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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군(山淸郡) 웅석봉(熊石峰:1099.3M)을 가다.
글 쓴 이 고 학 영
3월25일, 별이 빛나는 새벽... 포근한 날씨다.
차에 오르니 처음오신분이 이외로 많아 빈자리가 보이지 않는다.(45명) 거창 휴게소에서 조반을 드실동안 주위를 한참 배회(徘徊)하니... 잘 정돈됀 정원의 수목들은 나목(裸木)의 모습 그대로이고, 축대아래 개나리, 매화, 진달래 나무에서는 꽃망울을 터뜨려 봄의 화신(化身)인양 자태를 뽐내고 있구나!
샛노란... 새하얀... 연분홍 꽃잎들이 하늘거리며 겨우내 움추렸던 가지의 기운들을 꽃잎으로 단장하는구나!
북으로는 비계산(飛鷄山:1125M)의 암봉(岩峰)들이 아침햇쌀에 찬란하고, 동남쪽으로는 두무산(1038M), 오도산(1134M)이 억겁(億劫)의 침묵속에 잠들어 있고... 그 옆으로 미녀산(美女山)이 천하(天下)를 품어 있어 볼수록 풍만하구나!
함양에서 대전~통영간 고속국도를 타고 생초면 IC에 이르니, 까만 뚝배기 그릇들을 연변(沿邊)에 포개놓아 그위에 꽃나무를 심어 놓았다. 여느곳에서도 볼수없는 풍경이요, 이고장 특산물의 홍보 효과도 있어 굿_아이디어(Good idea)라는 생각이 든다.
산청읍(山淸邑)에서 내려 웅석봉(熊石峰), 지곡사(智谷寺)로 가는 이정표를 따라 20여 분을 더 달려서 출발기점에 이르니... 내리못의 한귀퉁이에 지곡사지(智谷寺址)의 안내판이 서 있고, 4~5천여 평이 넘어보이는 터에 지금은 논 밭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열(隊列)을 이탈할 수 없어 하산후에 답사(踏査) 할 요량으로 후미에서 진행하니 오늘따라 여유롭다.
가벼워진 옷차림이며, 울긋 불긋 밝아진 색상에서도 봄의 기운을 느낌니다. 등산로변(登山路邊)에 벚꽃나무는 아직도 꽃망울을 터뜨리지 못해 봉긋 봉긋하고, 양지쪽의 진달래는 분홍꽃잎으로 몸단장을 하는구나!
간간이 산수유를 닮은 노란꽃을 피운 나무들이 보이고, 좌(左)측 개울에는 어제 내린비로 물이 불어서 물소리가 출~출~출~ 쏴~아~ 쏴~아~ 흥에겨워 요란하다.
가끔씩 산새우는 소리도 들리고 함께 오르는 회원님들의 정겨운 웃음소리가 계곡의 적막을 깨뜨리고 있습니다.
우측으로는 1958년에 새로 지었다는 지곡사(智谷寺)가 옛절을 대신하여 대웅전, 삼성각, 요사채, 범종각으로 당우가 단조롭다.
20여 분을 더 오르니 우측에 웅석봉심적사(熊石峰深寂寺)로 가는 안내판이 보인다. 심적사(深寂寺)는 신라 경순왕 3년(929년)에 세워졌다 하며, 청룡과 백호가 잘 감싸주는 길지에 터를 잡고 있다. 6.25 동란으로 소실된 후에 동봉화상(東峰和尙)이 삼봉산(三峰山) 회룡동(回龍洞)으로 옮겼다가 1997년 옛터에 복원하였다고 하는데 가볼 수 없슴이 아쉽구나!
다시 얼마를 더 진행하니 선녀폭포골의 제1폭포가 나온다. 계곡미(溪谷美)는 아름다우나 수량(水量)이 많지 않아 볼수 록 안타깝고... 폭포위로 가로지른 다리에 올라서 산천의 정기를 흠뻑 마시니 폐 간장이 다 시원하다.
