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기]/수필·감상문·기타
2006-09-04 10:58:54
펭귄에 대한 소고
2006. 9. 2. / 박광용
산행하면서 만난 친구 ‘펭귄’ 인식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친구다. 그 다정다감한 말 한마디에 넋을 다 빼앗기고, 그 천진난만한 표정에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다. 늦은 밤 11시 넘어서 걸려오는 전화, 저 넘어 흘려 듣는 소리에 곁님은 ‘또 펭귄인 갑다’하며 묘한 톤의 음성으로 경고(?)를 알린다.
지금까지 ‘30산우회’를 통해 그를 만난 후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많다. 9월이면 그가 우리 산행에 동참한지 1년이 되는데, 뭔가 기념할 일이 많을 것 같다. 그를 처음 만난 이야기부터 풀어보자.
첫 만남
작년 추석 무렵이었나 보다. 동기회 뱅고 회장이 [졸업 30주년 기념 홈카밍 행사]를 앞두고 분야별 마당쇠들을 불러모아 행사준비를 독려하는 자리를 가졌는데, 그 자리에 김총과 내가 참석하게 되었다. 조금 늦게 나타난 인식이 내 바로 옆 자리에 앉는다. 내가 산우회의 마당쇠임을 알고 일부러 내 옆에 앉은 모양이다.
자신도 산이 좋아 최근에는 산에 푹 빠졌단다. 원래 바둑의 고수라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온통 산 얘기만 하고있으니 나로서는 한편 당황한 것도 사실이다. 바둑모임을 대표해서 나왔는데 바둑모임은 다른 친구가 알아서 잘할 거라며 바둑 얘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고 산 얘기만 하고 있다.
자신은 매주, 아니 일주일에 두세 차례 산행을 한단다. 주로 관악산을 다니는데 관악산 코스는 쭉~ 꾀고 있단다. 평일에도 연주대까지 다녀올 정도로 열심이란다. 자신의 말로는 관악산에 100회도 넘게 다녔다는데, 한번은 길을 잃어 ‘119 구조대’의 도움을 받기도 했단다. ‘관악산 다람쥐’ 신곡사가 직접 들었다면 기절초풍할 노릇이다. 이정도면 나로서는 도저히 범접하기 어려운 경지임에 분명하다.
바둑과 산행! 누가 보더라도 멋진 콤비라 여길 만하다. 들리는 말에 그의 바둑 경지가 ‘관조’라고 하니, 나로서는 그저 그러려니 여길 뿐이다. 산을 좋아한다니 ‘30산우회’에 함께할 것을 권하고, 산행의 고수인듯하여 한 수 가르침을 부탁했다. 다음 예정된 산행이 용마산악회와 합동으로 ‘서산 팔봉산’으로 예정돼있으니 동대문 운동장으로 나오라고 일러둔다.
첫 산행 (서산 팔봉산)
약속의 날 동대문운동장으로 나온 인식, 그 차림새가 심상찮다. 배낭에 허리쌕까지 하나 차고 나타난다. 그냥 배낭에 다 넣으면 될 것을 따로 허리쌕을 차고 다니는 이유를 물어보니, 그 대답이 가관이다.
“땀이 하도 많이 나니까 물통과 수건은 물론이고, 심심하면 CD도 들어야 한다 아이가?”
하며 CD Player를 꺼내 스님들의 독경소리를 내게도 들려준다. 좀 독특한 성격이네!
드디어 타고 온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하고, 산행을 시작하는데 초입에 여러 선후배님들과 마나님들이 모여 있으니 혼잡할 밖에… 그런 어수선한 모습을 못 참는 모양이다. 김총을 대동하고 앞질러 나아간다. 나즈막한 능선길을 10여분 올랐을까? 좀 쉬어 가잔다. ‘아직 시동도 안 걸었는데 쉬어가다니? 관악산 다람쥐가 와 이라노?’ 싶다. 아직 잘 모르겠지만 조금은 특별한 성격인 모양이다.
아직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 펭귄, 오후에는 기운 차려 뭔가를 보여줄 모양이다. 3봉 내리막길에서 수직통로로 된 좁은 길이 있는데, 이곳을 내려가다가 올라오는 사람에게 밀려 도로 올라오게 생겼다. 틈에 낑긴 인식, ‘살려달라’고 고함이다. 하는 수 없이 이 길을 우회하며 속도를 내어가는데 인식의 날개 짓이 영~ 시원찮다. 여차하면 배로 밀고 내려올 뻔했다. 늦게나마 집결지(본대가 식사한 장소)에 도착하니 본대는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도 남겨온 막걸리 한잔 더 하고 커피까지 끓여 먹고는 하산 준비한다.
