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논문은 전직 로이터통신(Reuters) 기자였던 앤드류 맥그레거 마샬(Andrew MacGregor Marshall)이 2013년 10월 31일에 자신의 자신의 블로그 '젠 저널리스트'(ZENJOURNALIST)에 공개한 논문이다. 이 글은 이제까지 태국 정치 및 왕실에 관해 발표된 글 중 가장 심도 있는 내용이며, '위키리크스'(Wikileaks)가 폭로한 미국 정부의 비밀 외교전문을 광범위하게 분석해, 태국 정치의 심연을 이해하는 데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크메르의 세계'가 한국어로 번역했고, 동영상 등 일부 자료를 추가했다. 전편을 먼저 읽어보려면 여기(1편, 2편, 3편, 4편, 5편, 6편, 7편, 8편, 9편, 10편, 11편, 12편, 13편)를 클릭하라.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완결편)
กลียุค — Thailand’s Era of Insanity
국가화합 법안 심의 반대투쟁
방콕(Bangkok)의 '룸피니 공원'(Lumphini Park)에 캠프를 꾸린 반정부 시위 그룹 '탁신체체 타도를 위한 국민 민주세력'(People Democratic Force to Overthrow Thaksinism: PEFOT)은 2013년 8월 7일을 선거로 선출된 정부인 잉락 친나왓(Yingluck Shinawatra: 1967년생) 총리 정권에 대한 공격일로 예정했다. 8월7일은 워라차이 헤마(Worachai Hema: 1954년생) 의원을 대표로 발의한 <국가화합 법안>을 국회가 심의하는 첫날이었다. 그리고 [보수 야당] '민주당'(Democrat Party) 시위대는 '우루퐁 사거리'(Uruphong intersection)에 별도의 집회장을 설치했다. 그들은 이 집회장을 "진실의 무대"(the stage of truth)라고 명명하여, 고의는 아니었지만 또 다시 엄청나게 황당한 모습을 보여줬다.
잉락 총리는 다시금 '국내보안법'(ISA)을 발동시켰고, 옐로셔츠 진영의 신문사들과 '민주당' 역시 재차 그녀를 조롱해대기 시작했다. 그 사이 PEFOT은 방콕 주재 외국 대사관들에 서한을 보냈는데, 온갖 발작적 증세들이 가미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중에는 잉락 정권이 "히틀러의 나치 정권과 다를 바 없다"든지,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1949년생) 정권은 태국의 군주제를 파괴했다"는 등의 내용도 있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우리는 거짓 민주주의와 부정부패, 그리고 무능한 정부는 받아들일 수 없다. |
이 발언의 내용은 사실 과거 30년 동안 태국 기득권 진영의 정권들이 보여줬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 서한은 바로 그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특히 '추밀원'(Privy Council: 국왕자문기구) 의장 쁘렘 띠나술라논(Prem Tinsulanonda: 1920년생)이 1980년대에 8년간 총리로 재임하던 시절엔 더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쁘렘이 바로 현재 이들 반정부 시위대의 멘토이자 후견인 역할을 맡고 있다. (PEFOT이 외국 대사관들에 보낸 서한의 원본은 아래 사진들을 통해 확대사진으로 이동할 수 있다. 사진 상태가 양호하지 못한 점은 양해를 바란다.)
2013년 8월 7일, 초과격 왕당파(ultra-royalist) 시위대들은 상호 공조를 취해 싸웠지만, '쭐라롱꼰 대학'(Chulalongkorn University)의 티띠난 퐁수티락(Thitinan Pongsudhirak) 교수가 예견한 바대로, 또 한번의 부끄러운 실패의 기록만 남기고 만다. 티띠난은 태국의 현 정치상황에 관한 최고의 분석가 중 한명이다. 그는 최근 <가디언>(The Guardian) 지와 인터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실 이 [반정부] 시위대는 정부 축출을 위해 조직된 것이다. 하지만 반-탁신 연합세력은 통일돼 있지도 않고, 군부나 사법부의 개입도 없을 것 같다. 견인력이나 참가자 수를 보면, 그들이 정말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만큼의 수준은 되지 못한다. |
'룸피니 공원'의 PEFOT 집회장과 '우루퐁 사거리'의 '민주당' 집회장에는 겨우 몇천명만 모였다. PEFOT 소속 과격파들은 폭력사태 유발을 위해 몇차례 두서도 없는 시도를 하긴 했지만, 국회의사당 인근에 배치된 잘 훈련된 경찰 병력이 또 다시 시위대의 집결 자체를 원천봉쇄했다.
