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립*
갈라진 흙 바람벽 사이에 먼지 내려 쌓인다
주저앉은 서까래와 반쯤 열린 대문
더 이상 여닫을 일이 없다는 듯 기우뚱하다
거미줄 자욱하게 처져 있는 텅 빈 부엌
마당엔 낡아 색 바랜 옷가지와
녹슬어 뚝뚝 제 살을 덜어내고 있는 빈 무쇠솥이 쓸쓸하다
듬성듬성 올이 풀린 채 우두커니 시렁에 앉아 있는 흑립
허옇게 마른 버짐이 핀 대청마루
덜컹거리는 사첩 분합문 사이로 상청과 위패의 한 시절이 지나간다
굴뚝의 저녁 연기, 그릇 부딪는 소리, 간간이 사랑채에서 으흠 기침소리
다듬이질 소리도 이젠 들리지 않는 빈집
컴컴한 새벽 그믐달 잠시 내려와 뒤척이고
아침이 되면 저 지붕 끝도 이마가 시릴 것이다
*흑립: 말총으로 엮어 검게 옻칠을 한 갓.
첫댓글 시가 쓸쓸합니다. ^^
옛날 살던 한옥 그집
지금도 그곳에 살던꿈을 꾸는데 할머니 모신고 살던 살아생전 그곳 모습이 그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