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 학년들과 지리산을 다녀왔다. 어른 셋, 어린이 둘 모두 다섯이 이틀 밤 사흘 낮을 걸었다. 졸업 여행 가운데 하나로 갔기에, 내년을 위해 일정 중심으로 써봤다. 힘들게 함께 걸어보니 우리 육 학년들 졸업할 만큼 몸과 마음이 많이 자랐구나 싶었다. 고마운 지리산! - 전정일
2008. 8. 23 흙 날 지리산 타기 첫 날
성삼재에서 오를 때 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더니 오전에 줄곧 비가 왔다. 나중에 그쳤지만 날이 흐렸다.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지만 산타기에 좋다.
7시 성삼재 --> 8시 노고단 산장 --> 아침 밥 해 먹기 --> 9시 30분 노고단 산장에서 떠나기--> 9시 40분 노고단 고개 ---> 11시 임걸령 --> 12시 노루목 --> 1시 반야봉 --> 30분 쉬고 --> 2시 노루목 --> 2시 27분 삼도봉 --> 10분 쉬고 화개재로--> 2시 50분 화개재 --> 4시 토끼봉 --> 6시 10 분 연하천 산장 --> 7시 30분 저녁밥 먹기 마치고 --> 8시 잠자기
택시 타니 일곱 시쯤 성삼재에 닿았다. 성삼재에서 사진 한 장 찍고 노고단으로 오른다. 비가 부슬 부슬 내리지만 가슴이 뛴다. 앞으로 이틀 밤 사흘 낮을 걸어야 한다. 노고단 대피소까지 길이 시멘트로 덮여 있다. 참 사람들 편하자고 해 논 짓이라니 지리산에게 죄스런 마음이 든다. 조금씩 걷다 멈추고 다시 걷다 멈추고 하면서 금서와 성혁이 걷는 속도를 맞춘다. 첫 날이라 무리하면 안되니 자주 쉬어준다. 큰일꾼이 잘 챙긴다. 뒤이어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지나쳐간다. 다들 노고단 가는 길이다. 걸으면 걸을수록 마음이 편해져 간다. 곳곳에서 다람쥐가 지나간다. 관악산 청설모들과는 비교가 안되게 귀엽고 앙증맞다.
오십 분만에 노고단 대피소에 닿았다. 사람들이 많다. 어서 밥을 지어 먹고 떠나야 하니 마음이 바쁘다. 버너를 꺼내 불을 붙이는데 잘 되지 않는다. 미리 장비 점검을 하지 않은 채 온지라 불길한 마음이 들면서 한참을 불을 붙여 본다. 이런....... 밥은 해야 하는데 버너는 작동이 잘 안되고....... 한참이 걸려서야 버너 부품을 다 맞춰서 밥을 할 수 있었다. 큰일꾼이 두 개, 내가 한 개를 가져 왔는데 두 개는 밑에다 가스를 두고, 두 개는 옆으로 가스를 넣는다. 다행이 밥이 잘 됐다. 다들 밥을 많이 먹는다. 첫 아침밥이라 밑반찬이 많다. 쌀은 아이들 것부터 먹어서 짐을 줄여주어야 한다.
한 시간 삼십 분쯤 걸려 밥을 다 먹고 드디어 노고단 고개로 오르기 시작한다. 바람이 제법 세다. 안개와 비구름이 섞여 앞이 멀리까지 보이지 않는다. 노고단 고개에서 사진 몇 장을 찍는데 교회에서 온 중학생들이 많다. 녀석들이 참 예뻐 보인다. 임걸령까지 갈려면 부지런히 가야 한다. 온통 구름과 안개로 뒤덮엿지만 걸을 때마다 지리산 냄새가 그윽하다. 그래 이 맛이지. 금서와 성혁이도 잘 걷는다. 걷다가 쉬고, 쉬다가 사람들을 만나고, 만날 때마다 반갑습니다 인사를 한다. 저마다 갖고 온 생각은 다 다르겠지만 걸을 때 마음은 다 같지 싶다. 걸으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걸을 수 있다면 그건 도인의 경지인지라 아무 생각없이 그냥 걷는다. 걷다가 느끼는 순간만이 나를 가득 채울 뿐이다. 내 숨소리가 크다 싶으면 가슴에 손을 대본다. 심하게 뛰면 잠깐 쉬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뛰기 시작할 때 다시 걷는다. 땀이 식을 때까지 쉬면 안된다. 그렇게 한참을 걸으니 어느새 임걸령이다. 모두 털썩 주저 앉는다. 쉴땐 푹 쉬어야 한다. 드러눕다가 앉았다가 사진도 찍고 물도 먹고 새참거리들을 하나씩 푼다. 성혁이와 금서 얼굴에 땀이 흐르는 걸 보니 슬슬 몸이 풀리는 듯 싶다. 우리 성혁이 투덜대면서도 잘도 걷는다. 걱정을 좀 했던 금서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이럴때 부지런히 걸어둬야지 싶은 마음으로 다시 노루목을 향해 걷는다. 뱀사골쯤 가서 점심을 먹어야 하니 초콜렛을 틈나는 대로 먹는다. 아무래도 아침에 주먹밥을 만들어 오지 않은게 마음에 걸리지만 초콜렛을 자주 먹으니 배고픈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첫 날이라 아이들이 지치지 않게 자주 쉰다.
