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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글판 2025년 여름편
여름은 동사의 계절
뻗고, 자라고, 흐르고, 번지고 솟는다
세종대로 교보생명 건물의 광화문글판 여름편을 만나러 갔다. 이재무의 시 '나는 여름이 좋다'의 구절이 푸르게 빛난다. "여름은 동사의 계절/ 뻗고, 자라고, 흐르고, 번지고, 솟는다" 주체는 여름인데 구체적으로 무엇이 뻗고, 자라고, 흐르고, 번지고, 솟는다는 것일까? 이 여름풍경을 상상하면 즐겁다. 물이 또 구름이 흐르고, 안개가 번지고 땀이 솟는다. 삶의 열기가 솟는다. 작품을 읽어 보면 소음이 번지고, 사물들이 자란다. 강물, 별빛, 천둥과 번개. 하늘과 땅이 한통속이 되고 마음과 몸이 솔직해진다. 시인이 강조하는 것은 여름의 소음, 그래서 여름은 동사의 계절이 되며, 여름의 사물들이 뻗고, 자라고, 흐르고, 번지고, 솟는다.
1
나는 여름이 좋다
옷 벗어 마음껏 살 드러내는,
거리에 소음이 번지는 것이 좋고
제멋대로 자라대는 사물들,
깊어진 강물이 우렁우렁 소리 내어 흐르는 것과
한밤중 계곡의 무명에 신이 엎지른 별빛들 쏟아져 내려
화폭처럼 수놓은 문장 보기 좋아라
천둥 번개 치는 날 하늘과 땅이 만나 한통속이 되고
몸도 마음도 솔직해져 얼마간의 관음이 허용되는
여름엔 절제를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를 마구 들키고 싶고 내 안쪽 고이 숨겨 온 비밀
몰래 누설하고 싶어라
나는 여름이 좋다
2
나는 시끄러운 여름이 좋다
여름은 소음의 어머니
우후죽순 태어나는 소음의 천국
소음은 사물들의 모국어
백가쟁명 하는 소음의 각축장
하늘의 플러그가 땅에 꽃히면
지상은 다산의 불꽃이 번쩍인다
여름은 동사의 계절
뻗고, 자라고, 흐르고, 번지고, 솟는다
- 이재무의 '나는 여름이 좋다' 전문
"교보생명이 광화문글판 여름편을 선정했다고 9일 밝혔다. 이번 글판은 '여름은 동사의 계절 뻗고, 자라고, 흐르고, 번지고, 솟는다'로 이재무 시인의 시 '나는 여름이 좋다'에서 가져왔다. 이재무 시인은 1983년 '삶의 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섣달 그믐',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슬픔은 어깨로 운다' 등을 펴내며 왕성한 활동으로 한국 문단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그는 시집 '데스벨리에서 죽다'로 이육사시문학상을, 시 '길 위의 식사' 등 23편으로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지난해엔 시 '3월'로 정지용문학상을 받은 바 있다.
이번 문안은 여름을 덥고 지치는 계절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변화하며 성장하는 시간이라 해석했다. 각자 지닌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긍정의 에너지를 끊임없이 펼쳐 나가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문안 디자인은 초여름 울창해진 나무 사이로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는 장면을 표현했다. 만물이 생장하는 풍경을 통해 역동적인 계절인 여름의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우리 안에 있는 가능성과 긍정의 가치를 전하기 위해 이번 문안을 선정했다"며 "서로 함께 자라나는 나무처럼 주변의 소중한 사람에게 격려와 독려를 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광화문글판은 1991년부터 30년 넘게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해오고 있다. 이번 여름편은 오는 8월 말까지 광화문 교보생명빌딩과 강남 교보타워 등에 걸리며 광화문글판 홈페이지에서도 만날 수 있다." 아시아경제. 2025. 6. 9. 최동현 기자
교보생명 공식블로그에 실린 이재무 시인과의 인터뷰를 알아본다.
한국 문단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이재무 시인을 교보생명 블로그가 직접 만나고 왔는데요. 2025 광화문글판 여름편 문안으로 선정된 소감과 시에 관한 생각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보시죠.
Q.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본인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시 쓰는 이재무입니다. 저는 저를 '만년 소년'이라고 표현하고 싶네 요. 아주 오래전에 박완서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저한테 '영원히 철이 안 들게 생긴 청년이 찾아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것이 예언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철이 안 들었네요(웃음). 그렇다고 천방지축 까부는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마음 만큼은 만년 소년인 사람입니다.
