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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사평론 - 정론직필을 찾아서 원문보기 글쓴이: 정론직필
[한겨레]
이솝은 고대 그리스의 노예였다. 어디서 나고, 어쩌다 노예가 되었으며,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선 설이 구구하다. 이솝은 수백편의 우화를 남겼지만 그가 글을 쓸 줄 알았는지는 불분명하다. 심한 말더듬이였다는 기록도 있다. 1세기께 쓰인 작자 미상의 <이솝로망스>에 따르면, 이솝은 난쟁이처럼 작은 키에 꼽추처럼 굽은 등, 사팔뜨기에 납작코를 한 외모로 어딜 가나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가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그의 우스꽝스러운 외모와 목소리만으로도 웃음을 터뜨렸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솝이 남긴 이야기는, 훗날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서 매우 탁월한 레토릭의 교본으로 예시된다.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도 이솝우화에서 큰 영감을 받아 그의 이야기를 자주 인용한 걸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의 저작을 읽어본 이는 극히 드물지만, ‘토끼와 거북이’ ‘양치기 소년’ ‘개미와 베짱이’ 같은 이솝우화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솝은 위대한 학자나 예술가는 아니었지만, 세상의 부조리와 인간의 우둔함에 대해 가장 평범하고 통속적인 언어로 가장 오랫동안 가장 폭넓게 대중과 소통해온 이야기꾼이다. 종종 궁금했다. 귀족도 학자도 아닌 이솝의 빛나는 통찰력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김동식의 <회색인간>을 보고 문득 이솝이 떠올랐다. 김동식의 소설은 짧고 표현은 단순하지만, 결코 ‘간단치 않다’. 그의 이야기는 쉽게 술술 읽히지만 결코 녹록지 않다. 동물이 등장하는 우화 대신, 공상과학적인 소재에 호러와 판타지가 섞여 있지만 ‘짧게 치고 길게 여운을 남기는’ 풍자가 이솝우화를 연상케 한다. 김동식(33)은 중학교를 중퇴하고 노동자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복날은 간다’는 아이디로 2016년 5월 온라인커뮤니티 ‘오늘의 유머’ 게시판에 처음 글을 올린 이후 지금까지 360여편의 단편소설을 썼고, 그중에서 추려낸 66편으로 지난해 12월말에 3권의 단행본을 출간했다. 출간과 동시에 그의 소설은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3월 현재 <회색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를 합해 총 4만4천부를 찍어냈다. 이달 말에 그의 소설 4권과 5권이 잇따라 출간될 예정이다.
장안의 화제가 된 그를 향해 ‘천재작가’ ‘괴물작가’라는 언론의 조명이 쏟아지고 있지만, ‘가방끈도 짧은데 소설을 썼네’ ‘공장노동자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다니’ 따위의 오만한 경탄이 행간에 담긴 것 같아 적잖이 불편했다. 김동식 출현의 의미를 개인의 천재성에서 찾거나 ‘혜성처럼 나타난’ 뜻밖의 돌발변수로 보는 건 타당한가? 김동식을 발굴하고 그의 책을 출판 기획한 김민섭(<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이미 가장 새로운 시대의 작가’이다. 작가 김동식의 탄생이 우리 시대에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작가처럼 보이는 게 창피해요
지난 8일 서울 성수동에서 김동식을 만났다. 그가 일하던 공장은 영세 제조업체들이 밀집한 공단의 3층짜리 건물 지하에 있었다. 공장 쪽의 사전 허락을 받고 예정된 방문이었지만, 김동식은 ‘동료들 작업에 방해가 되면 안 된다’며 오래 머물지 말 것을 내게 거듭 당부했다. 십여평 남짓한 공간, 대여섯명의 직원이 일하는 공장은 의외로 고즈넉했다. 전기톱이나 프레스 소리로 떠들썩한 바깥과는 딴판이었다. 금속 단추나 버클, 구두 장식물과 같은 금속 액세서리를 만드는 곳이라고 했다.
“저 친구는 원체 말이 없고 얌전했어요. 술·담배도 안 하지, 친구도 없지. 차를 타면 멀미한다고 어디 여행도 안 다니지….” 그의 오랜 직장 동료였던 김정빈(48)씨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동료들이 휴식시간에 담배를 피우거나 잡담을 하러 공장 밖으로 나갈 때도 김동식은 혼자 작업대 앞에 앉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곤 했다면서, 김동식이 작가가 된 게 자랑스럽고 뿌듯하다고 했다.
김동식이 일하던 작업대에는 새로 온 신입이 일을 하고 있었다. 고무로 만들어진 ‘가다’(거푸집) 두 짝을 위아래로 수평을 맞춰 회전판에 걸고, 가운데 구멍으로 맷돌에 콩을 넣듯 뜨거운 아연용액을 국자로 퍼서 넣는다. 가다 안에 그려진 홈을 타고 아연이 들어가 식으면 바로 꺼내서 제품을 뜯어내고 다시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김동식은 여기서 꼬박 10년을 일하고 2016년 11월 퇴사했다.
―10년 새 이 동네 엄청 바뀌었죠? 요즘 카페나 레스토랑이 엄청 많아져서 핫 플레이스로 뜨고 있어요.
“저는 뭐… 잘 몰라요.”
―여기서 10년 넘게 지냈는데 모르세요? 집은 어디세요?
“집도 이 부근이에요. 건너편 양꼬치 골목. 근데 집이랑 공장만 왔다 갔다 했지, 주변을 둘러본 적이 없어서요….”
