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간 우리교육 2014년 여름호
[특집 - 철학 '없는' 교육, 철학 '하는' 교육]
철학은 배울 수 없다, 스스로 생각하라 | 이진오
유럽의 철학 교육에서 배워야 할 것
글. 이진오
그 사회에 녹아 있는 제도와 생활 방식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철학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관심이 매우 높다. 물질적 성장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며 달려온 결과 평균 소득은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다. 그런데도 서민들의 생활은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각박해졌으며, OECD 국가 중 압도적으로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 비해 배가 부른 것 같긴 한데 이게 과연 잘 살게 된 것인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런 의구심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잘 사는 것인지 알고 싶어 철학에서 근본적인 답을 찾는 것 같다. 그런데 철학이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단지 철학과 직접 관련 있는 것만 살펴봐서는 안 된다. 한 사회의 출현과 지탱에 관련된 철학이 그 사회의 법과 제도, 생활 방식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에 대해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산림이 우거진 독일 남부의 작은 대학 도시 튀빙겐에서 세 아이를 기르며 철학을 공부하던 필자는 큰아이의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에게 크게 혼쭐난 적이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아직 독일어가 서툴던 큰아이가 학교생활에 조금이라도 일찍 적응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독어 알파벳을 집에서 미리 가르쳤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자상하게 웃는 얼굴로 대해 주시던 담임선생님이 우리 부부를 학교로 호출하시더니 엄격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절대 아이에게 선행 학습을 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주의를 준 것이다. 그러면서 담임선생님은 새로 배우는 내용을 아이 스스로 천천히 살펴보면서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기도 전에 머릿속에 집어넣으면 그런 공부는 결코 제대로 된 공부나 아이를 위한 공부가 될 수 없다고 했다. 큰아이는 독어 알파벳에 대해서만 두 달 가까이 수업을 들었다. 수학 시간에 숫자를 배울 때도 비슷한 기간 동안 수업이 진행되었다. 적지 않은 수의 신입생들이 글을 알고 셈을 할 수 있었을 텐데도 아이들이 하나하나 새롭게 곱씹어 가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도록 이끈 것이다.
이렇듯 교육 방식이 한국과는 크게 차이가 나는 것 같아 필자는 여러 차례 수업 광경을 지켜보았다. 놀랍게도 독어 시간뿐만 아니라 수학 시간에도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고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는 경우가 많았다. 배우는 내용을 들여다보면 분명 어학이나 수학인데, 수업하는 방식만 보면 마치 철학 시간에 토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학생들이 중심이 되는 철학적 사유 방식과 학습 방식이 모든 교육과정에 녹아 있는 듯했다.
스스로 깊이 있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곧 철학 하기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다른 그 어느 철학자들보다 학술적이고 딱딱한 사유를 전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벽돌처럼 두꺼운 그의 대표작 《순수이성비판》을 처음 읽는 이들은 그 난해함과 무미건조함 때문에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정신적 고문을 당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렇게 부대낀 끝에 마침내 칸트와 일대일로 대면하며 문답을 주고받고 함께 철학적 사유를 하게 되면 벽돌처럼 딱딱하게만 보이던 《순수이성비판》 곳곳에 쉼표처럼 놓인 인간적인 넉살과 반전을 발견하게 된다. 가령 칸트는 이 책의 중요 부분을 일단락 짓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자신의 작업이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성취하지 못한 대업적이라고 자화자찬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런데 가장 충격인 순간은 길고 긴 《순수이성비판》의 여정이 마무리되는 부분에서 철학 교육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말할 때이다. “철학은 배울 수 없다.” 배울 수 없다는 것은 가르칠 수도 없다는 것을 함축한다. 여태까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순수이성비판》에 담긴 철학을 공부한다고 생각했는데, 철학은 배울 수가 없는 것이라니 이 무슨 무책임하고 해괴망측한 말인가? 하지만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칸트의 이 말은 올바른 철학 공부를 각성시키는 죽비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철학적 지식을 학습하는 것은 마치 역사적 지식을 암기하는 것과 같은 지식 습득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곧 철학 공부는 아니라는 말이다. 철학 공부란 스스로 생각하기인데, 이는 누가 가르쳐서 배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아무리 많은 철학적 지식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것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지식은 기껏해야 철학을 하기 위한 준비는 될 수 있지만 아직 철학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바꾸어 말해서 지식의 양과 무관하게 어떤 명제에 대해 스스로 깊이 있게 생각하고 판단한다면 그것이 곧 철학 하기라 할 것이다.
