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바다-세월호 침몰 현장을 찾아서
안개 자욱한 맹골해협, 바다는 말이 없다.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맹골수도에서 침몰, 무려 304명의 희생자를 냈던 게 벌써 8년. 2014년 4월 16일은 하늘도 울고 바다도 울고 우리 국민 모두가 울었던 통곡의 날이었다. 특히 희생자의 대부분이 수학여행을 가던 어린 단원고 학생들이었다는 점에서 슬픔은 더욱 컸었다.
2017년 4월, 목포신항에서 세월호가 육지로 인양되기 하루 전날. 한국을 대표하는 섬 시인인 이생진 선생님(93)을 비롯한 섬여행 동호인 모임인 '섬으로' 카페(대표 이승희) 회원 18명은 세월호가 침몰한 현장인 동거차도-맹골도-병풍도 주변 해협을 찾았다. 이곳 바다는 우리나라에서 임진왜란 당시 명량해전으로 유명한 울돌목 다음으로 물살이 거센 해협이라 했다. 팽목항 안내지도에는 세월호 침몰현장이 노란 리본으로 표시되어 있다. 바로 동거차도-병풍도-맹골도 중간 인근 바다.
팽목항에는 '기다리는 의자'가 아직도 돌아오지못한 단원고 학생과 선생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바다를 향해 어서 오라고, 보고싶다고 손을 흔들고 있는 노오란 깃발, 깃발들.
빨간 등대 아래에는 ‘하늘나라우체통’도 보인다. 우리들은 하늘나라에 있는 어린 학생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다른 돌아오지못한 분들에게 편지를 띄운다. 보고싶다. 아이들아, 정말 보고싶다 그대들이여. 이 아프고 슬픈 마음이 과연 하늘나라까지 전해질수 있을까? ‘기억의 벽’에 남겨진 그때의 사연, 사연들. ‘미안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우리 일행은 팽목항에서 섬사랑9호 여객선을 타고 9시에 출발, 선장님께 물어보니 서거차도를 거쳐 약 3시간 후인 12시경 세월호 침몰현장을 지난다고 한다. 고속여객선이나 큰 낚싯배로 간다면 1시간 남짓이면 갈 거리이지만 슬도-독거도-탄항도-혈도-청등도-죽항도-조도-하죽도-서거차도 등 섬을 9개나 들르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하늘은 맑고 파도도 잔잔하다. 이런 날씨라면 맹골도 주변 해협도 파도가 잔잔할 것이라는 예상이 든다.
그런데 이게 왠일? 서거차도에 접근하면서 날씨가 갑자기 바뀌기 시작한다. 안개가 짙어져 주변 섬들이 거의 보이지 않고 파도도 점점 거세진다.
걱정스러워 선장에게 물어보니 이런 날씨에는 세월호 침몰 현장은 보이지않을 거라고 말한다. 좌측 방향 동거차도와 병풍도 중간 인근 지점이 침몰지역이라 한다. 동거차도에서는 약 2km거리. 침몰지역에는 그동안 부표로 표시해왔고 아직도 잠수부들이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해무가 짙어 확인해볼 길이 없다. 허긴 설령 보인다 해도 바다 한 가운데에 부표 이외 무슨 다른 흔적이 있으랴. 파도에게 그저 우리 살아있는 자들의 슬픔과 애처로움을 전할 수 있을 뿐.
세월호가 침몰한 맹골해협은 진도 남서쪽의 맹골군도(孟骨群島)와 거차군도 사이에 있는 수도(水道)이며 길이 6km, 폭 4.5km에 달한다. 평균 수심은 37m~38m인데 세월호가 침몰한 지점은 수심 44m로 알려져 있다. 암초는 없지만 맹골수도 물살은 최대 6노트(약 11km/h)에 이른다고 한다. 서해안을 드나드는 밀물과 썰물이 섬과 섬 사이를 드나들며 병목현상이 일어나 물살이 빨라지게 된다. 6시간에 한번씩 밀물과 썰물이 바뀌며 선원들 사이에서도 대표적 위험 항로로 꼽히며 평소 안개가 자주 껴 시야 확보가 어려운 곳으로 알려졌다.