그는 부근 카페에 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마침 내 사무실이 가까워서 그리 가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공장에서 차로 5분 남짓한 짧은 거리인데도, 그는 멀미가 나는지 불편한 기색이었다. 내 사무실이 있는 건물은 청년창업자들의 코워킹 스페이스로 쓰인다. 노트북 하나씩 앞에 두고 작업하는 젊은이들을 둘러보며, 그가 엉거주춤 긴 우산을 내려놓고 앉았다.
―집도 가까운데 글 쓸 때 여기 와서 작업하시는 건 어때요?
“저, 노트북 없어요.”
―아, 데스크톱으로 일하세요?
“그냥 집에서만 일하니까요.”
―노트북 들고 카페나 도서관 같은 데서 작업하는 건 싫으세요?
“제가 좀…. 글 잘 쓰는 작가도 아닌데, 글 쓴다고 유난떠는 걸로 보일까봐 좀 창피해요.”
―하하하, 작가만 노트북 쓰나요? 저기 보세요, 노트북으로 숙제를 하거나 이메일 하는 친구들도 있잖아요.
“그래요? 잘 몰랐어요.”
초면에 숫기가 없어서일까, 뻥 뚫린 카페 공간이 체질에 맞지 않아서일까, 그는 충분히 편안한 안색이 아니었다. 위층의 작은 회의실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별 장식 없는, 밀폐된 작은 공간이 그의 마음에 들길 바라면서.
‘오늘의 유머’ 공포게시판으로 등단한 작가
―요즘 작가 사인회나 저자 강연 많이 다니시죠?
“다니는데요, 나중에 사진 보면 계속 고개 숙이고 있더라고요. 사람들이랑 눈도 못 마주치고. 너무 어색해요.”
―청중들이 제일 많이 묻는 게 뭐예요?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냐고요….”
―저도 그게 제일 궁금했어요. 어디서 얻으세요?
“그냥 일상생활에서요. 가장 많이 얻는 창고는 인터넷이고요. 흥미로운 사건이 일어날 때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게 재미있어요.”
김동식은 사건 자체의 본말보다는 “그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에 주목한다고 했다. 뉴스는 주로 인터넷으로 접하지만, 일부러 뉴스를 찾아 들어가 읽지는 않고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이슈들을 클릭해 본다. 사람들이 분개하거나 성원하던 이슈가 하루아침에 뒤바뀌기도, 사라지기도 하는 걸 보는 게 그는 흥미롭다. 그의 소설엔 요괴나 외계인, 저승사자 같은 기괴한 존재들이 등장하지만, 정작 무서운 것은 괴물이나 요괴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그는 말한다.
―어떤 사람이 괴물보다 무서워요?
“아무렇지도 않게 남한테 상처 주는 사람, 개인의 작은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 피해는 신경 안 쓰는 사람, 자신이 받은 엄청 작은 피해에도 격분하고 못 견디는 사람들이 무섭죠.”
―특별히 공포물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있나요?
“‘오늘의 유머’(약칭하여 ‘오유’) 공포게시판에 글을 올리려니까요. 게시판 자체가 공포물만 올릴 수 있는 곳이었어요. 오유에 창작한 글을 올릴 수 있는 데는 ‘유머’하고 ‘공포’ 두 군데밖에 없을 거예요. 유머는 제가 잘 못하고 공포는 제가 즐겨 읽던 곳이라서.”
―근데 왜 오유만 고집하신 거예요? 글을 올릴 만한 다른 사이트들도 많잖아요.
“핸드폰 사면 처음부터 깔아주는 앱이 있잖아요. 그중에 ‘오늘의 유머’라는 아이콘이 뜨더라고요. 유머 사이트구나 해서 들어갔다가 공포게시판을 보게 되고, 남들이 올린 글들 읽다가 저도 쓰게 된 거죠.”
글쓰기를 취미로 삼은 적도 없었다. 어릴 땐 일기 쓰는 것도 싫어해서 마지못해 몰아서 쓴 일기 숙제를 제출하곤 했다. 지금까지 읽은 책을 다 합해도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가나 소설도 없다. 문학에 대한 선망이나 경외심도 없는 김동식에게, 오유의 공포게시판은 그저 ‘재미있는 글’을 볼 수 있는 쉼터였다. 처음엔 공포게시판에 남들이 올리는 글을 읽고 응원 댓글을 달다가, 댓글로 이어쓰기를 하는 ‘릴레이소설’에도 몇 번 끼어보면서 ‘이야기 만들기’에 점차 관심이 생겼다. 무작정 쓴 첫 소설의 제목은 ‘이미지메이킹’이었는데 써놓고 보니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라서, 포털사이트에서 ‘글쓰는 법’을 검색해서 조금 고쳐서 올린 게 2016년 5월이었다. 그 뒤로 지금까지 2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 366편 이상을 썼다. 이틀이나 사흘에 1편꼴로 쓴 셈이다.
우연히 접한 ‘오유’ 공포게시판
글 읽고 댓글 달다 글쓰기 시작
‘새로운 댓글’ 받고 싶은 마음에
2년 동안 단편소설 366편 써와
아이디어 얻는 창고는 인터넷
중1때 ‘가기 싫던’ 학교 그만둬
시급 1900원 알바…가난했지만
불행하거나 외롭다 느낀 적 없어
2016년 10년간 일한 공장 퇴사
쉬면서 하고 싶었던 건 “늦잠”
―공장에서 종일 일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다작을 할 수 있었죠?
