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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活禮節 百問百答[2] 50 부모님이다 돌아가셔서 제사를 지내는데, 아버지는 공무 원서기관을 지내셨기 때문에 지방에 '顯考書記官 000課長俯君 神位'라고 씁니다. 아버지는 벼슬을 쓰면서 어머니는 '孺人'이라고 쓰려니까 잘못된 것 같습니다. 어떻게 써야 합니까? 50 귀하뿐 아니고 많은 분들이 고심하는 부분입니다. 古禮
에는 부인들도 남편의 직급에 따라 봉작(封爵·벼슬을 줌) 했으니까 당연히 지방에 봉작된 명칭을 썼지만 현대는 일체 부인의 봉작제도가 없으니까 어떻게 쓸지 난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편은 서기관으로서 중앙 부처의 과장인데 부인은 '孺人'으로 쓴다는 것은 더욱 곤란한 일입니다. 원래 '孺人'은 최말직(最末職)인 정9품과 종9품의 벼슬아치의 부인에게 봉작하는 직첨이지만, 선비로서 벼슬하지 못한 '學生'의 부인들에게도 '孺人'을 쓰도록 양해·묵인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남편이 벼슬을 못했을 때 그 부인에게 쓰는 명칭입니다.
서기관이면 대개 5품관(正郞級)으로서 그 부인은 '공인(恭人)'의 직첩을 받을 수 있으나 직첩을 받지 못했으니까 '恭人'으로 쓸 수도 없습니다.
남편의 벼슬이름을 '서기관'이라 쓰는데 부인을 벼슬이 없는 이의 아내같이 '孺人'이라 쓰면 실례이고, 직첩을 받지 못했으니 '恭人'이라 쓸 수도 없으니 '夫人'이라 쓰는 것이 무난할 것입니다.
51 아버지가 살아있는데 아들이 먼저 죽었습니다. 부고, 축 문, 등에 主喪을 죽은 사람의 큰아들로 합니까? 아니면 아버지로 합니까? 51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죽은 아들이 큰아들이면 죽은 사람에게 아들이 있더라도 主喪은 아버지가 됩니다. 따라서 부고도000의 長子 000가 사망했다.'고 쓰고, 지방이나 축문에도 '亡子秀才 000라고 씁니다. 죽은 아들이 큰 아들이 아니면 죽은 사람에게 아들이 있으면 그 아들이 主喪이 되고, 미혼이면 아버지가 主喪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큰아들과 작은아들에 차이를 두는 까닭은 큰아들은 아버지의 家統을 이어갈 아들이기 때문이고, 작은 아들은 分家하는 아들이기 때문에 그 아들이 주상이 되는 것입니다.
52 아버지의 제사에 어머니를 함께 지내고, 어머니의 제사에 아버지를 함께 지내기 때문에 1년에 두 번제사를 지내게 되는 데, 저는 부모님의 제삿날이 한날이라 1년에 한번밖에 못지냅니다. 죄송한 마음 금할 길이 없는데 1년에 두번지내는 방법은 없을까요? 52 참으로 효성스러운 일입니다.
古禮에 의하면 음력으로 9월 15일에 이제라고 해서 부모의 제사를 지내는데, 그 유래는 어떤 이가 아버지의 생신이 9월 15일인데 그 날을 그냥 보내기가 죄송스러워 제사를 지낸 일이 유래가 됐습니다. 미루어 굳이 1년에 두 번을 제사 지내고 싶으면 아버지의 생신날을 택해서 그 날도 제사를 지내면 죄송한 마음을 덜 수 있지 않겠습니까? 9월 15일에 이제를 지내는 방법도 좋을 것입니다.
53 저의 큰 형님은 백부에게로 양자 나갔습니다. 당연히 조 부모와 백부모의 제사는 큰형님이 지냅니다만 저의 부모님 제사도 큰형님이 장자라면서 당신이 지냅니다. 예법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53 비록 생가의 큰아들이라 하더라도 양자 나갔으면 생가의 큰아들노릇을 못합니다. 귀하의 질문의 경우 백부에게로 출계해서 조부모와 백부모의 제사를 받드는 것은 조부모의 장손(長孫)이고 백부모의 장자(長子)가 된 것입니다.
남의 뒤를 이었으면 생가의 뒤를 이을 수 없음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둘째아들이 장자(長子)가 되어 부모의 제사를 받들어야 합니다.
54 저의 큰형님의 큰아들이 저의 부모님과 큰형님 내외분의 제사를 모시다가 죽었습니다. 죽은 조카의 아들이 어리기 때문에 저의 큰형님의 둘째아들인 작은 조카가 저의 부모님과 자기의 부모의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장자손(長子孫)이 어려서 작은 자손이 지낼 바에야 저의 부모님 제사는 작은 아들인 제가 지내고 싶고, 작은 조카의 부담도 덜어줄 겸 모셔오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54 효성스러운 생각입니다. 그러나 예법에 어긋나는 효도는 오히려 불효가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제사는 장자손이 지내는 법이고 그것은 가통(家統)을 중시 해서입니다. 죽은 조카의 아들이 어리더라도 당연히 그 이름으로 조상의 제사를 모셔야 합니다. 귀하의 작은 조카가 자기의 어린 조카인 장손의 이름으로 지낸다면 장성할 때까지 대행하는 것이니까 나쁠 것이 없고, 바람직합니다. 만일 작은 조카가 자기의 이름으로 지낸다면 귀하는 그것을 장자손의 이름으로 지내도록 바로 잡으시고, 작은 조카의 부담을 덜어 주고 싶으면 제사 비용을 보태는 것이 더 현명합니다. 가통을 무시하고 제사가 형편을 쫓아 왔다 갔다하면 마침내 제사지낼 사람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55 3년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현재 어머니께서 노환이 위 중하십니다. 만일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 아버지 산소에 합장하려 하는 데 어머니를 어느 쪽에 모셔야 합니까? 55 좋은 질문입니다. 현대인들은 매장시의 남녀위치가 혼동되어 장래 많은 문제가 야기될 것입니다. 산 사람은 남자가 동쪽이고 여자가 서쪽입니다만 죽은 사람은 남자가 서쪽이고 여자가 동쪽입니다.
東은 상좌(上座)의 左측이고 西는 右측을 말하므로 여자는 남자의 좌측에 위치해야 합니다. 묘지의 비석에 보면 여자를 표기한 밑에 0 左'라고 새기고 있는데 그것은 남자의 '左측에 붙였다'는 뜻입니다.
56 사회생활을 하려니까 상가에 인사갈 일이 많습니다. 직장의 상사나 동료에게 물어봐도 인사법을 잘 모르고 상가에서 보아도 우물쭈물하고 맙니다. 어떻게 인사해야 맞습니까? 56 문상을 간 사람이 부모상을 당한 상주에게 인사하는 말은 "얼마나 망극하십니까?" "상사말씀 무엇이라 여쭈리까?"라고 하고, 상주는 "망극할 따름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만일 조부모나 백숙부모, 형제상을 당한 사람에게 인사하려면 "복제말씀 무엇이라 여쭈리까?" "얼마나 슬프십니까?"라고 인사하고, 상을 당한 사람은 "슬플 따름입니다"라고 대답하면 됩니다.
