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롬달은 약관 20세에 이미 무시할 수 없는 경지에 올랐으며, 데뷔 초부터 벌써 클루망에게
패배를 안기곤 했다. 처음 몇 번의 국제대회에서는 간신히 에버리지 1을 넘겼지만, 곧 그 이후
1.2 에버리지를 훌쩍 넘어섰다.
자동적으로 1987년에는 출범 2년차인 BWA의 계약선수로 초빙되었으며, 그 다음 해 1988년에는
데뷔 불과 6년 만에 세계랭킹 1위에
등극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 시기에 그는 클루망만의 “에버
1.5 이상” 고유영역에도 발을 깊게 들여 놓고야 만 것이다.
클루망의 입장에서는 일본의 고바야시 선수만 한두번 그 영역에 살짝 발을 들여놨다가 사라져 간
이외에는 자기 이외에는 그 영역을 유지한 선수가 없었는 바, 브롬달의
진입에 매우 심기가 불편
하였을 것이다.
세계당구계는 또한 브롬달이 가져온 충격적인 혁신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바로
‘스피드’이다.
물론 모든 포지션에서 스피드를 살려 친다는 것은 아니고, 문제성이
없다고 느끼면 10번 중
7번은 다른 세계 최고봉 선수들과 비슷하게 샷을 구사하기는 한다.
하지만 나머지 3번쯤의 샷은 쇼킹 그 자체이다.
만약 스피드 위주로 샷을 구사하는 것이 더 득점하기가 용이하다고 느끼면, 자기
스피드대로
샷을 구사해버리고 그 결과에 따른 포지션은 운에 맡겨버리는 식이다.
만약 자기식대로 쉽게 쳐버린 샷의 결과로 다음 공의 포지션이 아주 나쁘게 서 버리면,
또 시속 180 km 속도의 샷이 그 해법이 된다.
공 3개가 모두가 테이블 위를 어지럽게 이동하다 어느 곳에 가서들
설지 아무도 모른다.
가끔 포지션 된 결과가 처음부터 잘 절제된 속도로 친 것보다 매우 나쁠 수도 있다.
브롬달은 그런 경우 전혀 불평하지 않고 냉철하게 다음 샷에 대처할 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결국 자기 자신이 그러한 선택을 했고 그 결과 공들의 배치가 그리 된것뿐이
므로 ! 반면에 운 좋게 배치가 잘 되고 상당한 다득점으로 연결되더라도 절대 미안함따위는 표시
하지 않는다.
오래된 브롬달과 클루망의 경기 비디오를 보시라 !
브롬달이 1득점 하는 데에만 중점을 두고 3개의 볼을 아무 콘트롤 없이 우당탕 테이블 곳곳으로
내팽겨칠
때, 선배 거장 클루망의 얼굴에 떠오르는 표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3개의 공들이 좋은 포지션에 놓일 때 거장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판토마임처럼 아무 얘기를
안 하지만 속으로는 ‘이 XX, 정말
운 하나는 타고 났네!’ 하고 있음이 역력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그 거장도 그것이 단순히 운이 아니라 브롬달만의
뛰어난 생각에 대한
보답이었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1990년대는 그야말로 브롬달의 전성시대였으며 세계 3쿠션계를 압도했다.
그리고 그의 최전성기에 딕 야스퍼스라는 걸출한 선수가 출현했다.
그 이후 오랫동안 그 두 선수의 혈투가 벌어졌으며, 3쿠션 당구에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1999년 네델란드 Heiloo 에서
약 7천만원의 승자독식 상금을 놓고 두 선수는 하루종일 1:1
대결을 펼쳤고, 브롬달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상금을 독차지하였다.
브롬달이 승리한 주요원인을 짐작해보면 그가 야스퍼스에 비해서 시합장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
는 타입이며 좀 더 편안하게 시합에 임한다는 점이다.
그는 지금껏 시합에서의 압박감이나 주요한 마무리 시점에서 다른 선수들 그 누구보다도 그런
상황을 잘 헤쳐나오곤 했다.
현재 이 두 선수는 보통 에버리지 1.7~1.8 수준은 쉽게 기록하고
있으며,서로를 자극하며 더
높은 경기수준에 도달해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야스퍼스의 출현으로 브롬달의 경기력이 더욱 향상되었으며, 야스퍼스
또한 브롬달에게
자극을 받아 더 좋은 선수가 된 것으로 확신한다.
필자가 2006년도에 브롬달로부터 들은 야스퍼스에 대한 매우 값진
코멘트가 있다.
그것은 “ 우리 모두 야스퍼스가 가끔 실수하는 것에 감사해야한다. 만약 그가 사소한 실수조차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를 이겨 볼 기회라곤 없다고 봐야 한다 “이었다.
여러가지 면에서 클루망과 브롬달의 시대는 차이점들이 있다.
클루망의 전정기 때 그는 모국 벨기에 국내 리그에 치중하되 캐롬의 전종목에 출전해야만 했다.