자료에는 이 주위에 지곡산성(智谷山城)이 있었다고 하나 보이지 않으며, 여기서 부터는 오솔길로 이어진다.
10여 분을 더 오르니 제2폭포가 보이고, 다시 20여분을 오르니 제3폭포라고 적혀 있다. 산 오를수 록 수량(水量)이 적어 폭포라기 보다는 절벽에 가까우며, 수량(水量)이 많으면 장관(壯觀)이 겠다는 생각이 든다. 위로는 다리가 놓여 있어 계곡미를 감상 하기에는 더 없이 좋다.
여러차례 심호흡을 하고 돌아 오르니... 정민(큰아들)이가 합천(陜川) 황매산(黃梅山)의 산행길을 물어오고... 다시 20여 분을 더 오르니 서원회(西元會)의 김영국 회장님이 지리산 칠선계곡에 서암(瑞菴)의 길을 여쭈어 오신다.
21세기의 첨단문화 휴대폰이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연결해 주시니... 고맙기도 바쁘기도 합니다.
오늘따라 정명돌 노장님은 적당한 산행으로 하산 하시고, 이외술 노장님도 다리에 근육통이 있어 하산 하시니... 세월을 이기는 장사(壯士)가 없는가 봅니다. 바로 뒤에는 4개월여 만에 동참하신 최형달님은 이마에 구슬땀을 흘리며 오르고, 두어발 앞서 이진학님, 그뒤로 최대장과 디카맨 황재덕님이 줄지어 오르신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30여 분을 올라 850여 고지의 왕재에 오르니... 지리산의 천왕봉(1915M)이 쌍봉으로 우뚝하다. 실재 거리는 상당할 것이지만 시계(視界)에 와 닿는 거리는 지척(咫尺)이라 손에 닿을 듯 하다.
웅석봉으로 가는길은 이정표에 5Km정도 남아 있어 아직 시간반은 더 걸어야 하니, 후미에 회원님들의 도착시간이 궁금하다.
980여 고지와 1045고지 까지는 능선길이라 산행길도 순탄하고, 고산기후에 적응된 몸이라 걷기도 한결 수월하다.
솔바람 춘풍(春風)에 콧노래를 부르며 1079여 고지에 이르니... 선발대 박번님이 정상(웅석봉) 근처에 이르렀다고 무전기에 교신이 들어오고, 후미에 오시는 회원님들도 기다릴겸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런 저런 여담으로 쉬는데... 금민자 회원님이 가져온 딸기를, 최대장은 오이를, 또 다른회원님(이름모름)들은 방울토마토와 당근을 나누어 드시니... 산(山) 인심이 따사롭고 푸근합니다. 맑은 공기속에서 계절없는 과일들의 향기에 취하며... 더도말고 덜도말고 오늘같은 즐거움으로 늘 이어졌으면...
주위의 조망(眺望)도 천왕봉에서 이어져 오는 능선들을 왕재에서 보다 더 넓게 분명히 볼수 있어 좋다.
백두산에서 출발한 백두대간이 3천여 리를 달려 지리산 천왕봉(1915M)에서 멎어... 그 동쪽으로 중봉~ 하봉~ 쑥밭재~~새재를 거쳐 다시 외고개~ 왕등재~ 깃대봉으로 이어져 밤머리재에서 다시 솟구쳐 웅석봉(熊石峰:1099.3M)을 빚어 놓고 석대산(535M), 백운산(515M)에서 진양호에 그 맥을 떨구고 있으니...
단군신화에 웅녀(熊女)의 정기가 이곳 산청군(山淸郡) 웅석봉(熊石峰)에 맺혀 있는 것인가?
서쪽으로 덕천강이 흐르며, 동쪽으로는 남덕유에서 발원한 남강이 유유히 휘감아 흘러 진양호로 모아드니... 이고장 사람들의 생명수요 풍요의 산물이로다.