57 제가 장가를 갔는데 손위 처남이 저보다 나이가 아래입니다. 아내의 오빠이니까 형님이라고 불러야 할텐데 저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을 어떻게 형님이라 부를지 곤란합니다. 그래서 처남과 제가 만나면 서먹거려서 대화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57 여자는 혼인을 하면 시댁의 가족이 됩니다만 남자는 장가를 가도 처가의 가족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남편의 형의 아내인 손위동서가 나이가 적더라도 남편들의 위계를 따라 형님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러나 남자는 처가쪽 사람들과 아내와의 서열에 따라 대접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의 연령차이로 상대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내의 직계존속인 장인 장모는 나이에 관계없이 부모같이 모시지만 기타의 아내 친척과는 사회적 사귐입니다.
따라서 손위의 처남이나 처삼촌, 손위의 동서라도 나이가 친구같이 지낼 정도이면 친구로 사귑니다. 귀하의 경우 형님이라고 부를 생각은 아예 말고, 나이가 10년이내의 차이라면 그 처남과 벗을 하셔야 합니다.
58 명절에 지내는 차례(茶禮)는 글자로 보아 '茶'를 올려야 할텐데 우리나라의 제례에 茶를 쓰지 않고 술을 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58 좋은 질문입니다. '차례'라는 말은 중국에서 유래되었고, 중국에서는 간략한 명절의 제례에 葉茶를 올렸기 때문에 약식화된 간략한 제례를 葉禮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茶가 대중화된 상용음료가 아니었기 때문에 茶를 쓰는 대신 술(淸酒)을 쓰면서도 제례의 명칭은 '葉禮'라고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59 제사때 주가(작은 상)위의 술병옆에 정화수를 담은 현주 병을 놓습니다. 제상에 올리지도 않는 정화수를 왜 준비합니까? 59 우리나라에 술이 들어오기 전에는 조상을 받드는 제사에 우물에서 첫새벽에 뜬 정화수를 지금의 술대신 썼었습니다.
비록 술이 들어와서 술을 쓰지만 古禮에 사용했던 방법을 기려서 정화수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60 전통제례의 축문식을 보면 연호(年號)를 쓰게 되었는데 근래에 보면 연호를 쓰지않고 간지(干支)로 그 해의 세차(歲次)만 씁니다. 전통의례를 행하면서 왜 연호를 쓰지 않습니까? 60 참으로 적절한 질문입니다.
1910년,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기전에는 우리나라의 연호를 썼습니다. 그러다가 국권을 빼앗기니까 우리나라에는 연호가 없어 굳이 연호를 쓰려면 일제(日帝)의 연호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마 적의 연호를 쓸 수 없어 연호를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는 광복했고, 우리의 연호 '단군기원'이 있으니까 '維 檀君紀元0000年' 이라고 써야 합니다.
비록 공식으로는 '西紀'를 쓰지만 제례에는 우리의 연호인 '檀君紀元'을 쓰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성균관의 석전에서도 '檀君紀元'을 쓰고 있습니다.
61 전통적으로 기제사는 음력으로 돌아가신 날에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식적으로 양력을 쓰고 있고, 또 양력이 더 정확하니까 양력으로 날짜를 찾아서 지내는 것이 더 합리적이 아닙니까? 61 전통적으로 음력으로 해왔고, 현재도 음력이 없어진게 아니고 존속하니까 음력으로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귀하의 의견처럼 음력은 3년에 1개월이 틀리고 달의 大小도 일정하지 않아 문제점이 많은데, 양력은 4년에 1일만이 틀리며 그것도 2월에 국한해서 못박았고, 달의 大小도 일정하기 때문에 양력이 더 정확한게 사실입니다. 기제사란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제사이기 때문에 음력이든 양력이든 그 달의 그 날짜에 지내면 되겠지만 보다 계절 적으로 걸맞는 양력으로 지내더라도 망발은 아닙니다.
62 축문에 제사 달의 초하루와 제삿날의 일진을 쓰는데 근래 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양력으로 제삿날을 차릴 때는 더욱 그렇게 생각되는데 어떻습니까? 62 옛날의 문헌이나 역사기록들을 보면 날짜를 숫자로 안쓰고 간지(干支)로 기록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 습관과 관례에 따라 간지를 쓴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택일해서 지내는 제례는 대개 '丁'일이나 '亥'일을 택일하도록 했고, 상중(喪中)의 우제(虞祭)나 졸곡(卒哭) 등도 일진의 강유(剛柔)를 따져서 했기 때문에 일진을 쓰는 것이 합리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서 기제사의 일진을 쓰더라도 실제 돌아가신 날의 일진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점으로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 : 실제 돌아가신 날의 일진은 男子였는데 금년의 제삿날의 일진은 壬 일수도 있다. ) 그래서 음력으로 제사를 지낼 때는 전통방식에 의해 간지를 쓰더라도, 양력으로 제사를 지낼 때는 간지를 안써도 무방하다고 생각됩니다.
63 어떤 사람은 제사때나 상가의 빈소에서 절을 할 때 두 번 반이라고 합니다. 반 번의 절을 하려면 어떻게 합니까? 63 그런 말을 더러 듣게 되는 데 절의 종류에 반절(半拜)은 있어도 횟수에 반번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절의 종류에 반절(半拜)이란 아랫사람의 절에 대해 어른이 답배(答拜)한 경우 정중하게 하지 않고 간략하게 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반번은 없습니다. 생각컨대 남자의 배례에 읍(揖)을 하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거나 아니면 부인들이 절을 한 다음에 공경하고 사양하는 뜻으로 약간 허리를 굽히는 것을 그렇게 말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읍이 나 허리를 굽히는 것은 간략한 禮의 표시이지 절(拜)은 아닙니다. 혼동없으시기 바랍니다.
64 저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산소를 조상의 산소 옆으로 옮기려 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어머니께서 어른께서 살으시는 근처로 이사를 하더라도 반드시 어른께 인사를 여쭐 것입니다. 산소를 옮길 때도 그냥 옮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머니의 지금 산소를 팔 때와 새로 산소를 뫼신 뒤에 아무런 의식도 행하지 않는다면 도리에 어긋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64 참으로 훌륭한 생각이십니다. 귀하의 건전한 상식과 도리 대로하는 것이 바로 예절입니다. 우리의 전통예절은 건전한 상식이며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오랜 생활관습에 의해 정립한 것들입니다.
조상의 산소옆에 다른 산소를 쓸려면 간략하게 제수를 차리고 '동강조선묘고사(同岡祖先墓告사)'를 하고, 새로 모신 곳에서도 간략한 제수를 차려 '일우축문(一虞祝文)'을 지어 읽어 산소 쓰는 일이 끝났음을 고하는 것입니다. 귀하의 건전한 상식과 전통예절은 이렇게 일치합니다.
65 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며칠 후면 49일이 됩니다. 주 위에서 49일제(祭)를 지내야 한다고 하는데 전통예절에도 49일제가 있습니까? 65 일반적으로 말하는 49일제란 '제(祭)'가 아니고 '재(齋)'입니다. 즉 죽은지 49일만에 지내는 제사란 말이 아니고 불교에서 사람이 죽어 49일이 되면 '일곱번의 생사를 거쳐 각 과보를 감지하고 三界·六道에 가서 태어난다'고해 7일씩 7번이 되는 49일에 불교의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통적인 의례절차인 제례로서는 '49일제'가 없고 불교의 종교의식으로 '49일재'가 있습니다. 혼동이 없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제가 아니고 재이므로) 49일재는 가정에서 치르는 것이 아니고 사찰에서 불교의식으로 치릅니다.
