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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3:18(402) 세 가지 필수 구입 물품 2020. 11. 22.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글 하나를 소개합니다. 하늘에서 천사가 사람을 찾아와서 ‘같이 가자’고 말합니다.
같이 가자는 것이 무슨 의미에요? 하늘나라로 데리고 가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같이 가자고 말하는데, 60세가 되시는 분은 “지금 안 계신다고 말 하세요”라고 말하면서 핑계를 대면서 거절을 합니다.
천사가 70세가 되신 분에게 찾아가서 같이 가자고 말하자, 이 분은 “지금은 아직 이르다고 하세요.”라고 말합니다. 70세에 세상을 뜨는 것이 아직 이르다는 말입니다.
그러자 천사가 77세가 되신 분을 찾아가서 같이 가자고 말합니다. 77세 되신 어르신은 천사에게 “지금 인생을 즐기고 있으니 후일에 오라”고 말을 합니다.
이제는 천사가 70대를 떠나 80세가 되신 분을 찾아가서 같이 가자고 말합니다. 그러자 80세 되신 분은 “아직 쓸모가 남아 있으니 때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거절합니다.
천사가 다시 88세 되신 분을 찾아가 만납니다. 88세 되신 분은 “이제 밥맛을 조금 알게 되었으니 쌀을 좀 더 먹고 간다”고 말합니다. 88세 되어 보니 인생이 살아가는 맛을 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제 천사가 90세가 되신 분을 찾아가 만납니다. 90세 정도면 인생을 마무리할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90세 되신 분은 천사더러 “어련히 가게 되니 서두르지 말라”고 말합니다. 애둘러 하는 말이지만 이 말 또한 천사와 동행함을 거절하는 말입니다.
이제 천사가 99세가 되신 분을 찾아가 만납니다. 99세면 세상에서 장수하신 분이라고 예우를 크게 받을 수 있는 나이입니다. 그런데 99세 어르신은 천사에게 무슨 말을 하였을까요? 정답은“때가 되면 알아서 스스로 가게 되니 재촉하지 말라”고 하더랍니다.
이 이야기를 살펴보면, 등장하는 모든 연령대의 사람에게 다 이유와 변명이 있습니다.
젊은 사람이든 또는 나이가 지긋하여 세상을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든, 세상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하루라도 더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천사가 와서 함께 가자고 권유해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차일피일 뒤로 미루는 것입니다.
사람은 세상을 떠날 때가 되면, 지내온 일생을 회고하면서 보편적으로 세 가지를 후회한다고 합니다. “더 많이 베풀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더 많이 참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좀 더 많이 사랑하며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합니다.
저는 우리 덕민 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살아가는 일생이 후회 없는 삶이되길 소망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이 사랑과 긍휼을 베푸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힘든 것이 내 화를 돗운다고 하더라도, 더 많이 인내하고 참으면서 그리스도의 덕을 드러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더 많이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랑은 내 속에 숨겨서 아껴 둔다고 해서, 이자가 붙는 것처럼 더 많아지지 않습니다. 도리어 사랑은 퍼주고 나누어 줄수록, 나에게 더 많이 풍성하게 솟아 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오늘 본문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요구하시는 모습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실제적으로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성경에 등장한 라오디게아 교회는 말세를 살아가고 있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고로 이 말씀은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한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요구하고 있는 사명이 어떤 모습일까요?
1. 금을 사라
18 상반절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첫 번째로 무엇을 사라고 말합니까? 금을 사라고 말합니다. 금, GOLD입니다. 금 보기만 해도 부자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보기만 해도 좋은데 금을 소유할 수 있다면, 더 행복할 것 같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런 마음 때문에 금을 가지려고 합니다. 금반지를 해서 손가락에 끼우고, 이왕이면 중량이 많은 금을 사용해서 큰 금목걸이를 착용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말하는 금은 금반지 금목걸이의 금과는 성격이 조금 다른 금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불로 연단한 금”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금은 형태를 바꾸기 위해서는 불로 제련을 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불로 금을 녹여서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 사용합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불로 연단한 금’이라는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금은 변하지 않는 속성 때문에 대부분 ‘믿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불의 연단은 시련을 표시합니다. 따라서 불로 연단한 금이라는 말은 “시련과 역경을 거쳐서 만들어진 믿음”이라는 의미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당시에 라오디게아 교회가 있던 지역에는 금이 많이 생산되었습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 교회 교인들도 금을 소유하고 있었고, 다른 여느 지역보다는 풍족한 생활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가지고 있는 세상의 금이 이들의 믿음을 도와주지 못하였습니다. 가지고 있는 많은 금이 도리어 올바른 믿음생활을 방해하는 큰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누런 황금을 많이 가지려고 애를 쓰지 말고, 도리어 시련과 역경을 통해서 얻게 되는 믿음의 금을 가지라고 말한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교인들은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랑할 정도로 풍요로웠습니다.
