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의 늦은 술자리가 귀가를 어렵게 했다.
가까스로 인천 나의 방으로 와 밀린 업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의외로 개운한 기분으로 모닝콜을 듣는다. 그러나 조금만 더자고..
으음...일어나니 7시. 좀 늦었군. 후다닥 준비하고 나선다.
8강경기가 있는날인지 집을 나서자마자 빨강이 눈에 띈다.
괜한 하양이 민망할정도로 말이다. 그런데도 당당히 아을이는
응원의 이야기속에서 책을 읽는다. 재밌다.
늦을줄 알았는데 그나마 조금늦게 도착한 복지관.
선생님과의 인사속에서 시험땜시 2주간의 공백을 채우기에 급급하다.
오늘은 그저 서류정리만 한단다. 오후경기땐 강당에서 빔을 쏘아서
시청을 한다니 같이 보자며 청한다. 그러니 거절할 수 있을까...
친구랑 친구집에서 간만에 만나서 시청도 하고 맥주한잔도 하자고 했는데
미안하다는 연락을 하고 복지관 선생님들하고 강당에서 시청하기로 하고
봉사하고 점심먹고 뒷동산 거닐기도 하고.
오후 3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빨간티들의 입장이 이루어지고
아이들도 있고 청소년들도 있고 하나둘 강당이 달구어지고 있었다.
구석에 나도 자리잡고 앉아서 시청준비 끝.
복지관 과장님의 응원한번 하자는데 모두가 동의하고 묵혀둔 북과 꽹과리
소고까지 내와서 둥둥쳐가며 대~한민국을 외치고 필승!COREA! 를 외치며
한껏 월드컵 응원분위기를 조성한다.
애국가 나오는데 다들 일어나서 가슴에 손을 언어 애국가를 합창하고..
경기시작하며 모두가 긴장된 눈동자를 굴리며 시청에 열을 올리면서
안타까워하고 아쉬워하고 초조해하고 정말이지 목이타는 심정으로
응원했다.
더이상 안되겠다고 하고 맨앞자리로 이동해서 본다.
생생한 움직임 하나하나를 보면서 언제 한골 넣는가 하다가 어느새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간다.
부장님 흥분해서 이곳저곳을 날뛰는 모습은 어린아이 못지 않았다.
드디어 홍명보의 결정골로 인해 4강이 확정되고 모두가 하나되는 그런 모습들.
나 또한 그 흥에 겨워 감추어둔 몸짓을 풀어내고 악수하고 필승하고.
1층에 내려와 승리소식의 뉴스를 다시 수박과 더불어 시청하면서
그 감회를 다시한번 확인했다. 날도 날이니만큼 부장님이 한턱 쏜단다.
직원들 기뻐서 좋아하고 나도 덩달아 좋아하고.
버스를 탔다. 기사아저씨도 좋아한다.
부장님이 기사아저씨에게 경적응원을 부탁한다.
직원들 일제히 대~한민국을 외치니 아저씨 빵!빵! 빵!빵!.빵!을 한다.
승차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다시한번 대~한민국을 외친다.
불광동 먹자골목에 들어서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승리의 기쁨을 나누며 다음일정을 결정한다.
다음은 광화문. 부장님은 가시고 1분 가시고 8명은 광화문으로 간다.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빨강으로 물이든 그 거리는 아직도 그 생생함이 확연하다.
같이 손을 맞부딪치며 우승을 예감하는 기분으로 한껏 거리를 활보하며 다녔다. 공기환풍기위에 올라간 사람들의 몸짓에 환호하고 거리의 자동차 행렬에 환호하고 사람들의 표정에 다시한번 환호하고 내 기분에 또다시 환호하고. 정말 그 4강신화를 이루어낸 결과가 이렇게까지 이어질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다들 25일을 기약하며 헤어지기로 한다. 그러나 난 그럴 수 없었다.
다 보내고 신촌으로 이동한다. 욱진이한테 연락하고 만나기로 한다.
신촌에 도착하니 이곳은 더했다. 그 열정이 광화문을 압도하듯 그 열기는
대단했다. 욱진이랑 성현이랑 찬영이를 만나게 되고...성현이랑 욱진이랑
함께 띠놀이에 합세하다 욱진이 잃어보리고 성현이랑 정말 미친사람마냥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과 하나됨의 문화를 즐겼다.
외국인도 하나되고 모르고 알고는 그의미가 없었다. 어린아이까지고 합세하여 모두가 흥을 즐겼다.
터지는 폭죽에 기분도 터지고 사람들은 더욱 신이나고 4강합류에 기뻐하고 응원하고 그랬다. 와~ 함성의 여파가 이런것일줄이야...
하얀티가 흠뻑젖도록 놀았다. 가지각색의 페인팅모습과 응원용품이
그저 바라만 보는 것으로도 만족하게 하던무렵
성현이 보내고 욱진이랑 찬영이랑 그들 친구들 당구치러 가고...
한친구를 불러내어 만났다. 우연히 만난 친구의 대학여친구둘까지
합세해서 다시한번 신촌의 월드컵 8강전 우승을 축하하는 자리에 합류했다.
그러다가 친구 잃어버리고 다시 찾고 다시 그 여자둘 잃어버리고 다시 놀다 들어나오고 나 정말 지쳐쓰러지는줄 알았다.
쉬면서 터지는 폭죽의 궤적을 보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하고 싶었는데 언제 사들고 왔는지 친구 여자친구둘의 사진기로 다른 무리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나서야 이내 친구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4강전은 더이상의 우리들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우승이라는 기쁨하나를 위하여 전국적으로 모인 500만의 거리응원단은
과거 민주화운동으로 흘린 빨간피를 대신하게 될것이다.
그렇게 아을이는 6월 22일을 보냈다.
바로 2002 한일월드컵 8강전 한국과 스페인전이 있던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