“댓글 달아주시는 게 너무 좋아서요. 한번 해보고 나니까 새로운 댓글을 받고 싶은 마음에… 그것에 ‘중독’돼서 쓴 거죠. 게시판 특성상 다른 글들 올라오면 뒤로 밀리니까, 최소한 3일에 한번씩은 올리자 스스로 정해놓고 썼어요.”
―댓글 받는 게 그렇게 중요했어요? 댓글 많다고 ‘밥이 생기거나 떡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조회수 높다고 광고비를 받는 것도 아니잖아요.
“댓글 받는 게 돈보다 중요한 것 같은데요. 댓글이 주는 당장의 기쁨이나 감동을 돈이 대신해 줄 수 있나요? 사람들의 칭찬도 받고 관심도 받고…. 그런 건 태어나서 처음 느껴본 기쁨이에요. 오유에선 욕이나 반말을 못 쓰게 되어 있어서 대개 좋은 격려성 댓글이 달리기도 했지만,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해주는 댓글도 좋았고, ‘맞춤법이 틀렸다’고 알려주시는 댓글도 좋았어요. 지적받으면서 하나하나 배우고 고쳤죠.”
그에겐 인터넷 이용자가 독자이자 집단 편집자이고 동료작가였다. 특별한 낙도 친구도 없는 그에게 온라인게시판의 댓글은 가장 중요한 세상과의 소통 창구이자 글쓰기 학교였다.
―신춘문예나 문예지에 응모할 생각은 안 하셨나요?
“그 글로 뭘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사람들은 자유게시판에 ‘오늘 뭐 먹었고’ ‘무슨 일 있었고’ 하는 이야길 쓰지만 그걸 신춘문예에 내진 않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죠.”
소설가로 등단한 과정이나 소설작법에서 김동식은 이전의 문인과 판이하게 다르다. 어려서부터 글쓰기에 두각을 드러내서 백일장에서 줄줄이 수상하고, 도서관의 책을 다 읽어치우고, 틈틈이 습작했다 불태우고, 신춘문예나 평론가의 추천으로 등단하는 ‘예사로운’ 문학청년이 아니다. 김동식은 스토리를 구상할 때도 그에게 익숙한 영화나 게임처럼 영상을 먼저 떠올리고 그걸 문자로 옮긴다. 글이 안 풀릴 땐 원고지를 구기거나 머리를 쥐어뜯는 대신, 다른 스토리의 새로운 글을 쓴다. 막히면 다시 멈추고 원래 쓰던 글로 돌아온다. 그가 글을 쓰면서 얻는 가장 큰 대가는 다른 이들의 관심어린 댓글이다. 그게 문학이든 아니든, 그게 작가라 불릴 만한 일이든 아니든, 그에겐 대수롭지 않다.
기계 같은 노동을 견디게 한 이어폰처럼
김동식의 소설은 게시판을 읽는 독자의 취향에 맞추어 원고지 30장 내외의 짧은 글들이지만 기발한 상상력과 반전으로 문학적 클리셰를 훌쩍 뛰어넘는 ‘이야기의 원형질’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그의 소설 ‘사망공동체’의 줄거리는 이런 식이다.
어느 날 저승 대표가 인류를 찾아왔다. 인류의 저출산 고령화로 저승 인구가 부족해져서 저승의 운영이 어려워졌으니 불가피하게 ‘사망자 두 배 정책’을 실시하겠다고 했다. 한 명이 죽으면 지구 어딘가에 있는 영혼의 짝 한 명도 동시에 죽게 될 거라고. 공포가 현실이 되면서 인류사회에 큰 혼돈이 왔다. 사형집행이 중지되었고 전쟁이 중단되었다. 누군가 죽으면 자기가 따라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생긴 변화였다. 청년자살, 학교폭력, 노인복지 해결에 재원이 투입되고 제3세계 지원에 엄청난 투자가 행해졌다. 누군가의 희생과 죽음은 나의 죽음이니까. 사망률이 더 낮아지면서 저승 대표는 ‘사망자 세 배 정책’을 실시했지만 인류는 노화방지약까지 개발해 함께 나눠 먹으며 안간힘을 썼다. 세 번째 다시 찾아온 저승 대표는 밝은 목소리로 선언한다. 노화방지제 덕분에 저승에서도 노화하지 않은 노동인구가 많아졌으니 그간의 정책을 폐기하고 이제 원래대로 되돌리겠다고….
―첫 소설을 쓴 지 6개월 만인 2016년 11월에 오랫동안 다니던 공장을 그만뒀어요. 소설에 전념하기 위해선가요?
“아녜요. 공장-집, 집-공장을 반복하기를 10년 동안 하고 나니 20대가 다 가버렸어요. 기계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좀 지치더라고요. 1년만 좀 쉬면서 못해 본 것도 해봐야지, 작정하고 오래전부터 계획한 일이었어요.”
―쉬면서 제일 하고 싶었던 게 뭔데요?
“늦잠 자는 거요.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의 대답에 난 피식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는 웃지 않았다. 그에겐 절실한 소망이었다.
―이젠 작가 인세로 살 만하게 된 것 아닌가요?