돈과 물질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부자라고 말하면서 전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생활에 올인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결과 이들은 예수님에게 신랄하게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실제로 A. D. 60년 경에 라오디게아 교회가 있는 소아시아 지역에 대지진이 발생하였습니다. 그 결과 많은 도시가 파괴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면서 이재민이 발생합니다.
이때에 로마 정부당국이 파괴된 라오디게아 도시의 재건을 돕고자 합니다. 그런데 로마 정부당국의 이런 도움을 거절합니다. 자력으로, 즉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돈으로 도시를 다시 재건해 버립니다. 이 정도로 부유하였고 당당했던 도시가 바로 라오디게아였습니다.
하지만 라오디게아 교회와 교인들은 세상의 금은 많이 가지고서 자랑하였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부끄러운 교회와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도라고 하여서 항상 가난하게 살아야 되고, 세상의 부귀와 물질을 가지면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 역시 세상에서 불신자들에 비하여 하나님의 복을 누리고 잘 먹고 잘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금에만 매달려 있다가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금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물질과 향락 때문에 믿음을 뒷전으로 돌려 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세상의 금을 팔아서 믿음의 금을 가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누구나 금이 많은 부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금을 가지고 있으면서 믿음의 금을 놓쳐 버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면 곤란합니다. 손가락에 금가락지 하나 없어도 됩니다. 목을 빛나게 하는 금목걸이가 크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말과 행동과 모습 속에서 믿음이 사라지지 않도록 늘 자신의 믿음을 키우고 점검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2. 흰 옷을 사라
18 중반절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예수님은 두 번째로 성도가 사야할 것을 두고 “흰 옷을 사서 입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냥 이것 저것 아무 옷이나 사지 말고 ‘힌 옷’을 사라고 말씀합니다. 왜 굳이 힌 옷을 사라고 했을까요? 화려한 빨간색도 있고 분위기 있는 핑크색도 있는데, 왜 콕 짚어서 힌옷을 사서 입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인가요?
그것은 ‘흰 옷은 의미는 거룩함과 정결의 옷’입니다. 또한 성도가 힌 옷을 입는다고 말하는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의롭게 되었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이미 언급을 했습니다만, 라오디게아 교회는 부자교회였습니다. 교인들도 돈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매우 화려한 옷을 입고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들이 아무리 돈을 많이 주고 최고급 직물로 만든 옷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이런 세상의 옷은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는 옷이 되지 못합니다.
아무리 좋은 세제를 사용해서 옷을 수십 수백 번 세탁한다고 해도, 의로움을 나타내는 흰 옷이 될 수 없습니다. 의로움과 거룩함의 흰 옷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가질 수 있는 옷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희게 만들어진 힌 옷을 입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것은 힌 옷을 입어서 벌거벗은 수치를 가려야 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벌거벗은 몸을 가리려고 한다면, 굳이 보혈의 힌 옷을 입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아무 옷이나 거적대기라도 상관 없이 걸치기만 한다면, 벌거벗은 몸을 가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꼭 힌 옷을 사서 벌거벗은 몸의 수치를 가리라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세상의 옷으로서는 사람을 의롭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죄인을 정결하게 만들어서 의인이 되도록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 아무리 화려한 최고의 옷을 걸치고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눈앞에서는 그 사람이 숨기고 있었던 더러운 모습이 다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존경받는 권위의 옷으로 자신을 포장해도 예수님의 눈을 속이지 못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는 최상의 방법은 마스크를 잘 착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두가 지금 예배 시간에도 안전을 위해 마스크를 쓰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마스크 가격이 폭증했지만, 지금은 한 장에 5백원도 되지 않는 돈으로 살 수 있습니다. 값비싼 마스크라고 해서 바이러스를 더 잘 막아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마스크를 잘 착용하는 것이 바이러스를 막는 최고의 예방책입니다.
