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생애가 바로 야고보서와 같습니다.
히브리서를 건너와서 야고보 그 다음에는 베드로, 요한으로 연결이 됩니다.
참고로 요한은 사랑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뒤로 갈수록 계속 진보합니다.
야곱은 어떤 상태의 존재가 다른 상태로 변하는 생애를 살았습니다.
야고보서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약1:1)하고 시작합니다.
12지파는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책임과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진 족속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야곱의 아들들이라는 뜻입니다.
12지파는 왕권을 가진 유다와 이스라엘의 총칭입니다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진 열두지파에게’는
온 세상에 뿌려져 있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 전체를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흩어진 12지파’ 곧 ‘디아스포라’는 관사가 있으므로
‘그 안에 있는 하나의 공동체’ 곧 하나님의 나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전체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에서도 잘려나간 사람들이 있습니다.(히2장, 6장, 10장)
그리고 난 다음에 12지파가 나옵니다.
성경은 폐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12지파입니다.
이 12지파 곧 전체 이스라엘이 계시록까지 가는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경을 통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12지파들에게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1:2)
시험을 복으로 간주하고 기쁨으로 바꿔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산상수훈에서도 박해하거든 기뻐하라 하늘의 상이 큼이라 말씀하십니다(마5:10-12)
시험을 기쁨으로 여길 수 있는 능력이 곧 정복과 다스림의 영적인 상태입니다.
히브리서가 이루어지면 이와 같은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홍해를 건너 40년 광야 생활 동안 애굽의 노예근성을
빼내고 난 다음에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듯 우리들에게도
세상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 광야와 같은 긴 신앙의 여정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옮겨진 자신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진리의 성령의
가르치심과 인도를 따라 묵묵히 주의 보좌로 걸어가는 긴 기간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난다는 말은 사면팔방으로
여러 형태의 시험에 둘러 싸여 있는 모습입니다.
흡사 마른 우물 안에 갇혀 있는 형국입니다. 괴롭습니다.
이런 상황을 만나거든 기쁨으로 바꿔버리는 말씀인데 우리는 참 버겁습니다.
그런데 왜 기뻐하라고 하시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1:3)입니다.
히브리서를 건너 야고보서의 독자가 되는 수준에 이르게 되면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것임을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시련이란 시험이나 시련을 거친 후에
받는 인정서 곧 합격증서와 같은 것입니다.
믿음은 말씀에서 나옵니다.
지금 시험에 빠진 사람과 믿음의 시련을
이룬 사람의 차이는 말씀에 의한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이루어 낸다는 말씀은
꾹꾹 눌러 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둘러싸인 시험에 끄덕하지 않고 줄기차게 흔들림 없이 계속되는 자세입니다.
아! 과연 이 믿음을 제가 가지고 있는 걸까요? 참 괴로운 여정입니다.
그러나 아이 밴 여인의 해산의 수고는 기쁨이 예약이 된 고통이듯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이 되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에게는 비록 현실의 시험이 고통스럽기는 해도 비디오를 보는
것과 같이 약속에 의해서 이미 결정이 난 결과를 보는 구원의 드라마와 같습니다.
그래서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4)고 말씀하십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는 말씀은 그 인내가 온전한 일을 하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인내는 믿음으로부터 와서 내 안에 존재화 되어 갑니다.
곧 인격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야곱이 얍복강을 건넌 다음의 변화처럼 말입니다.
인내(휘포모네)는 아래에 거한다 아래에 살다는 뜻인데
진리의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계명을
지키므로 주 안에 거하고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하시는 영적인
상태에 머무는 것(요14:23)이 바로 인내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땅에 있는 성도 곧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여정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역사하는 대로
살아가는 인생으로 되어 가는 것이 바로 인내입니다.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하심은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이루는 창조사역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하나님의 전부를 받는 상속자가 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저희로 다스리게 하자’(창1:26)고
하신 하나님의 창조계획과 그 설계도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 이병철 삼성회장이 아들 중에 셋째인 이건희에게 삼성을 물려주었듯이..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함이라’
어떤 경우라도 부족함이 없는 자라는 뜻입니다.
만약 ‘저 사람은 다 훌륭한데 의지가 약해’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됩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정리하면
시험이 믿음의 시련을 이루고 인내는 온전하게 되는 작업이며 공부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온전하게 구비된 완전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어 갑니다.
그러므로 시험이 오거든 기쁨으로 바꾸어 버리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 대상은 ‘내 형제들아’입니다.
야곱의 육적인 12아들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고 그 몸의 지체들이 되어 온 세상에 흩어진 나그네들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이스라엘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첫댓글 아멘입니다.
결국 믿음의 시련이 무엇이 가치이고, 영광인지 가르쳐 주는 시금석 입니다.
그나마 믿음의 시련이 없었다면 자기주제(저 본인) 파악도 못했을 겁니다.
할렐루야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정착하게 하심을 주께 찬양합니다.
좋은 신앙 글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할야!
할렐루야 주께 영광을!