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한(1916-1966?)은 1916년 서울 돈암동에서 출생하고 서울제2고보((경북고 전신)를 거쳐 1941년 경성제대 의학부(서울대 의대 전신)를 졸업했다
대학시절 그는 당시 최첨단 과학인 원자물리학에 흥미를 갖고 이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런 편력은 훗날 그가 동양의학의 핵심개념인 경락의 실체를 밝히는데 밑거름이 된 것으로 보인다. 대학 졸업 후 여러 의대의 강사를 거쳐 경성여의전 교수로 있다가 6·25전쟁의 와중에 북한으로 갔다. 전쟁 중 제2후방병원 의사로 배속돼 수술을 잘해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전후 평양의학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동의학의 과학화에 주력, 동양의학의 핵심개념인 경락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규명한 봉한학설을 발표해 북한의학계를 풍미했다. 그러나 그의 학설은 10여년 뒤 정치적 이유 등이 섞여 용도폐기 됐고, 그도 숙청 당한 후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1950년대 북한 역사에 혜성처럼 등장해 한 시대를 풍미하다. 10여 년만에 거의 흔적 없이 몰락해 버린 한 의학자의 삶은 월북 지식인들의 행로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경우다. 전통 한의학의 과학화에 성공한 '세계적 의학자'로 북한이 한때 대대적으로 선전했던 김봉한, 그의 등장과 퇴장은 북한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정치적 사건과 맞물려 있어 더욱 드라마적 요소가 짙다.
1956년 8월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8월 전원회의에서는 '8월 종파사건'이라 불리는 반(反) 김일성사건으로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인민보건사업을 개선강화할 데 대하여'라는 의제가 상정돼 토의됐다. 전 해 12월 김일성이 사상사업에서 '주체' 확립을 강조하면서 확산되기 시작한 주체 열풍이 의학분야에도 밀어닥친 결과였다. 이를 계기로 북한에서는 동의학(한의학)의 육성과 과학화가 추진되는데 그 중심 인물이 김봉한 이었다.
김봉한은 경성제대 의학부를 졸업한 서양 의학자였다. 그런 그가 왜 동의학 과학화의 선봉에 섰는지는 명확지 않다. 다만 그가 의학에 입문하기 전부터 동의학의 원리와 치료법에 깊이 매료돼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의 월북 동기나 과정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움 모르고 자란 그에게 사회주의자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는게 그를 아는 지인들의 회상이다.
북한 사람들이 화학자 이승기와 함께 노벨상감이라고 주저없이 말했던 김봉한의 업적은 '봉한학설'에 집약돼 있다. 이 학설은 두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전통 동양의학의 핵심개념인 경락(經絡)의 실체를 규명한 '봉한관설'이다. 다른 하나는 세포보다 작은 미세한 조직인 산알('살아있는 알'이라는 뜻)이 봉한관을 주행하면서 세포가 되고, 세포는 다시 산알로 변하기를 반복하면서 순환시스템 속에서 생명현상의 근본적인 기능을 수행한다는 '산알학설'이다.
이 이론은 1961년 8월조선의학자대회에서 처음 발표된 이래 1965년까지 전후 5차례에 걸쳐 학술논문으로 발표됐다. 김봉한의 연구결과를 두고 북한당국은 흥분해 마지않았다. 북한은 "이 위대한 발견은 현대 생물학과 의학발전의 새로운 단계를 개척한 혁명적 사변이며 세계과학사에 금자탑을 이루어 놓았다"(조선중앙통신. 1964)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연구논문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외부세계에 타전됐고 노동신문을 비롯한 매체들은 그의 업적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평양의학대학 교수였던 김봉한이 새로운 논문을 발표할 때마다 매체들은 앞다투어 대서특필했고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적어도 북한 내에서는 없을 정도가 됐다. 1948년 9월 북한 정권수립 이래 김일성 이외에 특정인의 이름이 그토록 오랫동안 언론의 주목을 받은 적은 일찍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봉한학설에 대한 세계의학계의 견해는 긍정과 부정으로 갈리고 있었다. 긍정적인 견해는 관련자료 요청과 공동연구 제의, 견학단 파견 등으로 구체화됐다. 부정적인 반응은 면밀한 검증과 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에서부터 아예 무시하거나 냉소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났다.
중국과 북한 내부의 반발은 당사자인 김봉한은 물론이고 북한당국까지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일부 한의사들은 고층 건물에서 뛰어내리기까지 하면서 봉한학설의 '부당함'을 시위하고 나섰다.
이즈음 중소분쟁 등 가파른 국제정세의 흐름을 타고 북한 권력 상층부에서 터져나온 갑산파 숙청사건은 김봉한과 그의 동료들을 막다른 상황으로 내몰았다.
김봉한 팀의 경락연구에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당내 2인자 박금철이 종파사건에 연루돼실각한 것이다. 그 불똥은 김봉한에게 튀었고 봉한학설의 처리를 놓고 고심하던 북한당국은 이의 폐기를 선언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봉한학설의 폐기가 결정되자 연구와 실험 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던 김봉한은 하루아침에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은 배신자로 낙인 찍혀 지방으로 추방됐다. 그가 쫓겨간 곳이 탄광이었다는 주장과 함남 정평군의 어느 시골 농장이었다는 설이 엇갈린다. 그는 얼마 후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북한의 모든 공식 문건이나 서적에서 김봉한과 그의 이론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북한의 젊은이들은 그의 이름마저 모를 만큼 그의 제거는 철저했다.
북한에서 김봉한과 그의 업적을 아는 사람들은 "민족 앞에 죄를 짓고 인류 앞에 공헌했다"는 말로 그의 일생을 반추하고있다고 한다. 봉한학설은 남한에도 전해져 일부 의학자들이 "반드시 재조명해서 복원해야 할 민족의 귀중한 과학업적"이라며 관심을 표명하고 있지만 그 목소리는 미약하기만 하다.
김봉한의 존재와 그의 학설이 역사의 한 일화로 끝나버릴지, 언젠가 화려하게 부활 할 수 있을지는 가늠키 어렵다. 지금으로서는 월북지식인들이 피해가기 어려웠던 정치적 소용돌이가 의학자였던 그의 삶마저 삼켜버린 사실이, 그의 업적보다 더욱 비극적으로 두드러져 보인다.
/김광인기자
세계 최초로 경락의 실체를 밝힌 김봉한, 그리고 그의 '봉한학설'
[봉한학설]은 1963년 북한의 학자 김봉한이 여태까지 실체가 없어 모호한 것으로 여겨지던 경락의 실체를 발견해 자신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김봉한은 경락의 존재뿐만 아니라 경락이 생명현상에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발표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봉한학설의 출현으로 지금까지 믿어왔던 의학과 생물현상의 많은 이론들이 다시 씌어질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어떤 이는 봉한학설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다윈의 진화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견주기도 한다.
동의학 고전 이론을 보면 경락이라는 실체적 통로가 존재한다고 나와 있다. 경락계통은 12경락을 비롯하여 300여 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경락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경락은 체표(體表)와 내부 장기를 연결시키고,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원리에 따라 서로 밀접한 연관관계를 갖고 있다. 장기와 신체의 어떤 부분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이들 사이에 물질이나 정보의 교환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장기들을 연결시키는 경락들이 존재하고, 그 경락 속으로 고에너지의 액체가 흐르며, 경락은 전기를 잘 통함으로써 훌륭한 통신 선로가 된다. 그런데 수천 년이 지나도록 경락의 실체가 규명되지 않아 동의학은 서양의학의 과학정신에 못 미치는 열등한 학문의 위치를 차지해 왔던 것이다. 발견해놓고 보니 경락은 너무나 가느다란 것이어서 보통 현미경으로 안 되고, 고배율의 전자현미경이나 위상차현미경을 통해서만 관찰이 가능했다. 당시 전자현미경은 선진국에도 몇 대밖에 없던 최첨단 장비였는데, 김봉한은 북한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경락의 실체 규명에 성공한다.
