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초고] 병든 로마와 병든 미국: 폭격 지도와 글리포세이트 재판이 말하는 제국의 황혼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시민인권위 공동위원장)
붉은 점으로 뒤덮인 지도, 라오스의 비명
라오스 비엔티안 박물관의 한쪽 벽면을 마주했을 때의 전율을 잊을 수 없다. 그것은 단순한 지도가 아니었다. 국토 전체가 온통 붉은 점으로 도배된, 거대한 비명이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이 자행한 '비밀 전쟁'의 기록. 당시 인구 200~300만에 불과했던 소박한 나라 라오스에, 미국은 남한 면적의 두 배가 넘는 전 국토를 대상으로 무차별 폭격을 퍼부었다. 전쟁 당사자도 아닌, 단지 배후에 있는 소국이었다. 베트남을 돕는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상은, 인류가 도달해야 할 최소한의 도덕적 마지노선을 넘은 광기였다.
천천히 라오스의 국토를 걷다 보면, 그 붉은 점들이 남긴 상흔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목격하게 된다. 파괴된 생태계, 그리고 세대를 이어 전해지는 공포. 제국은 자신들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름 모를 타국의 산천을 지옥으로 바꾸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 지도는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화려한 간판 뒤에 숨겨진, 피비린내 나는 제국의 민낯이었다.
병든 로마의 데자뷔 —화폐와 칼날의 몰락
역사는 반복된다기보다, 인간의 탐욕이 같은 궤적을 그리며 변주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로마 제국의 몰락은 외부 침입 이전에 내부의 부패에서 시작되었다. 로마 후기, 황제들은 끝없는 전쟁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데나리우스 은화의 은 함유량을 줄였다. 화폐 가치를 인위적으로 훼손하며 시민을 기만했던 로마의 행태는, 오늘날 실물 가치와 무관하게 달러를 찍어내며 전 세계 부를 흡수하는 미국의 달러 패권과 소름 끼칠 정도로 닮아 있다.
로마가 화폐 가치 하락을 군사적 정복으로 메우려 했듯, 미국 역시 달러의 위기를 군사적 팽창으로 돌파하려 한다. 하지만 역사가 증명하듯, 화폐와 칼날에만 의존하는 제국은 반드시 그 칼날 위에 스스로 엎어지게 되어 있다. 신뢰를 잃은 화폐는 종잇조각에 불과하며, 명분 없는 군사력은 결국 제국의 혈관을 터뜨리는 독이 될 뿐이다.
협상 테이블 위의 폭탄 —반복되는 야만의 문법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이 '협상'이라는 문명적 도구를 다루는 방식이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 당시 파리 평화협정을 앞두고 북베트남과 라오스 전역에 사상 유례없는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라인배커 II'라는 이름의 이 작전은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 상대를 공포로 질식시키려는 목적에서 자행되었다. 그것은 외교가 아니라, 굴복을 강요하는 공포 정치였다.
2026년 이란에서도 이 패턴은 반복되었다. 2월 23일, 이란 외무부는 "26일로 예정된 미국과의 회담에서 합의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협상 타결이 코앞에 있었다. 그런데 불과 닷새 후인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전역에 기습 공습을 감행했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와 다수의 관료들이 목숨을 잃었고, 학교, 병원, 문화유산 유적지가 파괴되었다. 유엔 인권 전문가들은 이번 공습을 로마 규정에 따른 잠재적 전쟁 범죄로 규정했다. 특히 미국이 구조대원이 접근하는 순간을 노려 2차 폭격을 가하는 '더블 탭' 전술을 사용했다는 보도는 이 전쟁의 성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협상은 상호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약속의 시작이어야 한다. 그러나 라오스에서 이란까지, 수십 년의 간격을 두고 같은 수법이 반복된다는 사실은 이것이 일탈이 아닌 구조적 패턴임을 말해준다. 협상을 굴복의 확인 수단으로 삼고, 약속을 공포의 도구로 사용하는 나라는 국제 사회의 규범을 이끌 자격을 스스로 반납하는 것이다.