['민주당' 총재] 아피싯 웻차치와(Abhisit Vejjajiva: 1964년생) 전 총리와 [사무총장인] 수텝 트억수반(Suthep Thaugsuban: 1949년생) 전 부총리는 약 2천명 가량의 지지자와 함께 '우루퐁 사거리'를 떠나 국회의사당 쪽으로 행진해나갔다. 경찰은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라차위티 로드'(Rajavithi Road)에서 저지했다. 그리고 국회의원 신분인 아피싯과 수텝만 국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그렇게 하겠다고 동의하자, 시위대는 갑자기 멍해졌고 잠시 혼란에 빠졌다 귀가했다.
민주당의 양아치짓
아피싯은 일단 국회로 들어간 후, 자신의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다양한 의사진행 방해 전술을 구사했다. 아피싯은 나중에 연설에 나서 국가화합 법안의 심의가 연기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해당 법안은 예산을 필요로 하므로 35개 상임위원회 위원장들이 모두 모여 검토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다. 하지만 국회는 301대 160의 투표결과로 아피싯의 제안을 부결시켰다.
이어진 몇주 동안, 국회의 심의는 8월7일의 상황과 동일한 패턴으로 늘어졌다. 집권 '프어타이 당'(Puea Thai party: 태국을 위한 당)은 이 법안 통과를 위해 압박을 가했다. '민주당'은 다시 한번 법안 통과를 방해했고, 조롱을 받을만큼의 지연 전술을 구사했다. 8월21일의 경우, '민주당'은 의사일정을 지연시키기 위해 무려 57명이나 되는 소속 의원들을 연설자로 내보냈다. 그리고 그 중 한명은 질서회복을 시도하던 경위(=국회경찰)의 멱살을 잡기도 했다.
'민주당'은 원내에서의 지연 전술 외에도, 자신들의 강력한 지지기반인 남부지방에서 폭력적인 반정부 시위도 조장했다. 남부지방의 시위대는 자신들이 평범한 고무농사 농민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는 정부가 고무의 가격 및 수급정책에 실패해 생계유지도 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일당을 받고 동원된 무리들이었다.
왕당파 기득권 진영의 지적 파산의 수준을 보여주는 우울한 사건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국가인원위원회'(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NHRC)는 '2010년 4~5월에 발생한 폭력사태'(=레드셔츠 유혈항쟁)에 관해 형편 없는 보고서를 발행했다. '국가인권위'는 편파적 성향의 기구로, 위원 대부분이 공공연한 왕당파 성향을 지닌 '푸야이'(poo yai: 고위급 기득권층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위원장 역시 대단히 별볼일 없는 [여류] 학자인 아마라 퐁사핏(Amara Pongsapich: 1945년생)이다.
'국가인권위'의 보고서는 [2010년 당시 총리를 맡고 있던] 아피싯과 기득권 진영의 책임을 무죄로 만들어주려는 어설픈 시도였다. 이 보고서는 2010년 폭력사태의 책임을 대부분 '레드셔츠 운동'(UDD)의 탓으로 돌렸다. 이것은 단순히 편파적인 정도가 아니라 완벽한 무능함의 표출이었다. 태국의 젊은 언론인 쁘랏 빤차꾼아톤(Prach Panchakunathorn)은 이 보고서를 뛰어나게 분석했고, 또 다른 기사를 통해 이 보고서의 최대 결함들을 명확하고도 조목조목 지적했다. 물론 태국에서 이런 식의 행동은 엘리트 계층의 분노를 촉발시키는 일이었다. 태국에서 젊은이가 어른에게 의문을 표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라 위원장은 국가인권위가 쁘랏의 보도에 나타난 비판들에 "더 이상 괘념하지 않고자 한다"고 선언해버렸다.
