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
1. 시작 성가 (발자취 또는 전례에 맞는 성가)
2. 기도 (발자취 158쪽 집회 시작 기도 또는 자유 기도)
3. 출석 확인 및 인사
4. 회칙
5. 생활 묵상
6. 생활 나눔
7. 공지사항
8. 마침 기도(발자취 159쪽 또는 자유 기도)
사람은 각자의 삶 속에서 문제점이나 어려움을 만났을 때, 먼저 그 원인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그 상황을 올바로 이 해 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첫걸음이 되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는 권고 10장과 11장에서 형제들이 세상을 올바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각과 태도를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엄격하며, 타인에 대해 너그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권고 10장을 "죄를 지을 때나 해를 입을 때 원수나 남을 자주 탓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성인의 권고는 항상 형제들의 현실 삶에 시선을 두고 있으며, 이미 남 탓하는 형제들에 관한 많은 목격과 체험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10장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는 바로 '원수(inimious)'이다. 모두 네 차례 반복되고 있는데, 그 의미가 항상 같지는 않다. '원수'에 대한 일반적 이미지는 나의 삶에 개입해 들어와서 해를 가하고 또는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외적(外的) 존재이다. 그런데 프란치스코는 그와는 다른 원소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내 안에 있는 나 자신의 일부 - 곧 나의 육체(corpus)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은 육체를 통해서 죄를 짓게 되는데 누구나 그 원수 즉 육체를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다."(권고 10, v2)
사람은 어느 경우에도 자신의 죄를 다른 원수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 왜냐하면, 설령 많은 유혹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죄를 짓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죄의 행위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육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창세기에서 첫 인간들은 뱀의 유혹에 빠져 원죄를 짓게 되지만, 프란치스코는 그 또한 인간 자신의 잘못이며 뱀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 당신의 모습대로 그리고 비슷하게 만드신 저희를 낙원에 두셨으니, 바로 당신 때문에 감사드리나이다. 그런데 저희는 저희의 탓으로 추락했나이다."(인준받지 않은 회칙 23, v2)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았던 것처럼, 모든 인간들도 때때로 시험과 유혹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삶의 모든 방식을 통해서 인간과 함께하시며, 필요에 따라 인간을 유혹과 고통의 장(場)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부당한 처사처럼 생각되지만, 경건한 이들은 그 과정을 통해서 이전보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갔음을 성경은 전하고 있다. 인간은 그 힘겨운 순간에 자기 자신의 모습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고, 자기 신앙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순간은 고통스럽지만,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경험이며, 자기 자신에게 더욱 집중하며 하느님의 뜻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은혜로운 때이며 구원의 날' (참조 2 코린 6,2)이다.
육적인 인간은 삶의 고통에 직면할때마다 자신의 밖에서 원인을 찾지만, 영적인 인간은 자기 자신 안에서 찾으려 한다. 죄의 주체가 자기 자신인 만큼, 죄에서 벗어날 가능성 또한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프란치스코는 인간을 죄짓게 만드는 '원수'를 '육체'라고 말하는데, 이는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인간의 신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권고 5장에서 고백하고 있듯이 인간의 육체는 "주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당신의 모습대로"(권고 5, v1) 창조하신 고귀한 것이다. 형제들이 다스려야 하는 원수로서의 육체는 자기중심적이고 미숙한 욕망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연약한 '자아'이다. 인간은 육(肉)의 연약함 때문에 세상의 원수들 앞에서 굴복하게 된다. 그러므로 외부의 원수들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연약한 자아를 다스리는 것이다.
'볼 수 없는 원수'인 '육체'를 항상 손아귀에 집어넣고 슬기롭게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때, 그는 모든 원수들 사이에서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복된 하느님의 종이 될 수 있다.
"자기의 지배 아래 넘겨진 그러한 원수를 항상 손아귀에 집어넣고 그에게서 슬기롭게 자기 자신을 지키는 그런 종은 복됩니다. 이렇게 하는 한, 볼 수 있건 볼 수 없건 그 어떤 원수도 그를 헤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권고 10, v3~4)
이어지는 권고 11장에서는 다른 형제들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에 대해서 언급한다. 11장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느님의 종'이라는 표현이다. '하느님의 종'은 프란치스코 자신과 형제들의 정체성을 함축하는 중요한 표현이며, 주인이신 하느님 이외에는 어떤 다른 기준도 가질 수 없음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종은 죄 외에는 아무것도 못마땅해해서는 안 됩니다."(권고 11, v1)
첫 번째 문장은 하느님의 종들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태도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프란치스코는 유언에서 처음으로 형제들이 찾아온 순간에 대해서 "주님께서 나에게 몇몇 형제들을 주셨다"(유언 v14)라고 고백한다. 이는 성인이 형제들을 주님께서 보내주신 선물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의미하며, 형제들은 그 자체로 주님께서 맡기신 식솔(食率)들이었다. 그리고 하느님의 종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소임은 주인의 식솔들을 돌보는 일이다.
"주인이 종에게 자기 집안 식솔들을 맡겨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게 하였으면,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못된 종이어서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어지는구나.'하고 생각하며, 동료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또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면,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위선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 24, 45-51)
'주인의 식솔들'과 '종'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분개나 흥분'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부적절한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종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이나 태도가 아니며, 종은 그저 섬길 수 있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프란치스코는 어떤 죄가 저질러졌을 때 그 죄 자체보다 그 죄를 대하는 형제들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바로 그 순간에 형제들의 본모습이 드러나고 형제들이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식별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고 자신이 약함을 깨달을 수 있는 은총의 순간이 되기 때문이다.
"누가 어떻게 죄를 짓든, 하느님의 종이 이 때문에 사랑이 아닌 이유로 흥분하거나 분개한다면, 스스로 과오를 쌓는 것입니다. 어떤 일로 말미암아 분개하거나 흥분하지 않는 하느님의 종이 진정 소유 없이 사는 사람입니다."(권고 11, v2~3)
글: 최문기 마티아/ OFM Conv.
생활 나눔
1. 곤경에 빠진 형제자매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경험을 나누어 보자.
2. 어떤 죄가 저질러졌을 때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이야기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