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 두개로 갈라진 땅 고성
아야진항에서 최동북단 통일전망대까지
강원도 고성은 군 단위 행정구역이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아픔을 간직한 지역이다. 휴전 당시 고성 인구 대부분은 이북 5도 출신 피난민이었으며, 1980년까지도 인구의 77%가 실향민이었다고 한다.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북쪽 고성까지는 불과 3.8km. 남북교류가 재개된다면 자동차로 불과 몇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다.
고성에 살고 있는 지인 덕분에 최근 2회에 걸쳐 속초에서 최북단 통일전망대까지 여행해볼 기회가 있었다.
필자는 섬을 좋아하고 해안과 바다 풍경을 유달리 좋아하는 편이다. 섬이라면 남해와 서해가 많다보니 전남북, 충남, 인천직할시 및 경기도 앞 바다 쪽을 자주 가는 편이다. 동해 바다에는 섬이 적어 경관 면에서 볼 것이 많지않을 것이라고만 생각해 왔다. 그런데 최근 2회에 걸쳐 강원도 고성 해안을 돌아보면서 내 생각이 부족했다는 걸 알게 됐다. 동해 바다가 비록 섬이 적은 건 사실이지만 나름대로 가볼 만한 아름다운 곳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고성 해안 남쪽에 위치한 아야진 해변 주변에는 아야진 해변 자체도 기차바위 등 경관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 고성 10경중 2경과 4경인 천학정과 청간정 등이 위치해 있다.
아야진 해변이 잘 보이는 언덕 위에는 독도 시민활동으로 널리 알려진 편부경 시인이 운영하는 '바다부엉이'라는 펜션이 유명하다. 편부경 씨는 시인이면서 유명한 커피 바리스타이기도 하다.
필자도 몇일전 이 펜션에서 1박하면서 2일 동안 고성의 주요 명소들을 돌아봤다. 편시인이 고성에 정착했다고 해서 의아해 했는데 막상 와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누구든 이곳에 와 보면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다.
바다부엉이 펜션은 조망도 아름답지만 실내도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편부경 시인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진다. 1층에는 낮익은 시화도 보인다. '바다가 보이면 됐어'. 한국을 대표하는 섬 시인인 이생진 시인의 싯귀와 그림이다. 이생진 시인은 섬과 관련된 시집 만 30여 권이나 펴낼 정도로 섬 매니아이며 화가이기도 하다. '저 세상에 가서도/바다에 가자/바다가 없으면/이 세상 다시 오자'라는 시를 남길 정도로 섬을 좋아하는 분이다. 지난 해 바다부엉이 펜션을 열자마자 이생진 시인도 다녀갔다. 그때 그려준 시화라 한다.
천학정에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백도 해변이다. 바위섬이 갈매기 똥으로 하얗게 덮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백도 해변 앞에는 김하인 아트홀 '국화꽃향기'가 위치해 있다. 이 아트홀은 수백만부의 베스트셀러 소설인 '국화꽃향기'의 저자 김하인 소설가가 운영하는 펜션이자 문화공간이다. 소설 '국화꽃 향기'는 영화 '국화꽃 향기'와, 드라마 '가을동화'의 원작 소설로 많은 독자를 감동시킨 순정 멜로 소설이다. 김하인의 소설은 '국화꽃 향기'를 비롯해 모두 열 네 권이 중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국내작가로는 처음으로 중국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으며, 중국 8대 성을 돌며 작가사인회를 갖기도 했다.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외국작가’로 선정되었고 북경국제도서전에 유일하게 외국작가로 초청된 바 있다. 필자는 3년 전 동료문인들과 이 펜션에서도 1박한 적이 있다.
다음은 고성 7경인 송지호 및 송지호 해변. 송지호 해수욕장도 엄청 길고 아름답다. 송지호 해변에는 서낭바위 및 죽도가 있다. 서낭바위는 마치 ET모양으로 생긴 바위인데 그 바위 정상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자생하고 있어 신비롭다.