수텝 트억수반은 태국 남부지방의 부패한 정치적 대부이고, 그의 동생 중 한명이 센 트억수반(Shane Thaugsuban: 1953년생)이다. 2013년 9월 초, 센은 국회에서 분노에 찬 1인 시위를 벌였다. 그는 남부지방에서 진행되고 있던 거짓 고무농업 위기에 관해 발언하려다 거부당했다. 그러자 주변의 의자들을 집어던지며 난동을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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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의자를 집어던지며 소란을 피우는 '민주당' 소속 센 트억수반 의원의 모습. |
며칠 후, 이번에는 '민주당' 총재 아피싯이 더욱 심각한 선을 넘어 해명에 곤욕을 치뤄야만 했다. 그는 장외 연설을 하다 잉락 총리를 "멍청한 암캐"(dumb bitch)라고 지칭하여, 왕당파들의 '여성 혐오주의'(misogynist) 막말 대열에 합류하고 말았다. [필명] 방콕 펀딧(Bangkok Pundit)은 태국에 관해 가장 많은 지식을 가진 양식 있는 외국인 블로거 중 한명이다. 방콕 펀딧은 자신의 글에서 아피싯의 발언을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아피싯이 태국 총리를 한번 더 하겠다는 희망을 포기했음이 불과 몇달 사이에 명확해졌다. 그가 '민주당' 시위대의 집회장인 '진실의 무대'에서 행한 발언을 들어보면, 그가 총리 재직 당시 갖고 있던 '이튼스쿨'과 '옥스포드 대학'을 졸업한 세련된 인물이란 이미지는 180도 바뀌고 만다. 그는 연설을 할 때마다 경계선을 야금야금 확장시켰다. 우리는 더 이상 욕설을 대체할 필요도 없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아피싯 자신이기 때문이다. |
['트위터' 및 유명 블로그에서 활약하는] 네티즌 깨우말라(Kaewmala)는 태국 정치와 관련하여 두뇌회전이 빠르면서 빠지는 곳이 없는 온라인 논객 중 한명이다. 그녀는 아피싯의 기괴한 발언을 "우매한 태국 정치"를 보여주는 징후라고 적절하게 묘사했다.
기괴한 시위대
방콕의 '룸피니 공원'에 진을 친 PEFOT 시위대는 혼란 조성을 위해 이따금씩 정부청사를 향해 행진하곤 했다. 하지만 경찰의 효율적인 활동과 시위대 지도부의 무기력함 때문에 매번 좌절되곤 했다. PEFOT은 때때로 나치(Nazi)의 상징도 사용했는데, 그러한 일은 자신들의 이미지 개선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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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독일 나치의 상징을 사용한 PEFOT 시위대의 모습. "정부는 지옥에나 가라"고 적혀 있다. |
한편 '민주당' 시위대도 '우루퐁 사거리'에 무대를 설치하고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잉락의 폭정에 분노한 평범한 학생들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그 말이 거짓임은 당연지사였다. 시위대 지도자 우타이 욧마니(Uthai Yodmanee)는 '민주당' 활동가이고, 남부지방의 거짓 고무농사 농민들의 폭력시위에도 연루된 인물이다. <카오솟>(Khao Sod)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집회장 내에 "지하조직 알카에다(al Qaeda)가 여기에 있다"는 구호를 자랑스레 내걸어두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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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카오솟 영문판>(Khaosod English)의 2013년 10월 22일자 보도에 등장한 우루퐁사거리 집회장의 현수막 모습. "지하조직 알카에다가 여기에 있다"고 적혀 있다. |
'룸피니 공원'의 PEFOT 시위대는 11월11일로 예정된 '국제사법재판소'(ICJ)의 영토분쟁 관련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태국의 기득권 진영도 ICJ가 태국에 유리한 판결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란 점을 잘 알고 있다. '쁘레아위히어 사원'(Preah Vihear temple, 프레아비히어 사원)은 캄보디아의 영토이다. 하지만 태국의 초과격 왕당파들은 지난 2008년부터 해오던대로, 이 문제를 최대한 울궈먹을 작정이다. 그들은 탁신과 그 측근들이 국가를 배반하고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태국 영토를 캄보디아에 팔아먹었다고 비난해대고 있다. 그것은 태국인들의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해 잉락 총리 정부에 대한 반대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득권 진영의 이 같은 주장은 완벽한 허구이다. 하지만 왕당파 기득권 진영은 ICJ 판결 내용에 대한 태국인들의 분노를 잉락 정권의 권력기반 잠식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데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ICJ를 비난하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티셔츠들은 이미 제작에 들어갔고, '룸피니 공원' 전역에서 그러한 품목들을 찾아볼 수 있는 상태다.