덕천강 서편으로 비경과 문화재를 간직한 국립공원 제1호 지리산(智異山:1915M)이 삼신산(三神山), 방장산(方丈山)으로도 불리워지며... 3개도 5개시군에 걸쳐 광활한 면적에 자리하고 있어 어느쪽으로 봐도 그 참모습을 다알 수 없어 지리산(智異山)인가?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이르기를 금강산은 수이부장(秀而不壯:수려하나 장엄하지못함)하고, 지리는 장이불수(壯而不秀:장엄하나 수려하지못함)하다고 하시드니... 그 장엄한 모습에 성모산(聖母山)으로 숭앙받는 이유를 오늘에사 알겠습니다.
다시 동으로는 경호강(鏡湖江)을 건너 남덕유에서 가지친 금원산, 기백산을 시작으로 진양기맥이 수많은 곁가지를 쳐 진양호에서 그 맥을 떨구고 있으니... 산너머 산 산 산이 끝없이 펼쳐진다.
빼어난 산천의 정기(精氣)에 오고 간 인걸(人傑)도 많아서... 삼장면(三壯面)에는 대원사와 내원사가 있어 사바세계의 전법도량(傳法道場)으로써 그 역할을 다하고 있으며...
시천면(矢川面) 원리동 부근에는 덕천서원(德川書院)이 있어 남명 조식(曺植)선생의 위폐를 모시고 향사(享祀)를 드리고 있다.
선생께서 강학(講學)하시던 산천재(山川齋) 주위로는 절경도 뛰어나서 무릉도원(武陵桃源)으로 일컬어 지고 있으며... 생전에 여러차례 조정(당시명종임금)에서 벼슬을 내렸으나 모두 사양 하시고 영원한 처사(處士)로 기록되기를 원하셨다고 하시니... 사후(死後) 영의정(領議政)에 추존 되시니 당연하고도 당연 하십니다.
살아서는 스스로 단도(短刀)를 몸에 지니시고 엄숙한 가풍에 경의(敬義)로서 후학들을 지도하셔... 충신 의사(義士)를 많이 배출 하시니 님의 뜻이 천천세(千千世)에 길이 빛나도다.
또한, 단성면(丹城面) 사월리에는 고려 공민왕12년(1363년)에 좌정언(左正言)이 되어 원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길에 붓대롱속에 목화씨를 숨겨 가져와 그의 장인(丈人) 정천익(鄭天益)과 함께 재배해서 성공한 문익점(文益漸) 선생의 목화시배사적지(棉花始培事蹟地)가 있어 그의 업적이 고금(古今)에 찬란히 빛나고...
바로 이웃하여 묵곡리에는 1981년에 조계종 제6대 종정으로 계셨던 성철(性撤:1912~1993)스님의 생가가 있었으나, 지금은 겁외사(劫外寺)를 지어 스님의 유품과 그 뜻을 기리고 있습니다.
일설에 그는 문경 대성사에서 장좌불와(長坐不臥:눕지않고 수행함)를 8년간 했으며, 16년간을 생식하고 파계사 성전암 토굴에서 10년간 은거하는 초인적 수행을 통해 돈오돈수(頓悟頓修)의 선학(禪學)을 주장 하시고, 삼천배의 수행 지침과 검정고무신 누더기 장삼에 걸사도인(乞士道人)으로 고행의 삶을 살다 가신 백의도인(白衣道人)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종정 취임사에서 사바세계 중생들에게 일갈(一喝) 하셨으니... 그 법음(法音)이 영원 하여라!
원각(圓覺)이 보조(普照)하니
적멸(寂滅)이 둘이 아니라
보이는 만물은 관음(觀音)이요
들리는 소리 묘음(妙音)이라
보고듣는 이 밖에 진리(眞理)가
따로 없으니...
아 아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는가...
山은 山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런 저런 사념(思念)으로 얼마를 쉬었는지... 나만 홀로 남았구나! 10여 분을 더 걸어 웅석봉 아래 안부에서 점심을 들고, 정상(웅석봉:1099.3M)에서 여러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는 하산길로 접어든다.
