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비결
하루는 어느 신도가 제게 이렇게 말했어요.
“스님, 제가 지금껏 절에 다니면서 불전함에 돈을 수도 없이 넣어봤지만 아무 효과가 없더라고요. 만약에 만 원을 넣어 백만 원이 돌아온다는 보장만 있으면 얼마든지 넣을 텐데 말이죠.”
만 원을 넣고 백만 원을 받기를 바란다면 그건 투기심에 지나지 않습니다. 꼭 이런 돈 욕심이 아니어도 우리가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며 기도하는 내용도 이와 비슷해요. 노력은 조금 하고 대가는 크게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성적도 부족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는 자기 자식을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잖아요.
이런 마음으로 기도를 한다면 복은커녕 오히려 화를 불러오게 됩니다.
노력은 적게 하고 결과는 크게 받으려는 것은 도둑놈 심보인 거죠. 결국 내 대신 누군가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듯이니까요. 가령 공부 못하는 내 자식이 좋은 대학에 붙으려면 공부 잘하는 누구네 자식 한 명이 떨어져야 하잖습니까.
따라서 이런 기도는 이루어질 리가 없지요. 이뤄지지 않는 것이 마땅한 이치인데도 자기가 헛된 욕심을 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부처님을 원망하고 하느님을 탓합니다.
가만 보면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쉽게 될 것 같지 않은 일들을 바랄 때 기도합니다.
그러다보니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을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우리 삶은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더 많은 거예요.
세상살이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원하면 다 이루어진다’는 말은 환상이고 욕심일 뿐이에요.
이때 원하는 것에 매달려 울고불고하면서 불행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그런 가운데서도 행복하게 살 것인가, 이것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인생이 괴로운가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을 때 괴롭지,
이런 생각이 없다면 이루어지면 좋고, 안 이루어져도 그만이에요.
일은 내가 하지만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내가 의도한 대로 모두 되는 게 아니라 주변 상황과도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이 이치를 알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때론 실패도 하고 때론 좌절도 해야 굳건한 성장을 합니다.
식물도 계속 웃자라기만 하면 열매도 못 맺고 도중에 꺾이지 않습니까.
어떤 일이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그 과정에서 이미 행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되는 게 행복이고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상일은 내가 원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객관적인 상황이 그렇게 될 때도 있고 그렇게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따라서 외적인 조건과 상황에 따라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한 행복은 기껏해야 반쪽짜리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만을 바라는 마음을 움켜쥐고 있으니까 당연히 불행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생기는 거예요.
어느 마을에 부지런한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일찌감치 ‘내일 윗논에 농약을 쳐야겠다.’고 마음먹고 저녁 내내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비가 오는 날에는 농약을 못 치거든요. 그래서 농부는 부처님께 부탁을 좀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잠자기 전에 기도를 드렸어요.
“부처님, 내일 농약 치려고 하니까 비 좀 안 오게 해주세요.”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까 비가 부슬부슬 옵니다. 김이 새죠.
“아니, 농약 좀 치겠다는데 날씨가 내내 맑다가 하필이면 오늘 비가 오나? 부처님께 기도해도 소용없네.”
이렇게 불평합니다. 결국 농부는 기분이 나빠 술을 마십니다.
한참 뒤에야 기분이 좀 풀어져서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어차피 오는 비를 어떡하겠나. 비도 오니 내일 아침에는 아래 밭에 고추 모종이나 옮겨 심어야겠다.”
농부는 잠들기 전에 다시 한번 부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부처님, 이왕 오는 비 계속 내리게 해주십시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날씨가 화창하게 개었어요. 농부는 이제 성질이 팍 납니다.
“도대체 이놈의 날씨가 청개구리인가? 이래라 하면 저러고, 저래라 하면 이러고. 이러면 어떻게 농사를 짓고 살겠나? 정말 농사 못 해먹겠네!”
그러고는 또 술을 마십니다.
농사꾼이 이렇게 생각하면 농사를 망칩니다. 우리가 “자식 때문에 못살겠다”“남편 때문에 못살겠다”“직장 상사 때문에 못살겠다”하면서 남 탓, 환경 탓하는 것은 이런 농사꾼과 같아 자기 인생을 망칩니다.