영국 기자 마크 펜(Mark Fenn)이 '룸피니 공원'에서 PEFOT 지지자와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집회장에서 때때로 볼 수 있는 흑인 분장의 사람들은 남부지방에서 온 사람들이다. 그들이 그러한 코스프레를 한 것은 19세기 쭐라롱꼰(Chulalongkorn, 라마 5세: 1853~1910) 국왕이 저술했다는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재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 소설은 '응아우빠 부족'(Ngaw Pah tribe) 사이의 3각관계를 다룬 연애소설이라고 한다. 아마도 '응아우빠 부족'은 현재의 캄보디아 주류민족인 크메르 민족(Khmer)이 아니라, 캄보디아 내의 토착 거주민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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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EPOT 시위대가 '룸피니 공원' 집회장에 걸어둔 '국제사법재판소'(ICJ) 비난 현수막. |
국가화합 법안의 개정
2013년 10월 18일, 워라차이 헤마 의원의 국가화합 법안에 관해 탁신이 갖고 있던 계획이 명료해졌다. 집권 '프어타이 당' 의원들이 다수를 점하는 국회 내 한 위원회가 워라차이 법안의 내용을 개정하기로 투표를 통해 가결했다. 개정의 목적은 사면 대상자의 확대였고, 2006년 군사 쿠테타부터의 모든 위반자들을 그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다.
개정안의 최대 수혜자는 당연히 탁신 자신이었다. 탁신의 사법적 문제들은 2006년 쿠테타 군사정권이 설치한 '자산조사위원회'(Assets Examination Committee)의 조사결과에 따른 것이다. 이 위원회는 순전히 탁신과 그 측근들의 부패 혐의만 조사하기 위해 설치됐었다.
하지만 개정안의 일괄사면 대상자에 탁신만 포함된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2010년 4월~5월 사이에 발생한 레드셔츠 시위 유혈진압의 책임이 있는 모든 관리들과 군인들도 포함됐다. 이제 사법적 심판을 통한 정의를 요구했던 레드셔츠들의 뜻은 묵살되고 말았다.
한편, '특수수사국'(Department of Special Investigation: DSI) 국장 타릿 펭딧(Tharit Pengdit)은 발표를 통해, 2010년 유혈사태와 관련된 아피싯 및 수텝의 모든 살인혐의들을 단일 사건으로 묶어서 다루기보다는, 인명의 살상이나 부상과 관련하여 고발된 모든 사건들을 각각 별개의 재판으로 다뤄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유족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별다른 이익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아피싯과 수텝을 짜증날 정도로 부조리한 연속적 재판절차 속에 빠지게 만들 수 있고, 그 기간도 여러 해가 걸릴 수 있는 방식이다. 이러한 일은 '민주당'으로 하여금 새로운 사면법 개정안을 수용토록 만들기 위한 꼼수였다. '민주당'이 사면법 개정안을 수용해주기만 한다면, 이제 탁신은 자유인의 몸으로 귀국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노골적인 배신행위를 접하면서, '레드셔츠 운동'(UDD) 내부에는 광범위한 실망감이 확산됐다. 탁신은 2010년 4월~5월 레드셔츠들이 보여준 희생을 존중하거나 유혈진압의 완벽한 진상규명을 추구하는 대신, 이 사안을 자신의 협소한 사익만을 위해 이용하려 한 것이다. '레드셔츠 운동'은 법안의 개정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또한 솜밧 분암아농(Sombat Boonngam-anong)이 이끄는 '레드 선데이'(Red Sunday) 분파는 시위를 위해 재차 '라차쁘라송 사거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집권 '프어타이 당' 정부는 개정안의 입법절차 완료를 위해 박차를 가해나가고 있다.
왕위계승의 당사자들
태국 상황이 다시금 새로운 결전을 향해 나아가는 가운데, 정치위기에서 왕위계승 문제가 중심적 사안이란 점을 태국인들에게 재차 자각시켜준 사건이 발생했다. 2013년 10월 24일 태국 불교의 수장인 냐나상완(Somdet Phra Nyanasamvara: 1913~2013) 대승왕이 사망하자, 마하 와치라롱꼰(Maha Vajiralongkorn: 1952년생) 왕세자로부터 버림받았던 아들들인 위와차라웡 4형제가 '타이 이-뉴스'(Thai E-News) 등 여러 언론매체에 이-메일을 통해 성명서를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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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와차라웡 4형제가 언론사에 배포한 성명서.