철학 공부에 대한 칸트의 이러한 규정은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에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문구에 닿아 있다. “과감히 스스로 생각하라!sapere aude!”. 학문적 권위건 정치적 권위나 종교적 권위건 간에 권위자가 주장한 것을 무조건 추종하는 것은 이성이 아직 미성숙 상태에 있는 것이다. 누가 한 말이건 스스로 그 주장의 타당성을 근본적으로 사유할 때라야 한 사람의 성숙한 인격으로, 지역과 신분에 구속되지 않는 독립적 세계시민으로 설 수 있다. 자율성과 존엄성을 지닌 인격체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감히 스스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능력은 학술적 철학 교육을 통해서보다는 세상살이를 위한 철학 교육을 통해 배양될 수 있다. 우리는 아직도 철학을 전공할 사람들을 위한 철학 교육과 비전공자를 위한 철학 교육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200여 년 전 유럽의 칸트는 “강단적 개념의 철학Philosophie im Schulbegriff”과 “세간적 개념의 철학Philosophie im Weltbegriff”을 구분하고 이에 따라 철학 교육의 목표와 방법 역시 달라져야 함을 시사했던 것이다.
세상살이를 위한 철학의 역할
이렇게 칸트가 철학을 전공하지 않는 일반 시민들에게 철학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기까지는 칸트 이전 철학자들의 활동이 모범이 되었다. 소수만이 사람대접을 받던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인간존재와 사회제도, 이념 등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탐구한 로크, 볼테르, 루소 등의 철학적 작업은 칸트가 학술적 철학을 넘어서 세상살이를 위한 철학의 기능을 강조하게 되는 배경이다.
가령 칸트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규칙적으로 하던 산책을 깜빡했을 정도로 몰두해 읽었다는 루소의 《에밀》은 보통 사람들이 주인인 국가에서 시민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자유, 평등, 공감 능력, 자기애, 이기심, 불평등, 사회정의 등의 주제들에 대해 철학을 전공하지 않는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소설 형식으로 작성된 눈높이 철학 교육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유럽의 근대 세계가 오로지 철학 사상에 의해서 추동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가치와 인간형, 사회상에 대해 근본적으로 사유해 보게 하고 이를 제도화하는 데 기여한 철학자들의 노력은 결코 간과될 수 없다.
따라서 유럽 사회에서 철학의 중요성과 역할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단지 학교에서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교육에만 국한해서 살펴보아서는 안 되고 이상과 같이 근대 시민사회 형성 과정의 맥락 속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 교육 -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 길러 내기
철학이 근대 유럽 시민사회의 탄생과 육성에 기여한 바에 걸맞게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는 중고등학교에서부터 철학을 가르친다. 즉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과 같은 라틴 계통의 대부분의 국가들과 북유럽 국가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중고교 철학 교육을 오래전부터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나라들 중 특히 유럽 시민사회를 중추적으로 이끌었던 프랑스에서 철학은 고교를 졸업하려는 모든 학생들이 반드시 들어야 하는 교과목이다. 그런데 프랑스 고교에서 철학 과목은 그냥 이수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고등학교 졸업 시험 겸 대학 입학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의 총 8과목 중 필수과목으로 철학 시험을 보아 합격을 해야만 한다. 