“지금까지 3800만원이 들어왔어요. 태어나서 이렇게 큰돈을 한 번에 받아본 적이 없어요. 앞으로 거의 2년은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번 책을 기획한 김민섭 평론가가 ‘올해 소망이 김동식 작가가 2층 전세로 이사 가는 걸 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던데, 그 소망은 이뤄졌나요?
“아뇨. 아직…. 지금 반지하방에서 6~7년째 살고 있는데, 특별히 불편하지 않아요.”
그의 삶은 가난하고 고단했으나 그는 특별히 자신이 불행하거나 외롭다고 느낀 적은 없다고 했다. 경기도 성남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님이 이혼한 뒤 어머니를 따라 부산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열여섯이 될 때까지 성장했다. 야단맞을 일밖에 없는 학교가 싫어 학교 가는 시간에 옥상에 숨어 한나절을 보내거나 피시방에서 노닥거리다가 결국 중1 때 학교를 그만두고 말았지만 특별히 후회도 없었다. 시급 1900원짜리 피시방 알바로 천원에 세 봉지 하는 건빵으로 사흘씩 견디며 생활할 때도 인생이 절망스럽다고 투정을 부리거나 사고를 친 적은 없다. 서울로 상경해서 안정된 직장을 얻은 이후 중졸, 고졸 검정고시를 어렵지 않게 통과했지만, 학벌을 보완해서 뭘 해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더 큰 것을 성취해 보겠다는 욕심도 없었다. 그저 뭔가 삶을 견디게 하는 소박한 위안거리가 필요했을 뿐.
“공장서 하루 만개 물건 뽑아도
누가 어떻게 쓰는지 알 수 없어
왜 하는지 모른 채 월급 받는 일
글 쓰면 사람들에게 영향 미쳐
그 모습 보여, 너무 새롭고 좋다”
다양한 글 쓰려고 노력하지만
잔인하거나 성적 묘사엔 거부감
“이야깃거리 떨어질 때 되면
일하던 공장으로 돌아가야죠
어떻게 하든 굶어죽진 않더라”
―소설 ‘회색인간’이나 ‘어디까지 인간으로 볼 것인가’를 보면, 인간이 ‘노래하는 존재’ ‘예술 하는 존재’로서의 자기 발견을 통해서 비로소 인간 고유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이건 자기 경험에서 나온 얘기겠지요?
“모르겠어요. 어쨌든, 가장 큰 가치가 물질적인 가치는 아닌 것 같아요. 물질적인 가치가 없는데 사람들은 왜 음악을 즐길까요? 아까 공장에서 다들 이어폰 꽂고 있는 것 보셨지요? 하루에 국자질만 600~700번을 반복하는데, 그 지루한 일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건, 이어폰 꽂고 음악을 듣거나 라디오를 듣는 거였거든요. 작품에 나오는 기계 같은 삶을 견디게 해주는 힘은 음악이고 문학이고 그런 거겠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어요.”
―작가라는 호칭이 어색하다고 하셨는데, 어쨌든 이제 전업작가가 되신 것 아녜요? 글 쓰는 게 왜 좋으세요?
“뭔가 제가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끼친다는 점 때문일까요? 그게 단순 재미든 뭐든 말이에요. 공장에서 제가 하루에 만개, 이만개씩 물건을 뽑아도 그걸 내가 왜 뽑고 있는지, 이게 어디로 누구한테 가서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냥 월급 받자고 하는 일이지, 왜 하느냐, 왜 사느냐 하는 게 없죠. 근데 글은, 제가 쓰면 그게 어떤 사람들한테 가서 재밌어하고 즐거워한다, 그게 보여요. 그 과정이 너무 새롭고 좋은 거예요.”
―앞으론 직업작가로 사실 건가요?
“더 이상 댓글이 달리지 않을 때가 되면, 이야깃거리가 떨어질 때가 되면 원래 일하던 공장으로 돌아가야죠.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든가, 어떻게 하든 사람이 굶어죽진 않더라고요.(웃음)”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
―작가님 소설을 보면서 전 이솝우화가 떠올랐어요. 짧은 글에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직관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죠.
“우화 같단 얘기 많이 들었어요. 일부러 그렇게 어떤 메시지나 주제를 주자는 생각으로 쓰진 않았고요. ‘이런 상황을 보면 뭐가 맞는지 아시겠죠? 뭐가 잘못됐는지 아시겠죠?’ 뭐 이런 느낌으로 쓴 건 사실이에요. 다 아시는 것들이니까. 요즘 상식이 없어서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다 알면서 나쁜 일을 하는 거지.”
―그러게요. 요즘 미투운동을 통해서 문화예술계의 소위 거장으로 불리던 분들의 치부가 드러나서 큰 충격을 주고 있어요. 예술이란 게,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부조리한 권력에서 인간을 구원해 주는 희망의 끈이라고 생각하는데, 정작 그런 예술을 담당하는 창작자들에게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질까요?
“모르겠어요. (난감한 표정으로 침묵) 왜 그런 문제가 벌어지는 거죠? (씁쓸한 웃음) 좋은 글 쓰시는 분들이 뭐가 나쁜 건지 당연히 아시잖아요. 근데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써놓고 왜 그걸 안 지킬까요? 원래 인간이 다 그럴 수밖에 없는가 싶기도 하고, 뭐 작가도 사람인가보다 싶기도 하지만….”
―독자들의 댓글과 반응이 글 쓰는 데 가장 큰 동력이 되었다고 하셨는데, 직업적인 문인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인터넷 같은 데서 익명의 대중들이 하는 얘기에는 별로 개의치 않고, 전문가, 평론가들의 평가에는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있어요. 작가님은 어떠세요?