경락을 발견하고 그 특성을 규명해가는 과정에서 경락에 생명의 엄청난 비밀이 담겨져 있음이 밝혀졌고, 아울러 동양에서 수천 년 동안 전승된 전통의학의 이론과 경험들이 하나씩 증명되면서 한의학을 과학적 학문으로 정립하는 토대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묻혀 있었던 이유
김봉한은 지금의 서울의대인 경성제대 의학부 출신으로 한국전쟁 당시 월북해 1953년에는 평양의학대학 생물학 부교수가 되었다. 젊은 시절부터 의학 공부 외에도 물리학, 수학, 철학에 심취했다고 한다. 특히 원자폭탄이 발명되기 훨씬 전부터 물리학 가운데에도 최첨단 분야였던 원자물리학에 관심이 많았다. 이 공부는 훗날 그이가 방사성 동위원소의 방사선 방출 성질을 이용한 방사선 추적법을 구사하여 경락의 존재를 규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이가 북한 당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함께 연구하던 동료 한 명이 북한 권력층의 제 4인자였던 박금철의 딸이었기에 가능했다. 그이는 1964년 [경락연구원] 원장에 취임하며 북한 의학계의 핵심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다가, 1967년 박금철이 숙청당하자 지지기반을 잃어 학설까지 폐기당하고 만다.
박금철의 실각도 영향이 컸지만, 김봉한의 연구가 유폐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서양의학계의 반발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1967년 소련 의학계는 [경락에 대한 실체 발견은 과학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발표한다. 또한 당시 북한을 방문했던 동독의 학자들 역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소련을 위시한 선진 공산권에 과학 및 기술지원을 의존하고 있던 북한으로서는 입장이 난처해졌다. 어쨌든 이러한 평가 이후 김봉한은 북한에서 사라지게 되고, 그 이름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로 묶이고 만다. 김소연 씨는 김봉한 박사가 지방 수용소로 유배돼 가던 도중 자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서양의 과학기술 문명은 애시당초 동의학이나 중국의 한의학을 과학적 의학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의 의학 전통에는 경락이란 개념이 존재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서구 과학은 아직 봉한학설을 검토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 도움받은 책 『김봉한』(학민사)
봉한학설
1960년대 북한의 김봉한 박사가 경혈과 경락의 체계를 해부학적으로 규명하며 세운 이론체계.
경혈을 봉한소체, 경락을 봉한관이라 명명하고, 봉한소체와 봉한관으로 이뤄진 봉한계가 피부뿐 아니라 장기 표면·혈관·림프관 내부에도 존재하고 있음을 주장. 현재 서울대 한의학물리연구실 소광섭 교수를 중심으로 봉한체계를 연구.
경혈과 경락의 해부학적 규명은 물질적 구조임을 의미한다. 물관, 체관 등에서 볼 수 있는 다발구조는 식물 생명유지의 근본이 된다. 이를 봉한관이라 한다. 무정물과 유정물을 가르는 경계가 아닐까.
봉한관은 경혈, 경락 다발 묶음이다. 혈관계, 림프계에 이어 제 3의 순환계이다. 소광섭 연구팀은 봉한관에 나노입자를 주입, 흐름을 관찰, 증명함으로써 명상과 참선 같은 정신적인 수행이 생리생화학적인 물질 차원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고 본다.
참선과 명상은 교감신경을 안정시키고 부교감신경을 활성화 한다. 불교 호흡법은 날숨을 길게 한다. 봉한계도 이때 활성화된다. 생체에너지를 생산하고 세포재생이 왕성해진다.
부교감 신경이 활성화 되면 아세틸콜린이라고 하는 신경전달 물질이 몸 구석구석에 분비되는데, 이 과정에서 봉한관과 봉한소체에 작용해 운동력을 증가시켜 봉한액을 전신에 순환시키며, 봉한액 중에 존재하는 봉한산알(DNA과립)은 세포로 부활한다는 것이 연구팀의 가설이다.
선(禪) 수행자들이 남달리 해맑고 건강한 얼굴을 간직할 수 있는 것도 이 같은 원리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산알을 현대용어로 표현하면 몸의 모든 장기로 분화할 수 있는 만능줄기세포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 경혈(經穴) : 기(氣)와 혈(血)이 지나는 통로인 경락을 따라 신체의 바깥 부분에 위치하는데, 기(氣)가 모이고 출입 하는 곳이라 하여 혈(穴:구멍)이라 한다.
* 경락(經絡) : 경혈과 경혈을 연결하여 기혈순환(氣血循環)을 이루는 일정한 생체반응계통노선
봉한학설 재현 시도, 북에 밑자료 있다…북 “사상체질 판별 전산프로그램 ”
최근 한 한의원에서 시행하는 파동요법으로 암을 진단할 수 있다는 내용의 TV 기획 프로그램이 서양의학의 항의를 받아 돌연 방송을 중단한 일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한의학의 과학성에 대해 한·양방간 논쟁이 붙기도 했다. 일부 학계에서는 경락의 실체를 확인하려는 30년전 북한의 봉한학설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이 같은 과정에서 남과 북의 민족의학이 서로 연계되어 연구가 이어진다면 세계적인 수준의 의료 기술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편집자 주>
수의사 조성진씨가 1995년 소의 혈관에서 경락으로 보이는 조직물을 발견, 사진에 담았다
30여년 전 가깝고도 먼 곳, 북한에서는 세계 의학·과학계를 흥분시킨 몇편의 논문이 잇따라 발표됐다. 평양의학대학 한 교수가 동양의학의 핵심인 경락과 경혈의 실체를 발견했다는 연구 결과를 던진 것이다. 당시 북한으로서는 쉽게 마련하기 어려웠을 전자현미경, 방사선동위원소 추적장치, 정성분석기 등 첨단 과학기기가 동원됐다.
김봉한 연구진은 1961년 ‘봉한학설’을 내놓은 뒤 1965년까지 5편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경락계가 생명 발생과 성장을 주도한다’고 주장했다.
북한 당국의 열렬한 찬사를 받은 이 학설은 1967년 폐기되고 말았다.
30년전 경락 찾은 연구성과 폐기
그 뒤 30년이 흘러 1995년 ‘봉한학설’을 우연히 접한 전북대 수의과 대학원생이 호기심으로 이 학설의 재현을 시도했다.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조성진(33·수의사)씨는 봉한학설에서 설명하는 경락 즉 봉한관을 찾기 위해 실험에 몰두했다. 그는 몇분 뒤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김봉한의 학설을 따라가며 소의 혈관을 뒤지다가, 투명하고 우윳빛이 나며 탄력성을 가진 어떤 가느다란 조직을 핀셋으로 집어올린 것이다.(사진)
조성진씨는 당시 실험실에서 얻은 ‘낯선 조직물’을 병리학 조직학 교수들에게 보여주었다. 교수들로부터 ‘처음 보는 것이고, 정상조직은 아니다’라는 대답만 들었을 뿐 더 이상 확인은 어려웠다. 해부학 이론에 의하면 혈관 내에는 혈구와 혈장 성분만 있어야 한다. 그는 소 3마리, 돼지 11마리의 심장 혈관을 뒤져, 소 2마리, 돼지 9마리에서 마찬가지로 그 낯선 구조물을 발견했다.
조씨는 “봉한학설이 사실이라면 기존의 의학, 생물학 등 과학이 다시 쓰여져야 한다. 저마다 연구한 학문 체계로 생명을 다뤄온 이들은 이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 나도 몹시 흔들리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봉한학설의 재현을 시도하는 이는 조씨뿐만이 아니다.
연세대 원주의과대학 김현원(생화학교실) 교수도 2년 이상 봉한학설 연구를 해왔다. 대학으로부터 연구비 한푼 지원 없이 재현 실험을 준비해온 김 교수는 성과에 대해 아직 입을 다물고 있다. 그는 “봉한관을 찾는 것보다 이를 기능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과제”라면서 “학계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을만한 수준이 아니면 성과를 발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봉한학설이 날조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논문 자체로 보아도 완벽하다. 방대한 체계를 가진 이 학설을 빈틈없이 거짓으로 꾸미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겠는가”라고 대답했다.
현재 그는 실험 과정에 북한 귀순자 김 모씨의 도움을 얻고 있다. 김씨는 김봉한의 연구 당시 실험을 돕던 평양의대생이었다.
김 교수는 “김씨의 기억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면서 “김봉한의 연구를 기록한 당시 밑자료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라며 실낱같은 기대를 나타냈다.
김 교수는 최근 미국 희귀서적을 취급하는 전문출판사에서 봉한학설의 제2논문을 찾아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더 이상의 자료는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김봉한 연구 언급조차 금기시
과연 봉한학설 논문과 연구 밑자료는 없는 것일까.
