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다리
아들과 쇼핑 라이브 방송을 하는데 하루는 스토어에 방문객이 평소 열배 많은 수 천 명이 들어왔습니다. 방송하는 법을 배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기껏 열 번 쯤 했나 싶은데 갑자기 방문객이 수천 명이 유입되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네요. 어쩌면 플랫폼에서 신규 판매자를 지원하기 위해 방송 열 번째에는 방문객 유입을 지원해주는 알고리즘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어서 아들에게 이 놀라운 숫자의 비밀에 대해 뭔가 좀 아는 체하며 “알고리즘 어쩌구 저쩌구...” 했더니 아들의 생각은 다르네요. 그날 그냥 아다리가 맞아서 그럴 뿐이지 네이버에 그런 알고리즘은 없다는 겁니다. 컴퓨터와 친한 아들이 단호하게 말하니 그런가 하고 말았네요. 나도 알고 말한 것은 아니고 혼자 생각일 뿐이었으니까요.
어쨌든 “ 수천 명을 대상으로 방송을 한 그날은 방문객 유입 숫자에 비례해서 주문도 열배 많이 들어와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그날 주문은 그냥 평범한 수준이었습니다. 해서 방문객 수는 그냥 숫자일 뿐이라며 유쾌하게 웃고 말았답니다.
쇼핑 라이브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방송이다 보니 요일과 시간대가 중요합니다. 판매하는 상품이 곶감이라 곶감을 장바구니에 담을만한 고객이 많이 유입되는 요일과 시간대를 특정할 수만 있다면 같은 노력으로 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단지 방문객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라 곶감을 장바구니에 담을만한 사람의 숫자가 많이 유입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직 데이터가 많지 않아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대체로 주말 그리고 낮 시간대가 효율적인 것 같습니다.
낮 시간엔 직장이나 가정에서 일을 하느라 바쁘겠기에 일이 다 끝난 밤 시간대가 좋겠다는 생각에 밤 8시와 밤 9시에 방송을 해봤는데 유입이 생각보다 적어서 다시 낮 시간대로 돌렸습니다. 평일보다 주말에 매출이 확실히 많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매출이 특별히 많이 오른 날이 하루 있었는데 그날은 또 평일이었답니다. 이것도 아들은 그날이 평일이지만 아다리가 맞았다고 합니다. 내 생각에 그 날은 아들이 먹방을 아주 잘해서 매출이 특별히 많이 올랐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어쨌든 그날은 먹방 덕분인지 아들말대로 아다리가 맞았던 지 흐뭇한 하루였습니다. 방송은 길게 하지도 않습니다. 30~40분 정도 가볍게 하는데 식품 박람회 같은 곳에서 며칠 수고해야 모이는 매출이 생기니 이렇게 재밌는 걸 왜 진작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사실 나처럼 라방 교육을 받은 농부들이 배우고 나서도 선뜻 덤비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 차례 배워 이제 상품 소개는 청산유수처럼 잘 하게 되었는데 정작 스마트 폰을 혼자 조작해가며 방송을 진행하는 걸 배우지 못했던 겁니다. 이런 건 너무나 쉬운 것이기 때문에 굳이 설명하고 실습하지 않아도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겠지만 막상 혼자 하려고 하면 참 막막해지는 게 현실입니다. 방법은 있지요. 스스로 스마트 폰과 친해지던지 아님 스마트 폰과 친한 아들이나 딸의 도움을 받는 건데 나는 아다리가 맞아 후자를 택했답니다.