66 저의 아버지께서 생전에 손자 보시기를 무척 기다리셨는 데 돌아가신 후에야 제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 어떤 방법으로 이 사실을 알려드려야 합니까? 66 갸륵하신 효성입니다. 어찌 아들을 낳은 일 뿐이 겠습니 까? 집안에서 있었던 큰 일은 조상에게 고하는 절차가 '유사즉고(有事則告)'라고 정해져 있습니다. 원래는 사당을 뫼신 큰 집에서 고하는 축문(告문)을 지어 고했는데 현대는 사당이 안계시지만 조상의 위패(신위)를 임시로 뫼시고 간략한 제수를 차린 다음 사실대로 고할 수 있습니다. 귀하의 경우도 기제사를 지낼 때같이 신위를 뫼시고 간략한 제수를 차린 다음 아이를 데리고 "누구의 아내 00성씨가 0월 0일 아들을 낳았기에 고하며 뵈옵니다"고 고하시면 됩니다.
67 돌아가신 아버지의 회갑이 가까웠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의 옷을 지어 태우고 잔치를 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67 古禮에 의하면 돌아가신 父母의 생신에 관한 의식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제인데 일반적으로 음력 9월 15일에 사당에서 父母의 위패만 모시고 지내는 제사로써 원래의 유래는 처음 '이제'를 지낸이의 아버지의 생일이 9월 15일이었다는 데에 연유합니다. 또 하나는 사당에 '생신제고사(生辰祭告사)'를 하는 것인데 사당에 뫼신 모든 신위의 생신제로써 李退溪 선생은 禮가 아니라 했고, 金沙溪 선생과 宋尤庵 선생은 인정의 발로라고 했습니다. 효성이 지극한 자손이 조상의 생신에 잊지 않고 의식을 갖는 일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저명한 분의 탄신 百주 행사를 사회적으로 치르기도 하는데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의 회갑을 그냥 지나치기에는 인정 상 차마 어려운 일입니다. 마땅히 '이제' 지내듯이 위패(신위)를 뫼시고 가까운 친척이 모여 제사를 지내며 추모한 다음 함께 음복하면 자연히 추모하는 경건한 잔치로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의복을 지어 태우는 일은 속설(俗說)일 수는 있으나 전통의례에는 없는 일입니다.
68 직장에서 사무실을 이전하는데 고사를 지내기로 했습니다. 의당 축문을 읽어야 하는데 한문서식을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무슨 뜻인지도 모릅니다. 마침 글 솜씨가 있는 동료직원이 있어 우리말로 축문을 지을까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68 나쁜 생각이 아닙니다. 현행되는 각종 축문이나 고사가 한문식으로 된 것은 그런 서식이 정립된 시기가 한문전용시대였고, 그렇게 써서 읽어도 알아들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문서식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한글세대의 제례행사에 한글로 된 우리말 축문을 지어 읽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도 할 것입니다. 다만 제사나 고사의 취지가 분명히 담기고 조상이나 만물을 주재하는 천지신명에게 공경을 다하는 내용이면 되겠습니다
69 문화민족일수록 전통문화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예 절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근래의 시중에 나오는 예절 책을 보면 '예의 바르다'고 정평이 있던 우리집의 방법과 너무도 다릅니다. 아무리 가가례(家家禮)라지만 이럴 수가 있습니까? 69 좋은 질문입니다. 우리나라는 家家禮라고 해서 집집마다 또는 고장마다 예절에 차이가 있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그 家家禮를 방치해 둘 수만은 없습니다. 높은 산이나 깊은 강에 막혀서 왕래가 수월치 못해 사투리가 생길 정도로 생활양식이 서로 다르던 때와는 다릅니다.
당연히 어느 쪽이든 통일된 의식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집에서는 이렇게 한다"고 고집하면 통일이 안됩니다. 논리적인 근거에 의해서 모두가 따라 올 수 있는 방법이어야 하겠습니다.
70 근래 방송이나 신문잡지등의 보도에 보면 제상을 진설하는데 있어서 西쪽에 밤, 東쪽에 대추를 놓는 방법과 대추 밤 감 배의 순서로 놓는 방법이 섞여서 소개됩니다. 전통의식을 배워서 하고싶어도 어떤 방법이 옳은지를 몰라 당황하게 됩니다. 시원한 해답을 주십시오. 70 매우 절실한 문제입니다. 사실 제례에 있어서 가가례라는 양상이 두드러진 부분이기도 합니다. 대추 밤 감 배, 즉 棗栗枾梨의 순서를 주장하는 경우의 이유는 대추는 씨가 하나니까 임금이고 밤은 한송이에 세톨이 들었으니까 3정승이고 감은 씨가 여섯 개니까 6판서고 배는 씨가 여덟 개니까 8도 관찰사에 해당해 벼슬의 높이에 맞춰 임금 정승 판서 관찰사의 순으로 놓는다고 합니다. 이 주장이 옳다고 가정하면 개인의 제사에 임금을 상징하는 대추를 쓴다는 것이 불경스러우며, 官制가 바뀌면 그 비유가 맞지 않을 수도 있어 불합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밤을 西쪽 대추를 東쪽에 놓고 붉은 것을 東쪽 흰 것을 西쪽에 놓는다는 東棗西栗과 紅東白西의 주장은 한문적인 논리에 의한 것입니다.
밤은 서쪽의 나무(栗)라고 쓰며, 두렵다(慄)는 뜻이 있고, 神主도 밤나무로 깎으므로 陰방, 즉 西쪽에 해당되고, 대추의 붉은 색은 하늘 즉 陽을 뜻하며 혼례에 폐백을 대추로 하는 의미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히 한다는 뜻이므로 東西南北중 陽방은 東쪽이고, 또 東쪽에서 해가 뜨므로 부지런하다는 의미와 합치해 대추는 東쪽에 해당되며, 제사음식은 현란한 색깔을 피하므로 붉은 대추가 놓인 東쪽에서부터 붉은 색의 과실을 놓고, 흰밤이 놓인 西쪽에서부터 흰색의 과일을 놓는다는 紅東白西가 되는 것입니다.
두 가지의 주장을 비교할 때 東棗西栗, 紅東白西가 棗栗枾梨보다 더 논리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71 제수 진설법을 보면 머리와 꼬리가 있는 생선등을 어떻게 놓는가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는 東頭西尾라 하고, 어떤 이는 西頭東尾라고 합니다. 또 생선을 놓을 때 등과 배를 어느 쪽이 신위 쪽을 향하게 놓는가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맞는 것입니까? 71 분명히 말해서 권위있는 禮書에는 고기나 생선을 놓는 위 치는 정해졌지만 머리와 꼬리, 등과 배를 어느 쪽을 향하게 한다고 정해진 곳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원칙이 없이 놓을 수도 없는 문제라 여러 가지 俗說이 있어 다르게 행해지고 있습니다. 비록 禮書에는 정해진 데가 없지만 전통예절의 총본산인 성균관의 석전 대제에서는 東頭西尾, 즉 머리가 東쪽이고 꼬리가 西쪽이 되게 진설합니다. 그 이유는 신위가 北쪽에 계시니까 東西로 길게 놓아야 할 텐데 東이 陽方으로 위이기 때문에 머리를 東쪽으로 가게 놓는 관습이 정립된 것으로 믿어집니다.