1993년 북한 동의사였다가 귀순한 한창권씨는 “봉한학설은 정치적인 이유로 폐기된 것으로 알고 있다. 배울 기회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북한 반군사조직인 속도전의 여단 의무책임자였던 동의사 허창걸씨도 “소문은 들었지만 한번도 논문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신의주 락원기계연합기업소의 내과의사로 1960년대 초부터 35년 동안 근무했던 김재원씨는 봉한학설에 대해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의학회지에 엄청난 분량의 봉한학설 연구논문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세밀한 연구나 충격적인 이론뿐만 아니라 새로 발견된 경혈을 소개한 논문도 함께 발표됐다는 것이다. 그는 “김봉한 숙청 때 당국이 모든 논문을 거둬갔다. 당시 연구를 함께 하던 연구원이 지금도 북한에 살아 있다”고 밝혔다.
본지는 취재중 북한 의료진들과 자주 접촉하는 한 인사로부터 “북한에 김봉한의 방대한 밑자료와 많은 실험 사진이 보관돼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봉한학설 논문 2편을 확보했다. 북한 의료인들이 김봉한을 금기로 여기기 때문에 나머지 3편은 수집을 중단한 상태”라고 말했다.
1993년부터 북한은 민족의학을 일컫는 동의학이라는 명칭 대신 고려의학으로 바꿔 불렀다. 그 이후 주목할만한 또 다른 성과가 발표됐다. 100년 전 동무 이제마가 창시한 사상의학을 과학적으로 연구한 결과 4가지 체질을 판별하는 전산화 프로그램 제작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1997년 북한은 청년동맹 기관지 <청년전위>를 통해 △얼굴 모양과 크기 △체형 측정 △체질별 약효 △정신 기능상태 등에서 얻은 데이터를 종합 대비해 체질분류지표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체질 판별법 전산화는 사상의학을 치료에 활용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면서, 뇌파·혈액형에 의한 체질분류 등도 포함돼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또 사상체질에 따른 치료약을 개발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북한이 노동신문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전자계산기와 비디오카메라 앞에 앉기만 하면 화상처리법으로 사상체질형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인사는 “이 프로그램을 위해 1993년에 5,000명의 체질을 종합했다. 북한은 특히 미국에서 범죄수사에 사용되는 지문학도 도입해 응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계가 지문을 읽으면 체질과 건강관리법이 나오는 것을 직접 보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북한의 사상의학연구가들이 복사본으로 돌려보던 《동무유고》가 남한에서 발간되어 관계자들을 흥분시켰다. 문곡한방병원 권건혁 원장은 이에 대해 “매우 귀중한 자료”라며 “일찍 한국에 전해졌다면 연구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최근 고려의학의 실상을 알아보려는 연구가 진행됐다.
지난해 한국한의학연구원은 고려의학의 실상과 남북한 의료제도의 통합 및 활용방안에 관한 연구를 마쳤다. 이 연구를 주관한 대전대 한의대 윤창열 교수는 “한국이 《동의보감》등 일부만 국역한데 비해, 북한은 1956년부터 《의방유취》 《한약집성방》 등 민족 고유의서를 모두 국역했다. 정책적인 지원으로 이루어진 북한의 연구성과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윤 교수는 또 북한에서 ‘난치나이요법’ ‘온천수치료법’‘감탕찜질법’ ‘결찰법’ ‘오징어뼈마찰술’ 등 독특한 민간요법을 많이 연구했고, 한의학과 서양의학을 접목해 연구한 성과가 많다고 설명했다.
귀순한 한의사 허창걸씨도 “북한은 발달된 기초과학을 토대로 대부분 한약의 화학적 성분을 분석해놓았다”고 설명했다.
남북한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한의학계에서도 조심스럽게 교류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 일부에서는 북한의 고려의학에 대한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자 남북한에서 서로 독특하게 발전한 의료기술을 결합한다면 2백조원에 이르는 세계 의료시장 진출이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북한에선 현재 극도의 경제난으로 기본적인 의료체계가 무너져 있지만 정책적인 지원에 의해 발전된 기초 의료 기술 수준은 높을 것이란 예측이다. 여기에 남한의 자본과 첨단 기술을 지원한다면 한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한의학계는 남북한 교류 중 한의학 교류 사업이 민족적이고 인도적이기 때문에 가장 쉽고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며 높은 기대를 나타내고 있다.
경락과 경혈은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을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 동양의학에서는 경락이란 전신을 달리면서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주관하는 통로라고 알려져 왔다.
고전 이론에 따르면 경락계통은 오장육부와 직접 연계된 12경락을 비롯, 300여개나 되는 크고 작은 경락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또 경락이라는 통로로 이동하는 생명에너지를 기(氣)라고 불렀다.
동양의학에 의하면 경락은 질병이 생길 때 최초로 증상이 나타나는 곳이고, 치료도 그 경락을 조절해서 한다는 것. 경락을 조절하는 방법으로 침과 뜸 등이 활용돼왔다.
경락에는 중간 중간에 몸 외부와 교류장소인 경혈이 있는데 이곳이 치료 장소이다.
봉한학설에 따르면 경락은 현미경 수준보다 작다. 경락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해부조직이며, 이 속에는 봉한액이라는 것이 들어 있다. 봉한액에는 DNA를 포함한 중요한 물질이 포함되어 있는데, 심장마비 환자에게 주사하는 아드레날린뿐만 아니라 필수 아미노산, 단백질, 척수 호르몬, 에스트로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봉한학설에서는 경락계통이 △혈관 혈액 임파액에도 있으며 △내장 표면에도 있고 △맥관 신경을 따라 순환하며 △퇴척수액 속에도 떠 있으며 △장기 세포는 모두 봉한관과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경락계통 속을 순환하는 산알이라는 미립자는 경락계통에서 증식하여 세포로 자라고, 다시 산알로 변하는 일을 반복한다고 한다.
이 학설에 의하면 그 동안 신경세포처럼 고도로 분화된 세포는 재생능력이 없다는 세포분열설과는 달리 신경세포도 재생된다고 한다. 즉, 생명현상의 본질은 산알 수준에서 연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능성은 반반이라고 본다. 당시 김봉한 박사의 발견이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조직물을 경락으로 오인했을 수도 있다. 만일 실제 경락이었다면 노벨상보다 더한 상도 받을 수 있는 업적이다.
경락에 대해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의 입장이 서로 다른 이유는
경락을 이해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동양의학은 기능적으로 이해하지만 서양의학은 해부학적으로 이해한다. 결국 재현성의 문제이다. 최근에는 해부가 아니라 전기와 자장의 방법으로 시도하기도 한다.
경락을 입증하기 위해 누군가 시도를 해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나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절반의 가능성을 위해 개인적으로 끝까지 해볼 생각이다
물리학으로 한의학 실체에 접근한다
서울대 25동은 물리학부 건물이다. 현대 과학의 패러다임이 지배적인 물리학부 건물 3,4층에는 생소하게도 3~4평 규모의 4개의 방에서 한의학물리연구실의 스텝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서울대 한의학물리연구실(책임연구자 소광섭 교수·59)은 경락·경혈의 해부학적 실체를 주장하고 있는 봉한학설의 검증실험 일부를 성공해 혈관내 봉한관, 즉 경락이라고 추측되어지는 조직을 찾아냈다.
이어 최근에는 장기표면의 봉한관과 산알의 DNA라고 여겨지는 조직들을 관찰하는 데 성공함에 따라 경험의학이라고만 받아들여지고 있는 한의학의 과학적 규명작업에 고삐를 당겨가고 있다.
(관련기사 민족의학신문 5월 10일자 463호 6면 참조)
물리학적 관점에서 한의학을 연구해 오던 소광섭 교수가 주축이 된 서울대 한의학물리연구실은 1999년 교육부 BK21 물리사업단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하게 됐다.
2003년에는 과학기술부에 ‘한의학 진단 및 치료를 위한 경혈·경락에 생물물리학적 기전연구’라는 주제로 국가지정연구실에 지정되면서 5년간 2억5천만원의 연구비를 지원받게 됐다.
한의학물리연구실은 책임교수 소광섭 교수 외 이병천(약리학), 이승호(고체물리학), 김정대(이론물리 및 실험), 신학수(생물물리학) 등 4명의 박사와 석사 및 대학원생 10명 등의 연구진으로 구성됐다.