전반적인 내용은 냐나상완 대승왕의 입적을 애도하면서, 어린 시절 자신들이 그의 사찰로 단기출가를 했던 기억들과 가르침에 관해, 정중하고도 진지한 회고 형식으로 되어 있다. 다만 맨 마지막 부분에서 "사적으로 귀국해 직접 애도를 표하고 싶지만, 아직 귀국 지시나 허락이 없는 상태"라며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크세] |
이 성명서에서 가장 충격적인 점은 이들 4형제가 [국왕이 하사하는] '왕실품계 명칭'인 '멈짜오'(Mom Chao) 칭호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사용하도록 명령받았던 성씨인 '위와차라웡'(Vivacharawongse) 대신, '짜끄리 왕가'(Chakri Dynasty) 마히돈(Mahidol) 가문의 성씨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 점은 대단히 중요하고도 도발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들 4형제는 자신들이 짜끄리 왕가의 왕위에 대한 적법한 계승자가 될 수 있음을 주장한 셈이다. 따라서 이들 4형제 역시 와치라롱꼰 왕세자의 즉위를 막으려는 기득권 진영의 계획에 한 부분이 된 것이다.
깔리육(암흑기)이 다가오다
2013년 연말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태국은 여전히 불안정한 정치적 갈등으로 교착상태에 빠져 있고, 이러한 상황은 국가 및 국민들의 안녕에 막대한 타격을 가하고 있다. 암흑기, 즉 "깔리육"(กลียุค)은 이미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깔리육'이란 푸미폰 아둔야뎃(Bhumibol Adulyadej, 라마 9세: 1927년생) 국왕의 재위기가 끝나면 시작된다는 시대로서, 태국인들이 두려워하는 시기이다.
태국의 완고하도고 무원칙한 두 엘리트 계층 파벌들(역주: 왕당파와 탁신파)은 자신들의 협소한 사익만을 좇아 죽음으로 나아가는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그것은 평범한 태국인들의 열망을 땅바닥에 짖밟아버리는 일이다. 양측 모두 자신들의 전략에 따라 살인과 혼돈을 유발시키려 해왔다. 양측은 법치주의를 체계적으로 갉아먹었고, 마땅히 불편부당해야만 할 국가기관들을 자파로 끌이들이려 해왔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자신들이 일으키고 있는 부수적 피해가 얼마나 큰지에 관해선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다. 필자는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슴아픔을 금할 길이 없다.
탁신과 그 동맹세력은 반대파가 탁신의 귀국을 막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것이란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가식적 모습을 고려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전혀 원칙적인 일이 아니다. 태국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용서받는 일은 항상 전형적인 관행과도 같았다.
1976년, 왕실은 타넘 낏띠카쫀(Thanom Kittikachorn: 1911~2003) 원수의 귀국 문제를 지원하여, 그가 귀국할 수 있도록 해줬다. 그것은 타넘이 방콕의 거리에서 학생들과 민간인들을 학살한지 고작 3년이 지난 때였다. 마눈끌릿 룹카쫀(Manoonkrit Roopkachorn: 1935년생) 역시 1985년 공공연히 왕실을 묵살하면서 '만우절 쿠테타'(April Fool’s Coup)를 일으켰다 실패한 후, 3년간의 해외망명 끝에 국왕의 사면령을 받고 귀국했다. 태국의 기득권 진영은 자신들이 확고하게 법치주의를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말 뿐이며 정직하지 못한 주장일 따름이다.
전통적 엘리트들과 '민주당'이 그토록 탁신을 태국에서 배제된 상태로 유지시키고자 하는 이유는, 탁신이 귀국하면 와치라롱꼰 왕세자와 손을 잡고 정치적 지배권을 행사하는 암흑기를 만들어낼 것이 분명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기득권 진영의 이러한 믿음은 이미 확고한 상태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결과를 막기 위해 채택한 재앙적 전술들은 태국의 군주제 및 '딥 스테이트'(deep state: 과두지배 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적법성 위기를 불러일으켰다.