등과 배는 배가 신위쪽으로 가게 놓는 것이 일반화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등은 뒤이며 밖이고 배는 앞이며 안이므로 앞과 안쪽을 신위쪽으로 하는 것이 타당해서입니다. 또 등을 보이면 나가는 것이고 배를 보이며 들어오는 것이므로 배를 신위쪽으로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72 우리의 전통예절은 격식이 중요시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제례는 조상을 추모하는 정성이 있으면 된다고 생각되는데 왜 격식이 그렇게 중요시됩니까? 72 당연합니다. 인간이 하는 표정, 언어, 행동이 모두 격식에 의해서 이뤄져야 상대가 속마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격식이란 그 사회에서 공통된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침에 잠에서 깨어 잠자리를 걷고 소제하고 세수하고 면도하고 밥먹고 옷을 챙겨 입고 신을 신고 대문을 나설 때까지의 절차를 순서대로 기록한다면 祭禮절차보다 더 복잡하겠지만 복잡하다거나 까다롭다고 하지 않고 일상적으로 수월하게 행합니다. 그 이유는 격식이랄 수 있는 절차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례절차를 복잡하다거나 까다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절차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성스러운 사람은 격식을 알아서 그대로 행합니다. 우리가 먹는 상차림도 밥, 국, 수저, 간장, 김치 찌개등을 놓는 자리가 격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양식을 먹을때도 스푼 나이프 포크를 쥐고 쓰는 법등 격식을 따라서 행합니다. 그런데 왜 조상을 위하는 제상의 차림은 아무렇게나 해야 된다고 생각하며 모든 의식 절차를 안지켜도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격식을 모르는 사람의 변명이고, 그런 변명을 하는 사람은 정성이 모자라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3 신혼여행에서 돌아 올 때에 신랑과 신부가 친정과 시댁중 어디로 먼저 가야 할까요? 이 문제로 옥신각신하는 예가 많습니다. 73 친정으로 먼저 가면 "이제 우리집 사람인데 왜 친정부터 가느냐?"고 시댁에서 괘씸하다고 말하고, 시댁으로 먼저 가면 "평생 살 것인데 친정좀 다녀가면 안되는냐?"고 친정에서 서운해 합니다. 古禮대로 親迎禮를 하면 신랑집에서 禮를 올리니까 문제가 없고, 전통관습대로 하면 신부집에서 禮를 올리고 첫날밤을 차린 뒤에 시댁으로 오는 于禮를 하니까 그 절차가 확실한데 신식혼례에는 신랑댁이나 신부댁이 아닌 어중간한 예식장에서 혼인예식을 하고 첫날밤을 치르기 전에 신혼여행(첫날밤)을 떠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첫째 분명히 말해서 혼인예식이란 궁극적으로 첫날밤, 즉 合宮이라고 해서 男女가 몸을 합치기 위한 절차입니다. 따라서 첫날 밤을 차리는 격인 신혼여행은 우리 전통관습에 의할 때 신부댁에서의 절차적 행사라 할 것입니다.
둘째는 남녀가 합치는 첫날밤은 여자에게 있어서 중대한 변혁적 행사이므로 그 후에 같은 여성이며 閨房의 禮를 가르친 어머니와의 대화가 절실한 것이니 그 기회가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아무리 혼수를 미리 시댁으로 보냈다 하더라도 비밀스럽고 자질구레한 신변잡품들은 신부가 직접 가지고 가야 할 것이기 때문에 친정에 있을 것입니다.
넷째, 딸을 마지막 보내고 생소한 시댁에 보내면서 아무리 예물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그냥 빈손으로 보낼 수 있겠습니까?
이상과 같은 연유로 해서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신랑과 신부는 신부댁으로 가서 한밤을 지낸 뒤에 시댁으로 들어가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74 男女간에 어른에게 절할 때 평소에는 한번 씩 하고, 제사 지낼 때는 남자는 두 번, 여자는 네 번 하는데, 回甲때는 몇 번씩 해야 합니까? 한번씩 하자니 너무 가벼운 것 같고, 제사때와 같이 하자니 산 어른에게 제사의 절을 할 수 없어서 그럽니다. 74 그런 질문이 많습니다. 古禮에보면 절을 많이 할수록 극 진한 공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절의 기본횟수는 남자는 陽이기 때문에 최소 陽數인 1회이고 여자는 陰이니까 최소 陰數인 2회입니다. 그것은 전통혼례에서 신랑은 2번 신부는 4번절하지만 각기 기본횟수인 신부가 2번, 신랑이 1번의 절을 두 차례 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제사의 절은 극진한 공경일 뿐 아니라 상대가 陰府로 가신 귀신이니까 남자가 陰數의 절을 하기 위해 2번 하고, 그것이 기본 횟수의 배이기 때문에 여자도 기본횟수의 배인 4번을 하는 것입니다. 回甲도 평소와 다른 儀式이며 극진한 공경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남자는 2번, 여자는 4번 해야 할 것입니다. 폐백때의 절도 신부는 4번씩 하게 됩니다. 그러나 절을 받으실 어른이 절의 횟수를 줄이라고 명하시면 말씀에 따라 하는 것이 禮에 맞는 것입니다.
75 男左女右란 말을 많이 쓰고 실제 좌석배치에도 원칙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左右란 左右로 위치를 잡아야 할 자신들의 左右입니까? 예를 들어 신랑·신부가 설 때나, 회갑에서 부모가 앉을 때 자기 들의 左右인가, 아니면 손님이 볼 때의 左右인가 말입니다. 75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실제로 누구의 左右인가 혼동이 되고 있습니다. 당사자의 左가 보는 이의 右가 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左右란 당사자의 左右도 아니고 보는 이의 左右도 아닙니다. 禮節에 있어서 '누구의' '어디의'라고 기준을 정해서 左右를 말할 때는 당연히 그 특정기준의 左右이기 때문에 혼동이 없지만, 특정기준이 없이 左右라고 하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특정 기준이 없을 때의 일반적 기준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 일반적 기준은 '上座'입니다. 左右에서의 左는 東이고 右는 西를 의미하며 上座는 北쪽이기 때문에 당연한 논리입니다. 上座가 北이라는 것은 冠婚喪祭의 西禮에서 공통된 것이고, 그 상좌의 左가 東이며 男子이고, 상좌의 右가 西이며 女子입니다. 따라서 回甲잔치에서는 헌수를 받는 당사자가 앉는 자리가 上座이기 때문에 父母가 상좌에 앉으면 左측인 東에 父가 앉고 右측인 西에 母가 앉게 됩니다. 혼인예식에서는 병풍을 친곳, 즉 주례석이 上座이기 때문에 주례의 左측인 東에 신랑이, 주례의 右측인 西에 신부가 서야 합니다.
전통혼례에서 신랑의 자리는 東쪽이고 신부의 자리는 西쪽이라고 명시되어 있고, 이때의 東西는 上座의 左측이 東이고 右측이 西가 되는 것입니다. 제례에서는 神位를 뫼신 곳이 上座이기 때문에 신위의 左가 東이고 右가 西입니다. 따라서 男子자손은 신위의 左 측인 東쪽에서 北향해 서고, 女子자손은 신위의 右측인 西쪽에서 北향해 서는 것입니다.
