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 사는 그리스도 인
천 삼백만 인구의 수도 도쿄로 들어오는 입구에 ‘나무다리’라는 이름으로 50만 정도의 주민과 가장 빈민촌이며 공장지대로 이루어진 지역으로, 수백 명의 신자가 있는 성 엘리사벳 본당의 이야기입니다.
이곳에 의료진이 있고 전반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는 양로원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나이가 지긋하고 수년 동안 또는 십여 년 전부터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들이 있었고, 그중에 몇 사람은 천주교인이었습니다. 따라서 한 달에 두 번씩 나는 성체를 모시고 요양원 방문을 위해 준비를 하였습니다.
어느 날 밤 2시경쯤 되었을 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밤 근무하는 간호사가 나에게 요양원으로 급히 오실 것을 청하였습니다. 누군가 임종이 다가왔고, 사제와 대화를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나는 임종을 위한 성유와 성체를 모시고 오토바이를 운전하여 양로원으로 갔습니다. 경비원은 그전부터 나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별일 없이 문 앞에서부터 그곳을 들어갈 수 있었지요.
환자 간병인은 요양원 입구에서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천주교 환자가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자주 있었던 일이었지요. 그렇지만 간호사의 대답은 그리스도교인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부인이라는 것입니다. 내 기억으로도 다른 여자 신도가 없었지요.
간호사는 어느 나이가 지긋한 부인에게로 나를 데려갔습니다. 그동안 내가 그곳을 방문할 때마다 나를 유심히 쳐다보던 부인이었습니다. 나는 그동안 그 부인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었지요. 그런데 그 부인은 천천히 말할 때는 명료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내가 정말로 천주교 신부님인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80년이 넘도록 기도를 하였고, 임종 때에 앞서 천주교 신부를 볼 수 있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였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녀의 침상의 이름표를 통해 성함과 나이를 보았습니다. 그 부인은 98세였습니다. 어째서 천주교 신부를 원했던 것인지 하고 물었습니다. 그 부인은 아주 천천히, 그리고 간간이 말이 끊기기도 했지만, 그 부인의 인생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소녀 시절에 천주교 학교에 다녔다 합니다. 그곳에서 3년에 걸쳐 교육을 받았고, 17살이 되었을 때 천주교인이 되었습니다. 성수와 성체를 모셨다고, 강조하듯 말하였습니다. 그 후 당시에는 흔히 있는 일로 가족의 결정에 따라 원치 않는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 부인의 남편은 깊은 산속에 절을 소유한 불교의 승려였습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청소와 많은 무덤을 돌보고, 망자의 기일에 향로를 옮기고 피우는 일을 했습니다. 남편은 그녀가 교회에 가는 것을 허락하였습니다만, 그곳은 산속이었고 근방에는 성당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녀를 여덟이나 두었으며, 그렇게 70년간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그 후 남편이 사망하였고, 자녀들도 모두 사망하였습니다. 그리고 10년 전에 그 절에 새 주지가 왔고, 그는 이 나이가 든 이 부인을 그 절에서 떠나 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결국, 그녀는 이 양로원에 온 것입니다.
나는 물었습니다, 그동안 그리스도인으로 하느님에 대해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그러자 그녀는 나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천천히 그녀의 오른손을 이불속에서 꺼냈습니다. 그녀는 묵주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 묵주가 하루도 빠짐없이 제 곁에서 떨어진 적이 없었다고 말하였습니다. 날마다 어느 날은 여러 번 청소할 때나 절에서 제를 드리는 날에도 저는 성모님의 묵주를 손이나 주머니에 들어 있었습니다. 날마다 성모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임종 전에 한 번이라도 나에게 성체를 모신 신부님을 뵙게 해달라고요.
그리고 그녀는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바치며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시간이 너무나 촉박하였고, 그 부인이 기도하는 동안 나는 기다릴 시간이 없어 급하게 성유를 바르며 병자성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성사가 끝나자마자, 그녀는 기도하는 중에 묵주의 장미의 화관, 하늘의 사슬을 통해, 그녀가 말한 대로 아기 예수님이 있는 곳으로, 성모님의 손을 잡고 떠나갔습니다.
Gereon Goldmann 신부
| 저의 정원에서 핀 꽃입니다. 오월에 피는 참 청초한 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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