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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절규!|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2014년 1월 12일 이른 새벽에 한 남자가 죽었다. 향년 64세. 남편이 인생의 마지막 두 달 가운데 희망을 느낀 기간이라면 입원하고 나서 처음 일주일 동안이었을 것이다. 나머지 7주는 고통과 절망, 분노의 연속이었음이 틀림없다. 남편의 생애에서 마지막 7주 동안 느낀 고동은 남편이 살아오면서 겪은 그 어떤 고통보다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잔인했다. 그것은 실날 같은 희망조자 가질 수 없는 무의미한 고통이었다.
두 달 전 11월의 중순이다. 남편은 열과 기침에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았다. 담당의사는 남편의 증상과 갖가지 검사를 통해 중증 폐렴이라고 판단했다. 지난 2년간 복용하고 있는 혈압저하제의 부작용으로 보였다. 그러나 입원 후 점적주사, 항생제와 진통제 투여, 산소흡입 등의 치료로도 남편의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그칠 줄 모르는 기침과 호흡곤란 상태로 몰아갔다. 의사들은 급기야 남편의 기관을 절개하고 가래를 빼내기 시작했다. 의사들은 기관을 절개하면 목소리를 잃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의사는 남편에게 단지 일시적인 처치니 안심해도 된다는 말만 해주었다. 의사들은 능숙한 솜씨로 기관을 절개했다. 구멍이 뚫린 기관에서 가래가 흘러나왔다. 간호사들은 그 절개구에서 엄청난 양의 가래를 빼냈다. 이렇게 하자 남편의 증상은 급속도로 호전됐다. 남편은 말을 하지 못하지만 미소로 의사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호전은 잠시 뿐이었다. 다시 가래가 차고, 호흡이 곤란해졌다. 아니 그 증상은 절개수술 이전보다 더 심해졌다. 폐렴과는 달리 회복이 늦어지자 식도 내시경 검사를 비롯해 CT 등 각종 검사를 다시 했다. 그리고 의사들은 새로운 사실에 우울해 했다. 폐렴이 아니라 폐암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것도 말기 상태로! 이전의 모든 기록을 검토했지만 폐암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이토록 빨리 악화될 수 있을까? 그러나 의사들은 가족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의료계의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남편은 손을 쓰기에는 너무 늦어 버린 말기폐암 환자였다. 진행될 때로 진행된 암은 폐와 주변 기관으로 전이되어 기관벽을 파괴하고, 폐와 기관 사이에 작은 벽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 터널을 통해 자극이 강한 위액, 침, 음식물이 폐로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날부터 모든 음식물의 경구섭취가 금지되었다. 입으로 무언가를 마시거나 먹으면 식도와 폐에서 기관으로 유입되는 분비물의 양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절식이 결정되자 남편의 오른쪽 갈비뼈 아래에서 심장으로 연결된 정맥에 가느다란 튜브가 삽입되었다. 마취제와 진통제를 다량 투여했기 때문에 통증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러한 치료를 받자 그의 증상은 호전됐다 그러나 그것도 하루. 다음날부터 다시 통증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침대에 앉거나 배변이나 배뇨를 위해 침대 곁에 놓인 변기를 가끔 이용하기도 했지만, 이제부터는 통증으로 그것도 불가능해졌다. 무기력한 권태감이 남편을 휩싸기 시작했다. 남편은 자신의 증상에 대해 물어보려고 해도 기관을 절개했기 때문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펜을 쥘 힘도 없었다.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이 막혔다. 의사, 간호사, 아내에게 불안에 찬 눈빛을 보내도 아무도 이를 눈치 채지 못했다. 이들과 문병 오는 친구들이 전해주는 말은 단지 “의술이 발달했으니 곧 좋아질거야.”라는 의미 없는 위로뿐이었다. 남편을 괴롭히는 것은 주위 사람들에 대한 알 수 없는 분노뿐만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이뤄지는 가래제거 처치가 남편을 심각한 통증으로 괴롭혔다. 절개구를 통해 기관 속으로 가래제거용 튜브가 삽입될 때마다 그 고통은 극에 달했다. 이 같은 가래제거 작업은 하루에도 10여 번 이상 시행됐다. 지금까지는 이 처치가 자신의 건강을 회복시켜 줄 것이라고 실날같은 의망을 믿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참아냈지만 호전될 기미는커녕 오히려 악화되는 것을 느끼면서 이제는 희망도 사라졌다. 희망이 사라지니 고통은 더욱 극심해 졌다.