태국의 보통사람들은 이제 푸미폰의 발 아래에 위치한 티끌들(=기득권층)의 다시금 아래에 놓인 티끌들(=보통사람들)로 대접받는 일은 더 이상 수용할 마음이 없는 상태이다. 보통사람들은 자신들의 기본적인 민주적 권리(=투표권)를 묵살한 기득권 진영의 반복적 시도들에 염증을 느끼고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을 작성 중인 2013년 10월 말 현재] 몹쓸 타격을 가할 또 하나의 심각한 위기가 어렴풋이 나타나고 있다. 바로 기득권 옐로셔츠 진영이 향후 며칠이나 몇주에 걸쳐 다시 한번 방콕 시내에서 대혼란을 조성하려 한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책임있는 야당으로서의 의무, 즉 합헌적 방법을 통해 정부를 견제하는 역할을 전면적으로 포기했다. 대신 그들이 채택한 전략은 의회 기능을 마비시킨 후, "태국에서 민주주의는 더 이상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바로 어제인] 2013년 10월 30일, 꼰 짜띠꽈닛(Korn Chatikavanij: 1964년생)을 비롯한 '민주당' 부총재 4인이 당직을 사임했다. 그들이 사임한 것은 정부 전복을 위한 불법적 시도에 동참하기 위한 것으로서, (그들의 바램이지만) 그 경우에도 '민주당'의 법적 지위만은 위태롭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이다.
기득권 옐로 진영은 '쁘레아위히어 사원'에 관해서도 다시 한번 손상을 안겨줄 캄보디아와의 충돌을 만들고 싶어하기도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혼란을 조성하면서 민족주의 성향의 태국인들을 자신들의 명분에 동참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방콕을 마비시키기 위해 더욱 대규모 시위도 벌일 것이다. 그리고 혼돈과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자파 성향인 사법부를 통해 잉락 정권을 제거하는 사법 쿠테타 시도를 의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후 몇년간 민주주의를 동결시킨 상태에서 임명직 총리를 수반으로 하는 정부를 출범시킬 것이다. 그 정부는 어떠한 민주적 절차나 위임도 받지 않은 채 수립될 것이며, 아마도 총리에는 쁘라윗 웡수완(Prawit Wongsuwan: 1945년생) 장군이 임명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계획은 완전한 광기이다. 만일 이러한 시도가 실패할 경우, --- 분명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상태임 --- 그들은 심지어 더욱 더 필사적인 수단을 동원하려 할 것이다. 탁신이나 왕세자, 혹은 양자 모두를 납치하거나 암살한다는 황당한 이야기들이 이미 극과격 왕당파 캠프에서는 점점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돼가고 있다. 그들은 실탄 몇발이면 최종적인 결정을 지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만의 하나 그런 계획이 성공한다면, 태국은 1976년이나 2010년에 겪었던 암울했던 날들보다 훨씬 더 큰 유혈사태를 동반할 것이며, 동족상잔의 악순환적 갈등에 빠질 수도 있다. 방콕, 이싼(Isaan: 북동부 지방), 란나(Lanna: 북부지방)에서 대규모 군중 봉기가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그 경우, 사태의 귀결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하나는 2011년의 이집트 상황이다. 즉, 민주적 선거를 억압하는 권위주의 통치에 대해 대규모 저항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2013년의 이집트 상황이다. 이것은 딥스테이트 체제가 군부독재를 통해 질서와 단결을 유지하면서, 반대파에 대해선 야만적인 대량학살을 가하는 방식이다.
탁신이 이 싸움에서 승리하여 와치라롱꼰 왕세자가 라마 10세로 즉위할 기회도 많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기득권 진영의] 반-탁신파는 자신들이 2005년부터 채택했던 전략이 얼마나 자살적이고 어리석은 일이었는지를 마침내 깨닫게 될 것이다.
탁신처럼 포퓰리즘에 기반한 강자나 와치라롱꼰 같은 군주의 통치에 적절히 대비하는 길은, 1990년대에 기득권 진영의 일부 인사들도 믿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방법 뿐이다. 즉, 태국의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국가기관들 사이에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법치주의를 확고히 하고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는 일이다.
