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설교(44)
암탉이 그 새끼를....
마23:37-마24:1-2 (눅13:34-35)
곽의용, 김원춘 권사님 가정에
지난 겨울철에 가계에다가
연탄을 피워놓으셨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연탄에 관한
안 좋은 기억이 생각이 납니다.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다락에서 자다가
연탄가스에 약간 중독 된 일이 있었습니다.
새벽에 아버지가 저를 안고 밖으로 나와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무진 애를 쓰시던 기억이 아직도 있습니다.
그때 연탄가스를 먹지 않았으면....
지금보다 훨씬 머리가 좋고
기억력도 좋을 텐데,........
그 때 연탄가스 후유증으로....
요즘 판단력이 흐려지고
기억력이 급속히 떨어진 것 같습니다.
성도님들 !
혹시 제가 상황판단 잘 못하고
깜빡깜빡 하더라도.....
‘저 사람이 아직도 연탄가스
후유증이 남아 있어서 그렇구나’하며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연탄에 관한 안도현씨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성도님들도 들어보거나
읽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연탄재 발로 차지마라 /
너는 누구에게 /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자신의 몸뚱아리를 /
다 태우며 뜨끈뜨끈한 /
아랫목을 만들었던 /
저 연탄재를 /
누가 발로 함부로 찰 수 있는가? //
자신의 목숨을 다 버리고 /
이제 하얀 껍데기만 남아 있는 /
저 연탄재를 /
누가 함부로 발길질 할 수 있는가?”
시인의 눈과 마음은 참으로 놀랍고
감동스럽습니다.
연탄재를 보고 그런 생각과 마음을
갖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신선한
충격이기도 합니다.
성도님들은 온 몸과 마음을 다해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있습니까?
내가 맡은 일을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해 본 적이 있습니까?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뜨겁게
사랑해 본 적은 있습니까?
정말로 내 마음을 다해
뜨거운 신앙을 가져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정말 자신의 몸과 영혼을 바쳐
인류를 사랑하신 분을 알고 있습니다.
예, 바로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마음이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예수님의 눈물>.....
예수님은 마 23장에서 일곱 번이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위선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의 화를 당할 것이고
저주를 받을 것임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저주가 그들 뿐 아니라
그 세대에까지 미칠 것을
아셨습니다(마23:35-36)
아무리 훈계를 하시고 가르치셔도
도무지 돌이킬 줄 모르고...,
회개하지 않는 그들을 보시며
우리 주님의 마음은 심히 아프셨습니다.
오늘 본문 ....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37).........
예루살렘 성을 의인화 시켜
두 번이나 부르시는 이 안타까운 외침에는 ......
한 사람이라도 멸망받지 않고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 얼마나
예루살렘을 사랑하셨고.....
-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 다윗이 자신을 배신한 아들
압살롬의 죽음을 듣고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하며 통탄한 것과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특히 눅19장에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는데....
41절에 보면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옵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정말 사랑하면 울게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는 그들의 멸망을 예언하셨지만 ....
그 마음으로는 얼마나 안타까워하셨는지 모릅니다.
<이스라엘(예루살렘)의 죄상>.......
그러면 그들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7절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하나님은 최초의 인간 아담이 타락한 이후
계속 자기의 백성에게 선지자들을 보내
구원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은.......
-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환영하지도 않았고......
-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으며......
- 오히려 돌로 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종이 아닌 아들을 보내면
돌아올까 하여 독생자 아드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사명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요12:47b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새끼를 모으는 암탉 비유>.......
예수님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주님의 행위)를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37절b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
암탉은...
많은 짐승 가운데서도
유난히 그 새끼를 사랑하는 동물입니다.
"세상의 이런 일이"라는 TV. 프로그램에 .....
높은 나무 꼭대기에 집을 짓고
달걀을 낳은 암탉이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암탉이 그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높은 나무꼭대기까지 날아올라가서
달걀을 낳게 된 것은
땅에다 달걀을 낳으면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에
자신의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라 전문가의 해석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알만 품는 것이 아니라 ....
태어난 후에도 암탉은 자기 새끼들이
위험에 처하면 자기 날개 아래 숨기는 것입니다.
갑자기 하늘에 매가 나타나면
모든 닭들은 혼비백산해서
제작기 숨을 곳을 찾아 도망칩니다.
그러나 병아리를 돌보는 암탉은 ......
이 위기의 순간에 도망치지 않고
자기의 새끼들을 날개 아래 감쌉니다.
어리석은 병아리들은 위기를 모릅니다.
엄마가 왜 자기를 품으려고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엄마의 품에 안긴 병아리들도
“엄마가 왜 이리 나를 갑갑하게 껴안나”라고
생각하고....
자꾸만 벗어나려고만 합니다.
위기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미 닭은 새끼들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기 때문에
그들을 더욱 더 세게 껴안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내 안기기를 거부하고
도망을 치는 병아리는
암탉도 품을 수가 없습니다.
그 병아리는 안타깝게도
솔개의 밥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 시도하신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시도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 도전하고
끝낸 것이 아니라.....
거절당해도 또 하고 또 하고 끊임없이
그들을 끌어 앉아 멸망의 자리에서
구원하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아들을 주시기까지···.
사랑하는 성도님들 !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짝 사랑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 사랑을 알리려고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아드님을 보내시고,.......
성경이라는 연애편지도 보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사랑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접이요 믿음입니다.
<끝내 거절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특히 종교지도지들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37절c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암탉의 품을....
끝내 거절하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보시면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부르시며 탁식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의 책임이 아니라 영접하지 않는
그들 자신의 책임입니다.
<거절의 결과>......
암탉의 품을 끝내 거절한 결과,
주님의 품을 끝내 거절한 결과는 무엇입니까?
<본문 38-39절 읽어라>
38절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39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그 구체적 설명이 다음 장(24:1-2)에 나옵니다.
<본문 마태 24:1-2 읽어라>
1절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그 아름다웠던 예루살렘 성전이.......
그 화려했던 도성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주후 70년에 예수살렘이
로마의 군대에 의해 짖밟힌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완전히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재림)까지
주님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맺는 말씀 - 참된 종교개혁 - 주님 품으로 다시>
사랑하는 성도님들 !
금년이 종교개혁 503주년 맞이하죠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그 대학의 신학교수였던 마틴루터가.....
'95개조 반박문' 대자보를
비텐베르그 성당의 정문 벽에 붙이면서 시작된
교회개혁 운동입니다.
이로써 개신교회가 탄생했습니다.
개신교회의 특징은 계속해서
개혁되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오늘도 개혁되어야 합니다.
참된 개혁은 제도를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교파를 더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를 향한 주님의 탄식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한국교회야, 한국교회야!”
이제 우리 모두 회개하고,.....
자기 좋은 대로 행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
그 날개 아래 안기는 우리 한국교회.....
우리 금산교회......,
우리 온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