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일(금)
마태 5:27-32
"'간음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음란한 생각을 품는 사람은 벌써 마음으로 그 여자를 범했다. 오른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눈을 빼어 던져 버려라. 몸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 또 오른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손을 찍어 던져 버려라. 몸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 "또한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면 그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고 하신 말씀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면, 이것은 그 여자를 간음하게 하는 것이다. 또 그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하면 그것도 간음하는 것이다."
자유의 대가
가끔 한가로이 시간이 나는 날이면 몇 시간이고 TV 앞에서 시간을 보낼 때가 있습니다. 여러 차례 그 장면이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에게 목격되면서 내게 붙여진 별칭이 '태돌이'입니다.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TV 시청에 몰두하는 것이 내가 쉬는 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내게 '태돌이'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토론 프로그램이나 다큐보다 연속극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연이은 재방송을 보느라 3-4시간을 꼼짝 않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더욱 문제는 밤늦게까지 시청을 하게 되는 날이면 이튿 날 아침 기상과 기도시간에 무리가 따르는데도 마음으로 숱한 싸움과 갈등을 하다가도 지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보고, 마시고, 먹고, 만지는 육감적인 즐거움에 늘 중독의 위험이 있다는 것을 나의 TV 시청 습관을 통해서 확인하게 됩니다. 인터넷 중독, 알콜 중독, 마약 중독, 영화 중독, 놀음 중독, 일 중독, 돈 중독, 명예 중독...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추구하는 많은 즐거움들이 대부분 육감적인 것들이고 마침내 집요한 추구는 중독에 빠지게 되고, 결국 그 중독이 죄로 연결되는 현상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죄가 윤리적인 문제이기에 앞서 하느님보다 우상에 집착하여 자신을 그곳에 의존하게 되는 상태라고 할 때, 중독은 분명 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복음을 읽을 때마다 마음 한 구석에 일었던 의문과 반감도 숨길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이 손 없이 살아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것은 반감인 동시에 두려움이었습니다. 손을 잘라내면서 감내하여야 할 고통에 대한 두려움! 그래서 죄를 짓지 않을 자신도 없고, 손을 자를 자신도 없는 나의 경우에는 의문과 반감과 두려움이 교차되는 심정으로 늘 오늘 복음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큰 기쁨을 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중독으로 오는 기쁨이 아니라 자유에서 오는 기쁨, 눈을 뽑아 내어버리고, 손을 잘라버리라는 것은 그 자유를 얻기 위해서 우리가 치루어야만 하는 고통을 받아들이라는 요청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TV 시청의 유혹을 뿌리치고 저녁시간이 나면 한가로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묵상을 하면서 내가 누리는 기쁨은 TV를 보는 즐거움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내가 반드시 치루어야할 대가가 있다는 것을 생각합나다.
묵상: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대가를 치루고 얻은 자유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까? 그럼 당신이 알고도 고치지 못하는 낡은 습관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