이리 오너라냥
“에에옹~” 쇼핑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는데 창밖에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애옹~훼에옹~ 이리 오너라~ 내가 왔다~” 아들과 같이 곶감 판매 방송을 하고 있는데 창 밖에 이리 오너라냥 서리가 와서 밥을 달라고 보챕니다. 하지만 방송 중에 길냥이 밥을 줄 수는 없습니다. 속으로 (아 저 녀석 시간 쫌 맞춰오지 왜 하필 이 때 와서 보채지...) 하며 무시하고 집중하려는데 못 들은 척 방송을 계속하자니 오히려 신경이 더 쓰여 집중이 안 됩니다. 고종시 곶감을 홍보하고 있는데 고양이 곶감이라는 말이 자꾸 입안에서 맴돕니다. 집사 목소리는 크게 들리는데 대꾸가 없으니 화가 많이 났는지 이리 오너라냥 목소리는 점점 커집니다. “ 뭘 이리 꾸물대느냐~ 냉큼 한 그릇 내어 오지 못할까~ 애옹훼옹~”
우리 집에는 수리 모시 집냥이 두 마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길냥이 서리 꼬리가 밥을 먹으러 오는데 딱 밥만 먹고 사라집니다. 구내식당처럼 말입니다. 길냥이 꼬리는 아침 저녁 밥시간에 미리 와서 기다립니다. 그런데 서리는 항상 지각이고 오는 시간이 오락가락합니다. 어떤 때는 열흘 보름씩이나 안 보입니다. 길냥이 삶이 험난한 걸 잘 알고 있기에 한동안 서리가 안 보이면 혹 사고라도 당했을까봐 덜컥 걱정이 됩니다. 2년 전 처음 본 서리는 등뼈가 보일 정도로 야위었고 올 때마다 머리에 피를 흘리며 왔습니다. 영역 싸움에서 다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서리는 덩치도 좋아졌고 더 이상 피를 흘리고 오지 않습니다. 눈에 카리스마를 번쩍이며 밥 먹으러 오는 서리를 보면 엄천골 영역싸움의 승자가 누구인지 알 거 같습니다. 짐작컨대 엄천골에서 새로 태어나는 고양이는 대부분 서리의 씨앗일 것입니다. 보스 고양이는 머리가 크다고 들었는데 서리는 머리가 확실히 큽니다. 호랑이만큼 커지는 않지만 엄천골에 서리보다 머리가 큰 고양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서리는 울음소리가 유별나게 커서 항상 웃음을 자아냅니다. 밥 달라고 하는 소리도 배고픈 주인이 충직한 집사에게 다그치는 것처럼 들립니다. 평소에는 서리가 애옹훼옹~~내가왔다~고 하면 하하 웃으며 알았써~알았써~하고 밥을 챙겨주는데, 이번에는 라이브 방송 중에 와서 소란을 피우니 나는 방송에 이리오너라냥의 목소리가 나갈까봐 잔뜩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잠시 기회를 보아 창문을 열고 손사래를 쳤는데 (이놈~썩 물렀거라~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소란을 피우느냐~) 다행히 이 녀석이 깜짝 놀라며 돌아서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빤히 쳐다만 봐 상황을 모면했습니다. 아무리 길냥이지만 밥 때에 맞춰 와서 먹을 수 있도록 길을 들였어야했는데 아무 시간이나 와서 애옹훼옹~울기만 하면 밥을 준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길냥이를 길을 들였어야 했는데 길냥이가 나를 길 들인 것입니다.
모든 고양이가 서리같은 이리 오너라냥은 아닙니다. 수리는 카운터테너로 목소리가 정말 아름답습니다. 창밖에서 니나 솔로도브니코바가 카치니 아베마리아를 부르듯 간절하게 노래하면 아내는 맨발로 뛰어 나가서 그래 그래~ 간식 먹을 시간이구나~하고 템테이션으로 화답합니다. 모시는 목소리가 모기처럼 앵앵거려 귀를 가까이 대어야 겨우 소리가 들립니다. 2개월 된 모시를 길에서 데려왔을 때는 성대 이상으로 소리를 못내는 줄 알았는데 수의사의 소견은 단지 목소리가 작을 뿐 이상은 없다고 합니다. 밥만 먹고 가는 길냥이 꼬리의 목소리에는 애절한 소망이 만져집니다. 에옹~ 나도 수리가 먹는 템테이션이 먹고 싶다옹~ 에옹~에옹~
라이브 방송사고
라이브 쇼핑 방송을 하는데 재미가 붙었습니다. 방송하는 법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진행이 서툴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소소한 실수가 재밌을 수도 있으니 미숙한 게 꼭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항상 밝은 낮에 하다가 늦은 밤에 한번 해 보았습니다. 평일이라 아무래도 낮 시간에는 일하느라 바쁠 테니 일 끝나고 저녁도 먹고 난 뒤 밤 8시쯤이면 시청자가 많을 거라는 기대에 방송 시간을 한번 바꿔 보았습니다.