“저는 뭐 굳이 나누자면 숫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온라인 평가가 절대다수잖아요. 한 명의 평가보다는 10명의 평가가 좋고 100명, 1000명, 1만명이 더 좋죠. 사실 뭐가 옳은 평가냐를 판정할 순 없지만 더 많은 사람이 좋아해준다면 그쪽이 낫지 않을까요? 소수의 인정보다는 다수가 그냥 좋아하는 것, 제겐 그게 더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작가님의 작품에 대해선 기성문단이나 평론가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많이 접해보질 못했어요. 그나마 접해 본 건, 제 책을 낸 출판사와 관련된 분들인데, 제가 가진 여러 가지 단점들, 문장이나 구성, 개연성에 한계가 많다는 걸 지적해 주시지만 대체로 ‘신박하다’(참신하고 신선하다는 인터넷 조어), ‘새롭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죠. 근데 그런 좋은 평가도 사실 제 배경과 관련이 있을 거예요. 글을 안 써본 사람이고 그러니까…. 제 배경을 감안해서 좋게 얘기하는 거지, 절 진지하게 작가로 생각해주는 평가나 그런 건 아직 받아보지 못했어요.”
―다수의 독자들에게 재미와 감동으로 다가갈 때 행복하다고 하셨는데, 그렇다고 무작정 대중 취향으로 가는 건 아니잖아요? 스스로 설정한 최소한의 원칙이나 경계가 있나요?
“경계는 없고요. 최대한 다양하게 써보려고 노력해요. 가급적 피하는 건 있는데요.”
―뭔데요?
“잔인한 묘사. 누가 죽었다고 말로 표현하는 거랑, 어디가 잘리고 피가 튀고 그런 잔인한 묘사를 하는 건 좀 다르잖아요. 그런 건 제가 안 좋아하는 거라 피하고요. 너무 성적인 묘사에도 약간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요.”
―호러물에서 잔인한 장면이나 성적인 묘사가 생생할수록 사람들이 재밌어하는 것 아니에요? 제가 잘못 알고 있나요?
“글쎄요. 일단 제가 재밌지 않으니까요. 꼭 자극적이어야 재밌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여운이 남는다든지, 본 적 없는 신박한 얘기에서 오는 재미를 전 더 좋아하거든요.”
―어떤 문인들은 문학이 자신의 운명이고 소명이라고 해요. 작가님한테 문학이란 뭔가요?
“그분들은 확고한 목표가 있어서 재밌게 사실 것 같아요. (웃음) 전 좀 재미없게 살았고요. 저한테 문학은 삶의 즐거움이나 재미를 줄 수 있는 거예요. 문학이 특별해지는 것보다는 대중적으로 가는 게 전 맞다고 보는데, 제가 문학에 대해서 뭘 논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제 바람은 그저 누군가 제 글을 봐주시는 것뿐이지, 작가가 되는 게 꿈은 아니에요. 요즘은 에스엔에스(SNS) 같은 데서 다들 자기 글을 쓰니까. 저야 뭐 거기서 조금 더 발전한 수준이죠.”
2002년 주류 언론의 예상을 뒤엎고 노사모의 돌풍 속에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한 일간지는 충격 속에서 이렇게 제목을 뽑았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다.” 2018년 봄, 문단과 언론은 지금 “인터넷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김동식을 ‘배출’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선 이 순간에도 수많은 작가와 익명의 독자들이 세상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나가고 있다.
http://v.media.daum.net/v/20180316173615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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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회색 인간
게시물ID : humorbest_1263059
작성자 : 복날은간다★ (가입일자:2011-12-17 방문횟수:828)
추천 : 85
조회수 : 5171
IP : 123.254.***.182
댓글 : 7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6/06/09 02:19:38
원글작성시간 : 2016/06/09 01:12:59
http://todayhumor.com/?humorbest_1263059
[단편] 회색 인간
인간이란 존재가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그들에게 있어 '문화'란?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다.
어느날, 한 대도시에서 '만명'의 사람들이 하룻밤 새에 증발하듯 사라져 버렸다. 땅 속 세상, '지저 세계' 인간들의 소행이었다.
갑작스러운 납치로 혼란에 빠진 만명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들은 말했다.
[ 보시다시피 우리들은 지저세계의 인간들이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지상인류를 한순간에 멸망시킬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평화를 사랑한다. ]
그 말에 참지 못하고 누군가 외쳤다.
" 그럼 왜 우리를 납치한 겁니까?! "
[ 지저 세계의 용량이 꽉 차버렸다. 우리가 살아갈 땅을 너희 손으로 파줘야겠다. ]
" 뭐야?! 왜 우리가 네놈들 땅을 파줘야 하는데?! "
[ 우리가 지상으로 진출하지 않는 대가다. ]
" 그게 무슨?! "
[ 기뻐해라. 너희들이 아니었다면 지상인류는 모두 멸망했을 것이다. 너희들의 노동력으로 인해 지상인류가 구원받게 된 것이다. 너희들은 지상인류들의 '영웅'들이다. ]
" 무슨 개소리야!! "
당연히 사람들은 반발했지만, 간단히 묵살당했다.
지저인간들이 잠깐 허공에 '웅얼'거리는 것 만으로, 만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머리를 감싸안고 주저앉아야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마치 강철 압축기로 머리를 찍어누르는 듯한 고통에 신음했다.