정상표석은 산청산악회에서 세운 빗돌이며, 앞면에는 웅석봉(熊石峰:1099.3M)이라 새기고 그 아래 곰의 형상을 음각(陰刻)해 놓았다. 곰웅자의 글씨도 상형문자화 해서 최대한 곰의 형상을 살려 조각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능선 동쪽으로 남강의 푸른물이 봄볕에 찬란히 빛나고, 산색(山色)은 녹색과 나목(裸木)이 반반이다. 정상 주위의 철쭉과 진달래 나무는 싹눈이 돋아나기는 했으나 아직도 꽃을 피우기에는 한참이나 멀게 느껴진다.
30여 분을 내려와 널찍하고 평평한 바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겸, 지나온 능선들을 보노라면 결코 만만치 않은 산행길이며... 저만큼 왕재 아래에는 심적사(深寂寺)가 옹기종기 정다웁다.
멀리 산청읍내는 남강이 휘돌아 흐르니 한폭의 그림같고, 만물을 품어있는 청산(靑山)은 말없이 홀로 여여(如如)하다.
1시간 20여 분을 걸어 지곡사지(智谷寺址)에 도착하니 선착(先着)한 회원님들은 하산주(下山酒)를 준비하느라 부산하다. 남산님들이 하산주를 드실동안 폐사지(廢寺址)를 둘러본다.
논두렁길을 따라 빈 논밭을 밟아서 옛 금당터가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지점에 거대한 석조(石槽:돌로만든물통)가 방치돼 있고, 논밭두렁 가에는 주춧돌(자연석임)로 여겨지는 돌들이 즐비하다.
그 옆에는 절구로 사용되었던 석조물과 깨어진 맷돌이 보이고, 내리제(堤)못 가에 보호철책 안에는 지곡사지에서 나온 일부 석조물들을 모아 놓았다. 청룡과 백호도 잘 감싸주고 있으며 바로 앞의 저수지가 있어 포항 오어사(吾魚寺)의 전경과 비슷해 보이고...
안산(案山)은 멀어 있어 약간 허(虛)하나 멀리 진양기맥상의 황매산(黃梅山:1113M)이 연화봉(蓮花峰)으로 피어 있어 참으로 훌륭한 길지(吉地)다.
안내판에 지곡사(智谷寺)는 산음현(山陰縣)의 대표적인 거찰 이었고, 전성기에는 스님이 300여 명에 이르렀으며, 방앗간이 12개나 있었다는 기록이며 면적은 3300평방미터로 기념물 제197호로 지정되어 있다.
산청군지에 이르면 조선 영조43년(1767)에 일이다. 그 당시 산음현(山陰縣)의 어느 마을에서 일곱살난 여아(女兒)가 아이를 낳는 괴이한 일이 있었는데...
영조 임금이 그쪽의 지명을 알아본 즉, 산음(山陰)과 안음(安陰)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쪽에 음기(陰氣)가 너무세어 그렇다고 여겨져 산음(山陰)을 산청(山淸)으로, 안음(安陰)을 안의(安義)로 고쳐 부르게 했다고 전해오니 믿을수도 안 믿을수도 없는 일이라...
웅석봉 산기슭에 하늘이 점지한 터에
옛 지곡사(智谷寺)는 자취가 없는데...
허허로운 벌판에 잔해들만 널려 있고
새로지은 지곡사는 산모롱이에서
옛 지곡사 명성에 줄타기 하는구나!
계곡의 물소리는 고금(古今)에 여여 한데
지곡사(智谷寺)도 스님도 자취가 없어라!
단기 4340년(서기2007년) 3월 25일
경남 산청군(山淸郡) 웅석봉(熊石峰:1099.3M)을 가다.
첫댓글 지척에 지리산 천왕봉의 장엄한 모습에 무한 한 감명을 받았습니다.
남산님들의 행복과 남산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