76 요사이 명절에 한복을 입는 사람이 많아서 흐뭇합니다. 그런데 한복을 입고 구두를 신은 것을 보면 양복입고 갓을 쓴 것 같아 개운치 못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76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한복에는 미투리나 짚신을 신어야 걸맞는 다고 생각하기가 싶군요. 그러나 우리가 양복을 입기 전, 그러니까 한복이 유일한 우리의 의상일 때도 서민들은 미투리나 짚신 아니면 나막신을 신었지만 사대 부나 여유있는 상류층에서는 가죽신도 신었고, 가죽신에 징을 박은 진신도 신었습니다. 옛날의 가죽신과 지금의 구두가 모양은 약간 다르지만 가죽신이라는 데는 다를 것이 없습니다.
77 금년 신정에 TV를 보았더니 각 정당이나 단체의 신년하례식이 방송되는데 한복두루마기에 목도리를 두른채 의식에 참석한 저명인사들이 많았습니다. 목도리도 우리 한복의 정장에 속하는지 궁금합니다. 77 목도리는 방한하는 장신구이지 통상복장의 일부는 아닙니다. 비단 한복뿐아니라 양복을 입었을 때도 실내에 들어가면 목도리를 끌러야 깍듯한 예절이라 하겠습니다. 신년하례식 같은 의식행사에 한복에 목도리를 두른채 참석한다면 방한장비를 한채 의식에 참석한 것이 됩니다. 당연히 실내나 의식행사에서는 목도리를 풀러야 합니다.
78 곧 설이 됩니다. 아랫사람이 어른에게 절을 하기 위해 "절 받으세요", "앉으세요"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옳은 것인지 궁금합니다. 78 좋은 질문입니다. 절은 공경의 뜻을 나타내는 동작입니다. 자기가 공경하는 대상에게 공경의 동작을 하면서 어른보고 "절 받으라", "앉으라"라고 수고를 시켜서는 아니됩니다.
공경해야 할 어른을 뵈옵는 즉시 공경의 예를 올리는 것입니다. 어른이 앉았으면 더욱 좋겠지만 서 계시면 어떻고, 누워 계시면 어떻습니까? 절을 받기 위해 수고를 시키지 말고 절을 올리는 것이 옳습니다.
79 저는 아직 20대 초반의 신입사원입니다. 지난 신정에 중 학교 때 각별히 사랑해 주시던 선생님과 직장의 아버지같은 상사에게 세배를 갔었습니다. 선생님과 상사가 모두 무척 반기며 고마워 하셔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두 분이 모두 저의 절을 그냥 앉아서 받으셨습니다. 그래도 되는 것인지요? 79 절을 하는 예절도 중요하지만 절을 받는 예절도 깎듯 해야 합니다. 아무리 어릴 때 가르친 제자라도 성년이 되어서 하는 절에는 반드시 반절로 답배를 해야 합니다. 직장의 상급자도 하급자가 미성년이 아닌 성년이라면 그 절을 답배해야 합니다. 직장의 상급자도 하급자가 미성년이 아닌 성년이라면 그 절을 답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관습에 의하면 '얘' '너' '해라'하며 절을 그냥 받던 아랫사람이라도 관례(성년례)를 올리고 나면 '자네' '하게'를 하며 반드시 그 절을 맞아 주었습니다. 근친관계가 아니면 성년의 절은 반드시 답배를 해야 합니다.
80 제가 알기에는 명절의 차례가 설 한식 추석 등 세 차례라 고 생각됩니다. 한식과 추석의 차례는 산소에 가서 지내는 것이 일반화되었는데 설의 차례도 산소에 가서 지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80 茶禮란 조상에게 명절의 특식을 먼저 드리는 제례입니다. 그러니까 설에는 떡국, 추석에는 송편, 한식에는 화전을 올린다고 하겠습니다. 전에 사당에 조상의 위패를 뫼시던 때는 사당에서 차례를 지내고 산소에는 그냥 성묘만 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 법이었고, 더러는 어떻게 산소에 빈손으로 가겠느냐면서 간단한 제수를 준비해서 산소에서도 지냈습니다. 결국 자손의 정성이 지극하면 두 번 차례를 지내는 결과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사당이 없어지고 산소만 계시니까 집에서는 지내지 않고 산소에서만 지내는 것이 근래의 풍속입니다. 한식은 언 땅이 녹을 때이고, 추석은 초목이 자라고 장마끝이라 산소의 안위가 궁금해 반드시 성묘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산소에서 차례를 지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설은 몹시 추운 때라 성묘하기가 마땅치 못하며 설의 특식인 떡국은 국물이 있고, 뜨겁게 끓여야 하기 때문에 산소에서는 마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설의 차례는 집에서 신주, 지방, 사진등 위패를 모시고 지냅니다.
81 저는 설날만 되면 세배돈 때문에 고민이 됩니다. 세배돈 은 몇 살 까지 주며 얼마나 줘야 합니까? 81 세배돈은 절값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절하는 법을 가르치고 칭찬하기 위해서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 저것 분별하는 나이가 되면 세배돈을 주는 것이 오히려 어린애 취급 같아서 불쾌한 것입니다. 어린 아이에게 형이나 누이에게도 절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나이를 먹더니 어른스럽고 절을 잘한다."고 칭찬하면서 다과나 세배돈을 주는 것이니까 부담이 되는 액수라면 더욱 곤란합니다. 아이들이 부담없이 즐겁게 받고 쓸 수 있는 적은 돈이어야 합니다.
82 상주가 자기를 말할 때 '孤子' '哀子' '孤哀子' 등을 쓰는데 그 세가지가 어떻게 다릅니까? 82 어머니는 계시고, 아버지만 돌아가셨을 때는 '孤子'이고, 아버지는 살아 계시고 어머니만 돌아가시면 '哀子'이며, 누가 먼저이든 두 분이다 돌아가시면 '孤哀子'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상주가 자기를 自稱하는 것만 보아도 누구의 상(喪)을 당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哀子'는 공식적으론 상가(喪家)를 대표해서 쓸 일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계시고, 어머니만 돌아가셨을 때 '哀子'인데 그런 경우의 상가의 주인(主喪)은 아버지인 남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고나 장사지낸 후의 인사장 등에 '哀子'라면서 아들의 명의로 하면 주상인 아버지를 제쳐놓는 일이며 심하게는 능멸하는 것이 됩니다. 주의해야 합니다. 다만 私信등에 '哀子'를 씁니다.
孤子[고자] 哀子[애자] 孤哀子
83 TV나 예절책에 소개되는 제상의 과실차림을 보면 대추 밤 감 배의 순서로 西쪽에서부터 놓고, 기타 조과나 유과를 그 다음 東쪽에 놓기도 하고, 東쪽에 대추 西쪽에 밤을 놓고 東쪽에서부터 붉은색, 西쪽에서부터 흰색의 생과를 놓고 중앙에 조과나 유과를 놓기도 합니다. 또 과실의 접시수도 어떤 이는 짝수이고, 누구는 홀수입니다. 어떻게 해야 맞습니까? 83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과실을 놓는 위치는 어느 禮書에도 명시된 곳이 없고, 접시수도 栗谷선생은 상당한 이유의 설명이 없이 홀수를 예시했고, 退溪 沙溪선생은 과실은 陰인 땅에서 나므로 陰수인 짝수로 한다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굳이 접시 수를 말한다면 地産은 陰수로 한다는 이유가 제시된 짝수가 합리적이라 할 것입니다. 놓는 위치도 대추 밤 감의 순서를 주장하는 사람은 대추는 씨가 하나니까 임금이고 밤은 한 송이에 세 톨이 들었으니까 삼정승이고, 그러므로 벼슬의 높낮이에 맞춘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반 민가의 제례에 임금을 상징하는 대추를 어떻게 쓸 수 있는지, 논리적인 근거가 박약합니다. 그러나 대추는 東쪽, 밤은 西쪽은 신부가 폐백에 밤과 대추를 가져가는 까닭이 대추는 "아침 일찍 부지런하게"라는 뜻이므로 아침 즉 東쪽에 해당되고, 밤은 글씨도 西쪽의 나무(木)라 쓰고, 신주도 밤나무로 깎으므로 귀신은 두렵다고 西쪽에 해당되어 합리적입니다.