Q. 2025 광화문글판 여름편 문안으로 선정된 것을 축하합니다. 소감이 어떠신 가요?
광화문글판은 제게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저도 시인인데 왜 제 시가 광화문글판에 오르는 것을 원하지 않았겠어요. 그렇게 늘 부러워만 하다가 대상자가 되고 보니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고, 자부심도 많이 들었습니다. 사실 시인들 사이에서 광화문글판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합니다. 아마 문학상보다 더 클걸요? 이번 광화문글판에 제 시가 실리면서, 시인이라면 누구나 광화문글판 문안으로 선정되는 것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더욱 실감한 것 같습니다.
Q. 여름편 문안으로 선정된 시 '나는 여름이 좋다'는 어떤 시인가요?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각자가 선호하는 계절은 다 다를 거예요. 저는 사계절 중 여름을 가장 좋아합니다. 우선 저에게 여름은 '소통'의 계절입니다. 여름엔 더우니까 창문을 열어 놓게 되잖아요. 그럼, 밖의 소음이 안으로, 집의 냄새가 밖으로 나가기도 하죠. 안팎이 소통하는 기분이 들어요. 그리고 제가 시골 출신이라 시골의 여름날 풍경이 많이 떠오르는데요. 동네 주민들이 평상에 둘러앉아 수박도 나눠 먹고 이야기꽃도 피우는 장면이 떠올라요. 그렇게 사람들 사이가 더욱 돈독해지고 교류가 활발해지는 계절이 여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여름은 사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도 소통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계절이기 때문에 '나는 여름이 좋다'라는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Q. 혹시 여름과 어울리는 또 다른 시가 있다면 추천해 주세요!
얼마 전 나온 신간 『정다운 무관심』에 실린 시인데요. '7월은 시끄러운 달'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즐거운 소란스러움과 유쾌한 활력이 담긴 시예요. 에너지가 넘치는 여름이라는 계절과 어울리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Q. 광화문글판을 다섯 글자로 표현해 주신다면요?
저는 광화문글판을 '지혜의 일꾼'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한테 지혜를 전달하고 옮겨주는 훌륭한 일을 하는 일꾼이요. 기계적인 관습에 젖어 사는 현대인들이 문득 광화문글판을 올려다봤을 때, 순간적인 지혜의 깨달음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Q. 그럼, 역대 광화문글판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나태주 시인의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문안을 가장 좋아합니다. 이 시를 보고 아마도 많은 분들이 용기를 얻고, 자신감을 가지셨을 것 같아요. 주눅이 들어 자신감 없게 사는 사람들에게 '우리 모두는 다 귀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구절이라 특별히 더 좋아합니다.
Q. 마지막으로 대중에게 어떤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저는 앞서 언급한 나태주 시인처럼 널리 알려진 시인은 아닙니다. 그래서 과한 욕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름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웃음). 그리고 또 하나 욕심을 부린다면, 제 시를 통해 삶의 위로를 받고 작지만 큰 용기를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재무의 시를 읽으면 에너 지가 솟고 활력이 생겨'라는 말을 듣는, 그런 시인으로 기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https://kyobolifeblog.co.kr/5066 [교보생명 공식 블로그:티스토리]
이재무의 시집 <즐거운 소란>을 구입했다. 표제시 '즐거운 시간'을 가장 먼저 읽었다.
"여름은 소란이 번성하는 계절/ 새들의 산부인과 병동인 야산에 새 새끼들/ 울음소리 질펀하고 무논에서 둑으로/ 무리 지어 튀어나오는 개구리 울음소리며/ 타작마당 콩알들처럼 여기저기/ 가지에서 쏟아지는 매미들 떼창에 귀가 먹먹하다/ 몸보다 큰 그림자 끌며 유영하는 물고기들/ 살이 오르고, 불쑥 떠오른 생각처럼/ 바람 불 때마다 은피라미인 양/ 팔랑팔랑 하얗게 몸을 뒤집는 나뭇잎들/ 숲에는 그늘이 고여 출렁이고/ 괄약근 느슨해진 하늘에서 천둥 번개 치고/ 큰비 내려 계곡과 냇가에 갑자기 불어난 물이/ 변성기 소년의 성대처럼 괄괄 소리 내어 흐르는데/ 비 갠 하늘에 나타난 비행기가/ 폭음을 내려놓고 사라진다" - 이재무(1958~)의 '즐거운 소란' 전문. '나는 여름이 좋다'의 여름 풍경보다 '즐거운 소란'의 여름 풍경이 훨씬 구체적으로 표현된 것 같다.