명품마스크라고 말 들어 보셨나요? 제가 명품 마스크를 소개해 드릴깨요,
사지는 못할 것이니 그냥 눈요기나 하십시오. 먼저 명품 버버리 마스크입니다. 이건 한 장에 14만원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루이비통 마스크입니다. 비닐 한 장인데 가격이 무려 800유로, 한국 돈으로 110만원이라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가격이지요. 다음은 명품 구찌 마스크입니다. 이것도 20만원정도 한다고 합니다. 다들 사람이 가진 명품 허영심을 자극하여 만든 헛된 모습입니다. 명품 마스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개 십수만원씩 하는 명품마스크 줄도 있다고 합니다.
제가 왜 이런 관심조차 가질 필요가 없는 명품마스크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요? 그것은 저런 명품 마스크 하나만 몇 달 사용하는 것보다, 500원짜리 마스크를 날마다 교체하며 사용하는 것이, 바이러스로부터 몸의 건강을 지키는 비결임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주일날 교회에 나올 때에 깨끗하고 좋은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세상에서 생활할 때에 다른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지 않기 위하여 의관을 정제하고, 품격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인격을 갖추는 예의입니다.
제가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할 때에 지금은 소천하신 은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돈 있으면 옷 사 입고 돈 있으면 책 사라. 옷을 사서 신학생으로서 정갈한 모습을 교인들에게 보이고, 책을 사서 머리에 넣어서 지혜로움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해라” 두고두고 되새겨도 명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면서 그 은사님은 목회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옷을 덧입지 않으면, 그 사람은 목회를 올바르게 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이끌어 내는 값비싼 옷도 필요하다면 갖추어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옷만으로 내 몸을 감싸는 모습에 머물지 마십시오. 내 속에 있는 죄악을 씻어 내어 주는 그리스도 보혈의 옷을 입지 못한다면, 나는 하나님에게 인정 받지 못합니다. 교회에 출석은 하지만, 구원의 반열에 동참하지 못하게 됩니다.
위선과 거짓을 옷을 벗어 버리고, 죄악으로 얼룩진 검은 옷, 싸움으로 인한 피 묻은 옷을 벗어 버리도록 합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하신 의의 흰 옷을 입는 덕민 교회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안약을 사라
18하반절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눈에 질병에 생겨서 안과를 방문하게 되면 항상 안약을 정해서 줍니다. 어떤 안약은 눈병을 치료해 주는 안약도 있고, 어떤 안약은 고혈압으로 인해서 높아진 눈의 안압을 낮추어 주는 약도 있습니다. 그래서 안약이라고 해서 아무 안약이나 눈에 넣으면 절대 안 됩니다. 함부로 냉장고 안에 있는 안약을 눈에 넣었다가는 정말로 큰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성도들에게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라고 말합니다. 안약을 사서 흐릿해진 눈을 맑게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약을 사서 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조건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1)어떤 안약을 살 것인가? 2)무엇을 볼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곧 여기서 말하는 안약은 세상의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안약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안약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 세계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만드는 안약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나를 지켜 주시고 보살펴 주시는지 깨닫고 볼 수 있는 안약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의 눈이 열려야 합니다. 육신의 눈만 가지고 세상을 보면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첩첩산중 가로 막혀 있는 것 때문에 불안해서 잠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눈을 떠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세상의 걱정과 근심은 더 이상 나를 흔들지 못하게 됨을 느끼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로 어두워진 내 눈을 밝게 여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를 회복시키시며 내 영성을 성장케 하시는 분입니다. 히 12:1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힘든 세상을 너끈하게 이겨나가시는 믿음의 승리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한 TV 프로그램에 91세 할머니가 출연했습니다. 진행자가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할머니, 소원이 뭐예요?”,“남들이 들으면 욕하겠지만 더 오래 사는 게 소원이야.”, 진행자는 의외의 답변에 놀라면서 “왜 그렇게 오래 살고 싶으세요?”라고 물어 봅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내가 오래 살아야 내 딸을 돌보거든.”,
무슨 말인가 하면, 91세 할머니에게는 두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중증 장애를 가진 70세 딸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딸을 돌보기 위해서는 자신이 더 살아야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남들에게 짐이 되는 장애를 가진 딸이 할머니에게는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성도는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부담이 되고 짐이 된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가볍고 편하고 부담 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유혹에 넘어 가지 마세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금을 사고, 힌 옷을 사고, 안약을 사서 사용 해라고 말합니다.
이것 또한 부담되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영적인 부담이 나의 신앙을 살지게 만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믿음의 길로 달려가면서 하나님의 복을 받는 성도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