그리고 제사음식은 현란한 색깔을 피하므로 붉은 대추를 놓은 東쪽에서부터 붉은색, 깎아서 흰 밤을 놓은 西쪽에 서부터 흰색을 놓고 중앙에 조과나 유과를 놓되 역시 ⑦로 놓는 것이 합리적이라 할 것입니다.
84 새로 취임한 대통령이 권위주의를 청산하기 위해 각종 모 임에서 上下석의 좌석 구분을 없애고 있어 각 단체나 사회적 모임에서도 좌석배치에 논란이 많습니다. 上下석의 구분은 있어야 합니까, 아니면 없애야 합니까? 84 시기에 적절한 질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좌석배 치에 있어서의 上下석의 구분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고, 설사 없애려 해도 없어지지도 않습니다. 비록 같은 모양의 의자를 둥글게 놓았다 하더라도 같이 앉아야 할 사람 중 가장 상급자가 앉는 자리가 상석이 되는 것이고, 그 상석을 기준으로 차례가 지어집니다. 그래서 의자가 같다든가 둥글게 좌석 마련을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좌석준비를 해 놓으면 하급자들이 어디에 앉아야 할지를 몰라 더욱 혼란하고 몸둘 바를 모르게 됩니다. 또한 원탁이란 같은 계급의 사람들이 계급을 염두에 두지 않고 "모두 같다"는 인식을 갖는 배치인데 상급자와 하급자가 원탁에 앉았다고 같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상하급이 이런 식으로 해서 구분이 없어진다면 우리사회는 혼란과 無禮의 늪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85 실천예절을 읽으면서 현행 신식 예식장에서의 신랑·신부 위치가 잘못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전통혼례나 종교의식등에 비추어 보아도 잘못 되었는데 왜 고치지 않는지요? 85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식인데도 신식 혼인예식장에서는 신랑과 신부를 죽은 이의 위패나 묘지의 시체매장 위치에 세우고 있습니다. 예식장에서 고치지 않는다면 혼인하는 신랑·신부 당사자가 제자리를 찾는 슬기를 발휘해야 합니다.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 뫼시는 신주나 지방을 보면 西쪽에 남자, 東쪽에 여자 조상을 씁니다. 묘지에 시체를 매장할 때도 西쪽에 남자, 東쪽에 여자의 시체를 묻습니다. 그런데 현행 예식장의 상태가 신랑이 西쪽이고 신부가 東쪽이라 죽은 이와 같은 위치입니다. 신랑과 신부들이 전통혼례나 모든 의식에서와 같이 산사람의 위치에 서려면 주례의 좌측인 東쪽에 신랑이 서고 주례의 우측인 西쪽에 신부가 서야 합니다. 각자가 챙길일입니다.
86 저는 혼인한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남편이 친구들과 함께 집에 와서 대접하는 일이 가끔 있는데 남편의 친구들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86 그렇겠습니다. 남편의 친구와 대화를 하거나 불러야 할 일 이 많을 것입니다. 남편의 상급자나 또는 사회적 직급이 있으면 그 직급을 불러도 됩니다. '과장님' '대리님' 만일 그런 직급명이 없으면 '선생님'이 가장 좋습니다. 젊은 사람들끼리 선생님이 어색하다고 생각되시면 '씨'도 좋습니다. 그러나 '씨'를 붙일 때는 성만 말해 '김씨' '박씨'라고 하면 안되고 반드시 성명을 다 말해야 합니다. '김갑동씨' '이몽룡씨'라고 말입니다. 될 수 있는대로 '선생님'이라 부르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87 아버지와 아버지의 형님인 큰아버지, 그리고 큰아버지보다 손위인 고모부, 세분이 함께 계신 자리에서는 누구에게 먼저 절을 해야 합니까? 차례대로라면 고모부, 큰아버지, 아버지의 순서인데요. 87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여러 어른이 함께 계실 때는 절하는 순서에 원칙이 있습니다.
그 순서는 먼저 직계존속의 최상위자부터 男·女, 다음은 방계친척의 상위세대 순으로 하되 같은 세대에서는 촌수가 가까운 순서의 男·女, 그 다음이 친척이 아닌 사람은 연령순으로 절하면 됩니다.
귀하가 질문하신 경우는 직계존속은 아버지뿐이므로 아버지에게 먼저 절하고, 다음이 친족인 큰아버지, 마지막으로 고모부에게 절해야 합니다. 절의 순서에 대한 원칙은 古禮의 服制의 輕重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경우도 원칙은 아버지에게 먼저 해야 되지만 아버지의 직계존속보다 아버지에게 먼저 절하면 아버지가 불편하시대서 직계존속은 웃세대부터 합니다.
만일 연령순으로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친구, 큰아버지, 고모부, 아버지, 당숙, 아버지의 친구, 형님등 열분이 한 자리에 계시고 전부 절을 할려면 ⑴할아버지 ⑵아버지 ⑶증조할아버지 ⑷증조할머니 ⑸큰아버지 ⑹당숙 ⑺고모부 ⑻형님 ⑼할아버지의 친구 ⑽아버지의 친구 순으로 절해야 할 것입니다.
88 어떤 책에서 보니까 10촌 이내를 일가라고 한다 했고, 다른 책에서는 8촌이 넘어야 일가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일가의 범위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88 일가란 엄격한 의미에서는 동성동본(同姓同本)의 혈족(血族)을 총칭하는 것이고 더러는 혈족남자의 배우자를 일가의 범주에 넣기도 합니다. 그러나 귀하의 질문 취지는 엄격한 의미에서의 일가가 아니라 일반적 대화 중 호칭(呼稱)으로서의 '일가'에 대한 것이라 이해됩니다. 대화 중에 "저 분은 저의 일가입니다"라고 말하는 일가를 10촌이내라고 말할 수는 없으며 또 10촌이라는 한계기준이 모호합니다. 일반적으로 친족의 친소를 구분하는데는 8촌을 한계기준으로 하는 바 그 이유는 8촌은 죽었을 때 복을 입는 유복지친(有服之親)의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8촌이내를 일가라 말하는가, 아니면 8촌이 넘어야 일가라고 하는 가가 문제입니다. 8촌이내는 근친으로서 남에게 말할 때의 호칭이 특정되어 있습니다. 8촌 형제면 "삼종입니다", 6촌형제면 "재종입니다"라고 말하지 일가라고는 않습니다. 따라서 '일가'라고 말하는 경우는 8촌이 넘어 특정의 호칭으로 말하기가 곤란한 혈족을 말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89 저의 아버지께서는 회갑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는데 이번에 어머니의 회갑을 당해 조촐한 잔치를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말하기를 돌아가신 아버지의 회갑잔치도 같이 해야 된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89 살아 계신 어머니의 회갑잔치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회갑잔치를 겸한다면 얼른 보면 극히 효성스러운 것 같지만 깊은 의미로는 불효라 할 것입니다. 生死가 다른 두 분을 함께 뫼시고 잔을 드리는 헌수(獻수)를 한다는 말인데 산 어머니 옆에 죽은 아버지의 위패(신주)를 뫼셔야 할테니 살아계신 어머니가 얼마나 슬프시겠습니까? 원래 돌아가신 부모의 생신에는 이제를 지낼 수 있으므로 죽은 아버지의 회갑에는 이제를 성대히 지내고 손님을 청해 아버지의 유덕을 기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어머니의 회갑잔치는 어머니에게만 헌수하고 잔치도 어머니의 회갑잔치만 해야 합니다.