임걸령에서 반야봉쪽으로 가파른 오르막 능선을 한동안 숨가쁘게 오르다 보면 평지가 나오고 줄곧 능선을 타다가 다시 오르막길을 오르면 약 2km에 작은 고개가 나오는데 이곳이 노루목 삼거리다. 노루목에 닿으니 사람들이 많다. 반야봉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사람들, 반야봉에 올라가는 사람들로 길이 붐빈다. 노고단 대피소부터 노루목까지 두 시간 반을 걸었다. 쉬엄 쉬엄 걸으니 아직은 다들 걱정없다. 좀 쉬다가 반야봉을 오른다. 반야봉을 오르지 않고는 지리산의 참된 모습을 보았다고 할 수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한다.
반야봉에서 천왕봉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느낄려면 반야봉에 올라야지 싶은데 천왕봉 다음으로 높으니 좀 힘들겠다 싶다. 잔뜩 낀 구름 때문에 천왕봉과 크게 펼쳐진 지리산 줄기를 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올라봐야지 한다. 성혁이 다시 투덜대면서 잘도 올라간다. 잠깐 오르다 아무래도 금서는 오르는 것보다 좀 더 쉬게 하는 게 좋겠다고 큰일꾼이 판단을 내렸다. 금서는 노루목에서 바로 뱀사골 대피소로 먼저 가있으라 하고, 금서 아버지 전화기를 들려 보낸다. 금서 좋아라 웃으며 내려간다. 녀석 혼자 걷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네. 하기야 다들 좋은 사람들이 가득한 지리산이니 걱정없다. 한 시간 삼심 분쯤을 푹 쉬면서 기다리면 오후 연하천까지 걷는데 더 힘이 나겠지.
금서를 내려보내고 다시 반야봉을 오른다.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중턱쯤 올랐다 싶어 뒤돌아 내려다 보니, 구름에 덮인 지리산 자락이 보기 좋다. 내려오는 사람들 길을 비켜주면서 쉬고는 줄곧 오르니 어느새 반야봉이 앞에 보이고, 곳곳에서 사람들이 점심을 꺼내먹고 있다. 구름이 발아래에 놓이니 높이 오른 기분 난다. ‘아 좋다!’ 큰일꾼 외침에 모두들 ‘아 좋다’ 한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다 보았다. 천왕봉도 안보이고 멋진 산 자락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좋다. 언젠간 반야봉 낙조를 볼 때가 있겠지. 1751m 반야봉에 서서 땀을 식히며 한참을 쉬었다. 배가 고프다. 미숫가루를 한 잔씩 타서 먹으니 그나마 든든하고 시원하다. 사진 몇 장 찍고 다시 내려간다. 역시 가파른 내리막은 더 조심해야한다. 그래도 금방 노루목까지 내려왔다. 이십분 조금 넘게 걸렸다. 반야봉 꼭대기에서부터 내려올 때까지 큰일꾼 전화기가 자꾸 울린다. 금서가 슬슬 전화를 하기 시작하더니 만날 때까지 많이도 전화를 걸었다. 그래도 잘 참아주었다.
부지런히 쉬지 않고 삼도봉을 넘어 화개재로 간다. 오십 분만에 화개재에서 금서를 만났다. 아이고 반가워라. 오는 중에 금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을 만난지라 금서에게 할 얘기가 생겨 모두들 즐거웠다. 화개재 가는 길에 만난 아저씨가 말하기를, 여자 어린애가 뱀사골 대피소에서 혼자 있길래 물어봤더니 선생님이랑 아버지랑 조금 뒤에 만나기로 했다고 혼자 기다리더란다. 참 대단한 아이다고 말을 해줬다고. 이말을 들은 우리들 약간 각색을 해서, 아버지랑 선생님이 자기를 버렸다고 아저씨한테 말을 해서 우리들을 야단치더라고 놀렸더니, 금서 ‘아닌데’ 하면서 싱글벙글이다. 아저씨 아줌마들이 마실 것도 줬다고. 성혁이랑 큰일꾼도 한 술 더 떠서 우리를 배신자로 만들 수 있느냐며 놀린다. 덕분에 모두들 즐겁게 웃었다.