이제는 평탄한 하산길, 조금 늦은 것이 염려되어 가는 길을 재촉하지만 땀에 젖은 인식은 사람 따라다니기가 힘에 부쳤나 보다. 작은 날개 짓으로는 역부족인 모양이다. 나는 이렇게 땀을 많이 흘리는 걸 처음 봤다. 자신은 수건을 보통 석 장은 갖고 온다는데, 그 수건 석 장과 티셔츠가 모두 젖어버렸다. 짜내면 수건과 셔츠에서 물이 주루루 흐른다. 선배님이 경영한다는 음식점에서 뒤풀이 하고, 늦은 버스타고 그의 첫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
‘펭귄’의 탄생
다음 산행지를 어디로 할지 걱정하고 있던 김총은 ‘신입회원은 산행대장을 맡아야 한다’는 새로운 룰을 공표하면서 인식의 고향산이라 할 만한 관악산으로 정해버렸다. 덕분에 산행대장을 맡게 된 인식,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집결지에 나타나는 시각도 20분 이상 늦을 거면서 한 3분만 더 기다려 달란다. 선계의 시간은 속세의 시간보다 확실히 더디게 간다는 사실도 알았다.
사당동에서 능선을 타고 연주암 쪽으로 오르는데 산행을 인도해야 할 대장은 나타나지도 않고, 다른 친구들은 저 멀리 가버리고 보이지도 않는다. 친구들과 마당바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상국이가, 땀에 범벅이 되어 숨을 헐떡이며 올라오는 인식을 보고 일갈 한다.
“인식이 니는 지금부터 관악산 다람쥐’ 말고, 그냥 ‘관악산 펭귄’ 해뿌라!”
이렇게 하여 우리의 귀염둥이(?) 펭귄은 그 출생을 자신의 아호로 신고한다.
땀이라면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던 재봉 선사, 펭귄과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다. 땀에 관한 한 누가 보더라도 펭귄의 승리다. 재봉 선사가 꽁지 내리면서 일갈,
“세상은 참으로 널떼이…”
이렇게 하여 펭귄은 출생과 동시에 선사님을 땀으로 완전히 제압하고 말았다.
야간통화
관악산 산행 뒤풀이에서 중학교 때부터 친구인 호루라기, 펭귄보고 ‘할매’라고 놀려댄다. 몹시 듣기 싫었던 모양이다. ‘딱 한 잔만 더 하고 가자’던 펭귄을 뿌리치고 집으로 들어갔건만 그날 밤이 조용할 리가 없다.
나 역시 그날 귀가길에 다른 친구를 만나고 보통보다는 한참 늦게 귀가하여 곁님께 한 소리 듣고 있는데, 11시가 넘어 걸려온 전화 펭귄이다. 30분을 넘게 통화한 것 같은데 내용이 뭐였는지 잘 모르겠다. 그 중에 기억 나는 것 하나,
“지금 아무도 없고, 펭촌(펭귄 사는 동네)에서 내 혼자 마시고 있다. 호루라기 지는 와 내보고 ‘할매’라 그라노, 으이? 지가 내를 얼마 만에 보는 긴데 그런 소리를 하노 말이다.”
나는 그 ‘할매’라는 과거 별명이 그렇게 듣기 싫은 말인 줄 잘 몰랐다. 다음 날 호루라기한테 전화해서 이러쿵저러쿵 얘기해줬다.
꼭 이것 만이 아니다. 이런 야간전화는 펭귄의 전화기에 입력된 모든 친구에게 전화하는 모양이다.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시작하여 tv가 몇 번씩 켜지고 꺼지고 나면 20~30분이 흐르고 나서야 끝을 맺곤 한다. 관심이 가는 얘기는 잘 새겨들어야 하고 맞장구도 쳐줘야 한다. 맞장구마저 없으면 버럭 화를 내면서 또 tv를 켜기도 한다.
특히나 혼자만의 산행을 하고 온 날이면 그 산행기는 입으로 열 번은 더 쓰는 모양이다.
“광용아, 오늘은 있자나? 관악산의 새로운 코스를 개발했는 기라??”
“…………………………………”
“지난번 코스하고는 또 다른 맛이 있는데, 과천향교에서 올라가서… (궁시렁 궁시렁)… 그 능선이 직이는 기라. 캬 캬 캬!!”
이제는 그런 산행기 한 번에 글로 남기면 좋겠더라. 산행기 이제 공식적으로 시작한 것이니 담에는 더욱 재밌는 산행기를 기대해 보자구요.
맹금류 ‘펭귄’
‘펭귄’이 ‘조류’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일 테고, 그 중에서도 ‘맹금류’라는 사실을 아는가? 지금부터 ‘30산우회’만의 독특한 조류도감을 발행하게 된 사연을 읊어보자. 언제인가, 뒤풀이를 마치고 나서 ‘꼭 한 잔만 더 하고 가자’는 펭귄의 애절한 호소를 뒷전으로 모두들 귀가를 서두르고 말았는데… 그것이 빌미가 되어 다음 산행에서는 누구를 잡아 꺼꾸러뜨리겠다고 작심을 한 모양이다.