시집 표지에 그의 시 '무화과'의 일부인 "이 세상에는 꽃 시절도 없이/ 어른을 살아온 이들이 많다"가 적혀 있다. 시집 <즐거운 소란>은 꽃 시절도 없이 살아온 이들을 위로하는 시 작품들이 중심일까? '무화과'의 전문을 옮긴다. "술안주로 무화과를 먹다가/ 까닭 없이 울컥, 눈에/ 물이 고였다/ 꽃 없이 열매 맺는 무화과/ 이 세상에는 꽃 시절도 없이/ 어른을 살아온 이들이 많다" 이 시를 읽으면, 1986년에 발표된, 김지하 시인의 '무화과' 시가 생각난다.
돌담 기대 친구 손 붙들고/ 토한 뒤 눈물 닦고 코 풀고 나서/ 우러른 잿빛 하늘/ 무화과 한 그루가 그마저 가려 섰다.// 이봐/ 내겐 꽃 시절이 없었어/ 꽃 없이 바로 열매 맺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친구는 손 뽑아 등 다스려 주며/ 이것 봐/ 열매 속에서 속 꽃 피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일어나 둘이서 검은 개굴창가 따라/ 비틀거리며 걷는다./ 검은 도둑괭이 하나가 날쌔게/ 개굴창을 가로지른다. 김지하(金芝河, 1941~2022)의 '무화과(無花果)' 전문
여름은 동사의 계절/ 뻗고, 자라고, 흐르고, 번지고 솟는다 - 이재무의 시 '나는 여름이 좋다'에서
여름은 동사의 계절/ 뻗고, 자라고, 흐르고, 번지고 솟는다 - 이재무의 시 '나는 여름이 좋다'에서
왼쪽에 세종문화회관, 뒤에 세종대왕 좌상, 그 뒤에 광화문, 맨 뒤 북악산 아래에 청와대가 보인다.
왼쪽에 세종대왕 좌상, 그 뒤에 광화문, 맨 뒤 북악산 아래에 청와대가 보인다.
표지에 시집에 실린 시 '무화과' 일부가 적혀 있다. "이 세상에는 꽃 시절도 없이/ 어른을 살아온 이들이 많다"
이재무 시인. 1958년 2월 27일 충남 부여 출생. 1983년 작품 활동 시작. 시집「슬픔에게 무릎을 꿇다」「슬픔은 어깨로 운다」「데스 밸리에서 죽다」외, 시선집「얼굴」외, 산문집「쉼표처럼 살고 싶다」등 출간.
시인의 말 - 나의 슬픔, 나의 노래 :
"기억을 통한 이야기 방식은 불가능한 현존의 드라마를 마침내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설득력 높은 방식이 고, 그 때문에 우리는 그 방식 속에서 '거듭 그리고 완전히 살기'를 꿈꿀 수 있는 것이다." - 문광훈,「가면들의 병기창 - 발터 벤야민의 문제의식」
십 년 전 여의도에 살던 때였다. 나는 여느 날처럼 겨울 이른 아침 집을 나와 한강을 거닐다가 여의나루역을 향했다. 매서운 강바람이 옷섶을 파고 들어와 살(肉)을 아프게 헤집어댔다. 대중가요 <유정천리>를 입 밖으로 뱉어 내었다(나는 혼자 걸을 때 흘러간 유행가를 흥얼거리는 버릇이 있다). 한강 변에는 지나는 행인이 없었다.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2절 중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인생길은 몇 구비냐?" 노랫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올 때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주위를 돌아보았다. 나는 엉엉 웃으면서 지하철역을 향해 발걸음을 놀렸다. 노래가 끝나면 다시 불렀다. 강바람이 춥지 않고 시원했다.