[ 지금 이처럼 너희들이 겪었듯이,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너희 지상의 인류를 간단히 멸망시킬 수도 있다. 그러니 너희들은 인류를 위해 땅을 파라. 너희들이 '도시 하나'만큼의 땅을 파내면, 그때 너희들을 무사히 지상으로 돌려보내 주겠다. ]
만명의 사람들은 그들을 위해 땅을 파야했다.
처음, 사람들은 이것이 꿈이길 바랬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도피했다. 혹시, 지상의 인간들이 우리를 구해주러 오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꿈꾸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헛된 기대는 버렸다. 대신, 반기를 꿈꿨다. 분노의 힘을 모아 저들을 죽여버리고 탈출하는 것을 꿈꿨다.
하지만 곧 자신들,'지상 인류'의 무력함만을 맛보게 되었다.
반기를 꿈꾸고 달려든 사람들은 지저인간의 손끝조자 건드려보지 못하고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나갔기 때문이다.
시간이 더 흐르자 사람들은 체념의 단계로 들어섰다. 강제 노동을 받아들였고, 인간 같지 않은 이 삶을 받아들였다.
그렇다. 말 그대로 정말로, '인간' 같지 않은 삶이었다.
지저인간들이 사람들에게 준 것이라곤 땅을 팔 '곡괭이' 뿐이었다.
숙소가 없어, 하루종일 일하다가 아무 곳에서나 잠을 자야했다. 화장실이 없어 아무 곳에서나 볼일을 봐야 했다. 몸을 씻을 물은 커녕 마실 물조차 부족해 오줌을 받아마셔야 했다.
생필품들은 꿈같은 소리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다수 사람들은 아무것도 가진게 없이 발가벗고 다녔다. 그래도 아무도 그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곳에선 성욕조차도 사치였다.
그 무엇보다 형편없었던 것은 '먹을 것' 이었다.
지저인간들이 제공한 음식은 진흙 맛이 나는 말라비틀어진 빵이었다. 사실 맛은 상관 없었다. 부족한 건 양이었다.
그들이 제공한 음식은 너무나도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사람들은 단 한 번도 배가 불러본 적이 없었고, 단 한순간도 배가 고프지 않은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항상 지쳐있었고, 항상 배고파 있었다.
그런 사람들 사이엔 웃음이 없었다. 눈물도 없었다. 분노도 없었다. 사랑도 없었고, 여유도 없었고, 서로를 향한 동정도 없었으며, 대화를 나눌 기력도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마치, '회색'이 된 듯했다.
그것이 흩날리는 돌가루 때문인지, 암울한 현실 때문인지 몰라도, 사람들은 무표정한 '회색 얼굴'로 하루하루를 억지로 살아가고 있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다쳐서 죽은 사람도 있었고, 병들어 죽은 사람도 있었고, 자살을 택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많은 죽음은 '배고픔'에서 생겼다.
배가고파 굶어죽고, 진흙 빵 한쪼가리를 두고 싸우다가 죽고, 어떤 자는 원없이 배부르게 '흙'을 퍼 먹다가 죽은 자도 있었다.
또 한번은 한 사내가, 다른 사내를 곡괭이로 찍어죽인 일이 있었다. 사내는 건조하게 말했다.
" 이놈이 내 '곡괭이 자루'를 훔쳐 먹었다. "
그 말에 모든 사람들은 수긍하며 관심을 끊었다.
'곡괭이 자루'.
지저인간들은 사람들에게 각각 한자루의 곡괭이를 지급했다.
배가 너무나 고팠던 사람들은, 이곳에서 유일하게 나무로 되어있는 곡괭이의 '자루' 부분을 씹어먹었다.
그것조차 쉽게 먹지 않았다. 아까워서. 정말로 아까워서. 정말 배가 고파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만 아껴서 조금씩 씹어먹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곡괭이 자루는 모두 길이가 달랐다. 한 손아귀만큼만 남은 사람도 있었고, 두 손아귀만 남은 사람도 있었고...
그런 소중한 곡괭이 자루를, 잠을 잘 때도 품에 품고 자는 '곡괭이 자루'를 훔쳐먹었다니, 맞아 죽어도 쌀 만했던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이 죽고 죽어, 몇년이 흘렀을지 모를 때, 만명이던 사람은 절반 아래로 줄어있었다. 그즈음 사람들 사이엔 암묵적인 룰이 정해졌다.
땅을 많이 판 사람이 우선적으로 빵을 먹는다!
그것은 바로 '희망'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놈의 '희망'.
지독한 '희망'이었다. '도시 하나'를 파면 집으로 돌아 갈 수 있다는 그 '희망'.
'도시 하나'를 파낼 수 있을까? 상관 없었다.
'지저인간'들이 약속을 지킬까? 상관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땅 속에서 그들이 버틸 수 있는건 그 악마같은 '희망' 하나 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땅을 팠다. 사람이 죽어나가도 땅을 팠다. 몸이 후들거려도 죽기 직전까지 땅을 팠다.
나중에 와서는 그 희망이란 것도 너무나 희미하여 망각하게 되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땅을 팠다. 이 곳에서 할 수 있는게 그것 뿐이라는 듯이.
인간이란 존재가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어떻게 될까? 인간은 아무것도 없어진다. 그저 배고픔을 느끼는 몸뚱아리 하나만 남는다.
