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38. 의료인 명의의 기업 설립
전직 의과대학교수로 신경외과의원을 개업한 신경외과 전문의인 P원장은 최근에 경추디스크의 증상을 개선시켜주는 새로운 의료기구를 개발하였다. 이는 경추에 가해지는 압력을 줄여줌으로 해서 통증 등을 덜어주는 목에다 두르는 칼라였다. P원장은 이 기구의 특허를 내었고 이를 생산하여 시판할 회사를 찾고 있었다.그러던 중 의료기구를 전문으로 취급하며 P원장과도 잘 알고 지내는 S사장이 P원장을 찾아왔다. 자기가 사업 영역을 확장하려던 차에 P원장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돈은 자신이 대고 부족한 부분은 투자자를 찾아 메울 테니 P원장도 10% 정도의 지분만을 가지고 함께 참여해볼 생각은 없느냐고 제안하였다. 대신 새 회사의 대표는 P원장이 맡고 홍보나 광고 등에도 P원장이 직접 등장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제안이었다. 실제 업무는 자신들이 다 알아서 하겠지만 전직 의대교수에 전문의가 대표라는 점에서 환자들에게 미치는 효과는 훨씬 나을 것이라고도 하였다. 그리고 P원장은 병원을 계속할 수 있으면서 자신의 지분만큼의 수익을 가져갈 수 있을 테니 여러 모로 좋을 것이라고도 했다. P원장은 이러한 제안을 듣고 보니 매우 마음이 끌렸다. 그러나 현직 의료인이 자기 회사를 만들어 제품을 환자들에게 판매하는 데 혹시 다른 문제는 없지 않을까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윤리적 고찰>
위 사례는 의료인이 자기 회사를 만들어 이윤을 추구하는 것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문제의 핵심은 의사가 진료를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진료과목과 관련된 의료기기를 판매하는 기업 활동을 한다는 점이다.
의사의 진료활동은 비록 그 대가로서 경제적 보상이 주어지지만 의사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고 돌보는 일이 우선이라는 기대가 지배적이다. 다소 경제적인 손해가 있더라도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었으면 하는 것이 환자들의 일반적인 바램이다. 경제적 이익을 앞세우는 의사는 왠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무엇인가 자신에게 해되는 일을 할 것같은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다.
이것은 전문지식이 부족한 일반인에게는 의사의 결정이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런 믿음은 의사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된다. 따라서 현재 의사로서 진료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 동시에 기업 활동을 한다는 것은 오해나 나쁜 선입견을 갖게 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기업 활동 그 자체가 어떤 윤리적인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위 사례의 경우, P원장이 운영하게 될 기업에서 판매하고자 하는 의료기구가 바로 자신의 진료 영역과 관련된 기구라는 점에서 주의를 요한다. P원장의 병원에 내원한 환자에게 기구를 홍보하거나 판매하는 경우, 환자들은 의사의 이윤추구활동을 비윤리적이라고 여길 수 있다. 그 이유는 P원장이 의사로서 환자에게 가장 알맞은 방법이 무엇인지 고려한 후 자신이 개발한 기구를 선택했다고 생각하기보다 기구를 팔 목적으로 선택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자신의 진료영역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의료기기제품을 판매하는 기업 활동을 현직 의사가 동시에 수행한다는 것은 현명한 결정이라고 보기 어렵다. P원장의 기업 활동을 그 자체를 비윤리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의사로서 적절한 행동을 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위 사례에서 P원장의 기업 활동 내용은 비윤리적이라고 판단될 만한 사항을 지니고 있다. 실제 P원장의 참여지분은 10%임에도 불구하고 P원장이 회사대표가 되고 홍보나 광고에 직접 등장한다는 것은 다분히 P 원장의 의사로서의 경력을 이용하자는 생각이다. S사장의 제안에는 P원장의 경력을 사업상 이용하자는 생각이 확실히 드러나 있다. “실제 업무는자신들이 다 알아서 하겠지만 전직 의대교수에 전문의가 대표라는 점에서 환자들에게 미치는 효과는 훨씬 나을 것”이라는 판단이 그것이다. 이것은 결국 개발한 의료 기구를 그 기구의 기능이나 효과의 우수성에 근거하여 홍보한다기보다 개발자가 전직 의대교수고 현직 전문의라는 것으로부터 환자들의 기대심리를 이용하자는 생각이다. 따라서 이런 생각은 의료적인 관심이 결여된 순전히 경영적 마인드에서의 제안이라 하겠다.
P원장이 이 제안을 수락할 경우 P원장은 자신의 경제적 이윤추구를 위해 자신의 경력과 의사로서의 지위를 이용하자는 S사장의 생각에 동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 대표를 맡기엔 부적절하고 실질적인 권한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홍보를 위해 허수아비 노릇을 하겠다는 결정이라 할 수 있어 올바른 결정이라 보기 어렵다. 또한 환자들의 기대심리를 이용하려는 생각이 있는 만큼 실제 홍보나 광고에 어떤 내용이 들어갈지 그리고 P원장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그 홍보나 광고가 단지 의료정보를 제공하는 것이고 그 정보가 의학계에서 인정되고 있는 것이라면, P원장의 홍보나 광고 그 자체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것이 과장된 내용이나 허위가 개입된 광고라면 의사로서 해서는 안 되는 광고이다. 전문지식을 지닌 의사의 말을 진실이라고 믿을 가능성이 높은 환자들을 상대로 거짓을 알리는 행위는 다른 어떤 거짓말보다도 더 큰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의사의 광고가 윤리적으로 신중하게 제작되어야 하는 이유는 자칫 의사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소비자들에게 선입견을 형성하게 한 후, 실제 의료정보의 전달에 주력하기보다 이미지를 활용하여 제품을 홍보하려는 생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P원장의 홍보나 광고는 이런 점에서 정확한 의료정보의 제공이라기보다 불순한 동기가 개입될 가능성이 높아 윤리적으로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위 사례에서 P원장이 신경외과 개원의로서 진료활동을 포기하지 않고 기업 활동까지 동시에 수행하고자 하는 것은 그 자체 윤리적인 문제점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윤리적인 잘못들을 범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법률적 고찰>
의료기구 즉 의료기기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의료기기법 제6조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의 제조업허가를 받고 다시 품목별로 제조허가를 받거나 제조신고를 하여야 한다. 그리고 의료기기법 제6조에 따라 제조품목허가를 받거나 제조품목신고를 하고자 하는 자는 보건복지부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시설 및 품질관리체계를 갖추어야 하며, 제조품목허가를 받거나 제조품목신고를 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보건복지부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기술문서, 시험검사성적서, 임상시험자료 등 필요한 자료를 식품의약품안전청장에게 제출하여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그리고 의료기기를 판매하기 위해서는 의료기기법 제16조 제1항에 따라 영업소 소재지의 자치단체장에게 신고를 하여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여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허가를 받고 자치단체장에게 신고를 하였다면, 의사라 하더라도 의료기기를 제조, 판매하는 기업을 설립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의료기기법 제23조 제2항에서는 의료기기의 광고에 대하여 일정한 경우를 제한하고 있다. 특히 같은 조항 제2호에서는 ‘의료기기의 성능이나 효능 및 효과에 관하여 의사·치과의사·한의사·수의사 그 밖의 자가 이를 보증한 것으로 오해할 염려가 있는 기사를 사용한 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 사례에서 P원장이 기업을 설립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지만, 직접 광고에 나선다면, P원장이 의료기기의 성능이나 효능 및 효과에관하여 의사가 이를 보증한 것으로 오해할 염려가 있는 기사를 사용한 광고에 해당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