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승군활동 대규모 사찰 ‘고려초 마애불’ 입증 보물 지정 진신사리석탑 등 도심 속 ‘보궁’ ‘인덕원’ 운영 등 복지불사 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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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사 마애불(보물 제657호)에 기도하는 등산객들. 삼천사 마애불은 햇빛의 각도에 따라 다양한 색으로 보이는 것이 특징으로 심심 미묘한 미소를 보여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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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각산 삼천사 마애불님 태어나서 코가 뭉개지도록 수행만 했을 텐데 아직 닦아야 할 무엇이 있다는 건지 반쯤 눈감고 무량무궁한 명상에 잠겨 계시다
- 시인 홍사성 ‘염화미소를 읽다’ 중에서
갸름한 얼굴에다 도톰한 눈두덩과 가는 눈. ‘다 똑같이 생긴’ 다른 불상과는 사뭇 달랐다. 1000년이 훨씬 넘는 세월에 그 앞에선 중생들의 간절한 기도를 저렇듯 자애로운 표정으로 받아냈으리라.
북한산에는 다양한 마애불이 있다. 그 중 은평구 진관외동에 위치한 삼천사의 마애불은 북한산에서도 몇 안 되는 고려시대 초기 마애불이다. 북한산에서 고려시대 마애불은 이 곳 삼천사마애불, 승가사마애불, 옥천암마애불, 보타사마애불 단 네 곳밖에 없는데 이중 삼천사 마애불이 가장 오래됐다.
보물 제657호인 삼천사 마애불은 서울 근교에 있는 마애불 중에서도 가장 균형 잡힌 마애불로 꼽힌다. 늘씬하게 균형이 잡힌 마애불 입상의 몸매는 단정하고도 우아하다. 오른손은 자연스레 내리고 왼손은 배 앞에서 받쳐 든 모습인데, 석가모니의 성도(成道)를 상징하는 수인이다. 태양의 각도에 따라 비쳐지는 모습이 다르니 옛 선조들의 조각기법이 얼마나 뛰어난지 탄복이 쏟아진다. 마애불 앞에서면 저절로 공경심이 든다. 등산을 하던 등산객들도 마애불 앞에서는 공손히 손을 모은다.
이 마애불의 가치가 드러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1970년대 현재 삼천사의 주지를 맡고 있는 평산 성운 스님이 부임하며 경내에 위치한 마애여래입상이 천년 고불(古佛)임을 입증해 1979년 보물로 지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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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사 대웅보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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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운 스님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30여 년의 중흥 불사를 통해 마애불 주변에 삼천사를 재건했다. 사실 삼천사의 역사는 오래됐다. 〈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 때 원효와 진관 스님에 의해 창건되어, 고려시대에는 상당한 규모였다. 임진왜란 때는 서울지역 승병들이 운집했던 장소이고, 그때 절이 타버린 비운을 안고 있다.
이후 이 지역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군사보호지역으로 출입이 통제됐다. 그래서 이 지역에는 지금도 수영장 등 훈련시설과 휴양시설들이 남아 있다.
그래서 지금도 삼천사는 경내가 비좁다. 간신히 계곡에 붙어 절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그런 까닭에 등산로는 협소하고 시멘트 포장이 돼 있으며 옆에는 군사훈련지역이 자리하고 있다. 고려 때 삼천사 자리가 아니라 원래는 마애불을 모신, 삼천사에 속하는 작은 암자 터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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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진신사리불탑은 월정사 8각9층탑과 아쇼카 석주사자상을 접목했다. 진신사리 7과와 금강경 600부 등이 봉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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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사에서 2km 위쪽에 위치한 옛 삼천사 터에는 대형 석조(石槽)와 동종(銅鐘), 연화대좌(蓮花臺座), 석탑기단석(石塔基壇石), 석종형부도(石鐘形浮屠), 대지국사(大智國師) 법경(法鏡)의 비명(碑銘)이 남아 있는데, 그 중 동종은 보물로 지정받아 현재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삼천사의 앞에서 길손을 맞는 것은 대웅전 앞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과 세존진신사리비(世尊眞身舍利碑)다. 이 곳 삼천사에 봉안된 부처님 진신사리는 1988년 성운 스님이 미얀마 마하시사사나 사원에서 모셔 온 것이다.
삼천사는 사회복지법인 인덕원과 은평노인복지관 등 복지불사의 모체다. 세존진신사리4사자9층석탑은 마애불과 함께 자비·복지실천의 선두주자인 삼천사의 상징이다. 아쇼카왕의 복지사상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주지 성운 스님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아쇼카 석주 4사자상탑을 조성했다. 종형 사리탑과 함께 진신사리를 모신 4사자상탑이 있는 삼천사는 마애부처님이 계신 ‘보궁’으로 기도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북한산의 수많은 마애불은 우리 선조와 현재 우리들의 간절함을 대변한다. 오랜 세월 풍파에 닳고 닳았지만 민초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그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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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형사리탑. 1988년 미얀마 마하시사사나 사원에서 아판디타 대승정으로부터 전수받은 사리 3과가 봉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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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운 스님 |
“시민 선방 등 열린공간 발돋움”
주지 성운 스님
30여 년 동안 불사를 통해 삼천사를 재건한 성운 스님은 삼천사 마애불은 당시 일대 주민들의 신앙처임을 부각시켜 사찰을 열린 수행공간으로 구성할 것을 밝혔다.
삼천사는 성운 스님이 대웅보전, 산령각, 천태각, 연수원, 요사채 등의 건물과 세존진신사리탑, 지장보살입상, 종형사리탑, 관음보살상, 5층 석탑, 중창비 등을 하나씩 조성해 현재 문화재 전통사찰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수많은 참배객들의 기도도량, 참회도량, 수행도량으로서 확고히 자리하게 되었다.
스님은 “삼천사는 서울시이면서 산에 위차한 포교당이기에 도시 속의 산중 포교당으로 시민선방을 꾸려 단기출가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마애불은 그 시대 서민들의 신앙생활을 담은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이어 도심과 산중 포교당으로서 열린 공간으로 사찰을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삼천사 가는 길
대중교통=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서 하차하여 2번 출구로 나오면 삼천사ㆍ사회복지법인 인덕원 셔틀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하루에 4번 셔틀버스가 있으며 법회가 있는 날은 오전 8시부터 11시 30분까지 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자가용=지하철 3호선 연신내역에서 은평경찰서를 지나 하나고등학교 앞에서 좌회전을 하면 삼천사 초입이 나온다.
▲주변 맛집
삼천사에서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왼쪽으로 근처 군부대에서 제방을 쌓아 계곡을 막은 곳이 있다. 여러 음식점이 있는데 그 중 첫 번째 집이 청솔산장이다.(02-381-3005) 도토리묵과 해물전 등이 별미다.
▲주변 둘레길
삼천사 뒤편에는 사모바위까지의 2.5km 구간의 탐방로가 개설돼 있다. 들머리에서 응봉능선을 이어 사모바위로 가거나 절을 지나 계곡 깊숙이 들어선 후 부암동 암문이나 비봉능선으로 길이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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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감사합니다. _()_
예전에 생각이 절로~~ 언제 다시 찿고 싶은곳 이지요. 감사합니다....나무묘법연화경()()()
법우님들과 함께 북한산 비봉을 넘어천사를 순례한 기억이 새롭네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