이곳의 인간들에게 '삶'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어나면 땅을 파고, 하루종일 배고파 하고, 지치면 잠을 자고, 다시 일어나면 땅을 팠다.
회색 인간들의 입은 말을 할 줄도 모르는 것 같았고, 귀는 듣지도 못하는 듯 했고, 눈의 역활은 그저 죽어있는 것 뿐인 듯 했다.
인간들을 '살아있는 송장'이라고 표현하기도 아쉬웠다. 이곳을 '무의미의 지옥'이라고 부르기도 아쉬웠다.
그런 이 곳에서, 어느날 한 여인이 따귀를 맞았다.
[ 짝! ]
한 사내가 한 여인의 뺨을 때린 것이다. 힐끔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사내가 말했다.
" 이 여자가 노래를 불렀소. "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다니? 이곳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사람들은 어이가 없었다. 미친 여자가 분명했다. 사내도 그래서 뺨을 때렸으리라.
한데, 더 어이가 없었던 것은, 뺨을 맞고 쓰러진 여자가 얼마 뒤 일어나 다시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
이번엔 어디선가 '돌'이 날아왔다.
" ~~ ~~~~ ~~, 꺅! "
짦은 비명과 함께 여인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러나 누구도 동정하지 않았고,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저 회색 얼굴로 땅을 팠을 뿐이다.
그날 또 한켠에선, 한 남자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몰매를 맞았다.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 이 새끼가, 벽에다 돌맹이로 그림낙서를 그리고 있었어! "
그는 지상에서 '화가'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화가는 필요가 없었다.
땅을 파기도 모자랄 그 힘으로, 그런 쓸떼없는 짓거리를 하다니? 사람들의 분노는 당연했다.
분노한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은 그는, 쓰러져 몸을 가누지 못했다. 그것은 곧 죽음이었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서로를 돌봐주지 않았다. 부상을 당한자에게 빵을 나누지 않았다. 쓰러지면 그걸로 끝이었다.
지상에서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든,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든, 소설을 쓰던 사람이든, 이곳에서 예술은 필요가 없었다.
인간이란 존재가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인간들에게 있어 '예술'은?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다.
지칠대로 지친 이곳의 '회색 인간'들에겐 땅을 팔 수 있는 회색 몸뚱아리만이 가진 전부였고, 남들도 다 그래야만 했다.
한데, 그 여인은 미친것이 틀림없었다.
몸을 가누지 못해 바닥에 주저앉아 굶어죽어가던 그 여인이, 또다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 ~~~ ~~ ~~~~ ~~~ ~~~~~ "
당연히 이번에도 어디선가 돌이 날아왔다.
" ~~ 꺅! "
외마디 비명과 함께 여인은 또다시 쓰러졌다. 하지만 얼마 뒤.
" ~~ ~~~ ~~~~ ~~~ "
여인은 또다시 노래를 불렀다. 또다시 돌맹이 들이 날아왔고, 여인은 노래를 멈추었다.
하지만 여인은 또다시 노래를 불렀다.
" ~~~ ~~ ~~~~ ~~~ ~~~~~ "
항상 지쳐있는 사람들은 여인의 뺨을 때릴 힘도, 돌을 던질 힘도 아까웠다. 사람들은 그냥 저 미친 여인에게서 관심을 끊었다.
여인은 상처와 배고픔으로 죽어가면서도 한번씩 노래를 불렀다.
" ~~~ ~~ ~~~~ ~~~ ~~~~~ ~~~~~ ~~ ~~~~ "
여인은-, 이제 죽었나 싶으면 노래를 불렀고, 또 죽어나 싶었더니, 어쩔 땐 한시간씩도 노래를 불렀다.
여인의 생명은 끈질겨서-, 하루 이틀 삼일. 여인은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다 죽겠다는 듯이,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이곳에서의 생활 몇년만에 정말로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누군가 여인에게 '빵'을 가져다 준 것이다.
처음이었다. 땅을 파지 않는 이에게 먹을 걸 나누는 행위는 이곳에서 정말로 처음이었다.
더 신기한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사람들은 조금은 놀란 눈으로 그 모습을 봤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인은 허겁지겁 빵을 먹었다. 가져다 준 누군가는 여인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 빵을 먹고 잠깐을 쉰 여인은, 알아서 노래를 시작했다.
" ~~~ ~~ ~~~~ ~~~ ~~~~~ ~~~~~ ~~~ "
쉬다가도, 노래를 불렀고. 지쳐 쉬다가도 또 한시간씩 노래를 불렀다.
다음날도 누군가가 여인에게 빵을 가져다 주었다. 여인은 또 노래를 불렀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여인은 노래를 불렀고, 빵을 먹었다.
신기한 일은 또 있었다. 한 노인이, 쓰러진 '화가'에게 자기 몫의 '빵'을 가져다 준 것이다.
사람들은 놀랐다. '자기 몫'의 음식을 남에게 주는 행위는 이곳에선 도저히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또 사람들은 화가났다. 쓰러진 사람에게 먹을걸 가져다 주는건 암묵적으로 금지였었다.
사람들은 당장이라도 화를 '표출' 할 준비를 하며, 이해 할 수 없는 눈초리로 노인을 쳐다보았다.
