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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고개에서 임걸령에 이르는 3.2킬로미터는 아주 걷기 좋고 조망도 뛰어난 구간이다. 출발한 지 50분이 지날 즈음 돼지평전 위 헬기장에 도착했다.
‘돼지평전’이란 지명은 이 부근에 많이 자라는 원추리 뿌리를 멧돼지들이 파먹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남쪽으로 왕시리봉 능선이 힘차게 뻗어가고, 그 아래 깊이 내려간 곳이 피아골 계곡이다.
헬기장에서 15분 가면 피아골 삼거리. 다시 능선 왼편의 울창한 숲길을 따라 10분 가면 너른 공터에 지리산에서 가장 예쁜 샘을 가진 임걸령이 나온다. 임걸령은 조선 선조 때 지리산을 주무대로 활동했던 초적 두목 임걸년(林傑年)과 관련 깊은 지명이다. 임걸령에서 반야봉 오르는 길목인 노루목까지는 40분쯤 걸린다. 조망하기 좋은 바위 전망대가 있는 노루목에서 오른쪽 등산로를 따라 1킬로미터 오르면 지리산 제2봉인 반야봉. 왕복 1시간 걸린다.
‘임걸령’, ‘노루목’, ‘날나리봉’ 재미있는 지명 가득한 주능선
노루목에서 삼도봉 방향으로 15분 가면 왼편으로 반야봉 오르는 길이 나온다. 20미터 더 가면 등산로 오른편에 소금장수 무덤이 보이고, 10분도 못되어 전북, 전남, 경남땅이 만나는 삼도봉에 닿는다. 삼도봉에선 북쪽에 있는 바위에 올라보아야 한다. 지리산을 조망할 수 있는 둘도 없는 명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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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봉에서 한 숨을 돌렸다면 이제 그 유명한 화개재 나무계단을 내려서야 한다. 5분 정도 길을 따르다 급경사 지역에서 만나는 나무계단은 자그마치 551개나 된다. 계단이 끝나면 이내 지리산 주능선에서 그 높이가 가장 낮은 화개재다.
북으로 계단길을 따라 잠시만 내려서면 뱀사골대피소가 나오고 식수를 구할 수 있다. 지금 화개재는 ‘북뱀사골 탐방로 정비공사’가 진행 중인데, 훼손이 심한 화개재의 복원을 위해 나무계단으로 길을 정비하는 공사다.
심마니 노총각 전설 간직한 ‘총각샘’
화개재에서 30분 걸리는 토끼봉까지는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하는 오르막이다. 토끼봉(1533m)은 반야봉을 중심으로 24방위의 정동에 해당하는 묘방(卯方)에 위치하기 때문에 토끼봉(卯峰)이라 부른다.
토끼봉을 내려서서 명선봉(1586.3m)에 오르기까지는 다시 비지땀을 흘려야 하는 오름길이다. 이 중간에 지리산에서 물맛 좋기로 소문난 ‘총각샘’이 있다. 하지만 샘을 알리는 이정표가 없고, 주등산로에서 남쪽으로 고개를 넘어야하기에 초행이거나 샘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은 찾기가 쉽지 않다.
총각샘에서 연하천대피소까지는 40분이면 닿는다. 명선봉을 우회하여 길이 나 있으며 나무계단이 나타나면 그 끝에 천상의 화원, 연하천대피소가 있다.
천상의 화원, 연하천대피소
연하천대피소는 지리산에서 식수사정이 가장 좋다. 연중 맑고 시원한 생수가 콸콸 쏟아져 나오는 연하천대피소는 빼곡히 둘러싼 원시림 속에서 한없이 고요하고 포근하다. 여름날이면 대피소 주변으로 둥근이질풀, 모싯대, 동자꽃, 어수리, 말나리 등 기화요초들이 피어나 말 그대로 천상의 화원을 이루는 곳이다.
대피소 앞마당 끝으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통나무로 정비한 길을 따라 10여분 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왼편은 음정으로 내려서는 길. 오른편으로 30분 가면 전망대 바위가 나타나고, 5분 내려서면 10미터가 넘는 거대한 바위 두 개가 앞을 가로막는데, 형제봉이다. 큰 바위 두 개가 서로 등을 맞댄 입석바위로, 옛날 도를 닦던 두 형제가 지리산녀의 유혹으로부터 몸을 지키려고 등을 맞대고 오래 서 있다가 그만 굳어버렸다는 전설이 전한다. 형제봉에서 벽소령대피소까지는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두서너 개 오르내려야 하고, 길도 남쪽과 북쪽 사면을 넘나든다. 40분이면 닿는다.