그런데 라이브 예고를 올려놓았는데 갑자기 저녁에 컴퓨터가 문제가 생겨 해결하는데 정신이 팔려 하마터면 방송을 놓칠 뻔 했습니다. 알약 백신이 정상적인 프로그램을 랜섬웨어 공격으로 잘못 인식해서 컴퓨터에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 시킨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바로 그게 온 겁니다. 허걱~ 뉴스에 뜬 그거구나 내가 컴맹인거 어떻게 알고 왔지? 하고 슬그머니 도망가려는데 기어코 붙들고 늘어집니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중요한 문서를 작성 중이었는데 갑자기 컴퓨터가 다운 되어버렸습니다. 해결방법을 스마트 폰에서 얼른 검색해보니 알약이라는 바보백신을 삭제하라고 합니다. 문제는 컴퓨터가 먹통이 되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그걸 삭제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런 경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느린 구닥다리 컴퓨터와 바보백신을 싸잡아 욕하는 것과 다음 날 컴퓨터를 들고 수리점을 찾아가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아들이 도와줍니다. 아들은 고집불통 컴퓨터를 살살 달래가며 바보백신을 삭제하기위해 씨름을 하고 있고 어쩌면 안다리 후리치기 한판으로 이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아내가 “ 여보~오늘 밤에 라이브 방송한다고 안 했나?” 하는 겁니다. “ 응 8시에 할 거야~” 하고는 시계를 보니 헉~ 방송 2분 전입니다.
라이브를 하기 전에는 준비할 것들이 좀 있습니다. 우선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고 촬영용 폰을 설정해서 거치해야하고 조명 기구를 설치하고 냉동 창고에서 곶감을 꺼내 진열해야합니다. 방송 중에 활용할 피켓등 소도구도 챙겨야합니다. 평소 20분 전에 이런 준비를 시작했는데 2분 만에 이 모든 준비를 하고 생방송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들과 나는 백 미터 달리기 주자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렸습니다. 아들은 방송실로 바람을 일으키며 이동해서 폰을 거치하고 조명을 켰고 나는 바지와 셔츠를 동시에 갈아입으며 냉동실에서 곶감을 꺼내 진열하는 것까지 번개보다 빨리하고 방송을 시작했답니다. “안녕하세요~ 지리산농부 귀감 홍보부장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곶감박삽니다~ 오늘은 늦은 밤 시간에 추석 선물용 곶감을~”
20분 동안 준비할 걸 2분 만에 멋지게 해냈는데 유감스럽게도 방송을 시작하고 10여분이 지나고 나서야 내가 대문니가 하나를 빼먹고 방송을 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 달 전부터 임플란트 하기 위해 대문니 하나를 빼고 필요할 때는 임시 치아로 대체하고 있는데 이걸 빼먹은 겁니다. 카메라 바로 앞에 얼굴을 들이대고 환하게 웃는 대문니 없는 곶감박사를 보고 시청자들이 얼마나 재밌었을까 생각하니 그동안 재밌었던 라이브 방송이 갑자기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청자가 몇 백 명밖에 안 되었다는 겁니다. 그저께 토요일 방송 때는 방문자 수가 열배 넘었는데 그 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휴우~ 참말로 우리나라 농부 해먹기 힘듭니다. 농부가 방송까지 해야 하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