의 시였다면, 성인의 눈으로 보고 체험하는 세계는 그 반대의 떠돌이 타향의 시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 가난하고 쓸쓸한 그의 삶은 산문 속에서도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동해 가까운 거리로 와서 나는 가재미와 가장 친하다. 광어, 문어, 고등어, 괭메, 횟대 생선이 많지만 모두 한 두끼에 나를 물리게 하고 만다. 그저 한없이 착하고 정다운 가재미만이 흰 밥과 빨간 고추장과 함께 가난하고 쓸쓸한 내 상에 한 끼도 빠지지 않고 오른다.
「가재미·나귀」, 《조선일보》 1936.9.
조선일보사를 퇴임하고 함흥의 영생고보에서 교사 생활을 할때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글 외에도 이곳저곳 옮겨다니며 살던 시절의 시들에서는 슬픔과 쓸쓸하다는 어구가 자주 눈에 띈다. 그만큼 이 시절의 시들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비극성이다.
낡은 나조반에 흰 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아서 /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咸州詩抄4 - 膳友謝」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 눈은 푹푹 날리고 /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燒酒를 마신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이제는 참으로 이기지 못할 슬픔과 시름에 쫓겨 / 나는 나의 옛 하늘로 땅으로 ― 胎盤으로 돌아왔으나
「北方에서」
이 세상에 나들이를 온 사람이여 / 이 목이 긴 시인이 또 게사니처럼 떠곤다고 / 당신은 쓸쓸히 웃으며 바둑판을 당기는구려
「허준」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흰 바람벽이 있어」
이렇게 발가들 벗고 한 물에 몸을 씻는 것은 / 생각하면 쓸쓸한 일이다
「 塘에서」
나는 오늘 때묻은 입든 옷에 마른 물고기 한 토막으로 / 혼자 외로이 앉어 이것저것 쓸쓸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杜甫나 李白같이」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메이었다.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백석의 이런 시들은 30면대 한국시들의 두드러진 문학적징후의 하나인 고향 상실감과 관련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고향 상실감의 문학적 특징은 30년대뿐만 아니라, 일제시대 문학의 한 특징이기도 하다는 것은 김소월이나 김억의 시에서 볼 수 있는 고향 상실감으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백석이 첫 시집 『사슴』에 나타나는 구수한 인정, 속신(俗神)적 세계, 방언 등의 토착성은 고향 상실이 아닌 고향 탐구의 세계였다는 점에서 다른 시인들과 고향에 대한 접근 방법이 달랐다. 그러나 『사슴』이후 백석이 실제로 이곳저곳 떠돌면서, 심지어는 만주땅까지 가서 살면서 표출한 시적 정서는 고향 상실감에서 근원되며 위에서 인용한 시구에서와 같이 쓸쓸함과 가난한 정경으로 나타난다. 또한 이와 같은 떠돌이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서는 시대적 비극성이어서 그의 초기시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4) 백석 시의 형태
처음 백석의 시를 대할 때 흥미를 느끼게 되는 것은,
어린이의 눈을 통해 회상되는 공간이 있고 그 공간 안에서 짧막한 이야기가 게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서사적인 구조를 통한 인과적 스토리가 아닌, 단편의 체험적 세계인 서술시(narrative poetry)에 해당된다. 백석의 시에서 대체로 이런 서술성을 담고 있는 시일 경우 산문시의 형태를 취한다.
「여우난골族」같은 시의 경우 명절날 어매아배 따라 아버지의 외가댁에 가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그곳에 함께 모인 일가 혈족들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이를테면 곰보인 말수와 신리(新里)고모를 말하는데도,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新里고무"와 같은 식이다. 이 시에는 새옷 냄새와 명절 음식 냄새와, 아이들의 놀이, 어른들의 이야기꽃까지도 놓치지 않고 정밀하게 묘사한다. 그 긴 이야기를 3행으로 나누었지만 그것은 산문으로 말한다면, 한 단락(paragraph)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자유시와 다른 산문시의 특성으로 시의 행 구분이 없는 점을 꼽지만, 백석 시에서의 행갈이는 한 단락의 구분을 그렇게 표현한 듯한 느낌이 든다.