그렇다면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밤이 되면 그냥 마음 편히 자는 겁니다. 아무 생각 없이 실컷 자고 일어나서 밖을 내다보니 하늘이 맑다면 “날씨가 좋네. 윗 논에 농약을 쳐야겠다”하면서 농약 칠 준비를 하고, 가랑비가 보슬보슬 내리면 “오늘 아래 밭에 고추 모종을 내면 딱 맞겠다.”하고 나서면 됩니다. 만약에 비가 장대같이 쏟아지면 “요새 일만 하느라 힘들었는데, 오늘은 막걸리나 한 잔 마시고 쉬어야겠다.”이러면 되는 거예요.
농부가 자기 기대와 고집을 내려놓지 못하면 농사짓는 게 힘든 것처럼 우리 삶도 마찬가지예요. 주변 환경은 늘 변합니다. 그런데 이건 이래야 하고 저건 저래야 한다는 바람과 고집을 내려놓지 못하면, 환경과 조건에 따라 끝없이 흔들리게 되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행복의 기준을 미리 정해놓고 그 길만 고집한다면 도리어 행복에서 멀어집니다.
반대로 내가 기대한 대로 돼야 한다는 고집을 내려놓고 인연 따라 지혜롭게 대처할 때 행복도 찾아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움켜쥔 마음은 그대로 두고 자꾸 특별한 행복의 비결을 요구하는데, 왜 그럴까요? 자기가 세워둔 기대는 허물지 않고 자꾸만 그 위에 무엇인가를 더 쌓고 얻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해서 얻고 싶고 저것도 해서 얻고 싶고, 이렇게 하면 빨리 얻을 것 같고 저렇게 하면 더 빨리 얻을 것 같기 때문이에요.
어떤 사람이 왼손에 불덩어리를 들고 뜨겁다고 고함을 칩니다.
하도 고함을 치니까 제가 이렇게 말해요.
“뜨거우면 내려놓으세요.”
이때 불덩이를 쥔 사람이 되묻습니다.
“어떻게 놓습니까? 방법을 좀 가르쳐주세요.”
그런데 이 사람이 정말 방법을 몰라서 못 놓는 걸까요? 말로는 놓고 싶다고 하지만 사실은 놓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러면서 자꾸만 내려놓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거죠. 이럴 때 제가 해줄 수 있는 답은 하나밖에 없어요.
“그냥 내려놓으세요.”
그러면 그 사람이 다시 물어요.
“그냥 어떻게 내려놓아요?”
그러면서 불교는 너무 어렵고 현실성이 없다고 합니다. 놓는 방법은 안 가르쳐주고 그냥 놓으라고만 한다면서요. 자기가 움켜쥐고 있다는 사실은 외면한 채 남이 어떻게 해주기만을 바라니 해결이 안 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없이 말하죠.
“그러면 오른손으로 옮겨보세요.”
그제야 불덩이를 들고 있던 사람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왜 이런 좋은 방법을 이제야 알려주느냐”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방법이 오래갈까요? 아니에요. 금세 또 오른손이 뜨거워서 못살겠다고 아우성칩니다. 방법을 몰라서 못 놓는 것이 아니라 놓기 싫어서, 갖고 싶어서 안 놓고 있는 것뿐이에요. 손이 타 들어가는데도 집착을 못 버리고 아우성을 치면서 그것을 움켜쥐려고 하는 거예요.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옮기는 것은 우선은 두 가지를 다 만족시킵니다. 즉 당면한 뜨거움도 피하고, 물건도 아직은 내 손에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이것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근본적인 방법이 아니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놓기 싫은 마음에 그냥 움켜쥔 채 당장의 뜨거움만 피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놓아라”라고 말하면 “현실성이 없다”하고, “왼손으로 옮겨 쥐어라”라고 가르쳐주면 “참 좋은 방법이다”라고 말하지만, 결국 다시 뜨거워집니다.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옮기는 것은 그저 하나의 임시처방일 뿐입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뜨거운 줄 알면 그냥 놓아버려야 합니다.
물론 이런 이치를 깨달았다 하더라도 그동안 살아온 습관이 남아 있기 때문에 순간순간 움켜쥐고 괴로워할 수는 있어요.
그러나 내려놓으면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괴로움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집착할 때만 잠시 괴로울 뿐 그 괴로움이 지속되지 않아요.
그는 이미 이전과는 다른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남 탓은 불행 내 탓은 행복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dalma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