현재 연구실의 주요 사업내용은 생체광자(Biophoton)를 이용한 진단기 개발, 생체광자와 암연구, 봉한학설 연구 등 3분야이다.
이 연구과제에 따라 4개의 각 연구실은 바이오포톤 진단기 개발실, 봉한연구에 관련된 해부실험실과 현미경 관찰실, 세미나실 등으로 사용된다.
진행중인 3개의 연구과제는 크게 봉한학설 재현실험과, 생체광자 진단기 개발로 요약될 수 있다.
경락·경혈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주장한 봉한학설은 1960년대 발표됐다.
이후 관련 주목할만한 연구로 1980년대 독일의 하이네가 경혈이 해부학적으로 존재한다고 밝히고 있으나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연구실의 주요목표는 봉한학설의 재확인실험을 통해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다.
봉한학설 연구는 새로운 조직에 대한 확인이 필요한 관계로, 서울대 수의과대 윤여성 교수 등이 참여해 2002년부터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토끼와 흰쥐의 혈관 및 장기에서 샘플을 추출, 전자현미경 관찰과 유전체 및 화학구조를 분석하는 것이 주요 연구내용이다.
소광섭 교수에 따르면 국내에서 봉한학설을 연구하고 있는 곳으로는 원광대 한의대와 연세대 생화학교실 등이다. 이 중 김현원 연세대 생화학 교수팀이 2000년 12월에 봉한학설 연구에 착수, 인간의 제대혈과 외봉한관에 초점을 맞춰 연구중이다.
소 교수는 “두 연구실의 연구대상이 틀리지만 어느정도 성과를 이뤄내면 교류를 통해, 봉한학설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금 연구단계는 봉한관 내부의 산알의 것이라고 추측되는 DNA의 성격을 밝히는 것이다. 연구내용은 8월 한국에서 열리는 일본의 국제생명정보과학회 학술대회에 발표된다.
또 하나의 연구실인 바이오포톤 진단기 개발실, 어둑한 연구실안에 설치된 한평남짓 커다란 암실안에 생체광자 진단기가 있다. 다른 빛이 생체광자 촬영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암실 안에서 피실험자의 손바닥과 손등에서 나오는 생체광자를 각각 3분간 촬영하는 동안 암실밖으로 연결된 컴퓨터로 이를 분석한다.
생체광자를 이용한 진단기는 2001년부터 착수, 지난해 말 완성됐다. 생체광자는 신체에서 나오는 일종의 에너지로, 이를 임상적으로 검진 및 치료에 응용하는 것이 연구실의 목표다.
연구실에 따르면, 검진기 개발은 완료된 상태로 금년 초에 서울 꽃마을한방병원에 기기를 설치하고 임상적용을 위한 연구를 공동진행하고 있다.
오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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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소광섭 교수
“한의학은 깊은 자연의 원리가 숨겨져 있다. 한의학은 비과학이 아니라 오히려 현대과학이 이해하지 못하는 높은 수준의 학문이다.”
소광섭 교수는 한의학에 대해 이같은 소견을 밝히면서 학제간의 공동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봉한학설 연구는 타학계의 전문적인 조언이 절실하지만 협력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또한 연구에 필요한 최소한의 장비는 갖춰져 있지만, 고가의 장비는 의뢰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그는 “생체광자 진단기기의 경우 임상에 연결되기 까지 한의학 임상계의 도움이 필요하다”면서 “한의사 의료진이 서울대에서 진료하면 임상연구데이타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학제간의 공동연구가 필요한 만큼 열린자세로 임할 자세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소 교수는 전북출신으로 서울대 물리학과와 미국 캔자스대를 거쳐 브라운대 대학원에서 물리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현재 서울대 자연과학대 물리학부 교수로 있다. 저서로 물리학과 대승기신론(1999), 색의 인지과학과 오행(2001), 우리말과 음양오행의 인지과학적 특성(2002) 등이 있다. 소경순 세명대 한의대(49·예방의학) 교수와 남매간이다.
<출처: 민족의학신문 465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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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물리硏 “수행이야말로 참의학”
경락ㆍ경혈실체ㆍ기능 속속 밝혀내
여러 개의 봉한소관으로 이루어진 봉한관. 단면이 식물의 다발성 구조와 닮았다.
현대의학에서 외면 받아온 경락·경혈의 해부학적 실체와 기능·구조가 서서히 신비의 베일을 벗고 있다.
봉한학설에 입각해 경락·경혈을 연구하고 있는 서울대한의학물리연구실 소광섭 교수 연구팀은 최근 봉한계가 제3의 순환계며 식물과 닮은 다발형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에 따라 봉한체계를 통해 생명의 원리를 규명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연구팀은 내심 정신수행의 신비까지도 과학으로 풀어내겠다는 욕심이어서 불교계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연구팀은 10월 29일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재)한국정신과학학회(회장 이종원) 추계학술대회에서 최신 연구성과를 공개했다.
인간의 몸은 소우주
소광섭 교수 연구팀은 이날 봉한관 내에 봉한액이 순환하며, 식물과 유사한 다발성 구조로 돼 있다는 실험결과를 소개했다. 봉한액이 순환한다는 사실이 의미 있는 까닭은 봉한관이 혈관·림프관에 이어 제3의 순환계로서 기능하고 있을 개연성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봉한액의 순환을 규명하기 위해 연구팀은 흰쥐 장기 표면의 봉한관·봉한소체에 형광을 띠는 나노입자를 주입하고 흐름을 관찰했다.
그 결과 나노입자가 20여분에 걸쳐 3.5~4cm 진행하는 것이 확인됐다. 이로써 봉한관은 봉한액을 갖는 순환계일 가능성이 커졌다. 해부학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조직을 발견한 셈이다.
식물에서도 다발성 구조가 발견된다.
봉한시스템이 순환계라는 사실 못지않게 흥미로운 것은 봉한관이 다발형 구조라는 점이다. 연구팀은 봉한관이 작은 봉한소관의 집합체로, 다발형태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 같은 구조는 단일관인 혈관계와 림프계와 구별되는 것이다. 다발구조는 물관·체관 등으로 이뤄진 식물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구조다.
연구팀은 봉한계(경락계)가 식물의 생명유지를 위한 근본구조가 일치하고 있다는 데 큰 의의를 부여하며 “우리의 몸이 대우주와 마찬가지로 모든 요소가 동시에 존재하며 함께 생을 영위하고 있는 소우주임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禪수행과 봉한계
연구팀은 명상과 참선 같은 정신적인 수행을 생리생화학적인 물질 차원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즉 참선은 교감신경계를 안정시키고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하는데, 특히 날숨에서 봉한계가 활성화돼 생체에너지를 생산하고 세포재생이 왕성해진다는 것이다.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 아세틸콜린이라고 하는 신경전달 물질이 몸 구석구석에 분비되는데, 이 과정에서 봉한관과 봉한소체에 작용해 운동력을 증가시켜 봉한액을 전신에 순환시키며, 봉한액 중에 존재하는 봉한산알(DNA과립)은 세포로 부활한다는 것이 연구팀의 가설이다. 봉한산알이 세포로 성장한다는 이론은 세포분열에 의한 세포생성만을 말한 기존학설과 다른 새로운 세포생성 이론이다.
이에 따르면 순수한 정신수행인 명상과 참선이 경락을 매개로 생체에너지를 생성하는 원리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진다. 선 수행자들이 남달리 해맑고 건강한 얼굴을 간직할 수 있는 것도 이 같은 원리 때문이라는 것.
발표를 맡은 서울대 한의학물리연구실 이병천 박사는 “몸에서 가장 큰 에너지가 나오는 것은 명상과 참선 등 정신적인 수행을 할 때”라며 “자기 몸의 세포를 새로이 생성시키는 수행이야말로 장기대체나 생명조작과 비교할 수 없는 참된 의학”이라고 말했다.
◇ 봉한학설이란
1960년대 북한의 김봉한 박사가 경혈과 경락의 체계를 해부학적으로 규명하며 세운 이론체계. 김봉한 박사는 경혈을 봉한소체, 경락을 봉한관이라 명명하고, 봉한소체와 봉한관으로 이뤄진 봉한계가 피부뿐 아니라 장기 표면·혈관·림프관 내부에도 존재하고 있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채 사장되고 말았다. 40여년이 흐른 지금, 봉한학설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서울대한의학물리연구실에 모여 소광섭 교수를 중심으로 봉한체계를 연구하고 있다.