" 자네 지상에서 화가였나? "
" 예 어르신... "
" 그럼 자네는, 이 안의 모습을 그릴 수 있나? "
" 예 그릴 수 있습니다... "
" 정말로 그릴 수 있나? 우리가 어떻게 이 곳에서 살아왔는지 그릴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이곳에서 어떤 대우를 받아왔는지, 어떻게 죽어나갔는지 그릴 수 있단 말인가? 굶어죽은 이들을 그릴 수 있단 말이야? 반항하다 머리가 터져나간 그들을 그릴 수 있단 말이야? 이, 손톱이 뜯겨져 나간 이 손을 그릴 수 있는가? 한쪽 발목을 잃은 저자를 그릴 수 있는가? 배고파 앙상하게 뼈만 남은 저들의 몸을 그릴 수 있단 말인가? "
" ........ "
" 예! 저는 그릴 수 있습니다! 저는, 눈 감고도 이 지옥같은 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그려낼 수 있습니다! "
" 그럼 그리게. 자네는, 그림을 그리게. "
배고파 앙상하게 뼈만남은 그 사람들은, 노인의 행동을 말리지 않았다. 화가가 벽에 곡괭이 질이 아닌, 그림낙서를 하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그리고 한쪽에서. 말라비틀어져 죽음만을 기다리던 한 청년이, 날만 남은 곡괭이를 딛고 억지로 일어나 중얼거렸다.
" 저는 소설가 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써낼 수 있습니다...저는 소설가 입니다...저는 이곳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써낼 수 있습니다...저는 소설가 입니다... "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무시했다. 죽어가는 이의 요행으로 바라보았다. 한데 그 무관심들 속에서, 한 중년 여인이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 니가 소설가라고?! 글을 써낼 수 있다고?! 내가 지금, 얼마나 배가 고픈지 니가 써낼 수 있다고?! "
여인의 물음은 분노에 가까웠다. 청년은 곧 죽을 것 같은 눈으로 여인의 얼굴을 확인하곤 중얼거렸다.
" [그녀는 정말로 배가 고팠다. 정말 정말로 배가 고팠다. 그녀가 얼마나 배가 고팠냐면, 그녀의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을 때, 그녀는 아들의 죽음을 숨기고 싶었다. '지저 인간'들이 아들의 시체를 회수해가기 전, 아들의 손가락 하나라도 뜯어먹고 싶었다. 아들의 귓볼 한입이라도 베어먹고 싶었다. 그녀는 그정도로 배가 고팠다. 정말, 정말로 그녀는 배가 고팠다... ] "
" ... "
얼핏, 착각이겠지만- 중년여인의 얼굴에 '미소'같은게 걸렸다.
" 넌 살아남아. 우리 모두가 죽더라도 너는 꼭 살아남아. 꼭 살아남아서 우리의 이야기를 세상에 남겨줘. 모두가 죽더라도, 너는 꼭 살아남아. "
여인은 품에서 자기 몫의 '진흙 빵' 한쪽을 나누어 청년에게 건냈다.
또다시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곳에서 먹을 걸 남과 나눈다는 것은 정말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청년은 허겁지겁 한입에 빵을 삼켜먹었다.
중년여인이 떠나고, 또다시 다른 여인 하나가 청년을 찾아와 다짜고짜 말을 시작했다.
" 내 이름은 글로리아입니다. 내 남편은 지저인간들에게 반항하다 머리가 터져 죽었습니다. 내 딸은 자살했습니다. 내 아들은 굶어죽었습니다. 남편의 이름은 콜슨 입니다. 지상에서는 훌륭한 소방관이었습니다. 항상 사람들을 돕고자 했습니다. 제 딸의 이름은 마리아 입니다. 마음이 약한 아이였습니다. 딸은 죽기 전 피자가 먹고싶다며 제 손을 잡았습니다. "
담담히 말을 잇는 여인의 눈에서 어느새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 내 아들의 이름은 톰입니다. 톰의 꿈은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배가 너무 고파 흙을 먹었다고 고백했던 톰에게 나는 빵 한조각도 줄 수 없었습니다. 톰이 좋아하던. . . "
여인은 아무렇게나 말을 마치고, 품속에서 소중하게 품고있던 낡은 '진흙 빵' 한덩이를 청년의 손에 꼭 쥐어주었다. 그리곤 아무런 부탁도 없이 돌아섰다.
청년은 손에 쥔 진흙 빵을 쳐다보며, 쉽사리 먹질 못했다. 그대신 잊을새라 끊임없이 말을 되뇌었다.
" 내 이름은 글로리아 입니다. 내 남편은 지저인간들에게 반항하다 머리가 터져 죽었습니다. 내 딸은 자살했습니다. . . . . . ."
그날 이후, 사람들은 조금씩 변해갔다.
이젠 누군가 노래를 불러도 돌이 날아오지 않았다. 흥얼거리는 이들마저 있었다.
벽에 그림낙서를 해도 화를 내지 않았다. 몇몇 이들은 이곳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눈 감고도 그려 낼 수 있도록 벽에다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몇몇 이들은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이곳의 이야기를 써내었다. 또 하루종일 사람들을 외웠다. 자기전에도 외우고 꿈속에서도 외웠다. 또한 그들은 사명을 가졌다. 꼭 살아남아서, 우리들 중 누군가는 꼭 살아남아서 이곳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해야 한다는 사명을 가졌다.
여전히 사람들은 죽어나갔고, 여전히 사람들은 배가 고팠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이상 '회색'은 아니었다.
아무리 돌가루가 날리고 묻어도, 사람들은 회색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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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어디까지 인간으로 볼 것인가?
by 복날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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