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故, 其疾如風
其徐如林
侵掠如火
不動如山
難知如陰
動如雷震.
-孫子兵法 軍爭篇-
빠르기가 바람과 같고,
고요하기는 숲과 같다.
치고 앗을 때는 불같이 하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을 때는 산처럼 한다.
숨을 때는 어둠 속에 잠긴 듯 하다가도,
움직일 때는 벼락치듯 적에게 손쓸 기회를 주지 않아야 한다.
-손자병법 군쟁편-
2. 신겐의 사망
신겐은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피리소리를 듣다가 총을 맞고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다 대망이라는 소설과 카케무샤라는 영화 때문입니다.
하지만 피리소리를 듣다가 총을 맞고 사망했다는 것은 마츠다이라 가문의 문헌이고
다케다 가문의 문헌에서는 지병으로 인한 사망이라고 되어 있다고 합니다.
여하튼 다케다 신겐의 사망소식이 외부에 알려지지 못하게 한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신겐은 죽기 전에 아들 가츠요리에게 사후 3년간 영토확장을 금하는 유언을 남깁니다.
3. 가츠요리의 가혹한 운명
아버지가 너무 뛰어나면 아들에게 남는 것은 부담입니다.
아버지를 뛰어넘는 아들이 되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이유로 인해서 아버지의 유언까지 어기면서
무리한 영토 확장을 시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아버지를 모시고 있던 무장들과의 헤게모니 쟁탈전도 한 몫을 했겠죠.
단지 전쟁을 벌이는 상대가 너무나도 강했다는 것이 가츠요리에게는 불행이었을 겁니다.
4. 텐쇼3년(1575년) 5월 20일~21일 나가시노城의 기록
병력구성 ---
공격측 : 다케다 - 15000
방어측 : 오다 / 토쿠가와 연합 - 30000
20일 밤 ---
토쿠가와군이 다게타군의 후방을 교란
21일 오전 6시 ---
개천을 사이에 두고 연합군과 다케다군이 대치상태
21일 오전 ---
다케다군이 차현전법으로 돌파를 시도하나
연합군 앞에는 마방책이 설치되어 있어 말이 놀라 오다군에 접근을 하지 못함
다케다군의 기마대가 머뭇거리는 동안
오다군의 3천명의 철포부대가 1천명씩 3교대로 연속적으로 철포를 발사
21일 오후 ---
이름없는 아시가루의 총포에 다케다군의 명장들이 줄줄이 쓰러짐
다케다의 주력이 되는 4개 부대가 궤멸
21일 오후 2시 ---
오다 노부나가의 총공격 명령
다케다 가츠요리 6명 정도가 남아서 퇴각
5. 나가시노 전투의 평가
아직도 분분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마대를 철포대가 격파했다는 것이고,
일본 전투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진 전투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다케다군으로 대표되는 구시대적인 전투방법이
오다군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시대의 전투방법에 무너진 것이 가장 큰 의의입니다.
6. 전후처리
오다 노부나가, 토쿠가와 이에야스 둘 다 다케다 신겐을 두려워 했습니다.
하지만 전후처리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다케다와 관련된 무장들은 모조리 찾아내어 제거해 버립니다.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다케다와 관련된 무장들은 몰래 자신이 보호를 합니다.
그래서 나가시노 전투 이후 다케다 가문의 모든 병법은 토쿠가와군에 전수됩니다.
7. 미카타카하라 전투
다케다 신겐이 살아 있었을 때에 오다-토쿠가와 연합군은 다케다 군에게 괴롭힘을
몇 번 당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미카타카하라 전투입니다.
이 전투는 다케다군의 어린진과 토쿠가와군의 학익진의 대결이었습니다.
학익진이 성공하려면 상대방을 완전히 감싸서 포위해야 하는데
다케다군이 그것을 알고 학익진의 좌우익 선봉을 격파해 버립니다.
이 전투에서 이에야스는 한마디로 개박살(?)나고 죽을동 살동 하마마츠 성으로 도망칩니다.
너무 공포에 떨어서 말위에서 응가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ㅅ-);;;
8. 프롤로그
風林火山軍團 - 高坂 義風, 眞田 透琳, 馬場 彰炎, 山俔 昌景
다케다 사명신이라고도 합니다. 각각 풍, 림, 화, 산 이라는 깃발을 걸고
합전을 수행하였으며, 풍림화산은 다케다 신겐이 들고 있던 군선에도 적혀 있었습니다.
=울산지역 일본학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