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사무실/ 안도현
전주 관통로 대흥정판사 오층 옥상에 있던
1.5평짜리 창고를 얻어 사무실로 쓸 요량이었다
비가 오면 콘크리트 바닥으로 물이 기어들어 신발
밑창이 잠방거리고 출입문을 닫으면 한밤중처럼
캄캄해지는 곳, 1990년대 초반 나는 해직교사였고
매일 전교조 사무실에 나가는 일도 따분한
동어반복 같아서 전북민족문학인협의회 사무실
간판 하나 달아놓고 혼자 빈둥거려볼 참이었다
브리태니커 세계대백과사전을 팔러 오는 이도
있었고 술 사주러 오는 회원도 있었고
술값 뜯으러 오는 놈도 있었다 새날서점이라는
사회과학서점의 주인이었던 박배엽 형은
바둑을 두거나 목수로서의 실력을 입으로
과시하기 위해 자주 사무실에 출몰하였는데 하루는
사무실 벽에 창을 하나 내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서쪽으로 향한 벽에 창문을 달면 늦은 오후의 햇살이
사무실로 들어올 테고 나는 두 손으로 그 볕을
받아야지, 나는 그의 지시에 따라 시멘트와
모래를 구해 옥상까지 어깨에 지고 날랐다 이틀이
걸렸고 한여름이었다 해머로 벽을 두드려 깨는
일은 박배엽 형이 맡았다 사흘이 걸렸다 유리가
끼워진 창문을 사 오는 데 또 사흘이 걸렸다
마지막으로 창틀을 다는 날이었다 나무 창틀을
끼우고 빈 테두리에 시멘트 반죽을 채워 넣는 그의
손놀림을 보며 나는 예수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개 같은 세상에도 어떤 신성이 창문을 달고 있는 것
같았다 창틀에 창문을 끼우면서 그가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어쩐다냐 자물쇠가 안으로 와야
하는데 밖에서 잠글 수밖에 없네 창틀을 거꾸로 달아
안과 밖이 바뀌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비좁고 눅눅하고 누추한 세상에서 빠져나와 환한
사무실 문을 따고 출근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었다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 둘 수 있게 되었다> 창비,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