드디어 세월호 침몰현장 인근 바다에 도착. 마음이 숙연해진다. 아, 한스러운 세월호! 이 바다 속에 잠든 우리의 아들딸, 형제들이여. 함께 간 이 생진 시인은 침통한 표정으로 말없이 침몰현장인 바다 만 바라보신다.
우리들은 가져온 과일 몇개와 막걸리로 상을 차리고 침몰 현장을 향해 다 같이 묵념과 함께 간단한 애도의 제를 올린다.
이생진 시인은 바다를 향해 오래 전에 맹골도를 다녀올 때 써놓으셨던 '맹골도-꿈이야기'라는 시 한 수를 읽으며 설움을 다스리신다. 이생진 시인은 세월호 침몰 당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신 적도 있다. 아빠, 엄마, 지훈, 요셉 등 네식구의 제주도 가족여행 중 세월호 침몰로 희생당한 이야기다. 요셉은 당시 7살이었다. 한식구가 몽땅 제주도로 여행가는 일은 행운 중에 행운이다. 한국 제일의 여객선, 6825톤에 길이 146미터, 넓은 운동장을 머리에 인 5층짜리 학교만 하다. 옥상에 올라가 소리치고 싶었다. 아빠, 엄마, 형, 그리고 요셉은 세월호를 타는 순간 행복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배가, 아, 그 배가..., 집에 혼자 남은 할머니. 살려달라고 호소할 곳은 할머니 밖에 없었다. 세상이 뒤집혔던 그 때가 다시 떠오른다.
그 배가
-세월호 침몰 첫날
이생진
그 배가
하늘 같이 믿었던 그 배가
다음날 아침 아이들이 학교 갈 무렵
갑자기 기울기 시작한다
종이배보다도 못한 거
그런 비운이 예감되는 순간
아빠는 요셉을 찾으러 뛰어가고
엄마는 요셉에게 입힐 구명조끼를 안은 채
요셉아! 요셉아!
3층 중앙 계단난간을 잡고 발을 구른다
기우는 배가 자꾸 엄마를 넘어뜨린다
형은 게임하던 핸드폰을 할머니에게 돌려
“할머니! 지훈인데 배가 기울어요
살려달라고 기도하세요
요셉은 어디 갔는지 몰라요
할머니!
빨리 기도하세요
아빠 엄마는 요셉을 찾으러 나가고
나 혼자 있어요
할머니!
할머니!
배가 무서워요”
함께 온 현승엽 가수도 기타와 노래로 먼저 떠난 어린 학생들과 형제들에게 슬픔과 애도의 뜻을 전한다. 그의 노랫소리가 떨린다. 바다는 말이 없다. 자욱한 안개와 거친 파도 만 3년 전 그 때의 아픔을 말해줄 뿐이다.
사고지점에서 약 30분 후 필자 일행은 맹골도에 도착, 그 섬에서 1박하면서 맹골도-죽도-곽도-병풍도 등 세월호가 침몰한 주변 섬들을 돌아봤다. 맹골도는 목포항에서 67.3km거리에 있는 고도 중의 고도이다.
다음날, 우리 일행은 귀경길에 세월호가 육지로 인양되는 현장을 보기 위해 직접 목포신항으로 향했다.
오후 5시 30분 경 드디어 완전히 육지 인양에 성공. 저 배 안에 아직 돌아오지못한 9명의 아들딸과 형제들이 잠들고 있겠지. 숙연한 마음으로 남겨진 9명의 무사귀환을 기도한다. 인양현장에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많은 국민들이 그들을 맞으러 나와 있다.
주변에는 아직 돌아오지못한 단원고 학생들과 선생님들 등의 사진이 걸려 있고, 길가에는 노오란 리본이 목포시민의 이름으로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고 있다.(글,사진/임윤식)
* 이 글과 사진은 2017.4월에 쓴 <아, 저 바다-세월호 침몰 현장을 찾아서>를 재정리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