아배는 타관 가서 오지 않고 산비탈 외따른 집에 엄
매와 나와 단둘이서 누가 죽이는 듯이 무서운 밤 집 뒤
로는 어느 산골짜기에서 소를 잡어먹는 노나리꾼들이
도적놈들같이 쿵쿵거리며 다닌다
날기멍석을 져간다는 닭보는 할미를 차 굴린다는 땅
아래 고래 같은 기와 집에는 언제나 니차떡에 청밀에 은
금보화가 그득하다는 외발 가진 조마구 뒷산 어느메도
조마구네 나라가 있어서 오줌 누러 깨는 재밤 머리맡의
문살에 대인 유리창으로 조마구 군병의 새까만 대가리
새까만 눈알이 들여다보는 때 나는 이불 속에 자즐어붙
어 숨도 쉬지 못한다
또 이러한 밤 같은 때 시집갈 처녀 막내 고무가 고개
너머 큰집으로 치장감을 가지고 와서 엄매와 둘이 소기
름에 쌍심지의 불을 밝히고 밤이 들도록 바느질을 하는
밤 같은 때 나는 아릇목의 샅귀를 들고 쇠든밤을 내여
다람쥐처럼 발거먹고 은행여름을 인두불에 구어도 먹고
그러다는 이불 위에서 광대넘이를 뒤이고 또 누어 굴면
서 엄매에게 웃목에 두른 평풍의 새빨간 천두의 이야기
를 듣기도 하고 고무더러는 밝는 날 멀리는 못 난다는
뫼추라기를 잡어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古夜」중에서
노나리꾼 : 소 밀도살꾼
날기멍석 : 곡식을 말릴 때 밑자리로 까는 멍석
조마구 : 옛이야기 속에 나오는 난쟁이
재밤 : 깊은밤
삿귀 : 삿자리 긑
밝아먹고 : 발라 먹고
「古夜」와 같은 시에서도 앞에서처럼 행을 구분했지만 내용을 전개하기 위한 한 단락으로서의 기능으로 구분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작품이 시로서 단순한 산문과 다른 점은 이미지나 상징 등의 시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조마구네 나라'(난쟁이 나라)의 시적 상징성은 백석의 어린 시절 동화적인 세계가 잘 나타나 있고, 가족들간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가 유복하게 성장했음을 암시한다. 이 시는 산문처럼 줄글로 연이어져 있지만 1연의 경우는 시적 호흡이 우리 시의 전통률인 3음보로 읽기에 알맞도록 배려되어 있다. 아버지가 출타중인 산비탈 외딴 집의 밤, 소 잡는 밀도살꾼이 쿵쿵 걸어다니는 무서운 밤의 숨막히는 정경을 긴장감 있게 표현하는 데는 긴 호흡보다는 규칙적으로 짧게 율독(scantion)하는 것이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아배는 / 타관 가서 / 오지 않고
山비탈 / 외따른 / 집에
엄매와 / 나와 / 단둘이서
누가 / 죽이는 듯이 / 무서운 밤
집 뒤로는 / 어늬 / 산골짜기에서
소를 / 잡어먹는 / 노나리꾼들이
도적놈들같이 / 쿵쿵 / 걸어다닌다
음절이 모여 음보를 이루며 음보가 모여 행을 이루는 시의 구조상으로 볼 때, 위의 시는 이처럼 3음보씩 갈라 읽는데 적합하게 짜여져 있다. 한국 민요에서 가장 빈도수가 높게 나타나는 기준 음절은 4음절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현대시의 정혀을 분석할 때도 4음절은 가장 적절한 기준 음절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우리 국어의 어휘가 2음절과 3음절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여기에 조사나 활용형이 붙으면 3음절이나 4음절이 되는데, 그 가운데서도 4음절이 가장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기준 음절로 인식된다. 따라서 한 행을이루는 음보 단위에서 똑같은 음절수로 되어 있지 않다 하다라도 4음절을 기준으로 하여 2음절 정도가 넘치거나 모자라도 규칙성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 한국시의 규칙은 행을 이루는 음보수(音步數)는 고정적이면서도 음보를 이루는 음절수는 가변적인, 이른바 단순율격(simple meter)인, 때문이다.
위의 시에서도 1행은 '아배는'이나 2행의 '山비탈','외따른'은 3음절이지만 이 시의 기준 음절인 4음절에 맞추어 읽는 소위 등시간적(等)인 기식(氣息, breath group)에 의해 발음하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3음절이지만 4음절을 발음할 때와 같은 시간으로 발음하게 되어 등시성(等時性)을 갖는다. 마찬가지로 '산골짜기에서'나 '노나리꾼들이'와 같은 6음절은 촉급하게 발음하여 4음절의 기대에 맞추려는 무의식적인 발음시간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은 시와 일상 언어와의 기능적 차이로서, 율격은 일상어에 조직적으로 가한 횡포라는 일반적인 놀리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古夜」의 첫째 연은 이처럼 규칙적인 리듬을 담고 있는데, 둘째 연이나 그 나머지 부분도 읽어보면 정연하지 않지만 내적 율격성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백석은 산문시 형태로 쓰여진 작품들이지만 시의 내재적 요소들을 은밀하게 담아내었던 것이다. 이런 형태의 시에서 백석의 시가 갖는 특징 중의 하나는 열거적 방법을 통해 시적 율동성(律動性)을 얻어내고 있는 점이다.
