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읽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박완서(80) 선생님이 지난 2011년 1월 22일 오전 6시 17분 담낭암 투병 중 별세하셨습니다. 고인은 지
난해 가을 담낭암 진단을 받고 수술 후 치료를 해 왔으나 이날 새벽 호흡 곤란 증세를 보여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선생님은 1931년 경기도 개풍 출생으로, 1950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으나 전쟁 발발로 중
퇴한 뒤,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현상공모에서 <나목裸木>이 당선되며 소설가로 등단하셨습니다.
분단과 전쟁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향과 가족을 잃고 학업마저 중단했던 아픔을 극
복하고 피워 낸 작품들로 독자들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글을 써 오셨습니다.
『휘청거리는 오후』,『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미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아주 오래된 농담』,『 그 남자네 집』등의 장편과,
『엄마의말뚝』,『 꽃을찾아서』,『 한말씀만하소서』,『 너무도쓸쓸한당신』,『 친절한복희씨』등의소설
집을 내셨습니다. 말년에는 동화 창작에도 힘써『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부숭이의 땅힘』등을 발표했으며,
2010년 등단 40년을 맞아 자신의 작가 인생을 돌이켜 본 산문집『못 가 본길이 더 아름답다』를 내며 고령에도 창작활동에
매진했습니다.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만해문학상, 인촌상, 황순원문학상,
호암예술상 등과 보관문화훈장을 받으셨으며, 1993년부터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 2004년 예술원 회원으로
선임되기도 했습니다. 2006년 문화예술계 인물로는 처음으로 서울대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못 가 보신 아름다운 길 떠나신 선생님의 그 길에 국화꽃 한 송이 얹어 드리오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추모시
꽃이 된 기도 -이해인(수녀)
*한 줄 뉴스 |
“오늘 새벽, 박완서 선생님께서 이 세상의 소풍을 끝내시고, 저 세상으로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외수 소설가
“정신적으로 크게 의지했던 멘토 한 분을 잃은 상실감인데 이 상실감은 오래갈 것 같습니다.
저를 아껴 주시던 시인 김광균, 박두진, 구상, 수필가 피천득, 김수환 추기경님, 법정 스님을 떠나보냈을 적에도 그랬습니다.”
—이해인 수녀
“눈물을 멈추고 일어나 검은 옷을 찾기 시작한다. 없다. 선생님이 오랜만에 나를 집에 가게 하신다.”
—은희경 소설가
“우리나라의 큰 별이 졌습니다, 너무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구인환 소설가
“우리 문단과 문화계의 거목이셨던 박완서 선생은 전쟁과 분단, 가난과 급격한 사회 변화로 이어진 현대사를 따듯하게 보듬었으며,
문화사에 독보적인 경지를 구축한 박 선생은 문화적 치유와 화해의 가능성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올 겨울 추위는 유별나다. 눈도 많이 왔다’는 문구가 다시 보니 예사롭지 않다, 먼 길 편히 가소서.”
—김영하 소설가
*2011 봄호 본문에서 더 많은 소망문구들을 만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