철학 바칼로레아에서는 3개 주제 중 1개를 선택해 4시간 동안 논문 형태의 글을 작성해야 하는데, 그해 철학 바칼로레아에 제시된 논제들은 프랑스 지성인들의 현실 인식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시험이 끝난 후 언론이나 사회단체들은 유명 인사와 일반 시민들을 모아 놓고 철학 바칼로레아 논제들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한다. 단지 수험생들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프랑스 사회를 철학적으로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철학 바칼로레아의 논제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 “일은 우리에게 자의식을 갖도록 해 주는가?”, “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나?”, “우리는 국가에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1645년 데카르트가 엘리자베스에게 보낸 편지의 요약본에 대해 설명하라”. 이러한 철학 시험 논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프랑스에서 철학 교육의 목적은 지식을 전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삶과 관련된 문제를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을 길러 내는 것이다. 이에 따라 철학 수업에서 다루어지는 내용 역시도 우리가 생각하는 전통적 의미의 철학적 지식에 국한되지 않는다. 가령 철학 교재는 한 가지가 아니라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모든 철학 교재는 인간에 대해서 다루는 심리학, 제반 과학의 방법론에 대해 다루는 논리학, 사회 실천론을 다루는 윤리학, 신과 인간과 세상의 관계를 다루는 형이상학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랑스 문교부는 교재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철학 교육의 일정한 방향성을 주기 위해 길잡이 역할을 할 주요 개념들과 철학자들을 제시하였다. 문교부에 의해 제시된 철학 개념은 크게 세 영역으로 구분된다. 우선 인간과 세계 영역에는 의식, 무의식, 욕망, 정념, 환상, 타자, 공간, 지각, 기억, 시간, 죽음, 현존, 자연과 문화, 역사가 포함된다. 두 번째인 의식과 이성 영역에는 언어, 상상, 판단, 관념, 과학적 개념의 형성, 이론과 경험, 논리와 수학, 생명의 인식, 인간 의식의 구성, 비합리적인 것, 의미, 진리가 속해 있다. 세 번째인 실천과 목적 영역에는 노동, 교환, 기술, 예술, 종교, 사회, 국가, 권력, 폭력, 권리, 정의, 의무, 의지, 인격, 행복, 자유가 있다. 문교부에서 제시한 철학자는 34명이다. 그들 중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루크레티우스, 에픽테토스, 데카르트, 스피노자, 루소, 칸트, 헤겔, 콩트, 후설, 베르그송은 모든 학생들이 공부해야 할 철학자이다. 문과 지망생들은 철학적 깊이가 있는 문필가들도 추가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독일 철학 교육 - 지식과 인격, 비판 정신을 겸비한 시민 양성
철학의 나라로 알려진 독일에서는 프랑스에서처럼 모든 고교생들이 철학을 공부한 후 대학 입학을 위한 필수과목으로 시험을 보지는 않는다. 우리의 중고등학교 과정을 합친 것에 해당되는 김나지움 하급반에서는 종교 수업을 대체할 수 있는 과목으로 윤리학을 배운다. 윤리학에서는 도덕적 덕목이나 윤리 사상을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자신의 삶의 문제를 윤리학적 관점에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다양한 사례를 예시하며 교육한다. 김나지움 상급반에서는 철학을 가르치는 곳이 많다. 독일의 고등학교 졸업 시험 겸 대학 입학 자격시험인 아비투어는 언어 영역, 자연과학, 사회과학, 자유 선택의 네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철학을 김나지움에서만 배우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원할 경우 자유 선택 중 한 과목으로 선택하여 아비투어를 보고 이를 대학 입학 사정에 반영할 수 있게 제도화되었다.