헤어졌다 만난 기쁨도 잠시 앞으로 연하천까지 세 시간을 걸어야 한다. 본디 두 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아이들 생각해서 천천히 걸으면 세 시간을 넘게 잡아야 한다. 지금 두 시 오십 분쯤이니 부지런히 걸어야지 싶다. 첫 날이라 아이들 몸이 걱정이고, 너무 늦으면 밤 길을 걷게 되어 불안하니 시간이 없다. 뱀사골에서 점심을 먹고 갈 계획은 뱀사골 대피소를 열지 않는단 금서 말과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준비한 초콜렛과 그밖 이동식을 되도록 많이 먹고 연하천으로 가는 걸로 했다. 본디 아침에 주먹밥을 싸기로 했는데 싸지 못한게 실수다. 그래도 배가 크게 고프지는 않으니 가볼만하다고 모두 배낭끈을 조여맨다. 한참 땀을 비오듯 흘리며 걷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반가운 마음에 받았더니 유명산에서 너무 먹어 배부르다 한다. 아이고 배고파 죽겠는데 누구는 배가 부르다니.
한 시간쯤 걸으니 아이들이 지쳐 보인다. 쉴 때마다 뒤로 벌러덩 눕기 시작한다. 성혁이 투덜거림이 다시 울려나오고, 지친 금서는 과천에 있는 은교가 부럽단다. 그때마다 한바탕 웃게 해주는 우리 큰 일꾼과 힘주는 말을 줄곧하는 금서 아버지. 성혁이와 금서... 아직 힘은 바닥나지 않았지만 무척 힘들어 한다. 어른들도 쉴 때마다 얼굴 낮이 다르다. ‘아 좋다’ 소리도 작아지고, 드디어 지친 몸을 일으켜 세울 정신력을 꺼내온다. 우리는 힘들 때마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는 거지?” 를 스스로 다시 묻곤 한다. 녀석들 얼굴에 딱 그렇게 써있는 듯하다. “오기 싫었는데 어른들한테 끌려왔어요.” 금서와 성혁이 두 녀석 잘 참아준다. 이쁘다. 쉴 때마다 육포와 초콜렛으로 (녀석들 말로) 기름칠을 해주고 서로 북돋으며 그렇게 세 시간이 넘게 걸었다. 화개재에서 토끼봉을 넘어 연하천까지가 가장 힘든 곳인줄 알았지만 모두들 제대로 느꼈다. “왜 이리 연하천 산장이 안나오는거야?” 날은 흐리고 가끔씩 부슬 부슬 비는 내리고, 오르는 길은 가파르고, 시원시원한 지리산 자락이 보이는 능선 길도 아니고 산 속을 줄곧 걸어가는 지루한 길이었다. 아마 날씨가 좋았고, 점심을 든든히 먹었으면 달랐을텐데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끝은 보이고 연하천 0.7km...0.5km... 조금씩 가까워지면 다시 마지막 힘을 다해 걷는다. 마침내 연하천 대피소! 여섯 시 십 분이다. 세 시간 이십 분을 걸어 연하천에 닿았다. 연하천은 명선봉의 북쪽 가슴턱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은 고산지대임에도 숲속을 누비며 흐르는 개울의 물줄기가 구름 속에서 흐르고 있다 하여 연하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작고 아담한 대피소 앞에 사람들이 밥을 짓고 있었다. 아! 다 왔다. 모두들 얼굴이 환하다. 배가 고프다. 잠잘 곳 배정 받고 밥 준비를 서두른다. 아침에 노고단에서 한 번 해 본지라 빠르게 움직인다. 연하천 약수물이 손이 시리도록 차갑다. 참치김치찌개와 밥을 한다. 성혁이와 금서도 배가 고픈지 잘못 산 불량식품 ‘스팸’을 요리하면서 연신 집어 먹는다. 어둠이 깔리고 머리에 헤드랜턴을 쓰고 밥상을 차렸다. 밥도 잘됐고 찌개도 딱 좋다. 김치와 김, 마늘 짱아찌가 어찌 그리 맛있는지. 실컷 먹었다. 모두들 맛있다를 말하며 힘든 오후 길을 잊어버렸다. 성혁이와 금서 밥통 큰거 알지만 녀석들 잘 먹는다. 잘먹으니 됐다 싶다. 이쁘다.
배가 부르니 한 잔 생각 나는데 우리에겐 술이 없다. 깜빡 한 것이다. 덕분에 “캬‘ 한 번 못하지만 ’후‘ 뿜어내는 걸로 대신하고 푹 잤다. 아쉬울 새 없이 피곤이 몰려온다. 모두들 부지런히 상치우고 설거지 하고, 씻고 잘 준비를 한다. 대피소 안 잠자리는 이천원에 바닥은 매트리스에 군용 모포 한 장씩이다. 옛 날 텐트 지고 왔던 때 생각하면 참으로 편하고 좋은 대피소다. 금서는 씻고 바로 곯아 떨어진다. 여덟시다. 성혁이 너무 피곤한 지 잠을 안자길래, ”성혁아 안자니?“ 물어본 뒤 조금 있다 바로 코를 곤다.
첫 날이라 모두 힘들었다. 지리산 쉽게 올 수 있는 산이 아니기에, 다시 스스로를 낮추고 지리산을 걷게 하는 첫 날이었다. 벌써 하루가 갔다. 그래도 내일이 설레이는 지리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