입원 5주째. 그 때부터 희망을 잃은 남편은 의사들이 하루에 한번 회진오는 경우에도 눈을 감아버렸다. 사실 눈을 뜨는 것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이미 버려진 상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불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들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 “꽤 심각해졌어. 간호사! 점적주입량을 50퍼센트 늘려.” 이 말에 그는 소리쳤다. “뭘하든 고통은 마찬가지니까 이제 편하게 가도록 그만 좀 나둬.” 그러나 남편의 목소리는 입에서만 맴돌 뿐 아무도 들을 수가 없었다. 간호사들은 수시로 남편을 찾아와 가래를 제거했다. 그럴 때마다 끊이지 않는 기침과 통증은 그를 죽음의 나락까지 네 몰았다. 가래제거는 확실히 그의 생명을 연장해주었다. 가래제거가 없다면 그는 이미 다른 세상에 있을 것이다.
남편은 의사표현도, 약간의 움직임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머리 속만 온전했다. 그러나 머릿속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혼미해져갔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남편은 단지 침대에 놓여 있는 물체에 불과했다. 굴욕감과 비참함이 몰려왔지만 그만의 고통이었다. 연명지상주의를 최고의 목표로 하는 현대의학에 분노하면서 이제는 차라리 떠나고 싶지만 그것도 그만의 생각이었다.
의사들은 회진할 때 종종 남편의 병을 낫게 할 수는 없지만 소중한 남편을 단 10분이라도 더 살아있게 하는 것이 가족의 도리라고 앵무새 같이 되풀이 말했다. 간호사도 역시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그럴 때마다 아내나 딸은 그저 “잘 부탁드립니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남편의 생명은 남편 자신의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의사들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사실 의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환자는 너무도 고마운 환자다. 환자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보호자는 그저 의사 말에 고분하기 때문에 의사들은 그들이 판단하는 대로 얼마든지 처치를 변경할 수 있다. 아내는 줄곧 그의 곁에 있었지만 자기 생각은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하고 그저 의미 없는 위로를 하거나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날로 핼쑥해져가는 남편을 안타깝게 바라볼 뿐이었다. 6주째. 저녁에 들른 딸과 아내가 밖에서 하는 말이 들렸다. 문을 닫고 한 말인데 다른 보호자가 들어오면서 문을 채 닫지 않는 바람에 모녀간의 말이 들린 것이다. “00야, 아빠 병원비가 3,000만원 나왔어. 앞으로도 그 이상이 들어간대. 큰 아빠한테 부탁했는데 큰 아빠도 500만원밖에 안된대.” 병원비 때문에 모녀는 고민을 했다. “엄마, 괜찮아. 집을 싸게라도 팔아. 내 퇴직금도 있으니 퇴직할게. 다시 취업하면 되니까.” 그리고 다시 문이 닫혔지만 남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그래도 남편은 아무 의사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지만 그것은 남편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점점 심해지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고통, 쌓여가는 병원비에 남편은 그저 눈을 감은 채 눈물만 흘릴 뿐이다. 수액과 가래제거를 거절하고 싶어도, 계속 투여되는 항생제 등을 거절하고 싶어도 남편은 전혀 몸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자기 맘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내는 이런 고통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정말 아내에게는 평생에 있어 가장 잔혹한 날이었을 거다. 모든 것을 남편에게 말하고 어떠한 형태로든 남편의 동의를 구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의사가 강력히 권고한 말이 떠올랐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한자에게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말해서는 안 됩니다. 환자는 자신이 말기암이어서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 삶의 의욕을 잃게 되어 급속도로 악화됩니다. 남편을 하루라도 편하게 살아 있게 해야 되지 않습니까?” 이 때문에 아내는 몇 번이나 결심했다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곤 했다.
그러다 결국 7주째가 되면서 아내는 폭발했다. 어느 날 아내는 의사가 회진왔을 때 결국 입을 열었다. “이젠 치료가 남편의 고통을 늘려줄 뿐이니 더 이상 치료는 하지 말아 주세요. 집으로 모시고 싶어요.” 담당의사는 여러 차례 아내를 설득했지만 아내의 굳은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다. 이 말은 들은 남편은 생각했다. ‘아내는 지금 얼마나 괴로울까? 그래도 여보, 고마워. 나도 이젠 끝내고 싶어요.’
집에 돌아온 지 5일 후에 남편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른 곳으로 갔다. 1년이 지난 아내는 정상으로 돌아 왔다. 달라진 것이라면 남편이 없고, 아파트가 아니라 반지하에서 살고 있다는 것과 그의 딸이 실직자라는 사실이다. 그 당시 딸의 퇴직을 적극 말렸어야 했는데 남편의 고통과 병원비 걱정 때문에 그만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내는 지금도 남편을 병원에 입원시킨 것과 딸의 퇴직을 가장 후회하고 있다. 의사들에게 속았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아내는 의사들을 가장 싫어한다. 단지 고혈압환자에게 잘못된 약과 처치로 사람 생명을 너무도 비싸게 앗아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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