반면 브롬달이나 야스퍼스의 경우 free game(우리나라 4구비슷), 보크라인, 1 쿠션
게임등은
도외시하고 3쿠션에만 전념하며 다양한 국제리그에 참여할 수가 있었다.
네덜란드,벨기에,독일,프랑스, 나중에는 스페인 및 포르투갈까지로 활동무대를 넓힐 수 있었다.
그 후, BWA에 의해 창설되고
BWA라는 단체가 해체된 후 UMB에 의해 운영되는 세계순회경기들
(역자주 :Worldcup 경기 및
World Championship들을 말함)까지 더해져,
당구선수들도 전세계를
여행하면서 일년 내내힘겨운 Tour 경기를 벌려야하는 테니스선수들
비슷한 일상을 갖게 되었고,
브롬달이 당구선수들 중 그 효시라고 하겠다.
그는 이제 뛰어난 3 쿠션 선수임은 물론이고, 어떤 주말에는 1,100km를 달려가서 좋은 성적을
내자마자 비행기를 타고 세계 각 대륙으로 달려가서는, 시차에 시달리면서
아무 음식이나
주어지는 대로 먹고나서도, 생소한 당구대에서 팬들이 기대하는 이상의
뛰어난 플레이를
보여주는 철인이기도 하다.
그는 이제 고향인 독일의 Backnang에 사랑스런 부인과 어린 두
아들을 둔 떠돌이인 셈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고집 세고, 목표의식 강하고, 까다롭지 않으면서도 자기 일은 자기 스스로
해내는 스포츠맨이어야만 한다.
응석꾸러기들이 되어버린 일류 테니스나 골프 선수들과는 달리, 그는
보통 비행기도 일반석을
이용하며 매니저와 코치도 없이 모든 부분을 스스로 해결한다.
(역자 주 : 솔직히 상금과
수입이 테니스나 골프 등에 비해 현저히 적어서 일 것임)
호사스러운 Crystal Kelly 초청경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3쿠션 토나멘트 시합은 환경이 열악한
편이며 대회기간 중에는 하릴없이 대기해야 하는 시간들도 지겨울 정도로 길다.
이런 것들에 지쳐버린 브롬달은 35세 때 더 이상 그런 생활을 계속할 생각이 없으며 40세에는
은퇴를 하겠다는 선언을 했었다.
우리 모두에게 천만다행인 것은 그 후에 그가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최근 그의 천적인 야스퍼스가 아주 재미있는 말을 남겼다. 바로,
“ 브롬달, 그는 자신의 능력 때문에 스스로 당구의
위대한 포로가 된 것일 뿐이다. 나처럼! “
재능에 관해서 또 말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알아챘듯이 브롬달은 탁월한 언어구사능력
을 가졌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20년만에 그는 독일어,영어,네델란드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뿐 아니라,
덴마크,프랑스,이태리,스페인어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사용하며, 심지어 터키,일본,한국어까지도
기본적인 회화가 가능할 정도이다.
(역자 주: 이 점은 세계무대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우리 젊은 선수들이 반드시 본받아야 할 점이다.
선수로서
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당연하고 기본적인 일이며, 시합주최자,
관계자, 세계각국 동료선수들 및 관중들과도 기본적인 소통은 되어야 한다.
시합중
벌어지는 돌발사태나 판정문제, 입상하였을 경우 간단한 인터뷰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점은 반드시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력으로 해결해야만 할 사항들이다.)
필자가 보기에 그의 언어구사능력향상과 당구시합성적은 밀접한 동반상승곡선을 그려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수줍게 대하고, 실수하는 것이 두려워서 그저 자기가
알고 있는 범주에만 집착할 때, 브롬달 그는 두 발로 힘차게 뛰어올라 그 경계선들을 스스로
훌쩍 뛰어넘은 후, 또 새로운 경계선을 향해 도약해 나가곤 한다.
1998년 Hengelo의
네델란드팀 소속으로 뛸 때 그는 당구역사에 하나의 기념비적 기록을 세웠다.
그 해 그 리그에서 연간 에버리지 2.0을 돌파한 것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2.017 이었다.
그는 실제 시합에서 에버리지 2.0 이상의 경기력을 입증한 역사상
최초의 선수이다.
누군가가 한 토너먼트에서 에버리지 2.0을 기록했다고 해서, 우리 모두가 그 사람의 경기력을
2.0 대라고 인정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렇지만 8개월동안, 12군데의
다른 시합장에서, 매주 막강한 선수들을 상대로 해야하는 네델란
드 리그에서, 50점제 /22게임에서 2.0 이상의 에버리지를 기록했다면 얘기가 달라져야 하는 것이
다. 년간
에버리지로 계산된 숫자 정도는 되어야, 본인의 실제 경기력 수준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한때의 기적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라도 하듯이 그는 2003년
같은 리그에서
똑 같은 2.017 이라는 에버리지 기록을 재현해냈다.
씨즌 통산 에버리지 2.0 이상 수준의 기록은, 아주 최근에 와서야 비로서 야스퍼스나 쿠드롱에
의해서나 가능했던 아주 대단한 기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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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끝
첫댓글 실경기 에버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