김봉한(1916-1966?)은 1916년 서울 돈암동에서 출생하고 서울제2고보((경북고 전신)를 거쳐 1941년 경성제대 의학부(서울대 의대 전신)를 졸업했다
대학시절 그는 당시 최첨단 과학인 원자물리학에 흥미를 갖고 이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런 편력은 훗날 그가 동양의학의 핵심개념인 경락의 실체를 밝히는데 밑거름이 된 것으로 보인다. 대학 졸업 후 여러 의대의 강사를 거쳐 경성여의전 교수로 있다가 6·25전쟁의 와중에 북한으로 갔다. 전쟁 중 제2후방병원 의사로 배속돼 수술을 잘해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전후 평양의학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동의학의 과학화에 주력, 동양의학의 핵심개념인 경락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규명한 봉한학설을 발표해 북한의학계를 풍미했다. 그러나 그의 학설은 10여년 뒤 정치적 이유 등이 섞여 용도폐기 됐고, 그도 숙청 당한 후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1950년대 북한 역사에 혜성처럼 등장해 한 시대를 풍미하다. 10여 년만에 거의 흔적 없이 몰락해 버린 한 의학자의 삶은 월북 지식인들의 행로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경우다. 전통 한의학의 과학화에 성공한 '세계적 의학자'로 북한이 한때 대대적으로 선전했던 김봉한, 그의 등장과 퇴장은 북한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정치적 사건과 맞물려 있어 더욱 드라마적 요소가 짙다.
1956년 8월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8월 전원회의에서는 '8월 종파사건'이라 불리는 반(反) 김일성사건으로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인민보건사업을 개선강화할 데 대하여'라는 의제가 상정돼 토의됐다. 전 해 12월 김일성이 사상사업에서 '주체' 확립을 강조하면서 확산되기 시작한 주체 열풍이 의학분야에도 밀어닥친 결과였다. 이를 계기로 북한에서는 동의학(한의학)의 육성과 과학화가 추진되는데 그 중심 인물이 김봉한 이었다.
김봉한은 경성제대 의학부를 졸업한 서양 의학자였다. 그런 그가 왜 동의학 과학화의 선봉에 섰는지는 명확지 않다. 다만 그가 의학에 입문하기 전부터 동의학의 원리와 치료법에 깊이 매료돼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의 월북 동기나 과정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움 모르고 자란 그에게 사회주의자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는게 그를 아는 지인들의 회상이다.
북한 사람들이 화학자 이승기와 함께 노벨상감이라고 주저없이 말했던 김봉한의 업적은 '봉한학설'에 집약돼 있다. 이 학설은 두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전통 동양의학의 핵심개념인 경락(經絡)의 실체를 규명한 '봉한관설'이다. 다른 하나는 세포보다 작은 미세한 조직인 산알('살아있는 알'이라는 뜻)이 봉한관을 주행하면서 세포가 되고, 세포는 다시 산알로 변하기를 반복하면서 순환시스템 속에서 생명현상의 근본적인 기능을 수행한다는 '산알학설'이다.
이 이론은 1961년 8월조선의학자대회에서 처음 발표된 이래 1965년까지 전후 5차례에 걸쳐 학술논문으로 발표됐다. 김봉한의 연구결과를 두고 북한당국은 흥분해 마지않았다. 북한은 "이 위대한 발견은 현대 생물학과 의학발전의 새로운 단계를 개척한 혁명적 사변이며 세계과학사에 금자탑을 이루어 놓았다"(조선중앙통신. 1964)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연구논문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외부세계에 타전됐고 노동신문을 비롯한 매체들은 그의 업적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평양의학대학 교수였던 김봉한이 새로운 논문을 발표할 때마다 매체들은 앞다투어 대서특필했고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적어도 북한 내에서는 없을 정도가 됐다. 1948년 9월 북한 정권수립 이래 김일성 이외에 특정인의 이름이 그토록 오랫동안 언론의 주목을 받은 적은 일찍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봉한학설에 대한 세계의학계의 견해는 긍정과 부정으로 갈리고 있었다. 긍정적인 견해는 관련자료 요청과 공동연구 제의, 견학단 파견 등으로 구체화됐다. 부정적인 반응은 면밀한 검증과 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에서부터 아예 무시하거나 냉소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났다.
중국과 북한 내부의 반발은 당사자인 김봉한은 물론이고 북한당국까지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일부 한의사들은 고층 건물에서 뛰어내리기까지 하면서 봉한학설의 '부당함'을 시위하고 나섰다.
이즈음 중소분쟁 등 가파른 국제정세의 흐름을 타고 북한 권력 상층부에서 터져나온 갑산파 숙청사건은 김봉한과 그의 동료들을 막다른 상황으로 내몰았다.
김봉한 팀의 경락연구에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당내 2인자 박금철이 종파사건에 연루돼실각한 것이다. 그 불똥은 김봉한에게 튀었고 봉한학설의 처리를 놓고 고심하던 북한당국은 이의 폐기를 선언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봉한학설의 폐기가 결정되자 연구와 실험 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던 김봉한은 하루아침에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은 배신자로 낙인 찍혀 지방으로 추방됐다. 그가 쫓겨간 곳이 탄광이었다는 주장과 함남 정평군의 어느 시골 농장이었다는 설이 엇갈린다. 그는 얼마 후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북한의 모든 공식 문건이나 서적에서 김봉한과 그의 이론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북한의 젊은이들은 그의 이름마저 모를 만큼 그의 제거는 철저했다.
북한에서 김봉한과 그의 업적을 아는 사람들은 "민족 앞에 죄를 짓고 인류 앞에 공헌했다"는 말로 그의 일생을 반추하고있다고 한다. 봉한학설은 남한에도 전해져 일부 의학자들이 "반드시 재조명해서 복원해야 할 민족의 귀중한 과학업적"이라며 관심을 표명하고 있지만 그 목소리는 미약하기만 하다.
김봉한의 존재와 그의 학설이 역사의 한 일화로 끝나버릴지, 언젠가 화려하게 부활 할 수 있을지는 가늠키 어렵다. 지금으로서는 월북지식인들이 피해가기 어려웠던 정치적 소용돌이가 의학자였던 그의 삶마저 삼켜버린 사실이, 그의 업적보다 더욱 비극적으로 두드러져 보인다.
/김광인기자
세계 최초로 경락의 실체를 밝힌 김봉한, 그리고 그의 '봉한학설'
[봉한학설]은 1963년 북한의 학자 김봉한이 여태까지 실체가 없어 모호한 것으로 여겨지던 경락의 실체를 발견해 자신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김봉한은 경락의 존재뿐만 아니라 경락이 생명현상에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발표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봉한학설의 출현으로 지금까지 믿어왔던 의학과 생물현상의 많은 이론들이 다시 씌어질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어떤 이는 봉한학설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다윈의 진화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견주기도 한다.
동의학 고전 이론을 보면 경락이라는 실체적 통로가 존재한다고 나와 있다. 경락계통은 12경락을 비롯하여 300여 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경락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경락은 체표(體表)와 내부 장기를 연결시키고,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원리에 따라 서로 밀접한 연관관계를 갖고 있다. 장기와 신체의 어떤 부분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이들 사이에 물질이나 정보의 교환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장기들을 연결시키는 경락들이 존재하고, 그 경락 속으로 고에너지의 액체가 흐르며, 경락은 전기를 잘 통함으로써 훌륭한 통신 선로가 된다. 그런데 수천 년이 지나도록 경락의 실체가 규명되지 않아 동의학은 서양의학의 과학정신에 못 미치는 열등한 학문의 위치를 차지해 왔던 것이다. 발견해놓고 보니 경락은 너무나 가느다란 것이어서 보통 현미경으로 안 되고, 고배율의 전자현미경이나 위상차현미경을 통해서만 관찰이 가능했다. 당시 전자현미경은 선진국에도 몇 대밖에 없던 최첨단 장비였는데, 김봉한은 북한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경락의 실체 규명에 성공한다.