독일 중고등학교의 교육목표는 지식과 인격, 비판 정신을 겸비한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다. 학교가 입시 경쟁에 치중하며 이러한 교육목표를 훼손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철학 수업은 지식을 수동적으로 습득하는 과정이
아니라 삶의 문제나 사회 현실과 관련된 특정한 철학 사상을 학생들 스스로 검토해 보는 시간으로 진행된다. 독일 16개 연방 중 인구가 가장 많은 노르드라인 베스트팔렌 주에서 1998년 이후 종교 대체 과목으로 김나지움의 모든 학년들이 들을 수 있게 개설한 실천철학Praktische Philosophie은 좀 더 철저히 학생들 자신의 삶의 맥락 속에서 철학 사상을 검토해 볼 수 있게 꾸며졌다. 김나지움 하급반으로 갈수록 철학자들의 텍스트 이외에 그림이나 시, 동화, 게임 등 흥미를 유발하며 이해를 도울 수 있는 교구들의 비중이 크다. 그렇지만 상급반이든 하급반이든 간에 자아, 행복, 일, 사랑, 친구, 적, 욕망, 돈, 시장, 폭력, 죄와 책임, 자유, 시간, 영혼, 죽음 등 학생들 자신의 삶과 깊이 관련되는 주제들을 공통적으로 다룬다. 프랑스 철학 수업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강단적 개념의 철학”을 넘어서 “세간적 개념의 철학”을 가르치며, 이를 위해 전통적 의미의 철학자들뿐만 아니라 철학적 성격이 강한 작가나 과학자들도 다룬다. 그런데 구체적 삶과 밀접히 관련된 이러한 주제들은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흥미는 불러일으키지만 철학 교과로서의 정체성을 잃게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깊이 있게 통찰한 철학적 텍스트를 개인적 지평 및 사회적 지평과 연결해서 읽고, 쓰고, 토의하게끔 교재와 수업을 구성함으로써 철학 수업이 철저히 철학적 사유의 틀 속에서 진행될 수 있게 하였다. 가령 ‘자아’라는 주제를 다룰 때는 먼저 학생들이 자신의 이름이 지닌 뜻을 생각하게 하며, ‘나는 누구인지’,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그런 다음, 다른 사람이나 사회 환경은 ‘나를 나답게 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말해 보게 한다. 최종적으로 데카르트의 영혼 실체 개념과 사르트르의 자아와 타자 등과 같은 관련 철학 사상을 소개하고, 이런 철학적 틀 속에서 문제들을 다시 생각하고, 글을 쓰고, 토의하게 하는 식이다.
삶의 주인으로서 이해와 인정, 의미 찾기
필자는 독일 실천철학에서 사용되는 교재들과 교구, 교수법을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철학 수업을 위한 교재와 교수 지침서를 만들어 3년 전부터 대학과 중고등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의 참여가 중심이 되는 이러한 교재와 교수법은 우리 학생들에게 매우 낯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말하는 동물이다. 사유하고 말하는 장소가 아니라 듣는 장소로 여겨진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학생들은 저절로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며 분위기에 자신을 맞추었을 뿐이다. 자신이 중심이 되어 삶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주니, 금세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며 생의 활력을 발산했다. 이때 교수자는 학생들이 철학적 개념과 사상의 안내를 받으며 자신의 문제를 좀 더 깊이 있고 새롭게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런 학습의 과정과 사유의 과정을 경험하면서 학생들은 자신의 세계가 좀 더 의미 있고 넓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과도한 비교와 경쟁으로부터 엄습해 오는 패배감과 편견에 맞설 수 있는 자존감과 이해심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필자가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경수중학교에서 철학 수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의 일이다. 왕성한 활동성을 자랑하는 중2들을 겨우 진정시킨 후 행복이 무엇인지 각자 경험을 바탕으로 말해 보게 했다. 필자가 수업을 갔을 때 5명의 학생들이 소위 집중 관리 대상자로 지목돼 교실 맨 앞에 마련된 특별석에 앉아 있었는데, 이 학생들이 먼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들 나름의 통찰이 담긴 이야기에 아이들은 ‘우와!’ 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문제아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쟤네들도 나름 생각이 있구나!”이때까지도 반에서 1, 2등 한다는 아이들은 무릎에 다른 과목 참고서를 얹어 놓고 머리를 숙인 채 시험공부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들이 마음을 열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조리 있게 말하는 것을 보고는 소외감을 느꼈는지 참고서를 덮고 슬그머니 토론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그 순간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동년배 아이들을 갈라놓았던 거대한 벽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다. 이후로도 선지식 없이 누구나 대답할 수 있는 질문으로 수업을 시작하면 공부를 잘하는 아이건 못하는 아이건 상관없이 자기 나름의 입장과 그 근거를 말하였다.
지식과 권위에 눌리지 않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함으로써 아이들은 서로가 대등한 관계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런 대등한 관계에서 성적이나 신체적 차이를 넘어서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데로 나간다. 이런 교육을 통해 보다 많은 아이들이 단지 어느 한 면이 부족하다고 해서 자포자기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의미를 찾으며 열심히 살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첫댓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수업을 받고 싶네요..
와...교수님 멋지십니다!!
마지막 경수중학교 이야기는 저를 울컥하게 만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