죽도는 썰물 때는 걸어서 건너갈 수 있는 무인도이다. 모세의 기적을 이곳에서도 볼 수 있다. 필자 일행은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여 바닷길이 사라지기 직전에 가까스로 섬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송지호 바로 위에는 공현진 해변이 위치해 있고 가진항으로 이어진다. 공현진 해변에는 일출명소로 유명한 '옵바위'가 있다. 정월 초하루 옵바위 위로 떠오르는 새해 일출은 환상적이다.
가진해변에는 '스퀘어 루트'라는 카페도 유명하다. 커피 맛도 좋고 특히 건물 옥상 쉼터에서 내려다보는 가진해변 조망이 일품이다.
송지호 내륙 쪽에는 '왕곡마을'이 있다. 왕곡마을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북방식 가옥이 잘 보존된 전통한옥마을이다. 함경도식 가옥이 밀집해 있어 찬 바람이 부는 겨울철에 특히 진가가 나타나는 가옥구조이다.
왕곡마을에는 기와집이 20여 채, 초가집이 30여 채 있다. 2000년 국가지정문화재인 ‘중요민속문화재 제 235호’로 지정되었다. 마을 자체도 아기자기하고 아름답다. 영화 '동주' 가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고성 왕곡마을은 양근 함씨와 강릉 최씨의 집성촌이다. 양근(강릉) 함씨가 마을에 정주한 것은 600년 정도로, 조선왕조 이태조가 등극하는 것에 반대한 함부열이 아들과 함께 간성에 내려와 살게 되었는데 이후 차손 함영근이 오봉리로 건너와 자리잡으면서 양근 함씨 집성촌이 이루어졌다. 강릉 최씨는 희경공파 후손들로 21세손 응복 이하가 오봉리에 머물면서 강릉 최씨 집성촌이 이루어졌고 이들의 정주기간은 약 500년 정도이다. 두 씨족은 통혼으로 신분에 따른 공간분리나 왕래의 제한을 없애고 마을공동체 의식을 다짐으로써 불편한 관계 없이 평화로운 마을을 유지해 왔다.
그 다음은 화진포. 화진포는 둘레 16km의 동해안 최대의 자연호수다. 넓은 갈대밭 위에 수천 마리의 철새와 고니가 날아들고 울창한 송림으로 둘러싸여 있어 주변경관이 수려하다. 내륙으로는 호수가 있고 바다쪽으로는 해수욕장이다. 이곳에는 김일성 별장, 이승만 (전)대통령 별장, 이기붕 (전)부통령 별장 등 남북 최고위층 별장이 함께 있는 것도 특이하다.
세개 별장 중 이승만 별장이 가장 작고 초라하다. 그 분의 검소함 때문일까? 암튼 남북 정상 별장이 있다는 건 그만큼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산 비탈에 세워진 김일성 별장은 마치 유럽의 성 같다. 원래 이곳은 독일 선교사가 지은 곳인데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1948년부터 50년까지 여름별장으로 종종 이용했던 곳이라 한다. 별장 오르는 중간 계단에는 김정일이 6살 때 찍었다는 사진도 걸려 있다.
화진포 가기 전 내륙에는 '건봉사'라는 절이 있다. 1년 전 시인이기도 한 오현 큰스님의 입적시 다비식이 건봉사에서 행해져 건봉사라는 절 이름을 처음 들었는데 알고 보니 건봉사는 전에는 우리나라 4대 사찰 중 하나였을 정도로 대사찰이었다고 한다. 6.25 이전에는 설악산의 대표사찰인 신흥사,백담사도 건봉사의 말사였다. 건봉사는 특히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서 승병을 모집, 평양전투에서 대승을 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사명대사는 그 후 왐명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와 담판, 조선인 포로 3,500명을 데려오기도 한 고승이다.
마지막 일정은 DMZ내에 위치한 통일전망대다. 마차진해변에 위치한 통일전망대출입신고소에서 신고절차를 마치고 11km거리, 차로 10 분 정도 가면 통일전망대에 이른다. 코스 중간에는 육로로 금강산에 갈 수 있는 남북출입사무소 및 검문소도 보인다. 검문소에서 금강산까지는 27km 거리이다.
통일전망대에 오르면 북쪽 구선봉과 해금강이 지척에 보이고, 맑은 날에는 천하절경의 금강산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