경락을 발견하고 그 특성을 규명해가는 과정에서 경락에 생명의 엄청난 비밀이 담겨져 있음이 밝혀졌고, 아울러 동양에서 수천 년 동안 전승된 전통의학의 이론과 경험들이 하나씩 증명되면서 한의학을 과학적 학문으로 정립하는 토대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묻혀 있었던 이유
김봉한은 지금의 서울의대인 경성제대 의학부 출신으로 한국전쟁 당시 월북해 1953년에는 평양의학대학 생물학 부교수가 되었다. 젊은 시절부터 의학 공부 외에도 물리학, 수학, 철학에 심취했다고 한다. 특히 원자폭탄이 발명되기 훨씬 전부터 물리학 가운데에도 최첨단 분야였던 원자물리학에 관심이 많았다. 이 공부는 훗날 그이가 방사성 동위원소의 방사선 방출 성질을 이용한 방사선 추적법을 구사하여 경락의 존재를 규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이가 북한 당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함께 연구하던 동료 한 명이 북한 권력층의 제 4인자였던 박금철의 딸이었기에 가능했다. 그이는 1964년 [경락연구원] 원장에 취임하며 북한 의학계의 핵심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다가, 1967년 박금철이 숙청당하자 지지기반을 잃어 학설까지 폐기당하고 만다.
박금철의 실각도 영향이 컸지만, 김봉한의 연구가 유폐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서양의학계의 반발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1967년 소련 의학계는 [경락에 대한 실체 발견은 과학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발표한다. 또한 당시 북한을 방문했던 동독의 학자들 역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소련을 위시한 선진 공산권에 과학 및 기술지원을 의존하고 있던 북한으로서는 입장이 난처해졌다. 어쨌든 이러한 평가 이후 김봉한은 북한에서 사라지게 되고, 그 이름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로 묶이고 만다. 김소연 씨는 김봉한 박사가 지방 수용소로 유배돼 가던 도중 자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서양의 과학기술 문명은 애시당초 동의학이나 중국의 한의학을 과학적 의학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의 의학 전통에는 경락이란 개념이 존재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서구 과학은 아직 봉한학설을 검토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 도움받은 책 『김봉한』(학민사)
봉한학설
1960년대 북한의 김봉한 박사가 경혈과 경락의 체계를 해부학적으로 규명하며 세운 이론체계.
경혈을 봉한소체, 경락을 봉한관이라 명명하고, 봉한소체와 봉한관으로 이뤄진 봉한계가 피부뿐 아니라 장기 표면·혈관·림프관 내부에도 존재하고 있음을 주장. 현재 서울대 한의학물리연구실 소광섭 교수를 중심으로 봉한체계를 연구.
경혈과 경락의 해부학적 규명은 물질적 구조임을 의미한다. 물관, 체관 등에서 볼 수 있는 다발구조는 식물 생명유지의 근본이 된다. 이를 봉한관이라 한다. 무정물과 유정물을 가르는 경계가 아닐까.
봉한관은 경혈, 경락 다발 묶음이다. 혈관계, 림프계에 이어 제 3의 순환계이다. 소광섭 연구팀은 봉한관에 나노입자를 주입, 흐름을 관찰, 증명함으로써 명상과 참선 같은 정신적인 수행이 생리생화학적인 물질 차원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고 본다.
참선과 명상은 교감신경을 안정시키고 부교감신경을 활성화 한다. 불교 호흡법은 날숨을 길게 한다. 봉한계도 이때 활성화된다. 생체에너지를 생산하고 세포재생이 왕성해진다.
부교감 신경이 활성화 되면 아세틸콜린이라고 하는 신경전달 물질이 몸 구석구석에 분비되는데, 이 과정에서 봉한관과 봉한소체에 작용해 운동력을 증가시켜 봉한액을 전신에 순환시키며, 봉한액 중에 존재하는 봉한산알(DNA과립)은 세포로 부활한다는 것이 연구팀의 가설이다.
선(禪) 수행자들이 남달리 해맑고 건강한 얼굴을 간직할 수 있는 것도 이 같은 원리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산알을 현대용어로 표현하면 몸의 모든 장기로 분화할 수 있는 만능줄기세포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 경혈(經穴) : 기(氣)와 혈(血)이 지나는 통로인 경락을 따라 신체의 바깥 부분에 위치하는데, 기(氣)가 모이고 출입 하는 곳이라 하여 혈(穴:구멍)이라 한다.
* 경락(經絡) : 경혈과 경혈을 연결하여 기혈순환(氣血循環)을 이루는 일정한 생체반응계통노선
봉한학설 재현 시도, 북에 밑자료 있다…북 “사상체질 판별 전산프로그램 ”
최근 한 한의원에서 시행하는 파동요법으로 암을 진단할 수 있다는 내용의 TV 기획 프로그램이 서양의학의 항의를 받아 돌연 방송을 중단한 일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한의학의 과학성에 대해 한·양방간 논쟁이 붙기도 했다. 일부 학계에서는 경락의 실체를 확인하려는 30년전 북한의 봉한학설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이 같은 과정에서 남과 북의 민족의학이 서로 연계되어 연구가 이어진다면 세계적인 수준의 의료 기술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편집자 주>
수의사 조성진씨가 1995년 소의 혈관에서 경락으로 보이는 조직물을 발견, 사진에 담았다
30여년 전 가깝고도 먼 곳, 북한에서는 세계 의학·과학계를 흥분시킨 몇편의 논문이 잇따라 발표됐다. 평양의학대학 한 교수가 동양의학의 핵심인 경락과 경혈의 실체를 발견했다는 연구 결과를 던진 것이다. 당시 북한으로서는 쉽게 마련하기 어려웠을 전자현미경, 방사선동위원소 추적장치, 정성분석기 등 첨단 과학기기가 동원됐다.
김봉한 연구진은 1961년 ‘봉한학설’을 내놓은 뒤 1965년까지 5편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경락계가 생명 발생과 성장을 주도한다’고 주장했다.
북한 당국의 열렬한 찬사를 받은 이 학설은 1967년 폐기되고 말았다.
30년전 경락 찾은 연구성과 폐기
그 뒤 30년이 흘러 1995년 ‘봉한학설’을 우연히 접한 전북대 수의과 대학원생이 호기심으로 이 학설의 재현을 시도했다.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조성진(33·수의사)씨는 봉한학설에서 설명하는 경락 즉 봉한관을 찾기 위해 실험에 몰두했다. 그는 몇분 뒤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김봉한의 학설을 따라가며 소의 혈관을 뒤지다가, 투명하고 우윳빛이 나며 탄력성을 가진 어떤 가느다란 조직을 핀셋으로 집어올린 것이다.(사진)
조성진씨는 당시 실험실에서 얻은 ‘낯선 조직물’을 병리학 조직학 교수들에게 보여주었다. 교수들로부터 ‘처음 보는 것이고, 정상조직은 아니다’라는 대답만 들었을 뿐 더 이상 확인은 어려웠다. 해부학 이론에 의하면 혈관 내에는 혈구와 혈장 성분만 있어야 한다. 그는 소 3마리, 돼지 11마리의 심장 혈관을 뒤져, 소 2마리, 돼지 9마리에서 마찬가지로 그 낯선 구조물을 발견했다.
조씨는 “봉한학설이 사실이라면 기존의 의학, 생물학 등 과학이 다시 쓰여져야 한다. 저마다 연구한 학문 체계로 생명을 다뤄온 이들은 이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 나도 몹시 흔들리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봉한학설의 재현을 시도하는 이는 조씨뿐만이 아니다.
연세대 원주의과대학 김현원(생화학교실) 교수도 2년 이상 봉한학설 연구를 해왔다. 대학으로부터 연구비 한푼 지원 없이 재현 실험을 준비해온 김 교수는 성과에 대해 아직 입을 다물고 있다. 그는 “봉한관을 찾는 것보다 이를 기능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과제”라면서 “학계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을만한 수준이 아니면 성과를 발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봉한학설이 날조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논문 자체로 보아도 완벽하다. 방대한 체계를 가진 이 학설을 빈틈없이 거짓으로 꾸미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겠는가”라고 대답했다.
현재 그는 실험 과정에 북한 귀순자 김 모씨의 도움을 얻고 있다. 김씨는 김봉한의 연구 당시 실험을 돕던 평양의대생이었다.
김 교수는 “김씨의 기억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면서 “김봉한의 연구를 기록한 당시 밑자료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라며 실낱같은 기대를 나타냈다.
김 교수는 최근 미국 희귀서적을 취급하는 전문출판사에서 봉한학설의 제2논문을 찾아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더 이상의 자료는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김봉한 연구 언급조차 금기시
과연 봉한학설 논문과 연구 밑자료는 없는 것일까.