90 父母님의 회갑에 헌수를 할 때 자손이 향해서 왼쪽에 아버지, 오른쪽에 어머니를 앉으시게 하는가 본데 맞는지요? 90 회갑잔치의 좌석배치는 병풍치고 병풍 앞에 당사자가 앉고 그 앞에 상을 차린 다음 자손들이 당사자를 향해 서게 됩니다.
그렇다면 禮節의 東西南北은 병풍친 것이 北쪽이고 자손들은 南쪽에서 北향해 서는 것이 됩니다. 이런 방위로 보아 귀하가 말씀하신 父母님의 위치는 아버지가 西쪽이 되고 어머니가 東쪽이 된다는 말입니다. 즉 남자가 西쪽 여자가 東쪽에 위치하는 것은 죽은 사람의 위치입니다. 제사때 지방을 쓸려면 향해서 왼쪽인 西에 남자, 향해서 오른쪽인 東에 여자의 신위를 쓰고, 묘지에 시체를 매장 할 때도 신주와 같이 西쪽에 남자, 東쪽에 여자가 묻힙니다. 그런데 살아계신 父母님을 죽은 사람의 위치에 뫼신다면 그런 불효가 어디에 있습니까? 당연히 아버지를 자기들의 왼쪽인 東쪽, 어머니를 자가들의 오른쪽인 西쪽에 뫼셔야 합니다.
古禮에 보면 시부모가 새 며느리의 폐백을 받을 때 구동고서(舅東姑西), 즉 시아버지는 東쪽 시어머니는 西쪽에 앉는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禮節에서의 東西南北은 상좌(上座)를 北쪽으로 간주해 상좌의 左측이 東이고 右측이 西쪽이 되는 것이며, 生者는 東쪽을 上으로 해 남자가 東쪽으로 가고, 死者는 西쪽을 上으로 해(以西爲上) 남자가 西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91 실천예절의 내용에 '李朝'란 말이 자주 나오는데 이는 '조 선'으로 고쳐 주십시오. '李朝'란 日帝가 우리나라를 얕잡아 보기 위해 '李氏의 部族國家'란 뜻으로 쓰인 것으로 한국인이라면 쓸 수 없는 낱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전통예절을 바로잡는 잡지에 우리나라를 멸시하는 '李朝'란 용어는 쓸 수 없는 것 아닙니까? 91 먼저 오해 없으시기를 바라면서 뜻높은 충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나라는 '朝鮮'이란 국호를 사용한 시대가 檀君의 朝 鮮, 箕(奇)子의 朝鮮, 衛滿의 朝鮮, 李氏가 王이었던 朝鮮이 있었고 지금은 北韓이 '朝鮮'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냥 '朝鮮'이라고 하면 어떤 朝鮮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때문에 歷史學者들은 檀君. 箕(奇)子, 衛滿의 3朝鮮은 古代朝鮮이라 하고, 李氏가 王이었던 朝鮮을 近世朝鮮으로 구분하고 또 古代朝鮮을 王朝別로 나눌 때는 建國王朝의 姓을 따라 구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日帝 이전에는 李氏가 王이었던 朝鮮을 그냥 '我鮮'라고도 했습니다. 즉 우리나라(조정)란 뜻이 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我朝鮮'이라고 널리 쓰였지요. 그러나 본 실천예절에서 더러 '李朝'라고 표기하는 경우는 우리나라라는 뜻이 아니고 '李氏朝鮮의 朝鮮'이란 뜻으로 쓰여지고 있고, 그것을 줄여서 '李朝'라고 쓰였습니다. 혜량하시기 바랍니다.
92 시댁 시누이의 남편을 어떻게 불러야 합니까? 근래에 '고모부'라고 흔히 말하는데 아무래도 바른 호칭이 아닌 듯 해서 묻습니다. 92 古禮에는 처남댁과 시누이남편 사이는 엄격한 內外법이 있으므로 서로간에 직접 부를일이 없었는데, 요사이는 내외법이 엄격하지 않아 서로 부를 경우가 많은데서 호칭의 혼란이 야기되고 있습니다. 요사이 궁여지책으로 '고모부'라고 부르는데 고모부란 자기의 자녀가 부르는 호칭이지 처남의 아내인 자기가 부르는 호칭은 아닙니다. 물론 시누이 남편을 자기의 자녀에게 말할 때는 '너의 고모부'라고 하는 것이지만 말입니다. 옛날에 시누이 남편을 말하는 경우란 제3인칭으로 말할 때가 전부였습니다. 그때는 시누이 남편의 성을 붙여 '金서방' '李서방'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직접 부를 때는 '님'을 붙여 '金서방님' '李서방님'이라 부르는 것이 좋습니다.
93 저는 택시기사입니다. 택시를 이용하는 손님은 성별 직업 연령 등이 다양한데 손님에 대한 호칭을 구분하기가 어려운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좋은 호칭이 있습니까? 93 그렇겠습니다. 나이가 어린 학생이라고 해서 '얘' '너' 할 수 도 없고, 남녀 연령등 천태만상의 고객을 그때마다 격에 맞추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습니다. 어찌 택시뿐이겠습니까? 음식점, 접객업소, 기업체, 은행, 병원, 상점등 자기나 자기의 사업을 이용하는 고객을 맞는 업소에서는 모두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손님'이 제일 좋습니다. '손(客)'은 고객이란 뜻이고 '님'은 그 '손'을 높이는 말이니까 '고객(顧客)님'을 우리말로 '손님'이라 하면 적격입니다.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신분이야 어떻든 '손님' 이라 불리워서 기분 나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94 男左女右란 男子는 왼쪽 女子는 오른쪽이란 말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혼인 예식장에서 신랑과 신부가 주례를 향해 섰을 때와 하객에게로 돌아서서 인사할 때는 서로 위치를 바꿔야 하는 것 아닙니까? 94 좋은 질문이십니다. 저희가 받는 가장 많은 질문이 '男左 女右'에 관한 것이니까요.