미국이 비난하는 러시아가 오히려 청정한 나라 —글리포세이트의 아이러니
내부의 병세를 들여다보기 전에, 먼저 하나의 아이러니를 짚어야 한다. 미국이 권위주의와 후진성의 상징으로 비난하는 러시아는, 적어도 먹거리 안전 문제에서만큼은 미국보다 훨씬 엄격한 기준을 지키고 있다. 2020년 푸틴은 식품안보 독트린에 서명하여 GMO 종자의 수입·유통과 유전자 조작 동물의 사육을 전면 금지했다. 러시아는 자국 농업을 '생태적으로 청정한' 대안으로 공식화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유럽연합은 2023년 글리포세이트를 10년 더 승인하는 결정을 내렸지만, 10개 회원국이 반대표를 던졌고, 시민사회와 과학자들은 이 결정에 반발해 유럽사법재판소에 법적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유럽에서는 최소한 글리포세이트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성찰이 살아 있다. 반면 미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내부로부터의 붕괴 —사법적 타락과 글리포세이트 카르텔
제국의 병세는 외부의 폭력을 넘어 내부의 장기까지 전이되었다. 미국 대법원이 글리포세이트의 발암 책임을 묻는 소송에서 연방법 선점 원칙을 적용해 사실상 제조사의 손을 들어준 판결은, 미국이라는 국가 시스템이 얼마나 심각하게 자본에 종속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글리포세이트는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발암 가능 물질'로 분류한 제초제다. 그럼에도 미국의 사법부는 자국민의 건강권보다 거대 자본의 이익을 선택했다. 이는 로마 말기 돈으로 판결을 사고팔던 사법적 타락의 현대적 재현이다.
더 절망적인 것은, 그 시스템을 고치겠다던 인물마저 제국의 논리에 굴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는 2018년 몬산토를 상대로 2억 9천만 달러의 손해배상 판결을 이끌어낸 환경 변호사였다. 2024년 대선 당시 그는 "글리포세이트는 미국 만성질환 유행의 유력한 원인 중 하나"라며 공개적으로 금지를 공약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장관이라는 권력의 자리에 앉은 직후, 트럼프가 글리포세이트 생산 확대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자, 그는 "국가 안보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며 이를 지지했다. 환경단체 EWG는 이를 두고 "그는 아이들의 건강을 권력의 자리와 맞바꿨다"고 직격했다.
이 구조는 현재진행형이다. 이 에세이가 쓰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 대법원은 오는 4월 27일 '몬산토 v. 더넬(Monsanto v. Durnell)' 사건의 구두 변론을 앞두고 있다. 쟁점은 연방 농약법이 州 법원의 피해 배상 청구권을 선점하는지 여부다. 만약 대법원이 몬산토 편을 든다면, 글리포세이트로 암에 걸린 시민들은 소송권 자체를 잃게 된다. 기업은 자사 제품의 위험을 숨겨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몬산토 지지 의견서를 제출했다. 가디언은 이 판결을 두고 "기업에 유리한 결과가 나올 경우, 암을 비롯한 질병의 위험이 아무런 책임 없이 은폐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법부가 판결로 길을 터주고, 보건 당국의 수장이 정책으로 방어해주는 이 완벽한 구조 속에서, 시민의 생명권은 설 자리를 잃었다. 법이 시민을 보호하지 않고 거대 기업의 방패가 된다면, 그 사회적 계약은 파기된 것이나 다름없다.
병든 제국의 황혼과 우리의 길
라오스 비엔티안 박물관의 폭격 지도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이란의 전쟁터를 지나 미국인들의 밥상 위까지 이어진다. 제국은 자신들이 여전히 강하다고 믿지만, 사실 그들은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 로마가 납 중독과 인플레이션으로 서서히 죽어갔듯, 미국은 자본 중독과 도덕적 파산으로 제국의 황혼을 맞이하고 있다.
이 병든 제국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다. 라오스 지도의 붉은 점들을 기억하고, 협상을 공포의 수단으로 삼는 행태에 저항하며, 생명을 파괴하는 자본의 논리가 법 위에 서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지속적인 성찰이다. 흥미로운 역설은, 미국이 적으로 규정한 러시아가 GMO와 농약에서 더 엄격한 기준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선과 악의 지도는 우리가 배운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제국의 황혼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생명과 상식의 시대가 열려야 함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병든 제국이 남긴 파편 위에서 우리가 세워야 할 것은 힘의 숭배가 아닌, 생명에 대한 경외와 상호 존중에 기반한 새로운 문명이다. 라오스의 아이들이 더 이상 불발탄을 두려워하지 않고, 글리포세이트의 독성으로부터 대지가 해방되며, 협상이 진정한 평화의 시작이 되는 세상. 그 길은 우리가 제국의 민낯을 똑바로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