하지만 태국의 기득권 진영은 이와는 정확하게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만일 탁신과 와치라롱꼰이 옐로 진영이 두려워하던 바로 그런 스타일의 통치자임이 판명된다면, 그들이 사용하는 기제들이 갑작스레 그들 자신에게 적용될 것이다. 즉, 태국 민주주의를 껍데기로 만들고자 모의를 꾸몄던 이들에게 적용될 것이고, 권력층의 시녀 노릇을 했던 사법부와 독립적인 국가기관들에게도 적용될 것이며, '왕실모독 처벌법'(lèse majesté law: 형법 제112조)이 [탁신과 와치라롱꼰의] 반대파들, 즉 현재의 기득권 진영을 침묵시키는 데 활용될 것이다. 그들 자신이 창조해온 체제, 즉 권위주의가 횡행하는 태국식 체제는 [탁신과 와치라롱꼰이 집권한 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엔 그것을 조절해줄 스승들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태국은 너무도 양분되고 부서진 상태라서, 때로는 이 나라가 벼랑 끝에서 뒤돌아나올 가망이 전혀 없어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할 수 있다. 태국의 엘리트들, 즉 옐로 진영과 레드 진영은 자신들의 적법성을 회복 불가능할만큼 상실했다. 하지만 양쪽 진영에 대해 태국의 보통사람들이 갖고 있는 열망은 대단히 적절한 내용을 갖고 있다. 즉, 그들이 법치주의가 존중받는 것을 보고싶어 한다는 것이다. 태국의 보통사람들은 자국의 정치지도자들이 국민들의 필요에 부응해주길 바라고 있다. 그들은 평화와 번영을 바란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앞으로 전진하기 위한 긍정적이면서도 신뢰할만한 방법은 이미 다 만들어져 있다. '카나 니띠랏'(Khana Nitirat)은 워라쩻 파키랏(Worachet Pakeerat) 교수를 필두로 '탐마삿 대학'(Thammasat University) 법학 교수 7인으로 구성된 단체이다. 이들이 공포를 무릅쓰고 제안한 내용을 살펴보면, 태국이 보다 전향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주목할만한 청사진이 제시되어 있다. 그것은 [군부 소장파 그룹이었던] '인민당'(People’s Party)이 절대왕정을 종식시킨 '1932년 혁명'을 성공시킨 후 의도했다가 불행하게도 궤도를 이탈해버렸던 내용과도 유사하다.
'카나 니띠랏'의 제안에서 중심적인 내용에는 '2006년 쿠테타'로 인해 발생한 모든 [법률적인] 것을 무효화시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왕실모독 처벌법'과 사법부의 개혁, 그리고 --- 1932년 이후 제정된 모든 헌법들과는 다른 형태의 --- 참다웁게 공정하고 영속적으로 유지할만한 새로운 헌법의 제정도 포함된다. 이러한 제안들은 태국인의 압도적 다수가 힘을 합칠만한 내용임에 틀림없다.
'카나 니띠랏'의 제안 내용은 탁신 친나왓을 자유인의 몸으로 귀국할 수 있도록 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경우 탁신과 다른 모든 엘리트 계층들은 법치에 종속될 것이며,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책임도 져야만 한다.
'카나 니띠랏'이 형법 제112조(=왕실모독 처벌법) 개혁에 핵심적인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이 의미하듯이, 태국의 엘리트 계층은 진실을 억압하면서, 그 자리를 자신들의 잇속만 챙기는 신화와 동화들로 대체하는 광기어린 시도를 멈출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오직 표현의 자유가 우대받고 진실이 거짓을 이길 수 있는 환경 속에서만 번성할 수 있다.
데이빗 스트렉퍼스(David Streckfuss)는 <방콕포스트>(The Bangkok Post)에 기고한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른 대부분의 사회들과 마찬가지로, 태국 사회도 수많은 폭력사태들이 해명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태국에는 면책의 관행이 만연돼 있다. 이 점은 군부 지도자들로 하여금 저항자들을 대담하게 진압토록 만들며, 연이은 쿠테타도 일으키도록 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사면법을 스스로 통과시켜 합법적인 면책까지도 부여하고 있다.
정부 전복에 성공했던 이들 중, 어떠한 군 장교도 재판을 받은 적이 없었다. 태국의 어떠한 지도자나 군인들, 혹은 여타 인물들도 시위대를 살해한 책임 때문에 사법처리 된 적이 없다.
1973년에는 쿠테타를 일으킨 군사정권에 대해 국외로의 망명이 허용됐다. 1978년에는 쿠테타 지도부와 시위대 모두에게 사면령이 내려졌다. 그것은 1976년의 유혈 학살에서 발생한 과오들을 용서하기 위한 것이었다.
1992년 5월 군부가 시위대를 강제진압하고 일년 후, 이 사건에 관한 보고서 한편이 발행됐다. 이 보고서는 무익하게도 명예훼손의 근거로만 사용되는 역할을 했고, 시위대가 살해됐다는 점 말고는 아무것도 규명하지 못했다. 이 사태를 기록하는 일은 분열된 사회를 치유한다는 명분에 묻혀버렸고, 그 시기도 잃고 말았다. 여기서도 볼 수 있듯이, 태국 사회는 기꺼이 용서나 망각을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망각은 댓가를 요구한다. 사태의 진실이 계속해서 모호해지면, 진실의 가치 그 자체가 타락하고 만다. 사람들은 자꾸만 스스로에게 진실을 다루지 말라고 말하게 된다. 그러면 그들은 진실을 붙잡을 필요가 없다는 잘못된 확신을 통해 위안을 얻는다.