1993년 북한 동의사였다가 귀순한 한창권씨는 “봉한학설은 정치적인 이유로 폐기된 것으로 알고 있다. 배울 기회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북한 반군사조직인 속도전의 여단 의무책임자였던 동의사 허창걸씨도 “소문은 들었지만 한번도 논문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신의주 락원기계연합기업소의 내과의사로 1960년대 초부터 35년 동안 근무했던 김재원씨는 봉한학설에 대해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의학회지에 엄청난 분량의 봉한학설 연구논문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세밀한 연구나 충격적인 이론뿐만 아니라 새로 발견된 경혈을 소개한 논문도 함께 발표됐다는 것이다. 그는 “김봉한 숙청 때 당국이 모든 논문을 거둬갔다. 당시 연구를 함께 하던 연구원이 지금도 북한에 살아 있다”고 밝혔다.
본지는 취재중 북한 의료진들과 자주 접촉하는 한 인사로부터 “북한에 김봉한의 방대한 밑자료와 많은 실험 사진이 보관돼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봉한학설 논문 2편을 확보했다. 북한 의료인들이 김봉한을 금기로 여기기 때문에 나머지 3편은 수집을 중단한 상태”라고 말했다.
1993년부터 북한은 민족의학을 일컫는 동의학이라는 명칭 대신 고려의학으로 바꿔 불렀다. 그 이후 주목할만한 또 다른 성과가 발표됐다. 100년 전 동무 이제마가 창시한 사상의학을 과학적으로 연구한 결과 4가지 체질을 판별하는 전산화 프로그램 제작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1997년 북한은 청년동맹 기관지 <청년전위>를 통해 △얼굴 모양과 크기 △체형 측정 △체질별 약효 △정신 기능상태 등에서 얻은 데이터를 종합 대비해 체질분류지표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체질 판별법 전산화는 사상의학을 치료에 활용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면서, 뇌파·혈액형에 의한 체질분류 등도 포함돼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또 사상체질에 따른 치료약을 개발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북한이 노동신문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전자계산기와 비디오카메라 앞에 앉기만 하면 화상처리법으로 사상체질형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인사는 “이 프로그램을 위해 1993년에 5,000명의 체질을 종합했다. 북한은 특히 미국에서 범죄수사에 사용되는 지문학도 도입해 응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계가 지문을 읽으면 체질과 건강관리법이 나오는 것을 직접 보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북한의 사상의학연구가들이 복사본으로 돌려보던 《동무유고》가 남한에서 발간되어 관계자들을 흥분시켰다. 문곡한방병원 권건혁 원장은 이에 대해 “매우 귀중한 자료”라며 “일찍 한국에 전해졌다면 연구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최근 고려의학의 실상을 알아보려는 연구가 진행됐다.
지난해 한국한의학연구원은 고려의학의 실상과 남북한 의료제도의 통합 및 활용방안에 관한 연구를 마쳤다. 이 연구를 주관한 대전대 한의대 윤창열 교수는 “한국이 《동의보감》등 일부만 국역한데 비해, 북한은 1956년부터 《의방유취》 《한약집성방》 등 민족 고유의서를 모두 국역했다. 정책적인 지원으로 이루어진 북한의 연구성과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윤 교수는 또 북한에서 ‘난치나이요법’ ‘온천수치료법’‘감탕찜질법’ ‘결찰법’ ‘오징어뼈마찰술’ 등 독특한 민간요법을 많이 연구했고, 한의학과 서양의학을 접목해 연구한 성과가 많다고 설명했다.
귀순한 한의사 허창걸씨도 “북한은 발달된 기초과학을 토대로 대부분 한약의 화학적 성분을 분석해놓았다”고 설명했다.
남북한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한의학계에서도 조심스럽게 교류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 일부에서는 북한의 고려의학에 대한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자 남북한에서 서로 독특하게 발전한 의료기술을 결합한다면 2백조원에 이르는 세계 의료시장 진출이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북한에선 현재 극도의 경제난으로 기본적인 의료체계가 무너져 있지만 정책적인 지원에 의해 발전된 기초 의료 기술 수준은 높을 것이란 예측이다. 여기에 남한의 자본과 첨단 기술을 지원한다면 한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한의학계는 남북한 교류 중 한의학 교류 사업이 민족적이고 인도적이기 때문에 가장 쉽고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며 높은 기대를 나타내고 있다.
경락과 경혈은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을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 동양의학에서는 경락이란 전신을 달리면서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주관하는 통로라고 알려져 왔다.
고전 이론에 따르면 경락계통은 오장육부와 직접 연계된 12경락을 비롯, 300여개나 되는 크고 작은 경락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또 경락이라는 통로로 이동하는 생명에너지를 기(氣)라고 불렀다.
동양의학에 의하면 경락은 질병이 생길 때 최초로 증상이 나타나는 곳이고, 치료도 그 경락을 조절해서 한다는 것. 경락을 조절하는 방법으로 침과 뜸 등이 활용돼왔다.
경락에는 중간 중간에 몸 외부와 교류장소인 경혈이 있는데 이곳이 치료 장소이다.
봉한학설에 따르면 경락은 현미경 수준보다 작다. 경락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해부조직이며, 이 속에는 봉한액이라는 것이 들어 있다. 봉한액에는 DNA를 포함한 중요한 물질이 포함되어 있는데, 심장마비 환자에게 주사하는 아드레날린뿐만 아니라 필수 아미노산, 단백질, 척수 호르몬, 에스트로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봉한학설에서는 경락계통이 △혈관 혈액 임파액에도 있으며 △내장 표면에도 있고 △맥관 신경을 따라 순환하며 △퇴척수액 속에도 떠 있으며 △장기 세포는 모두 봉한관과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경락계통 속을 순환하는 산알이라는 미립자는 경락계통에서 증식하여 세포로 자라고, 다시 산알로 변하는 일을 반복한다고 한다.
이 학설에 의하면 그 동안 신경세포처럼 고도로 분화된 세포는 재생능력이 없다는 세포분열설과는 달리 신경세포도 재생된다고 한다. 즉, 생명현상의 본질은 산알 수준에서 연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능성은 반반이라고 본다. 당시 김봉한 박사의 발견이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조직물을 경락으로 오인했을 수도 있다. 만일 실제 경락이었다면 노벨상보다 더한 상도 받을 수 있는 업적이다.
경락에 대해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의 입장이 서로 다른 이유는
경락을 이해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동양의학은 기능적으로 이해하지만 서양의학은 해부학적으로 이해한다. 결국 재현성의 문제이다. 최근에는 해부가 아니라 전기와 자장의 방법으로 시도하기도 한다.
경락을 입증하기 위해 누군가 시도를 해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나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절반의 가능성을 위해 개인적으로 끝까지 해볼 생각이다
물리학으로 한의학 실체에 접근한다
서울대 25동은 물리학부 건물이다. 현대 과학의 패러다임이 지배적인 물리학부 건물 3,4층에는 생소하게도 3~4평 규모의 4개의 방에서 한의학물리연구실의 스텝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서울대 한의학물리연구실(책임연구자 소광섭 교수·59)은 경락·경혈의 해부학적 실체를 주장하고 있는 봉한학설의 검증실험 일부를 성공해 혈관내 봉한관, 즉 경락이라고 추측되어지는 조직을 찾아냈다.
이어 최근에는 장기표면의 봉한관과 산알의 DNA라고 여겨지는 조직들을 관찰하는 데 성공함에 따라 경험의학이라고만 받아들여지고 있는 한의학의 과학적 규명작업에 고삐를 당겨가고 있다.
(관련기사 민족의학신문 5월 10일자 463호 6면 참조)
물리학적 관점에서 한의학을 연구해 오던 소광섭 교수가 주축이 된 서울대 한의학물리연구실은 1999년 교육부 BK21 물리사업단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하게 됐다.
2003년에는 과학기술부에 ‘한의학 진단 및 치료를 위한 경혈·경락에 생물물리학적 기전연구’라는 주제로 국가지정연구실에 지정되면서 5년간 2억5천만원의 연구비를 지원받게 됐다.
한의학물리연구실은 책임교수 소광섭 교수 외 이병천(약리학), 이승호(고체물리학), 김정대(이론물리 및 실험), 신학수(생물물리학) 등 4명의 박사와 석사 및 대학원생 10명 등의 연구진으로 구성됐다.