나는 이 마을에 태어나기가 잘못이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나는 무서워 오려을 펼 수 없다
자 방안에는 성주님
나는 성주님이 무서워 토방으로 나오면 토방에는 디운구신
나는 무서워 부엌으로 들어가면 부엌에는 부뜨막에조앙님
나는 뛰쳐나와 얼른 고방으로 숨어버리면 고방에는 또 시렁에 데석님
나는 이번에는 굴통 모퉁이로 달아가는데 굴통에는 굴대장군
얼혼이 나서 뒤울 안으로 가면 뒤울 안에는 곱새녕 아래 털능구신
나는 이제는 할 수 없이 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대문간에는 근력 세인 수문장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중에서
오력 : 오금, 무릎의 구부리는 안 쪽.
디운귀신 : 지운귀신, 땅의 운수를 맡아본다는 민간의 속신.
조앙님 : 조왕님, 부엌을 맡은 신, 부엌에 있으며 모든 길흉을 판단함.
데석님 : 제석신, 무당이 받드는 가신제의 대상인 열두 신, 한 집안 사람들의 수명, 곡물, 의류, 화복 등에 관한 일을 맡아본다 함.
굴통 : 굴뚝.
굴대장군 : 굴때장군, 키가 크고 몸이 남달리 굵은 사람. 살빛이 검거나 옷이 시퍼렇게 된 사람.
얼혼이 나서 : 정신이 나가 멍해져서.
곱새녕 : 초가의 용마루나 토담 위를 덮는 짚으로, 지네 모양으로 엮은 이엉.
털능귀신 : 철륜대감. 대추나무에 있다는 귀신.
연자간 ; 연자맷간. 연자매를 차려 놓고 곡식을 찧거나 빻는 큰 매가 있는 장소.
연자당귀신 : 연자간을 맡아 다스리는 신.
회리서리 : 마음 놓고 팔과 다리를 휘젓듯이 흔들면서
앞의 시 「모닥불」은 시 속에 비슷한 의미의(모닥불에 쓰이는 재료라는 뜻에서)어휘가 반복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저절로 율동성이 느껴진다. 이러한 율동서은 흔히 민요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으로, 흥을 돋우어 주기 위한 노동요에 많으며 의미의 강조를 위해서도 쓰였다. 더군다나 백석의 시「모닥불」에서는 열거되는 각 어휘마다 끝에 토씨인 '도'를 붙여 반복되는 중간운(中間韻)으로 인하여 그러한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는 한 행에서 다음 행으로 이어지는 내용의 연쇄 파장이 묘한 율적(律的)감각을 준다. 그것은 마치 어린이들의 동요, "원숭이 동구멍은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와 같이 연상작용을 통한 이야기와 리듬의 재미이다. 즉, 성주님에서 디운구신으로 다시 조앙님으로, 데석님, 굴대장군, 털능구신, 수문장 등으로 이어지는 연속된 내용의 열거는 백석 시인이 일구어낸 시어의 확장이기도 하지만, 형태적인 특징으로 볼 대는 산문적 형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내재적 리듬을 느끼게 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백석 시가 지니는 일반적 특징을 이런 산문시의 경우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정적인 짧막한 시에도 반복과 열거에 의한 방법이 그의 시에는 자주 보인다.
솔포기에 숨었다
토끼나 꿩을 놀래주고 싶은 산허리의 길은
엎데서 따스하니 손 녹히고 싶은 길이다
개 데리고 호이호이 회파람 불며
시름 놓고 가고 싶은 길이다
궤나리봇짐 벗고 땃불 놓고 앉어
담배 한 대 피우고 싶은 길이다
승냥이 줄레줄레 달고 가며
덕신덕신 이야기하고 싶은 길이다
더꺼머리 총각은 정든 님 업고 오고 싶은 길이다
「南行詩抄 1 - 昌原道」
위 시는 백석이 1936년 봄, 통영(統營)을 비롯한 우리나라 남단을 여행하면서 쓴 연작시 중의 한 작품이다. 그의 여행시는 고향인 정주가 배경이 되어 있는 시들이 서술적인 것과는 다르게 서정성이 매우 풍부하다. 그런데 위의 시에서 볼 수 있듯이 이처럼 짧은 서정시에서도 '―고 싶은 길이다'와 같은 반복운을 통해서 율적 감각을 꾀하고 있다. 이와 같이 백석의 시는 대체로 부연과 반복을 통한 의미의 연쇄 파장을 느끼게 하는 형태나, 중간 혹은 종결운을 사용한 율동감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