일괄사면은 다시 한번 태국으로부터 진실을 앗아갈 위협이 되고 있다. 그러면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 역사의 의무는 상실되고 만다. 태국 사회는 그러한 역사를 분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 이 기회를 잃어버려선 안 될 것이다. |
본 논문은 과거 10여년간 태국에서 정말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에 관해 약간의 이해를 해보기 위해, 필자의 미약하나마 시도하고 있는 노력의 일환이다. 하지만 필자의 연구가 조그마한 가치라도 지닐 수 있다면, 그것은 필자보다 더욱 지혜롭고 태국에 관해서도 더 많이 알고 있는 태국인들이 [현재] 입막음을 당해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고 있는 한에 있어서만 가치를 지닌다. 바라건데, 언젠가 태국인들이 자국의 "깔리육"(암흑기)에 관한 온존한 역사를 말할 수 있게 되어, 바로 그 과정을 통해 태국을 암흑기에서 탈출시켜 번영으로 이끌게 되길 희망하는 바이다. (끝)
(역자 부록)
본 한국어 번역본이 완성된 2014년 6월 2일 현재, 태국은 5월20일부터 진행된 군사 쿠테타로 인해 군사정권의 치하에 놓여 있다. 원 저자인 앤드류 M. 마샬이 이 논문을 발표한 2013년 10월 31일 직후, 태국의 극우 왕당파 기득권 진영은 모든 역량을 총동원한 대정부 공세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은 2014년 5월의 쿠테타를 통해 1차적인 완성을 보았다. 이하의 목록은 앤드류 M. 마샬이 이 논문을 공개한 직후부터 한국어 번역본이 최종적으로 공개된 현재까지 진행된 태국 정치의 진행상황을 보여주는 기사목록 및 링크이다. [크세]
(바로가기) "[목록] 태국정치 진행상황 : 2013년 11월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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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물 바로가기 :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1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2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3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4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5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6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7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8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9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10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11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12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제13편)"
-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완결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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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태국의 기득권 엘리트들이 조언을 듣지는 않을 것입니다만..
앤드류 마샬의 해법은 "민주주의를 강화하라"는 것입니다.
저 또한 그에 동의합니다.
그것은 태국 뿐만 아니라, 지구상 모든 사회에 적용될 수 있는 유일한 분쟁해결의 원칙일 것입니다.
민주주의만이 한 사회의 내전이나 유혈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가 곧 안보이기도 하죠.
그런 점에서..
2012년 대선에서 발생한 한국 군부의 대선 선거개입 부정 사건을 철저히 단죄하지 않을 경우..
한국 역시 이대로 10년 정도 흘러가면, 태국 꼴이 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민주주의, 그리고 그 전제조건으로서의 표현의 자유..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깊은 상념에 잠기게 됩니다.
그리고 울노님의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 축약본을 정회원 광장에 좀 올려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참으로 스고가 많으셨습니다
형편 되시면 저도 받아보고 싶습니다
축약본으로 맥을 먼저 잡고
원문을 짬짬이 천천히 읽어 보려구요
사실 주만 간산격으로 스친 부분이 많기는 합니다만
경의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장시간에 걸쳐 정독 하엿으나 시간내 재차 읽어 보려고 합니다.
마침,
어제 태국뉴스에 브라윳총리 생일을 맞아 와치라롱건 왕자가 보낸 화환을
왕자 사진에 엎드려 절하는 모습에서..저거 가식이다란 판단을 할수 잇을 정도가 되엇습니다.
이글들을 읽기전엔 단지 왕실에 대한 충성심이 많구나 햇을텐데요..
다시한번 전체적 맥락에서 애스신 정성을 느길수 잇엇습니다-참고로 제 컴퓨터 카판 시프트가 먹통상태..ㅠㅠ
여기 저기 닭들이 참 문제네요.. 저긴 만즘미친 섹닭, 여긴 맹한 맹닭.. 넋바진 맹닭의모습 많은걸 느기게 합니다
울마님 다시한번 감사합니다..좋은 시간 보네세요.
예.. 즐거운 하루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