이태백이 놀던 달보다 더 아름다운 벽소명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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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소령에서 바라보는 밝은 달을 ‘벽소명월’이라 하여 지리십경으로 꼽았다. 샘은 화장실 뒤편 계곡으로 50미터 내려가면 나온다. 벽소령엔 1972년에 남쪽 삼정리와 북쪽의 음정을 잇는 군작전용 횡단도로가 건설되었는데 지금은 그 기능을 상실했다.
많은 인원이 몰린 벽소령대피소엔 대기자만도 600명에 달하여 우리 종주대는 아예 식당근처에 비박장소를 정하고 배낭을 풀었다. 아침 7시 조금 지나 대피소를 출발했다. 여기서 20분간은 작전도로를 따르는 평탄한 길이다. 신벽소령에서 작전도로는 능선을 넘어 ‘U턴’하여 음정으로 내려선다. 여기서 세석대피소까지는 5.2킬로미터 거리다.
다시 숲길로 접어들어 걷기 좋은 산길을 따라 40분 정도 가면 덕평봉을 돌아 간 넓은 터에 선비샘이 있다. 선비샘은 파이프를 통해 많은 수량의 물이 쏟아지는 샘으로 무더운 여름날에 머리를 식힐 수 있는 곳이다. 선비샘에서 세석대피소까지의 5.3킬로미터 구간은 고도차가 심해 조금 힘든 여정이다. 다른 구간에 비해 길이 험한 편이며, 삐죽삐죽 솟은 봉우리들을 북사면으로 돌아가기에 오르내리기 바쁘다.
하지만 칠선봉(1558m)을 만나면서 대성골로 조망도 트이고, 길도 좋아진다. 칠선봉에서 영신봉(1652m)까지는 1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영신봉은 세석대피소 북서쪽에 위치한 봉우리로 남부능선과 낙남정맥의 출발점이 되는 곳이다. 그 아래쪽엔 무속인들의 기도처인 영신대가 있다. 영신봉에서 10분이면 세석대피소다.
훼손지 복원에 성공한 세석고원
세석대피소는 지리산에서 가장 큰 산장으로 최근에 화장실을 신축해 더욱 편리해졌다. 지금 샘터 보수공사중이라 거림 방향으로 100여 미터 내려가야 물을 구할 수 있다. 북쪽 능선을 넘어 한신계곡으로 내려서면 백무동으로 하산할 수 있고, 남쪽으로 길을 이어 거림이나 대성골, 청학동, 쌍계사로 향하는 남부능선으로 갈 수도 있다.
세석대피소에서 30분 숨을 몰아쉬며 나무계단을 오르면 촛대봉(1703.7m)이다. 촛대봉에서 뒤돌아보면 지금까지 걸어온 주능선이 굽이굽이 펼쳐지고, 그 끝에 덕스러운 반야봉이 우뚝 솟아 있다. 지리산 주능선을 처음 가본다는 차미영씨(34세·학원장)는 역시 지리산을 처음 오른 조카(추현식·중 3년)와 함께 이 힘든 길을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면서도 지리산이 보여주는 비경에 취해 포즈를 취하기 바쁘다.
촛대봉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4.4킬로미터는 지리산이 자랑하는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아기자기한 암릉과 구상나무와 가문비, 주목들이 뒤섞여 자라고, 군데군데 고사목이 선경을 이루는 곳이다. 촛대봉에서 장터목대피소까지는 1시간 거리.
전망 좋은 꽁초바위와 연하봉을 지나면 이내 장터목대피소가 나온다. 장터목대피소는 천왕봉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천왕일출을 보려는 많은 등산객들로 사시사철 붐비는 곳이다. 여기서 동쪽으로 내려서면 유암폭포 지나 중산리로 하산할 수 있으며, 2시간 30분 걸린다. 화장실 쪽으로 내려서면 하동바위 지나 백무동으로 내려서는데 3시간 걸린다. 중산리 쪽으로 30여 미터 내려서면 ‘산희(山姬)샘’이 있다.
남한 최고봉을 찾아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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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목대피소에서 천왕봉까지는 1시간 걸리며, 1.7킬로미터 거리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모두 방수방풍의를 꺼내 입고, 배낭커버를 씌웠다. 대피소 뒤편 가파른 돌계단길을 5분 오르면 나무울타리로 길을 낸 제석봉 고사목지대가 나온다.