나는 왜 이 노래를 부르면서 왈칵, 울음을 쏟아 냈을까? 무심결에 입 밖으로 흘러나온 노랫말이, 그때까지 시난고난 살아온 편력을 순간적으로 압축하여 표현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으리라. 물론 이 행위는 의식이 개입되지 않은, 어디까지나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무의식의 발로였다. 살다 보면 이렇듯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자신을 흘리고 생의 전라全裸와 치부를 가감 없이 노출시키는 때가 있다. 그러나 이것이 무조건적인 생의 낭비나 소모만은 아니다. 때에 따라 누적된 감정은 배설을 필요로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즐겨 부르는 노래들은 대개가 어릴 적 엄니에게서 배운 것들이다. 생활에서 장애를 겪을 때마다 엄니에게서 배운 노래를 부르는 게 버릇이 되어 버렸다. 어릴 적 농사 채가 많지 않았던 우리 집은 담배 농사를 지어 곤궁한 생계를 이어 나갔다. 참으로 품이 많이 드는 농사였다. 담뱃잎은 탄저병에 취약하여 잎 사이사이 붉은 반점이 생겼는데 그것들을 가위로 잘라내고 황금색 담뱃잎만을 추려 가지런히 해야 했다. 이것을 '담배 조리'라 하였다. 담배 농사는 아부
지의 몫이었지만 담배 조리는 엄니와 동네 처녀들의 몫이었다. 하품이 잦은 오후 시간대가 되면 라디오에서 뽕짝의 구성진 가락이 흘러나오곤 하였는데 엄니와 처녀들은 누가 질세라 그 유행하는 노래들을 따라 부르면서 일이 주는 과중한 피로를 달래곤 하였다. 가수들이 불러대는 노래들은 나 같은 어린이가 듣기에도 어찌나 서럽고 청승맞고 구슬픈지 까닭 없이 가슴이 먹먹해지곤 하였다.
나의 시 쓰기는 군 제대 후 복학생이 되었을 때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문자 행위로서의 시 쓰기가 아닌 생활로서의 시 쓰기는 이미 그 어린 시절 엄니와 처녀들이 떼창으로 부르던 노래들을 따라 부르면서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 다. 그 시절 가락에 실린 노랫말의 청승과 서러움은 고스란히 유전자처럼 내 시의 정서로 전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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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름이 좋다
옷 벗어 마음껏 살 드러내는,
거리에 소음이 번지는 것이 좋고
제멋대로 자라대는 사물들,
깊어진 강물이 우렁우렁 소리 내어 흐르는 것과
한밤중 계곡의 무명에 신이 엎지른 별빛들 쏟아져 내려
화폭처럼 수놓은 문장 보기 좋아라
천둥 번개 치는 날 하늘과 땅이 만나 한통속이 되고
몸도 마음도 솔직해져 얼마간의 관음이 허용되는
여름엔 절제를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를 마구 들키고 싶고 내 안쪽 고이 숨겨 온 비밀
몰래 누설하고 싶어라
나는 여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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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끄러운 여름이 좋다
여름은 소음의 어머니
우후죽순 태어나는 소음의 천국
소음은 사물들의 모국어
백가쟁명 하는 소음의 각축장
하늘의 플러그가 땅에 꽃히면
지상은 다산의 불꽃이 번쩍인다
여름은 동사의 계절
뻗고, 자라고, 흐르고, 번지고, 솟는다
이재무를 알게 된 것은 오랜 일로, 어쩌면 그가 시인이 되기 전부터였을지도 모른다. 만날 때마다 '이재무는 어쩔 수 없이 시인이겠다'는 느 낌이 들었다. 뭔가 다른 사람과는 달랐다. 도대체 시를 쓰지 않고서 는 살 수 없을 사람으로 보였다. 과연 그건 그랬다. 그는 오직 시로써만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충청도 출신이 갖는 그 어떤 우유부단과는 거리가 먼 성격이었고 그것은 또 시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칼칼했다. 주저함이 없었다. 오로지 본질에 치중했다. 어물쩡, 그 무엇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고 바로 그것을 말했고 그것 자체가 되고자 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오늘날 우리 시단에서 이렇게 솔직, 담백, 명쾌, 단순하게 시를 쓰는 시인은 이재무 한 사람밖에 없지 싶다.
이러한 이재무의 시적인 특성이 이번 시집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인생과 자연에 대한 본질을 무섭도록 날카롭게 파헤쳐 그것을 시로 현현顯現해 보여 주고 있다. 내 시의 기준은 멀리로는 김소월이고 박목월이고 정지용이고 윤동주이고 가까이로는 박용래다. 그런데 우리 고장 충청도에서 박용래에 버금가는 예각銳角의 시인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으니 특히나 기쁘다.
그의 시 앞에 나는 적는다. 아름답구나. 처연하구나. 고생이 많았구 나. 앞으로도 고생 많겠구나. 많이 울었구나. 앞으로 더 울겠구나.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울어야겠구나, 암, 그래야겠지. 그래야 진정 시이고 시인이지, 언제든 시는 그렇게 힘이 세다. 영혼을 울리고 또 영혼과 통한다. 조그마하되 부드럽고 맑고 힘이 센 그의 시를 축복한다.
- 나태주(한국시인협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