첫째, '男左女右'에 左右는 어떤 의식장소에 참석한 사람들 각자의 좌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上座의 좌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禮書에도 "좌우란 존장(上座)의 좌우"라 고 못이 박혀 있습니다. 혼인예식장의 상좌는 주례석입니다. 그러니까 혼인예식장 안에서의 좌우는 주례의 왼쪽이 左이고 주례의 오른쪽이 右가 됩니다. 신랑과 신부가 방향을 바꿀 때마다 위치를 고칠 필요는 없습니다. 주례를 향할 때나 하객을 향할 때나 모두 신랑은 주례의 왼쪽, 신부는 주례 오른쪽에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둘째, 左右란 東西라는 뜻입니다. 예절에서는 上座를 北쪽으로 간주하는데 그 이유는 北쪽이 제일 높고(北極星이 있으니까), 北쪽에서 南향해야 햇볕을 가장 많이 받기 때문에 언제든지 어른이 北쪽에서 南향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소의 형편상 어른이 자연의 北쪽에 위치할 수 없을 때는 편리한 대로 아무쪽에나 위치하더라도 어른이 계신 上座를 北쪽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니까 上座의 左측은 東쪽이 되고 右측은 西쪽이 됩니다. 그러므로 男左女右란 男東女西라는 의미입니다.
95.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삶이 끝나는 것인데 "초상(初喪)났다"고 '처음'이란 뜻의 '初'자를 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95 답 : 참으로 좋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왜 죽음에 '初'를 쓰느냐 는 것이군요. 禮書에 보면 君子의 삶은 道를 행하는 것이므로 君子의 죽음은 바로 道를 마침(終)이 시작된다고 해서 '初終'이라고 하고, 小人의 삶은 肉身이 살아 있는 것이므로 小人의 죽음은 바로 肉身이 죽어 썩음을 의미해 '死'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小人의 죽음은 '初死'라 해야 옳을 것입니다. 喪은 道가 끝나는 '終'도 아니며 육신이 썩는 '死'도 아닌 중간의 의미라 하겠습니다. 그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이를 君子냐 小人이냐를 구분하지 않고 중간 의미인 '없어짐이 시작되었다'는 뜻으로 '初喪'이라고 합니다.
96 요사이 신문에 나는 부고를 보면 남편이 죽었을 때는 아 들보다도 앞에 '未亡人'이라 쓰고 부인의 이름을 쓰는데, 부인이 죽었을 때는 아무데도 남편의 이름을 쓰지 않는 경향입니다. 부인이 죽었을 때의 남편의 이름은 어디에 쓰는 것이 옳습니까? 96 남편이 죽었을 때는 부인은 일단은 '主婦'가 되지만 그 주 부의 자격도 큰 며느리에게 물리게 되었습니다. 禮書에 의하면 부고에 이름을 쓰는 사람은 '主喪'에 국한되었습니다. 그런데 근래는 부고 자체가 죽은 이의 친척과 친지에게만 보내는 것이 아니고 상주들의 친지에게도 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상주의 이름을 모두 쓰는 것이 상식화되었습니다. 만일 미망인을 제일 먼저 쓸려면 부고의 서식도 "아무개의 아버님 누가... "라고 하지말고 "아무개의 남편 누가..."써야 합니다. 그런데 부고는 "아무개의 아버님 누가... "라고 쓰면서 미망인의 이름을 제일 먼저 쓰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당연히 主喪이 큰 아들이나 큰 손자를 먼저 쓰고 그 다음에 미망인을 써야 할 것입니다. 부인이 죽었을 때는 장성한 아들이 있더라도 살아있는 남편이 主喪입니다. 그래서 부고도 "아무개의 부인 누가..."라고 시작되고 이름을 쓸 때도 제일 먼저 "主喪 夫000"라고 쓰고 그 다음에 아들이 이름을 써야 옳습니다.
97 喪家에 인사를 가서 보면 옛날과 달라 成服을 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成服전후를 알게 할 수 있겠습니까? 97 사실 문제가 많습니다. 옛날과 같이 상복을 챙겨 입는 것도 아니고 혼백을 접거나 명정을 거는 경우도 별로 없으니 成服여부를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영좌(靈座)에 망인의 사진을 뫼시니까 그 사진에 검은 리본을 걸쳤는가 아닌 가로 구분하게 하는 것이 제일 편리할 것입니다. 즉, 염습을 해 입관을 하기 전에는 망인의 사진에 검은 리본을 걸치지 않고, 입관을 한 다음에 검은 리본을 ∧자로 걸치는 것입니다. 조문하는 손님이 망인의 사진을 보면 성복 여부를 금방 식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98 喪家에서 상주들은 거적자리를 깔고 짚벼개를 옆에 놓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98 상주는 왜 거적자리에 앉고 짚벼개를 베는지 그 의미도 모르고 흉내만 낸다면 진정한 예절이랄 수가 없습니다. 원래는 짚벼개가 아니라 흙벼개를 베게 되었습니다. 거적자리는 풀밭을 의미하고 흙덩어리의 벼개는 맨땅을 의미합니다. 부모가 돌아가셨으니 자식들은 큰 죄인이며 차마 몸을 편안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맨땅 풀밭에서 흙덩어리를 벤다. 즉 草土에 몸을 둔다는 의미입니다. 참으로 갸륵한 孝道의 표시입니다. 그런데 근래 방석까지 깔고 있는 상주들이 있음은 생각할 일입니다.
99 얼마전에 저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밤샘까지 한 친 구가 아버님의 상을 당했습니다. 돌아가신 어른이 저의 아버지와 친구분이라 저는 아버지를 뫼시고 조상을 갔었습니다. 부의금은 아버지의 명의로 내고, 저는 바쁜 일이 있어서 조상만 하고 바로 왔습니다. 다음에 상주인 제 친구가 "나는 저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밤샘까지 했었는데 그 사람은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어도 인사도 안왔다"고 서운해 했습니다. 부의록에도 저의 이름은 없으니 참으로 변명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99 맞습니다. 그래서 상가에 부의록만 있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부의록이야 부의금을 기록하는 장부니까 부의금을 내지 않는 조상객은 알 수 없습니다. 때문에 상가에는 반드시 吊客錄이나 吊慰錄이 부의록 외에 따로 있어야 부의금에 관계없이 모든 조문객을 기록해야 합니다. 吊客錄은 男子가 죽었을 때 吊喪客을 기록하는 방명록이고, 吊慰錄은 망인이 女子일 때 吊門客을 기록하는 방명록입니다. 귀하가 질문한 경우 吊客錄이 있었더라면 그런 오해는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100 평소에 '孃'이라고 부르던 동년배의 여직원이 혼인을 해 기혼녀가 되었습니다. 호칭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갑자기 그것도 동년배인데, '여사'라고 부르기가 쑥스러워서 그럽니다. 100 '여사'라고 부르는 것을 쑥쓰럽게 생각할 까닭이 없습니다. 미혼인 여자를 '양(孃)'이라 불렀으니까 기혼인 여성은 당연히 '여사'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사'에도 두가지의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바로 '女史'와 '女士'입니다.
'女史'는 여자인 사관(史官)이란 뜻으로 옛날 왕실에 여자의 사관을 두어 왕후의 측근에 있으면서 왕후의 언어와 동정을 기록하는 직책이었습니다.(周禮) '女士'는 성년례(成年禮)이 계례를 치른 성인인 여자를 높이는 호칭입니다.(家禮)
따라서 '女史'는 기·미혼에 관계없이 사회적 활동을 하는 여자를 이르는 호칭이라 할 것이고, '女士'는 성년, 즉 기혼여성을 부르는 호칭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니 동년배라도 기혼여성이니까 '여사(女士)'라고 부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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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내가 몰랐던것을 많이 알게 됐습니다. 여엮시 어렵네요.
해박한 황박사가 어렵다니.... 그래두 배울 상식이 너무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