현재 연구실의 주요 사업내용은 생체광자(Biophoton)를 이용한 진단기 개발, 생체광자와 암연구, 봉한학설 연구 등 3분야이다.
이 연구과제에 따라 4개의 각 연구실은 바이오포톤 진단기 개발실, 봉한연구에 관련된 해부실험실과 현미경 관찰실, 세미나실 등으로 사용된다.
진행중인 3개의 연구과제는 크게 봉한학설 재현실험과, 생체광자 진단기 개발로 요약될 수 있다.
경락·경혈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주장한 봉한학설은 1960년대 발표됐다.
이후 관련 주목할만한 연구로 1980년대 독일의 하이네가 경혈이 해부학적으로 존재한다고 밝히고 있으나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연구실의 주요목표는 봉한학설의 재확인실험을 통해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다.
봉한학설 연구는 새로운 조직에 대한 확인이 필요한 관계로, 서울대 수의과대 윤여성 교수 등이 참여해 2002년부터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토끼와 흰쥐의 혈관 및 장기에서 샘플을 추출, 전자현미경 관찰과 유전체 및 화학구조를 분석하는 것이 주요 연구내용이다.
소광섭 교수에 따르면 국내에서 봉한학설을 연구하고 있는 곳으로는 원광대 한의대와 연세대 생화학교실 등이다. 이 중 김현원 연세대 생화학 교수팀이 2000년 12월에 봉한학설 연구에 착수, 인간의 제대혈과 외봉한관에 초점을 맞춰 연구중이다.
소 교수는 “두 연구실의 연구대상이 틀리지만 어느정도 성과를 이뤄내면 교류를 통해, 봉한학설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금 연구단계는 봉한관 내부의 산알의 것이라고 추측되는 DNA의 성격을 밝히는 것이다. 연구내용은 8월 한국에서 열리는 일본의 국제생명정보과학회 학술대회에 발표된다.
또 하나의 연구실인 바이오포톤 진단기 개발실, 어둑한 연구실안에 설치된 한평남짓 커다란 암실안에 생체광자 진단기가 있다. 다른 빛이 생체광자 촬영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암실 안에서 피실험자의 손바닥과 손등에서 나오는 생체광자를 각각 3분간 촬영하는 동안 암실밖으로 연결된 컴퓨터로 이를 분석한다.
생체광자를 이용한 진단기는 2001년부터 착수, 지난해 말 완성됐다. 생체광자는 신체에서 나오는 일종의 에너지로, 이를 임상적으로 검진 및 치료에 응용하는 것이 연구실의 목표다.
연구실에 따르면, 검진기 개발은 완료된 상태로 금년 초에 서울 꽃마을한방병원에 기기를 설치하고 임상적용을 위한 연구를 공동진행하고 있다.
오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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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소광섭 교수
“한의학은 깊은 자연의 원리가 숨겨져 있다. 한의학은 비과학이 아니라 오히려 현대과학이 이해하지 못하는 높은 수준의 학문이다.”
소광섭 교수는 한의학에 대해 이같은 소견을 밝히면서 학제간의 공동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봉한학설 연구는 타학계의 전문적인 조언이 절실하지만 협력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또한 연구에 필요한 최소한의 장비는 갖춰져 있지만, 고가의 장비는 의뢰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그는 “생체광자 진단기기의 경우 임상에 연결되기 까지 한의학 임상계의 도움이 필요하다”면서 “한의사 의료진이 서울대에서 진료하면 임상연구데이타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학제간의 공동연구가 필요한 만큼 열린자세로 임할 자세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소 교수는 전북출신으로 서울대 물리학과와 미국 캔자스대를 거쳐 브라운대 대학원에서 물리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현재 서울대 자연과학대 물리학부 교수로 있다. 저서로 물리학과 대승기신론(1999), 색의 인지과학과 오행(2001), 우리말과 음양오행의 인지과학적 특성(2002) 등이 있다. 소경순 세명대 한의대(49·예방의학) 교수와 남매간이다.
<출처: 민족의학신문 465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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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물리硏 “수행이야말로 참의학”
경락ㆍ경혈실체ㆍ기능 속속 밝혀내
여러 개의 봉한소관으로 이루어진 봉한관. 단면이 식물의 다발성 구조와 닮았다.
현대의학에서 외면 받아온 경락·경혈의 해부학적 실체와 기능·구조가 서서히 신비의 베일을 벗고 있다.
봉한학설에 입각해 경락·경혈을 연구하고 있는 서울대한의학물리연구실 소광섭 교수 연구팀은 최근 봉한계가 제3의 순환계며 식물과 닮은 다발형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에 따라 봉한체계를 통해 생명의 원리를 규명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연구팀은 내심 정신수행의 신비까지도 과학으로 풀어내겠다는 욕심이어서 불교계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연구팀은 10월 29일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재)한국정신과학학회(회장 이종원) 추계학술대회에서 최신 연구성과를 공개했다.
인간의 몸은 소우주
소광섭 교수 연구팀은 이날 봉한관 내에 봉한액이 순환하며, 식물과 유사한 다발성 구조로 돼 있다는 실험결과를 소개했다. 봉한액이 순환한다는 사실이 의미 있는 까닭은 봉한관이 혈관·림프관에 이어 제3의 순환계로서 기능하고 있을 개연성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봉한액의 순환을 규명하기 위해 연구팀은 흰쥐 장기 표면의 봉한관·봉한소체에 형광을 띠는 나노입자를 주입하고 흐름을 관찰했다.
그 결과 나노입자가 20여분에 걸쳐 3.5~4cm 진행하는 것이 확인됐다. 이로써 봉한관은 봉한액을 갖는 순환계일 가능성이 커졌다. 해부학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조직을 발견한 셈이다.
식물에서도 다발성 구조가 발견된다.
봉한시스템이 순환계라는 사실 못지않게 흥미로운 것은 봉한관이 다발형 구조라는 점이다. 연구팀은 봉한관이 작은 봉한소관의 집합체로, 다발형태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 같은 구조는 단일관인 혈관계와 림프계와 구별되는 것이다. 다발구조는 물관·체관 등으로 이뤄진 식물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구조다.
연구팀은 봉한계(경락계)가 식물의 생명유지를 위한 근본구조가 일치하고 있다는 데 큰 의의를 부여하며 “우리의 몸이 대우주와 마찬가지로 모든 요소가 동시에 존재하며 함께 생을 영위하고 있는 소우주임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禪수행과 봉한계
연구팀은 명상과 참선 같은 정신적인 수행을 생리생화학적인 물질 차원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즉 참선은 교감신경계를 안정시키고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하는데, 특히 날숨에서 봉한계가 활성화돼 생체에너지를 생산하고 세포재생이 왕성해진다는 것이다.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 아세틸콜린이라고 하는 신경전달 물질이 몸 구석구석에 분비되는데, 이 과정에서 봉한관과 봉한소체에 작용해 운동력을 증가시켜 봉한액을 전신에 순환시키며, 봉한액 중에 존재하는 봉한산알(DNA과립)은 세포로 부활한다는 것이 연구팀의 가설이다. 봉한산알이 세포로 성장한다는 이론은 세포분열에 의한 세포생성만을 말한 기존학설과 다른 새로운 세포생성 이론이다.
이에 따르면 순수한 정신수행인 명상과 참선이 경락을 매개로 생체에너지를 생성하는 원리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진다. 선 수행자들이 남달리 해맑고 건강한 얼굴을 간직할 수 있는 것도 이 같은 원리 때문이라는 것.
발표를 맡은 서울대 한의학물리연구실 이병천 박사는 “몸에서 가장 큰 에너지가 나오는 것은 명상과 참선 등 정신적인 수행을 할 때”라며 “자기 몸의 세포를 새로이 생성시키는 수행이야말로 장기대체나 생명조작과 비교할 수 없는 참된 의학”이라고 말했다.
◇ 봉한학설이란
1960년대 북한의 김봉한 박사가 경혈과 경락의 체계를 해부학적으로 규명하며 세운 이론체계. 김봉한 박사는 경혈을 봉한소체, 경락을 봉한관이라 명명하고, 봉한소체와 봉한관으로 이뤄진 봉한계가 피부뿐 아니라 장기 표면·혈관·림프관 내부에도 존재하고 있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채 사장되고 말았다. 40여년이 흐른 지금, 봉한학설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서울대한의학물리연구실에 모여 소광섭 교수를 중심으로 봉한체계를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