오대산 산행에서는 버스를 타고 다녔으니 어디서 술 마실 기회를 못 잡고 말았던 셈이고, 영장산, 청계산 산행 후의 귀가 길에 분당이 펭촌(?)에 가깝다는 죄로 분당팀이 펭귄에게 물리기 시작하는데, 다음날로 넘긴 뒤풀이도 있었던 모양이다. 분당의 모든 친구를 꺼꾸러뜨린 펭귄은 이제 그 대상을 송파로 옮겨 수서역을 무대로 삼기도 했다.
‘한 잔만 더 하고 가자’며 하소연하는 그 진지한 눈초리와 그 애절한 목소리에 넘어가지 않은 이가 없고, 이렇게 하여 물어버린 친구는 놓아주질 않아 그날 밤을 꼬박 새워야 풀려날 수 있었으니, 펭귄은 온대지방에 사는 조류의 일종으로 특히나 무는 힘의 세기와 지속시간이 다른 조류와는 달라서 ‘맹금류’에 속한다는 새로운 학설이 나오게 되었다는데……
도전정신
나름대로 철저한 준비를 해왔지만 생각처럼 멋진 산행을 하지 못하게 되자 산행에 회의를 느낀 건지, 한동안 뜸하던 펭귄이 연말연시를 맞아 동계훈련에 돌입하고, 혼자 관악산에서 와신상담(이럴 때 쓰는 말 맞나?)하면서 목표를 설정한 모양이다. 그 첫 타켓이 상국이로 정해지고, 만인이 보는 블로그를 통해 공식적으로 도전장을 내밀었겠다.
“모월모일에 펭귄이 산지기 선사 상국이와 관악산에서 맞짱뜬다.”
이런 도전장을 접수한 지기 선사, 부르르 떨리는 마음을 다잡아가며 약속장소로 나갔겠다. 그날의 ‘관악대전’은 결국에는 콧물 흘린 펭귄의 날개 하나가 부러졌다는데… 다시는 공식적인 도전장을 볼 수는 없었지만 목표를 변경한 펭귄의 도전은 다른 친구한테 계속된다.
최근 산행
올 초 예봉산 시산제에서 뭔가를 보여주려 준비를 잔뜩 했는데 지난 일주일 닷새동안 산행을 감행했다는 펭귄은 몸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았고, 신곡사가 안내한 불암산-수락산 연결종주에서도 헉헉대는 숨소리만 들릴 뿐 모두를 기다리게 만들고, 혼자 먹는 아이스케이크는 고향의 맛으로 즐기지만, 점심을 먹는데도 기력을 못 차리고 마음만 상해하던 펭귄, 이제 우리에겐 그런 펭귄은 없다.
아직은 바위산에서 조금은 허우적대기는 하지만, 지난번 도봉산에서, 백운봉에서, 다시 찾아간 관악산에서, 구덕산우회와 함께한 운길-예봉산 연결종주에서, 부러진 날개를 개조한 펭귄은 지금 고향(?)으로의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의 펭귄
술잔 기울일 힘만 있으면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물고 늘어지고, 물었다 하면 놓질 않고, 등산이 없는 저녁 모임에도 등산복 차림에 배낭 메고 나타나 밤 11시가 넘도록 ‘분당과 펭촌은 같은 동네’라고 우기면서 설쳐대고…
산에 갔다 오면 밤 12시도 좋고 새벽도 불사하고, 온 친구들한테 전화를 걸고선 알아듣지도 못하는 무용담을 늘어놓고, 어떨 땐 잘 간다고 ‘펭학’이라 칭찬 한번 해주면 다음엔 ‘펭학’은 날개를 접어 또 비실거리고…
어느 누구는 전날 치악산 갔다 와서 피곤에 절어 죽겠는데 집에까지 찾아와 한판 붙자며 맹산을 돌아 대낮부터 한잔 마시게 만들고, 또 며칠 뒤엔 ‘맞장뜨자’며 관악산에 불러내더니 두 시간도 못되어 양쪽 콧구멍으로 콧물을 줄줄 뽑으며 항복하고, 또 얼마 후 다시 한판 붙자고 불러내놓고는 역시나 고개를 잘레잘레 흔들며 ‘졌다!’ 하면서도 내심은 딴 데 있는 눈치라…
모르긴 몰라도 이번 겨울 넘기기 전에 펭귄이 여러 친구들 잡아먹지 싶은데, 그게 끝이 아니라 AP 3~4년쯤 되면 고수들 다 잡아먹고서는 이빨 쑤시고 있을지 누가 알겠노 말이다!!!
어느 누구보다 산행에 열정적인 우리의 펭귄,
펭귄이 있어 즐겁고, 펭귄이 있어 행복합니다.
밀레니엄 산행을 맞이할 그날까지 항상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펭귄의 어록
“인사상 불이익을 당할까봐 직접 말을 못하겠다.”
“하산주 없는 산행은 없다!”
“펭귄이 나타난 후하고 전하고는 확실히 다른 기라. 펭귄 이후에는 문화가 있고, 그 전에는 문화라는 기 있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