오래전 산불로 죽어 말라버린 고사목의 을씨년스런 모습이 빗속에서 마치 비목을 꽂아 둔 것 같다. 40분 가면 통천문이 나타나고, 500미터 더 가면 천왕봉이다. 통천문을 지나 천왕봉에 이르는 바윗길은 최근 나무계단을 설치하여 안전하게 오를 수 있다.
천왕봉(1915m)은 큰 바위 봉우리로, 남한 땅 뭍에서 제일 높다. 그만큼 많은 전설과 역사를 간직한 민족의 애환이 서린 봉우리로, 빗돌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적혀 있다. 발아래로 마야계곡의 깊은 골짜기가 돌아나가고, 건너엔 중봉이 우뚝 서 있다. 그 너머로 하봉을 지나 두류능선이 이어지고, 독바위양지, 외고개를 지나 왕등재로 동부능선이 뻗어간다. 걸어온 주능선 25킬로미터가 꿈처럼 아스라이 멀어져 있다. 반야봉은 아주 멀어도 그 모습이 선명하고, 그 너머 서북능선길 실루엣이 희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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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에서 남쪽 길을 따르면 가파른 경사를 가진 법계사 길로 로터리대피소를 거쳐 중산리로 내려서게 된다. 치밭목으로 가려면 북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야 한다.
여전히 가파른 길이고, 바닥에 깔린 돌은 가끔씩 움직이는 것이 있어 조심해서 디뎌야 한다. 중봉 오르기 직전에 오른편 샛길을 따라 3분 내려서면 중봉샘이 있고, 천왕봉을 출발해 30분이면 중봉에 오를 수 있다. 중봉에서 바라보는 천왕봉은 또 다른 모습이다. 아예 옆면이 절벽에 가까운 모습이다. 장엄하기 이를 데 없다. 비는 그치고, 흐렸던 날은 다시 밝아졌다.
치밭목으로 가는 길은 비경을 자랑한다
중봉에서 100미터 정도 가면 하봉으로 가는 길이 막히고, 치밭목대피소는 오른쪽으로 꺾여 내려간다. “어쩜 길이 이리도 예쁘지?” 이혜진씨(32세·학원장)는 그림처럼 펼쳐지는 등산로와 주변 풍경에 감탄을 연발한다. 다른 대원들도 모두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연신 걸음을 멈춘다. 마야계곡으로 뻗어 내리는 깊은 중봉골의 아름다운 비경은 필설로는 형용치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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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밭목 2.6킬로미터. 천왕봉 1.4킬로미터’라 적힌 이정표를 지나면서부터 철계단이 시작된다. 연이어 몇 개의 철계단이 나오고, 길은 작은 봉우리들을 넘으며 오르락내리락 거린다. 앞에는 써리봉이 장엄하다.
중봉을 출발한 지 35분이면 써리봉 앞 넓은 공터에 닿는다. 20명 정도는 쉴 수 있는 공간이다. 힘들어하는 박찬오씨(39세·자영업), 김문정씨(32세·회사원)와 후미를 기다리느라 한참을 쉬며 행동식을 꺼내 먹는다. 시장했는지 모두들 맛있게 먹는다. 써리봉에서 내리막길을 40분 가면 치밭목대피소다.
언제나 적막산골, 치밭목대피소
치밭목은 취나물이 많이 자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리산과 함께 살아가는 민병태씨가 산장지기로 있다. 지리산에서 외진 곳인 치밭목대피소지만 이번은 만원이다. 무엇보다 이곳은 산장 앞 나무탁자가 멋있다. 샘은 대피소 뒤편으로 100미터 가면 있다. 3일째 아침, 느긋한 아침식사를 했다. 이제 많이 가벼워진 배낭을 메고 아홉시가 가까운 시각에 하산을 했다. 대피소에서 30분쯤 가자 ‘무지개를 치는 폭포’라는 뜻을 가진 해발고도 1000미터의 무제치기폭포가 나타났다. 배가 불룩한 삼단의 바위벽을 따라 흐르지 않듯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무제치기폭포는 우렁차게 쏟아져 내리는 여타의 폭포와는 색다른 감동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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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에서 조금 더 내려서자 ‘무제치기교’가 나타나고 계곡을 건넌다. 20분 더 가면 나무계단길이 나온다. 여기에 서면 유평리에서 치밭목대피소까지 이어지는 한판골 골짜기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100여 미터 이어지는 통나무 계단을 지나자 피나물 군락지가 나타난다. 다시 내리막길을 따라 1시간 15분 가면 축대가 남아 있는 옛 집터를 지난다. 그곳에서 40분이면 유평리 마을이다.
출처 "사람과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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