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들은 진정 성불의 의미 뜻을 알고 있는가 ? 하고 누가 묻는다면 선뜻 말을 못하고 머뭇거리게 되는 것은 말 따라 의식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며, 법우들이 하는 습관적으로 나오는 인사말이지만, “성불 하세요 ! 모두 성불 합시다 ! ” 로 한 말은 합리화하여 필연적으로 지킬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세계는 이미 성불되어 있다(本來成佛)는 가르침은 모든 대승의 소식인데, 이 의미를 잘못 알아 함부로 행동하시는 분들이 가끔 있는 것 같다. 즉, 우리가 닦으나 안 닦으나 本來 부처이므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것이다 라는 의미와는 사뭇 다르다. 그리하여 실지로 공부가 많이 된 분들 중에도 막행막식하는 분들이 있는 것이다.
대승의 밝은 소식인 본래성불을 그렇게 해석하면 아니 된다. 성불이란 ? 成佛의 正因이 모두 갖춰져 있다는 말이지, 성불이 이미 끝났다 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이 因緣의 산물일 때, 성불의 因은 갖춰져 있으나, 緣은 우리의 몫인 것이다.
산하대지, 자연은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따라 필 꽃들이 이미 정해져 있다. 계절에 따라 자기가 필 곳에서 마음껏 피기를, 노래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어 자기 차례가 되면 마침내 온 모습을 들어내어 산하를 장엄하게 물들인다. 요리도 마찬가지이며, 각종 재료들이 준비되어 있더라도, 그것을 조합해 맛있는 먹거리로 만드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며, 재료들이 이미 다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끓이고 볶아 실지로 음식을 만들기 위한 기본 필수 조건일 뿐이지, 재료만 가지고 먹거리가 되지도 않고, 재료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 가지고 배가 부르지도 않는다. 요리를 실지로 만들어 먹어야 배도 부르고 멋진 요리도 되는 것과 같다.
이처럼 갖춰져 있는 것과 실지로 그것을 꺼내어 쓰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며, 꺼내어 쓰려면 배워야 하고 닦아야 하는 것이며 구체적 행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성불, 이미 깨달아 있다. 라는 말은, 이런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즉, 불성 자체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아무 것도 이루어지는 것이 없고, 거기에 생명의 기운이 가미되며, 새로운 외연(外緣, 例=수행)이 부과되어야 불성이 꽃을 피워 성불의 세계가 전개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불되어 있다는 가르침을, 아무 것도 안 해도 된다, 닦을 필요도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 되며, 그것은 어불성설이요. 잘못된 착각이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완전히 갖춰져 있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연주자, 지휘자, 요리사라도 어쩔 수가 없다. 깨진 거문고로는 연주할 수 없고, 깨진 그릇으로는 그 어떤 요리도 만들 수가 없는 것이다. 성불의 진리는 생활 속에 존재 하고 교과서 적인 개념이 참된 이치이며 진리인 것이다. 성불은 쉽게 말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또 말 할 수도 없는 침묵은 온전한 경지에 도달 할 수 있는 방편이므로......결론 적으로 상호관계, 대립, 도움, 나눔 등으로 상대를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의 상태가 되면 자기가 道(成佛)를 이룬 것과 같은 기분이라 할까 ?
우리는 이 갖춰진 세계를 아무 것도 안 해도 되는 세계로 알 것이 아니라, 이 장엄하고 아름다운 완전한 세계를 더 큰 성장, 더 밝은 세계로 나아가도록 몸과 마음을 지을 일이다. 성불은 우리의 참된 모습에서 나의 자성을 찾고 바로 이 자리에 예부터 지금가지 구현되어 왔으며 그리하여 더 큰 생명, 더 많은 생명의 환희심 축하장으로 만들어 나아가야 할 길이 성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